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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9:vii 생귀너리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2.06 15: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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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vii 생귀너리



오, 이런 죽음은 대체 어떤 것인가? 자신과 동족인, 레기오네스 아스타르테스에 속한 전사의 손에 죽는 것은 어떤 것인가? 내전이 벌어지기 전, 란은 그런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 바가 없었다. 초인에 대한 공포라는 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동족과 마주하게 된 이들, 그러니까 문제를 일으키는 제노 종족들이라거나, 혹은 순응에 저항하기로 하며 사이가 틀어진 문화권들이 겪게 될 경험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호루스의 저주받을 악행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면서 그 개념은 이제 단순히 끔찍한 환상을 벗어나, 전술적 예행 연습에서 반드시 숙고해야 할 사항이 되었다. 아스타르테스 형제가 다른 아스타르테스 형제의 치명성에 맞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수많은 경우를 떠올리고 목도하며, 그의 준비태세는 진화했다. 월드 이터 군단의 광전사들의 돌격, 아이언 워리어 군단의 외과적인 절멸, 워드 베어러 군단의 변덕스러운 열망, 선 오브 호루스 군단의 정예로운 군율, 알파 리전 군단의 목줄기를 베어내는 교활함, 나이트 로드 군단의 충격과 공포 전술까지… 


그는 수백 차례의 죽음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절대 한 바 없는 상상이었다. 블러드 엔젤 군단이라니.


아즈카엘론이라니. 생귀니리 가드의 사령관이라니. 란은 절대로-


란은 절대로, 아즈카엘론을 죽이러 뛰어들 수 없다.


둘은 함께 뒤엉킨다. 진창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아즈카엘론이 격돌한 충격 속에 란의 쇄골이 부러지고, 오스모듈라 융합을 거친 흉곽에 금이 간다.


아즈카엘론이라니.


아즈카엘론은 거의 십수 명의 아스타르테스에 버금갈 힘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혹은 그 힘이 그를 부리고 있는 것일지도-.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늑대 사냥개처럼, 그가 란을 마구 흔들어 댄다.


아즈카엘론이라니. 란은 절대로-


란이 충성스러운 다른 군단에 속한 형제들에게 바치는 것은 오직 애정과 존경뿐이다. 공성전을 치르며, 란은 그들과 끊을 수 없는 혈육의 정을 쌓아 왔다. 전쟁이 빚어내는 가장 큰 선물은 진정한 벗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것이기에.


하지만 제1 돌격대의 사령관을 맡은 수가령조차, 겨우 친구나 동료 정도로 여기지 못할 만치 존경하는 이들이 있다. 그의 시선에조차, 완전히 다른 위계에 속한 전사로 보일 지경인 존재들이 있다. 냉정하고 한 치의 타협도 없는 지기스문트도 그 대열에 속한다. 샐러맨더 군단의 준엄하고 위엄이 넘치는 아톡 아비데미는 어떠한가. 그리고 강대한 랄도론도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앞설, 아즈카엘론.


아즈카엘론이라니. 아즈카엘론이라니. 란은-


생귀너리 가드의 사령관은 란에게 오직 예의와 친절로 다가왔을 따름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누구도 알 수 없을 아름다움과 위엄을 갖춘 황금빛 반신으로 남은 존재다. 아즈카엘론의 명성, 무용, 그 우아함 앞에서 란은 항상 겸손했다. 아즈카엘론이 란을 존중하기에 기뻤고, 감히 친구로 여겨지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아즈카엘론이라니. 이런 아즈카엘론이라니.


어떤 우아함도 없다. 란이 그의 곁에 섰을 때 스스로를 평범하고 흐릿한 존재로 여기게 하던 그 당당한 아름다움은 남았지만, 견딜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너무도 아름다워 감히 볼 수조차 없는 그런 아름다움이다. 우아함의 가면이 벗겨진 채, 드러난 것은 잔인한 죽음의 얼룰이다.


블러드 엔젤 군단병이 오직, 적에게만 보이는 얼굴이다.


진창에서 허우적대는 위로 진흙의 파도가 뿜어진다. 란은 그와 싸울 수 없다. 란은 그를 죽일 수 없다. 란은 치명적인 도끼날을 피한 채, 어떻게든 도낏자루로 아즈카엘론을 밀어내려 한다. 란은-


하지만 란은 그를 죽일 수 없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란은 이것이 힘을 아끼는 문제가 아님을, 자비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일격을 참고, 칼날을 아끼는 문제가 아니다.


설령 란이 원하더라도, 그는 아즈카엘론을 죽일 능력이 없다.


대체 어떤 야수가 그의 영혼을 삼킨 것인가? 어떤 격노인가? 어떤 끔찍한 광기인가? 생귀너리의 아름다운 눈은 검게 물들어 있다. 아름다운 송곳니가 비친다. 그의 아름다운 격노가-


란은 그대로 제대로 된 일격을 맞고 나뒹군다. 진흙탕 위로 란이 쓰러진다. 숨을 헐떡이고 으르렁거리며 란은 턱을 찢어낼 뻔한 일격을 간신히 막아낸다. 하지만 아즈카엘론의 밀려드는 송곳니를 막는 데에는 실패한다. 생귀너리가 그대로 그의 목을 물어뜯는다. 란은 집행관의 자루를 몽둥이처럼 휘두르고, 아즈카엘론은 송곳니 사이에 찢겨나간 란의 목 보호대 조각을 씹으며 비틀댄다.


의심의 여지 없이 악마들의 소행이리라.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굳건히 버텨 온 이들을 붙들어 그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최후의 존엄을 빼앗는 마지막 모욕이요, 마지막 욕설이다. 반역자들의 물결이 하스가르드 요새를 덮친 순간 그들의 죽음은 확실해졌다. 하지만 호루스 루퍼칼에게는 이조차 모자랐던 것 같다. 놈에게는 어떤 것도 충분치 않다. 놈은 단지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놈은 그들의 저항을 원한다. 그들이 죽기 전, 광기의 치욕 속에서 서로를 죽이기 바란다. 그들이 죽기 전, 영광과 용기를, 형제애를, 명예를 더럽히기를 바란다.


놈은 모두가 반역자로서 죽기를 바란다.


란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지금 반격을 가한다면, 워마스터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리라.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킨 유대를 깨는 것이리라. 그리고 만약 그가-


생귀너리 가드의 주먹이 그를 강하게 후려치고, 란은 그대로 뒤로 내던져진다. 불타버린 라이노의 차체 측면에 부딪혀 진흙 아래로 미끄러진다.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란은 일어서려 애쓴다. 다음 순간, 그의 얼굴에 도끼가 날아든다. 간발의 차이로 빗겨간 도끼는 그대로 라이노의 차체에 박힌다. 그의 바로 위에서 워드 베어러 군단병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생귀너리의 집중된 공격이 너무도 강렬했던 나머지, 란은 스스로와 아즈카엘론이 지금 아스타르테스들이 사방에서 싸우고 서로를 죽이는 치열한 전투 속에 있음을 거의 잊을뻔한다.


란은 광란하는 워드 베어러 군단병을 도끼 끄트머리로 후려쳐 뒤로 밀친다. 워드 베어러 군단병은 다시 란에게 덤비려 하지만, 화이트 스카 군단병 하나가 즉시 몸을 날려 놈을 막아선다. 두 아스타르테스가 격돌하는 동안, 란은 몸을 일으킨 뒤 연기를 헤치고 뛰어든 두 놈의 월드 이터 군단병을 막아선다. 세 번째 월드 이터 군단병이 그들의 뒤로 지나가며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병에게 일격을 가한다. 란은 그 상대가 아마 젊은 신병 데발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 숨 막히는 기세로 격돌하는 아스타르테스가 보일 뿐이다. 이렇게 소용돌이치는 연기 속에서 시야는 거의 확보할 수 없다. 란은 소음에 삼켜진다. 목이 관통당한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병이 쓰러지는 것이 보인다. 불과 3 또는 4미터 왼쪽에서, 철창에 상반신을 관통당한 채로 또 다른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병을 찢어버리는 선 오브 호루스 군단병이 보인다. 찰나의 순간, 공포스러운 불생자의 형상이 보인다. 화이트 스카 군단병의 머리와 흉곽을 뜯어내 발로 질질 끌고 다니는 중이다. 절대적인 학살이 펼쳐진다. 사방에 반역자들이 있고, 놈들의 칼날은 도살 속에서 피로 물든다. 그에게 보이는 몇 안 되는 충성스러운 형제들은 죽었거나 궁지에 몰린 채다.


그리고 그 역시 그 충성파의 하나다. 월드 이터 군단병 두 놈이 그를 라이노 차체 앞으로 몰아붙인다. 란은 자신의 빼어난 도끼술로 놈들의 몰아치는 칼날을, 날것의 격노와 야생의 힘을 쳐내려 한다. 란은 그대로 사냥꾼의 미늘로 한 놈의 목줄기를 찢어버린다. 월드 이터 군단병은 자신이 치명상을 입었음을 이해하지도 못한 것처럼 옆으로 쓰러진다. 다음 순간, 다른 놈이 란의 어깨를 후려쳐 그대로 진창에 쓰러뜨린다. 반역자가 제 검을 높이 든다.


그리고 맹렬하게 뒤로 홱 당겨진다. 뒤에서 화이트 스카 군단병 하나가 놈을 붙든 것이다. 키조, 나마히의 끈질긴 기수다. 화이트 스카 군단병과 월드 이터 군단병이 갑주와 갑주가 맞닿는 거리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란이 전투 형제를 돕기 위해 달려든다. 다음 순간, 셋 모두가 한꺼번에 나뒹군다. 격노한 생귀너리가 다시 그들을 찾은 것이다.


아즈카엘론이 란의 목줄기를 틀어쥔 채 들어 올린다. 키조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악의 외침을 뱉는다. 란이 그랬듯이, 그는 블러드 엔젤 군단의 고위 장교가 가하는 광폭한 맹습에 완전히 당황한다. 키조는 아즈카엘론을 떼어내려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월드 이터 군단병도 아즈카엘론과 격렬히 뒤엉킨 채다.


지금 펼쳐지는 이단의 헤아릴 수 없는 광기를 대표하는 순간이 여기 펼쳐진다. 화이트 스카 군단병, 월드 이터 군단병, 임페리얼 피스트 군단병, 그리고 블러드 엔젤 군단병이 지성이 사라진 잔혹한 싸움 속에 갇혀 서로를 구하고 죽이려 든다. 마치 논리나 이성 따위를 어설프게 섞어 베껴낸 순간처럼 느껴진다.


란은 뒤로 비틀대며 아즈카엘론에게서 떨어진다. 생귀너리가 키조를 옆으로 후려쳐 바이저를 깨부순다. 월드 이터 군단병은 아즈카엘론의 얼굴을 뜯어내려 한다. 아즈카엘론이 놈의 손가락을 물어뜯는다.


엉망이 된 손에서 피를 흘리며 월드 이터 군단병이 뒷걸음질을 친다. 아즈카엘론은 반역자의 얼굴을 발기발기 찢어버리고서 그대로 놈의 왼팔을 찢어낸다. 쓰러지는 시체를 뒤로 한 채, 아즈카엘론이 일어서려 애쓰는 화이트 스카 군단병 키조에게 다가선다. 하지만 그의 살해욕에 앞서, 아직 무릎을 꿇고 있는 키조를 후려친 체인액스가 그를 방해한다. 앙그론의 개자식 두 놈이 근접전에 합류한 것이다. 한 놈이 그대로 아즈카엘론에게 달려들고, 다른 놈은 화이트 스카 군단병의 시체로부터 아직도 맹렬히 회전하는 체인액스를 뽑아 낸다. 데스 가드 군단병 하나가 다른 각도로부터 돌진해 온다. 아즈카엘론은 망설임 없이 두 놈의 월드 이터 군단병을 향해 달려든다. 아즈카엘론이 놈들과 격돌한 순간, 데스 가드 군단병이 그대로 그의 등에 달라붙어 날개를 할퀸다. 진흙으로 뒤덮여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알 수 없는 네 개의 거대한 형상들이 진창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란은 생귀너리의 혈욕에 피아의 구분이 없음을 깨닫는다. 벗이건 적이건, 그의 범위 안에 닿는 어떤 생명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좁아진 시야에 닿는 어떤 생명이건, 그의 혈욕이 닥친다. 아즈카엘론에게는 어떤 무기도 없다. 검도, 방패도, 란은 그 무기들이 어디에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것들이 제 이빨보다, 손발톱보다 열등하다 여기고 내던지기라도 한 것 같다.


대체 저 이빨은 어떻게 돋아난 걸까?


란은 힘겹게 일어선다. 진흙이 달라붙은 도끼룰 쥔 채,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아즈카엘론이 데스 가드 군단병을 어깨에서 뜯어내는 것이 보인다. 반역자의 몸통을 쥔 아즈카엘론은 그대로 월드 이터 군단병에게 놈을 휘두른다. 월드 이터 군단병의 목이 부러지지만, 그 목을 부러뜨린 것은 사격이다. 그러나 총성은 갑주를 두른 육신끼리 맞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목이 부러진 전사의 손에 쥐어진 체인액스가 데스 가드 군단병을 해체하는 요란한 소리에 묻힌다. 그대로 세 형상은 하나의 몸서리치는 형상으로 뒤엉켜 쓰러진다.


앙그론의 다른 아들이 그대로 전력을 담아 제 도끼를 옆으로 휘두른다. 아즈카엘론은 피할 생각도, 막을 생각도, 심지어는 피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대로 그 일격이 아즈카엘론의 왼쪽 견갑을 후려쳐 산산이 부순다. 도끼날이 아즈카엘론의 어깨를 파고들어 피를 뿜어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제 월드 이터 군단병의 방어 태세에도 빈틈이 생긴다. 찰나의 순간, 놈의 목이 찢긴다. 생귀너리의 이빨은 반역자의 목과 가슴으로부터 엄청난 살점을 뜯어낸다. 머리가 간신히 붙어 있을 정도다.


아즈카엘론이 피를 들이킨다. 그 얼굴은 마치 사냥을 마친 카르노돈처럼 붉게 물든 채다.


란은 돌아선 채 움직인다. 만약 그와 생귀너리 사이에 거리를 좀 벌릴 수 있다면, 싸움이라는 불가능한 선택지를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하지만 이렇게 빽빽한 밀도의 전장에서는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없다. 라이노의 불탄 차체 바로 너머에서 란은 끓어오르는 연기와 표류하는 불꽃을 헤치고 나온 선 오브 호루스 군단병 세 놈과 실수로 마주친다. 격렬한 소용돌이 속에 무릎까지 잠긴 란은 그대로 한 놈에게 사냥꾼을 휘둘러 비틀대며 옆으로 물러나게 만든 뒤 다음 놈의 검을 집행관의 자루로 붙든다. 세 번째 놈이 그를 짧은 금속 덩어리 창으로 찌르려 든다. 란은 두 도끼를 동시에 휘두른다. 놈의 팔과 창을 사냥꾼이 잘라냈고, 집행관은 놈의 투구에 달린 부리를 짓부순다. 선 오브 호루스 군단병이 팽 돌며 진창에 나뒹굴며 진흙이 튀긴다. 몸을 돌린 란은 후려치는 검을 두 번째로 막아낸다. 하지만 사냥꾼의 일격으로 흉갑판이 일그러진 첫 번째 반역자가 그대로 마울을 휘둘러 등을 후려친다.


란은 진창에 그대로 쓰러진다. 순간 진창에 삼켜진 란의 입과 코를 진흙이 가득 메운다. 두 반역자가 그를 꽉 붙들고 진흙탕 밖으로 끌어낸다. 칼잡이 놈이 검을 들어 란의 머리를 베어내려 한다.


하지만 검은 끝 간 데 없이 계속 들려 올라간다. 반역자는 란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놈은 진창으로부터 들린다. 오물과 진흙이 놈의 다리에서 뚝뚝 흘러내린다. 놈을 움켜잡은 아즈카엘론의 손가락이 놈의 옆구리와 엉덩이를 찢는다.


생귀너리가 그대로 반역자를 옆으로 내던진다. 라이노의 시체에 부딪힌 선 오브 호루스 군단병은 그대로 진창에 미끄러진다. 부러진 차축에서 툭 튀어나온 파편이 놈을 꿰뚫은 뒤다.


아직 남은 크토니아인이 생귀너리에게 마울을 휘두른다. 그 일격에 아즈카엘론이 뒷로 물러선다. 선 오브 호루스 군단병은 이제 란을 완전히 잊은 채, 생귀너리에게 공세의 강도를 높이며  마울을 내리는 비처럼 마구 휘두른다. 마치, 조금이라도 놓치면 저 생귀너리가 그를 파괴할 것을 아는 듯이.


란은 다시 몸을 일으킨다. 저 반역자 놈의 등에 도끼를 꽂아 놈의 무자비한 공격을 끝내고 싶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다시 아즈카엘론의 혈욕이 란을 향하게 될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란은 그렇게 행한다. 그의 명예에 당겨진 불길은 꺼지지 않았으므로. 남자라면 제 동지를 지켜야 한다. 그가 어떤 존재가 되었건 간에 말이다.


집행관이 그대로 반역자의 척추를 쪼갠다.


란은 도끼를 뽑아 놈의 시체가 쓰러지게 둔다. 생귀너리의 죽어버린 시선이 다시 란에게 고정된다. 피에 흠뻑 젖는 생귀너리가 씨근대며 콧김을 내뿜는다. 그가 선혈을 빨아들인다. 다음 순간, 펼쳐진 날개가 그를 제 먹잇감에 그대로 창처럼 내쏜다.


그리고 그 찰나, 누군가 란을 당겨 찔러 드는 생귀너리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아즈카엘론은 그대로 진창에 내던져져 물보라를 일으키며 허우적거린다. 란의 구원자는 그대로 란을 라이노 차체 뒤로 끌고 간다. 란은 생귀너리가 곧바로 다른 희생자들을 갈기갈기 찢어대며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 희생자가 반역자인지, 아니면 충성스러운 아들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란은 고개를 든다. 제폰, 슬픔을 불러오는 자. 그를 끌고 움직인 것은 제폰이었다.


란이 입을 열려 한다. 제폰은 격렬히 고개를 저어 란의 입을 막는다. 온몸이 진흙과 선혈로 범벅이 된 상태다. 란의 팔을 붙든 제폰은 그대로 란과 함께 부서진 차량에서 벗어나 연기 속으로 비틀대며 움직인다.


진창에 반쯤 잠긴 양편의 시체가 한데 뒤엉키고 흩어진 채다. 20미터를 더 나아가자 둘은 요새의 외측방 벽에 이른다. 병든 잇몸에 솟은 썩은 이처럼, 진흙탕에 툭 불거져 나온 부서진 락크리트 덩어리다. 역시 죽은 자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아치형 통로와 돌파구를 틀어막은 채다. 더 이상 저 벽 안에 무엇이 있고 없었는지, 혹은 누가 공격하고 누가 지켰는지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다.


란은 벽에 기대어 그대로 쓰러진다. 멍한 지경이 된 란은 그의 삶을 통틀어 가장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다. 대규모 격돌의 소음이 다시 그들 위로 드리운다. 순간의 유예고, 그뿐이다. 다시 전투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다. 갈 곳은 없고, 둘 모두 이 운명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미쳐버린 타악기처럼 전투가 노호한다. 지금 그들을 감싼 무너진 요새의 파편 일대로, 썩어가는 바람의 신음이 울린다. 검은 연기로 가득한 숨결이다. 하늘도, 거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붉고 빛나는 연무가 있을 뿐.


“어떤 광기에 사로잡힌 것 같소.”


란이 속삭인다.


“우리 모두 그 광기에 사로잡혔지.”


제폰이 답한다.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무르다.


“모두 말이오?”


제폰은 입가에 묻은 진흙과 피를 닦아내려 한다. 너무도 끈적하다.


“내 주군께서 돌아가신 것 같소.”


제폰이 입을 연다.


“내 아버지. 느낌이 왔소. 우리 모두…”

“제폰-”

“우리 모두 고통을 느꼈소, 란.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분노가 우리 모두를 삼켰소. 모두가 정신을 놓고-”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은 것 같군.”


란이 입을 연다. 제폰은 한숨을 쉰다.


“난 너무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소.”


제폰이 답한다.


“죽음도, 혹은 그와 비슷한 것도, 익숙하지. 내 육신의 재건은…”


목소리가 흐릿해진다. 란은 블러드 엔젤 군단병이 깊은 고뇌에 시달리고 있음을 본다.


“아마도 내가 그 과정에서 무뎌진 모양이오.”


제폰이 말한다.


“둔하게 했지. 어쩌면, 내 형제들처럼 고통을 날카로이 느낄 수 없게 된 것인지도. 어쩌면… 그러기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겪어온 것인지도 모르겠소. 분노가 블러드 엔젤 군단을 사로잡았소, 란. 그들의 지혜를, 영혼을, 존엄을 모두 앗아갔지.”


제폰이 란을 응시한다. 그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빛난다.


“모두가 그랬소.”


제폰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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