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번역] [테라 공성전 : 워호크] 3부 5장 (2) 텅 빈 길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3.22 08:54:34
조회 2369 추천 37 댓글 4
														

지기스문트는 자신을 찾아 안개 너머에서 움직여 오는 칸을 보았다.


월드 이터 군단원은 자신의 공세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뒤에 따라오는 전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앙그론의 군단에 속한 1백이 넘는 전사들이었고, 그 뒤에 더 있음은 저 요란한 소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이성의 마지막 남은 조각을 벗어던진 채 발광하고 있었다. 질주, 그리고 광란의 포효였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그 양태, 아주 잠시나마 그것을 보면 갑작스럽게 종족의 조상의 집을 떠나, 영원한 야만을 가진 어떤 세계에 던져졌다고 여기게 되리라.


지기스문트의 지휘를 받는 전사들은 이미 수적으로는 열세였다. 지기스문트의 본래 생각은 선 오브 호루스 군단에게 충분한 피를 흘리게 한 뒤 물러날 작정이었다. 그것이 그의 프라이마크가 지기스문트에게 내린 유일한 명령 아니던가. 그들이 고통으로 울부짖게 만드는 것. 그리고, 사실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이미 패한 전쟁임을 그 역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것은 저항을 담은 행동일 뿐이었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조금 놈들을 늦출 수는 있겠지만, 지기스문트의 목표는 작게나마 피해를 입히는 것이엇고, 늘 그래왔다.


그리고 그렇지 않았던 때가 있었는지, 지기스문트는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지난 7년 동안, 그들은 이단자들과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그리고 이길 수 있다는 진정한 확신 속의 전투보다는 그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욕망이 더 강렬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지기스문트는 의식적으로 그런 정신에 저항했다. 그는 언제나 그보다 더 나아가야 함을 밀어붙였고, 킬러처럼 자신을 믿는 이들이 그것을 자극했다.


더는 아니었다. 이제 그의 우주를 가득 채운 것은 복수였다. 오직 남은 진실은 복수 뿐이었다. 복수만이 남았고, 복수심은 이제 그를 밖에서 채우는 동기가 아닌, 그 자체를 위한 마지막 의무였다.


그는 결코 놈들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었다. 앞으로도 아니리라.


“교전하겠다.”


지기스문트는 선 오브 호루스 군단의 전사들과 격렬한 전투중일 란에게 복스 교신을 보냈다.


답은 없었다. 답신을 보내기엔 너무 바쁜 상태이리라. 하지만 지휘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분명히 전달되었으리라. 아직도 그와 함께 싸우고 있는 사람들, 느슨한 절망으로부터 끄집어내어 적 앞으로 다시 내던진 이들, 그들은 조금 더 버텨야 할 것이다. 수천에 이르는 이들이 이 면죄부를 위해 죽음을 맞이할 것이나, 죽음이란 결과는 중요치 않았다. 그들은 이제 성화(聖化)된 존재였다. 그는 순교자를 빚어내고 있었다.


지기스문트는 그가 빚어낸 마지막 희생자의 시체를 밀어냈다. 생명을 잃은 육신이 고가교의 바닥에 거세게 부딪힌 뒤 망각을 향해 떨어졌다. 자유로워진 그의 손 안에서 검이 날카롭게 떨렸다. 검의 영이 거세게 들끓었고, 살육에 대한 합창이 그를 감싼 불타는 바람에 힘입어 힘차게 울부짖었다. 그의 검은 적을 알아본 순간, 그 가치마저도 알아차렸다.


지기스문트의 등 뒤에는 한때 통신용 탑이었던 터미누스 탑이 있었다. 플라스틸과 우슬릿으로 빚어진 거대한 덩어리였고, 난간이 왕관처럼 둘러져 있는 무너진 고양이의 요람과도 같은 형상이었다. 양 옆으로는 자욱한 안개가 드리운 심연이 펼쳐졌다. 그의 앞에는 낡은 승강용 통로가 펼쳐져 있었다. 측면의 광대한 방폭 난간은 깨끗이 뜯겨 나간 채였고, 박격포가 뚫은 구멍이 바닥 곳곳에 뚫려 있었다. 월드 이터 군단병들은 그 자욱을 따라 광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울부짖으며 맹위를 떨쳤다.


지기스문트는 자기 배후에서 템플러 형제단원들이 방어선을 빚어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육중한 방패가 심어지고, 탄창들이 제 자리에 꽂히는 날카로운 소리들. 저 전사들 중 그 누구도 다가올 의식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고, 다가오는 적들 중 그 누구도 마찬가지이리라. 수백여 명의 전사들이 이 높은 곳에서 격돌을 예정하고 있음에도, 그 전사들 중 이 둘만큼은 완전히 홀로이리라. 이것은 둘 사이의 문제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럴 것이다. 기사와 야수. 성도와 이교도.


칸은 불타버린 금속제 난간을 돌며 속도를 붙였다. 지기스문트는 검을 들어 방어 태세를 갖추기 직전, 마지막으로 칸을 보았다. 한때 알고 지내던 그 존재는 이제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정복자의 안에서 그 둘은 갑주를 두르지 않은 채 싸우곤 했었다. 기술과 주문의 이점 따위 없이, 순수한 날것의 힘으로 겨루는 서로 다른 두 인간의 싸움이었다. 그 시절 지기스문트를 향해 광풍을 몰아치며 달려들던 야수는 이제 스페이스 마린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부서진 전투용 갑주에 감싸인 채, 번들거리는 피가 들끓는 망가진 전쟁용 기계처럼 보일 정도였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갑옷 위로 대기가 들끓으며 프라이마크의 기함에 있던 때보다도 더욱 거대해진 형상이었다. 거대한 손에 쥐어져 있음에도 그 크기에서 전혀 부족함이 없는 파워 액스가 포효하며 마지막 살인의 흔적으로 남은 뜨거운 기름과 핏조각을 튀기며 회전했다. 사자의 문 전투 당시 그랬듯이 칸은 악취를 풍겼다. 타오르는 놋쇠, 썩어가는 살점의 향취가 수백에 이르는 다른 전투에서 쌓은 냄새를 압도하며 풍겼다.


지기스문트는 충격에 대비해 굳건한 자세로 버텨섰고, 다음 순간 둘이 격돌했다.


그 후, 둘을 둘러싼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중요치 않았다. 희미한 외침, 그리고 격돌의 소음은 그져 스쳐 지나갔을 뿐. 둘의 격돌은 온전히 둘을 집어삼켰다. 지기스문트는 완벽한 집중 속에 검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검은 지기스문트의 세계에 녹아들었다. 그의 사지가 평생 쌓아 온 끝없는 전투에서 갈고 닦여진 무의식적인 움직임 속에 춤을 추었다. 생각이 아닌, 근육, 기억, 본능이 그대로 튕겨지듯 닥쳤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정경은 이제 실체를 빚지 않았다. 투구의 끄트머리, 미카 드래곤의 번득이는 이, 견갑에 박힌 징의 녹슨 광택이 파편이 되어 그의 시선에 박혔다.


“네놈.”


칸이 으르렁거렸다. 거의 분별할 수 없으리만큼 굳어진 목소리. 피가 이와 갈라진 입술에 뒤엉킨 채였다.


“다시 만났군.”


몇 번이나 둘이 자웅을 겨뤘던가? 십수 번? 그 이상으로? 사자의 문 요새에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곳에서 규칙이 바뀌었고, 판이 달라졌다. 지기스문트와 싸우는 것은 물리적 육체였지만, 그 피부 아래는 무한한 힘이 품어져 있었다. 상처 하나하나마다 날것의 원초적인 마력이 휘감겨 있었다. 일격을 가하라, 피 흘리게 하라, 지금보다 더 거대한 광기의 세계를 열어라.


그렇기에 지기스문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괴물을 위해 내뱉을 말은 없었다. 두 명의 사람이 맺었던 기억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옛 제국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돌고, 베고, 물러나고, 쳐내고, 막고, 밀쳐낸다. 강하게 밀어붙이고, 일격을 피한다. 자동화된 과정이나 다름없이, 더 빠르고 더 강력하다. 그리고 여전히 더 보탤 게 있었다. 내면의 공백은 이미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정신을 비우고, 형제애를 지우고, 웃음과 즐거움을 버린다. 오직 움직임, 동작, 반응, 조르기, 질식, 적의 생명 한 방울까지 짜낸다. 낙인을 찍고, 불태우고, 징계한다.


“난… 저 벽에서 네놈을 죽였다.


칸이 중얼거렸다.


“그때… 네놈을 쓰러뜨렸을 텐데.”


왜 이야기를 하는가? 왜 손을 뻗는가? 그의 프라이마크가 억지로 뜯어낸 결론으로 마무리된 토론을 다시 시작하기 원하는가?


늦었다. 그 논쟁은 이제 끝났다. 그게 차이점이었다. 지기스문트는 더 이상 말로 남길 어느 것도 없었다.


후려치고, 때리고, 찌르고, 부수고, 무너뜨리고, 다시 휘두른다. 일전이라면 공격과 방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개념은 지금 지기스문트 안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마치 자신의 손이 아닌 다른 손이 검을 휘두르듯, 검의 잔상이 시커먼 얼룩이 되어 눈앞을 스쳤다. 마치 밖에서 경기를 바라보는 관찰자처럼, 분리되었다는 그런 느낌. 단지 길의 시작일 뿐, 이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 외에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아무것도 없는, 영원히 뻗은 길을 따라 걸을 뿐.


“너… 뭐가 변한 거지?”


칸이 으르렁거리며 난폭하게 베어들어왓다. 무표정하게 뒤엉킨 공격과 방어의 장막을 물리적 장벽마냥 부수어 뚫어내려는 시도였다.


“네놈… 벌써 죽은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오래 전, 주발은 사슬에서 벗어나 자신의 행위에서 어떤 기쁨을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했었다. 한동안, 그 조언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사슬이 필요했다. 사슬은 그를 이 검과 묶어 주었다. 아름답고 무서운 검, 진실을 알게 해 준 검, 그에게 딱 맞는 바로 이 검, 심지어 자신을 위해 빚어진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 검 말이다. 빚어진 뒤, 어두운 토옥에 갇혀 있다 희망이 불가능한 망상이 된 바로 지금,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 길을 가르는 의식이 된 바로 이 검에 말이다.


처음으로, 지기스문트의 일격이 칸에게 꽂혔다. 갑옷을 찢고, 살갗과 근육 조각을 길게 취했다. 월드 이터 군단원은 휘청이며 뒤로 물러섰고, 제가 가하던 맹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짧은 경악 속에서 살폈다.


지기스문트의 생각이 머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래도록 대련해 온 상대에게 무언가 말할 수도 있을 바로 그 순간. 이 전쟁이 둘 모두를 괴물로 빚어냈다는 걸 깨달았다는 걸 전하는 위안의 순간. 혹은, 그 대신 긴 시간 동안 품어 온 분노를 쏟아낼 수도 있었다. 한때 그들이 함께 빚어내려 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들의 배신이 쏟아낸 이 낭비와 살육에 격분을 토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유혹이었다. 그의 입술은 굳게 다물린 채 열리지 않았다.


나는 이제 도래할 새 제국을 위해 싸운다.


칸의 도끼날이 다시 포효했고, 사지가 도약했다. 누더기가 된 갑주에서 뿜어지는 증기와 피와 땀이 타올랐다. 그리고 흑검이 그런 칸과 정면으로 맞섰다. 침묵 속에, 냉엄하고 열정 없는 무덤의 힘이 그를 맞았다.

추천 비추천

37

고정닉 14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3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게시물은 1만 개 단위로 검색됩니다.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