7:xiv 사자의 이빨

콜스웨인이 기운바위 기지가 자리한 절벽 위로 제 몸을 끌어올린다. 어둠이 그를 감쌌고, 몇 초마다 내리치는 벼락이 그 어둠을 가를 뿐이다. 이곳은 통로 일대의 방어 진지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바위의 바람 그늘에 들어선 지금, 그를 덮치던 강풍은 다소 약해진 채다. 아래쪽 경사면에 있는 여섯 지탱점에서 울려 퍼지던 전투의 노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마지막 저항이 토해내던 격노는 쉿쉿대는 폭우, 지글대는 벌레들 속에 묻힌 뒤다.

거의 불가능한 수직 등반이 그의 사지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분명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콜스웨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검은 공기는 빗방울과 날파리가 발하는 반짝임으로 메워진다. 마치 단단한 덩어리처럼 소용돌이친다.

검집에서 검을 뽑은 콜스웨인은 폭우를 뚫고 달린다. 사이퍼에게 도달해야만 한다. 사이퍼는 결코 무너져서는 안 된다.

어쩌면, 사이퍼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기운바위의 경사면을 향해 콜스웨인이 돌진한다. 빗물이 가는 타래가 되어 물줄기를 빚어내 바위 아래로 흐른다. 바위 전체를 뒤흔들 위험한 흐름이다. 물이 시커멓게 얼룩진 채다. 피인가? 저 얼룩이 피인가?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는 아래의 통로 위로 제단처럼 솟은 바위의 너른 정점을 본다. 바람을 맞으며 콜스웨인이 위로 올라간다. 바람이 전력으로 그를 짓누르는 것 같다. 콜스웨인의 눈에 옆으로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 사이퍼의 형상이 드리운다. 바위 가장자리를 기어오르는 데스 가드 군단병들의 칠흑 같은 형상이 비친다. 놈들은 그가 두려워했던 것보다도 훨씬 직접적으로, 그보다 훨씬 빠르게 여기 이른다. 자연이 빚어낸 협곡의 장벽을 말이다. 그가 쓸 수 있는 도구는 결단력과 초인의 힘뿐이었지만, 놈들은 이 세상을 넘어선 힘으로 여기까지 들린 것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소름끼치는 힘이다. 빗속에서 마치 시커멓게 칠해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갑주를 두른 놈들은 공포의 존재나 다름없다. 병들어 비틀린 놈들의 형상에서 악취가 느껴진다. 놈들이 들고 있는 갈고리와 칼날이 보인다. 면갑의 틈에서 용광로처럼 비치는 눈빛이 보인다. 이미 몇 놈은 사이퍼의 육신에 닿을 거리다.

그는 너무 늦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다.

잘려나간 팔뚝을 대강 감싼 채, 부목을 댄 브룩타스(Bruktas)가 저기 보인다. 로드 사이퍼의 곤경을 알아치는 것은 콜스웨인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브룩타스는 전선에서 이탈해 아포세카리들의 돌봄을 받고 있었다. 아마 통로 근처의 엄폐호에서 사이퍼가 쓰러지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상황이 어떻건, 브룩타스는 지금 여기 있다. 서둘러 여기까지 달려온 브룩타스는 처참한 부상을 입은 채, 사이퍼의 육신을 지키며 사방에서 그를 죽이려 달려드는 놈들과 싸우고 있다.

바람에 날려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는 제14군단의 피다.

콜스웨인은 제 아비의 이름을 노호하며 브룩타스의 옆으로 달려간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비와 피를 함께 흩뿌리며 데스 가드 군단병이 가장자리 너머로 내던져진다. 정점에 이른 콜스웨인을 다시 강풍이 덮친다. 콜스웨인은 혼돈이 빚어낸 폭풍우 속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싸운다.

다른 놈이 휘두른 마울을 튕겨내며 콜스웨인이 돌진한다. 갑주를 두른 악마가 브룩타스의 다친 옆구리를 공격하기 전 그대로 콜스웨인의 일격이 놈을 찢어버린다. 바람을 가르며, 악전고투 중인 전투 형제의 곁에 콜스웨인이 선다. 순식간에 둘은 각각 두셋의 적과 마주한 채 공격을 막아내고 칼날을 흘려낸다. 바위의 정점에 오르는 좁아지는 공간은 잘 배치된 방어자에게 훨씬 유리한 공간이다. 공격자들이 올라와 교전을 펼칠 공간을 지우는 셈이니까. 그 도움이 없었다면 브룩타스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을 것이다. 이제 콜스웨인과 브룩타스 둘이 단단히 자리를 지킨다. 데스 가드 군단병들의 시체가 정상 가장자리에 널린다. 몇몇은 거의 반쯤 떨어지기 직전인 채다. 몇은 머리가 쪼개지거나 박살난 채 어둠 속으로 밀려난다. 콜스웨인은 또 한 놈의 데스 가드 군단병을 떨궈낸다. 다음 순간, 그의 눈에 강철 갈고리가 날아들어 바위를 움켜쥐는 것이 보인다. 강풍과 폭우를 뚫고 갈고리로 다가간 콜스웨인은 곧바로 끊어내지 않고 그 뒤의 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줄이 팽팽해진다면, 그냥 절벽에 드리운 밧줄이 아니라는 뜻일 테니까.

밧줄이 팽팽하게 조여지며 빗방울이 튕긴다. 콜스웨인은 바로 검을 휘둘러 밧줄을 끊어낸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 위로 금속 덩어리들이 요란하게 쏟아져 내리는 눈사태 소리가 들린다.

또 다른 데스 가드 군단병이 솟구친다. 머리와 어깨를 선두로 그 육신이 바위 위로 올라온다. 콜스웨인은 그대로 뒤꿈치로 놈의 바이저를 걷어차 떨어뜨린다. 반역자는 추락하며 팔을 휘두른다. 놈의 눈빛이 불탄다.

다시 한번 폭풍우가 콜스웨인을 제 희생자와 함께 쓸어가려 한다. 콜스웨인은 자세를 바로잡는다.

뒤에서 브룩타스의 비명이 들린다. 타이퍼스의 빌어먹을 개자식 네 놈이 한 번에 정상에 올랐고, 한 놈이 전쟁망치를 휘둘러 다크 엔젤 군단병을 쓰러뜨린 뒤다. 브룩타스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사이퍼의 육신을 제 몸으로 보호하려 들고 있다. 콜스웨인은 몸을 굽혀 왼손으로 갈라진 돌에서 쓸모가 사라진 갈고리를 뽑는다. 오른손에는 검이, 왼손에는 갈고리가 들린 채 돌진이 시작된다. 한 놈이 뜨거워진 갑주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며 콜스웨인을 공격한다. 콜스웨인은 갈고리로 묵직한 칼날을 막아낸다. 아직도 갈고리에 매달린 끊긴 밧줄이 술처럼 늘어진다. 그대로 상대의 무기를 비틀어 방어 자세를 무너뜨린 콜스웨인은 제 검을 놈의 상체 갑주에 꽂아 넣는다. 상처에서 비정상적인 액체가 뿜어지고, 살아 있는 벌레가 피처럼 상처에서 쏟아진다. 순수한 혐오감에서 치민 충동으로, 콜스웨인은 반쯤 죽음에 임박한 반역자를 강철 갈고리로 후려친다. 데스 가드 군단병은 벌레와 끈적한 고름을 흘리며 제 전우 한 놈에게로 쓰러진다. 그대로 두 놈이 절벽 아래로 미끄러진다. 콜스웨인은 바로 갈고리를 힘껏 아래로 휘둘러 반역자의 견갑을 갈기갈기 찢는다. 다음 순간, 콜스웨인은 놈의 어깨에 꽂힌 갈고리를 거칠게 잡아당긴다. 제 뒤에 박힌 갈고리의 잡아당김을 견디지 못한 반역자는 손과 무릎으로 땅을 짚고 쓰러진다. 콜스웨인은 놈의 척수 아래로 그대로 검을 꽂는다.

다른 놈이 벌써 그를 덮치고 있다. 콜스웨인은 오른쪽 견갑에 일격을 허용한다. 비틀거리는 콜스웨인을, 반역자를 연기처럼 뒤덮고 있던 딱정벌레의 떼가 휘감는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날개짓 아래, 숨겨진 병든 속삭임이 들린다.

데스 가드 군단병이 옆으로 돌아선다. 그때 정신을 차린 브룩타스가 놈의 옆구리에 일격을 가한다. 브룩타스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점점 약해지고 있지만, 그의 분노에 한 점 꺼짐도 없다. 이것이 바로 칼리반이 길러낸 용기요, 이것이 바로 사자의 이빨이ᄃᆞ.

콜스웨인은 브룩타스의 옆에 다시 선다. 잘려 나간 그의 팔을 대신하여, 반역자들을 바위 아래로 베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