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브링어는 위태로운 순간임에도 매서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지난 몇 년동안 살아오면서 어느때보다도 활력을 느꼈다. 그는 마침내 책임감의 무게를 자신보다 훨씬 강인한 이에게 넘겨줬고, 이제 바라는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바라는 것은 그의 삶을 너무나도 오랜 세월동안 더럽혀왔던 적을 사냥하는 것이었다. 그의 자식들과 그의 눈을 앗아간 짐승. 그의 백성들을 학살하고 그의 권위에 도전한 짐승.

카즈라크는 죽을 것이다. 설령 세상이 종말로 향하고 있더라도, 황제가 쓰러질지라도, 카즈라크는 죽을 것이다. 짐승은 죽어야만 한다. 이러한 확신이 토드브링어를 움직이게끔 만들었고, 그의 늙은 몸뚱아리에 힘을 주며 마치 지금 나이의 절반밖에 안되는 것처럼, 마치 미치광이처럼 적들을 베어넘길 수 있었다. 온 세상이 단 하나의 목적에 집중되었고, 더이상 무엇도 중요치 않았다.

엔드 타임. 그가 나무 방패를 쪼개고 짐승의 가죽을 갈라버리는 와중에도 엔드 타임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그의 몸이 떨려왔다. 언고어는 룬팽이 놈의 심장을 찔러오자 공포로 울부짖었다. 토드브링어는 손목을 한번 비틈으로써 놈을 동족 곁으로 보내줬다. 엔드 타임. 그가 발텐의 건장한 어깨에 그의 권한을 얹어준 이유였다. 그를 미덴하임의 성주로 임명한 이유였다. 모든 전쟁을 끝내는 전쟁은 지그마의 전령이 맡으라지. 토드브링어는 본인만의 전쟁이 있었다. 지그마의 전령이 치룰 전쟁보단 작은 전쟁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만약 세상이 끝난다면, 그에겐 끝내야할 마지막 일이 있었다. 치뤄야할 마지막 빚이 있었다.

베인비스트(카즈라크)를 죽이고 놈의 워허드를 끝장낸다. 비스트맨 부족들이 무너지면, 북쪽의 전쟁은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고기방패없이는, 세 눈의 왕은 본인들의 수적 우세를 더이상 내세울 수 없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전세를 충분히 뒤집을 수 있었다. 그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충분해야만 했다.

마음 속에서 죄책감이 그를 관통했다. 토드브링어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 작지만 고집스러운 부분이 계속해서 그가 그의 도시를, 백성을 외부인에게 떠넘겼다고 속삭였다. 오직 토드브링어만이 미덴하임에 닥쳐올 폭풍을 막아낼 수 있었을거라고. 그리고 토드브링어의 투지는 의혹으로, 의혹은 그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확신으로 변했다.

아주 잠깐, 그는 홀로 가만히 서있었다. 그의 마지막 병사가 짐승-인간들의 칼날에 죽임을 당하는 소리를 듣자 그의 심장이 비통함으로 아려왔다.

'네 탓이다, 늙은이' 토드브링어가 생각했다.

토드브링어는 그에게로 다가오는 무리들을 바라봤다. 이들이 바로 이 세계를 물려받을 자들이었다. 토드브링어는 코웃음을 치더니 그의 목청에서 쏟아져나오는 광소를 멈출 수 없었다.

토드브링어는 그에게 다가오는 비스트맨들을 바라보며 팔을 넓게 벌렸다. 그들의 공격을 기꺼이 받아주고자 했다.

'오너라 짐승들아. 추잡한 개새끼들아, 어둠의 개새끼들아, 똥개새끼들아. 토드브링어는 아직 굳건하노라. 미덴하임은 굳건하노라. 와서 백랑의 송곳니를 느껴봐라!'

본인이 병신짓 하고 있다는 자각 정도는 분명히 하고 있었음

다만 대의보다는 '세상이 멸망할 운명이라면, 늙은이의 숙원 한번 풀고 가야겠다'라는 마음이 훨씬 큰거지

잘했다는건 절대 아니지만 이해못할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