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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10:ii 캡틴 제너럴, 근위장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2.26 11: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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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ii 캡틴 제너럴, 근위장



콘스탄틴은, 어떻게든 걸음을 옮긴다. 그는 죽지 않았고, 계속 걸음을 옮긴다. 돈은 그런 정도의 중상을 입은 이가 걷는 모습은커녕 똑바로 서 있는 모습조차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캡틴 제너럴과 같은 이를 본 적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돈은 자신이 발도르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노라고 반성할 뿐이다. 그는 물론, 그의 걸출한 레기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발도르와 그의 수하들은 완전히 다른 전통과 기술로 빚어졌으며, 온전히 다른 시대의 산물이다. 종족 자체가 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목표로 하는 바와 충성이 돈과 돈의 형제들, 그리고 프라이마크의 아들들과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만, 레기오 쿠스토데스의 전사들은 완벽하게 다른 혈통을 타고난 전사들이다. 저들은 제 시대를 통틀어 마지막 전사들이자 가장 위대한 전사들이고, 통합 전쟁 시대에서 무용의 정점에 선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랬던 그들은, 프라이마크들과 그들의 유전 아들들이 이끄는 새 시대 속에 가려진 존재들이다.


돈은 그곳에 오랜 악의가 존재함을 안다. 항상 그래왔다. 콘스탄틴은 프라이마크 아들들과 그들 휘하의 아스타르테스 후손들에 대한 감정을 감추려는 시도조차 한 적 없다. 영원히 변함이 없을 냉소적인 기질 속에서 말이다. 질투가 아니요, 분노조차 아니다. 심각한 불확실성에 대한 의심이다. 저들의 동류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도구에 대한 경계다.


이 전쟁이 그 의심의 정확성을 증명했음을, 옥좌는 알고 계시리라.


콘스탄틴은 돈, 그리고 그 형제들의 수위권을 확립하겠다는 제 왕의 결정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한 적이 없다. 돈은 콘스탄틴의 충성심이 전혀 다른 재료로 빚어졌을 것이기에 결코 그럴 수 없으리라 믿는다. 프라이마크들과 아스타르테스의 충성심은 혈연이 빚었고, 본능적이면서도 원초적이다. 열정적이고도 광포한 그 충성이 은하계를 무릎꿇렸지만, 그 충성심은 감정적이고 변덕스럽기도 했다.


오, 어찌나 변덕스러웠는지.


레기오 쿠스토데스의 충성은, 항상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그것은 아다만티움만큼이나 냉엄하고 영구히 이어진다. 그 안에 분노가 있지만, 불안정한 열정은 찾을 수 없다. 그들의 충성은 침묵 속에 어떤 의심도 없이 이어진다. 돈은 콘스탄틴이 의심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하기에, 프라이마크의 수위권을 확립한 제 왕의 결정에 질문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믿는다. 의심할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은 절대로 콘스탄틴이 가진 능력이 아니었다. 그에게 찍힌 특정한 충성의 소인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으리라. 고작 의심 따위를 하는 것은 그의 본질에 속한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돈은 그에 대해 실로 잘 안다. 둘은 긴밀한 협력 속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으며, 서로를 신뢰했다. 공성전이 이어지는 동안, 둘은 황궁 전체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던 몇 안 되는 존재였다. 돈은 스스로가 프라이마크 형제들 중 가장 콘스탄틴이 가진 불굴의 충성심에 가장 근접한 성품을 가졌노라고 여긴다. 또한, 그가 콘스탄틴으로부터 마지 못해나마 존중을 받아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죽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친한 사이가 아니다. 그들은 친구가 아니다. 그들은 형제로서의 유대감을 덧없는 수준으로도 나누지 않는다. 최선의 경우라도, 불가피한 동지 정도일 것이다.


돈은 콘스탄틴이나 쿠스토데스들이 다른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을 품는다. 돈은 우정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처럼, 그들의 존재적 틀과 양립할 수 없는 개념, 즉 그들과 무관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들은 서로를 위해 기꺼이 죽을 것이다. 앞으로 짧은 시간 후면, 그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렇게 행할 것이다.






돈은 그런 생각을 떨쳐내려 노력한다. 그는 자신이 지금 무력하게 과거에 붙들려 있음을 안다. 붉은 사막에서 고립된 수 세기의 시간 동안, 그의 정신은 스스로를 향해 침잠한 채 과거의 기억에 집착했다. 성채의 동심원 벽이나 입구도 출구도 없는 미로의 순환 안에 내던져진 꼴이었기에 그러했다. 이제 그는 그 반복되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몰아치는 매서운 강풍의 이빨보다도, 과거로부터 몰아닥치는 쓰라린 우박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잃어버린 순간들, 놓친 기회들의 생각이 거듭된다.


하지만 이 강풍은 무로부터 빚어진 것이요, 비할 바 없는 격노를 토해내는 중이다. 어쩌면, 이 강풍조차도 그의 과거로부터 빚어졌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제 엮인 것을 풀고 느슨해졌기에. 실제로 벌어진 과거가 원소의 격노로 변이해 그를 향해 몰아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돈은 그들이 지금 얼마나 되는 거리를 왔는지 전혀 모른다. 거의 전체 시야가 가릴 지경이다. 가파르고 너덜너덜한 능선을 따라 오르며, 돈은 그들이 지금 추락한 궤도 장갑판 끄트머리 일대를 지나 그 궤도 장갑판의 거대한 질량이 충돌하던 당시 빚어진 분화구의 경계를, 부서진 돌로 이뤄진 능선을 오르고 있노라 생각한다.


그들은 전투를, 격렬한 광기를 뒤에 남겨두고 떠난 채다.


하지만 전진은 더디다. 바위는 가파르고 헐거운데다 믿을법한 상태가 못 된다. 폭풍우가 그 위로 몰아치고, 비가 쏟아진다. 게다가, 콘스탄틴은 부상이 너무 심해 이동 자체가 쉽지 않다.


그는 지금 돈의 뒤에서 창을 지팡이 삼아 절뚝이며 올라오고 있다. 돈은 그 모습을 보며 인장관이 옥좌실에서 움직일 때 딸깍이며 바닥과 부딪히던 지팡이를 떠올린다. 고통스러운 기억이고, 또 다른 우울한 기억이다.


돈은 몇 차례 콘스탄틴을 돕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혹은, 캡틴 제너럴이 특히나 끈덕진 장애물을 맞이할 때마다 돕기 위해 돌아선다. 그럴 때마다 콘스탄틴은 돈을 노려보며 그가 내민 손을 뿌리친다.


“꺼지십쇼!”

“자넨 다쳤지 않나. 돕게 해 주게.”

“도움 따위 필요 없다니까!”


돈의 계산에 따르면, 그들은 지금 능선의 정점에 서서히 가까워지는 중이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능선의 경계를 휘젓는 폭풍의 공격은 더욱 거세진다. 쏟아지는 비, 검은 바위, 그리고 치솟는 증기를 제외하면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폭풍이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목표는 확실하다. 그들의 여정이 향하는 곳은 분명하다. 대지를 짓이길 정도로 낮게 드리운 공기로 빚어진 괴물, 폭풍의 본산이 그들의 목표다. 이 소용돌이의 중심부는 그 자체로 사악한 눈이요, 내리꽂히는 벼락과 섬광이 어둠 속에서 그 목표를 확실히 분간할 수 있도록 한다. 발도르는 목표가 바로 저기라고 결정한 바 있다. 저 눈이, 제 왕께서 마지막 항전을 벌이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돈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지금 그의 갑주 위를 흐르는 빗물이 정말 과거의 산물인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 속에서 메아리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돈의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바위가 부딪히고 미끄러지는 소리다. 돈은 뒤를 돌아본다. 콘스탄틴이 씻겨 내려간 돌에 발이 걸려 균형을 잃은 채 뒤로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돈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는다. 콘스탄틴의 손목을 잡아 그가 넘어지는 것을 막고, 최소한,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인 캡틴 제너럴의 부상을 악화시킬 수 있었던 추락을 막는다.


이번에는, 콘스탄틴도 그를 떨쳐내지 않는다. 돈은 가파른 경사를 가로지르며 더 안정적인 바위 위로 콘스탄틴을 끌어올린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묵직한 바위가 드리운 그늘 사이에 두 사람이 잠시나마 함께 몸을 웅크린다. 그늘의 양 사면을 따라 빗물이 급류가 되어 쏟아진다.


“여기 있게.”


돈이 입을 연다.


“꺼지십쇼.”

“여기 있게, 콘스탄틴. 다쳤지 않나.”

“꺼지라고 했습니다, 일곱째.”


돈은 콘스탄틴을 노려본다. 돈은 왜 콘스탄틴의 비범한 신진대사가 그를 빠르게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이 무로 돌아간 시간의 무로 돌아간 장소 속에서 그 기능이 멈춰버린 것일까? 아니면, 부상이 너무 심각해서 신체의 수리 기능 자체를 압도하는 상태인 것일까?


“내가 앞을 먼저 살피는 동안만이라도 여기서 몸을 추스리게!”


돈은 폭풍의 비명 사이로 외친다.


“내가 능선 위로 가서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살펴보겠네. 그러고 돌아와서-”

“꺼지라고 했습니다.”


콘스탄틴이 코웃음을 친다.


“걸을 수 있단 말입니다.”


얼굴은 창백하고 눈에는 통증이 읽힌다. 걸을 수 있을리가 없다.


“콘스탄틴-”

“이 전장에서 쉴 생각은 없습니다, 근위장. 지금은 안 됩니다. 꺼지십쇼.”


둘은 서로를 노려본다.


“알겠네, 캡틴 제너럴.”


돈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가 발도르에게 손을 내민다. 발도르는 잠시 그 손을 어떻게 썰어내면 좋을지 고민하는 듯한, 경멸이 담긴 눈초리로 바라본다. 잠시 후, 발도르는 그 손을 꽉 쥐고 돈이 그를 부축해 일으키도록 허락한다.


다시 몸을 곧게 세운 발도르는 창에 몸을 기댄 채, 돈을 뒤에 남기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자네도 꺼져버리게!”


콘스탄틴의 뒤에서 소리를 지른 돈은 그 뒤를 악전고투 속에서 따른다.






너무도 거세게 몰아치는 강풍 속에 잠긴 능선의 정점에 오른 둘은 간신히 바위를 기는 정도다.


하지만 저 멀리는, 갑작스러운 평온이 내린다.


폭풍은 여전히 그들 위에서 울부짖는다. 바위에 빗방울이 튕기고, 바람이 그들을 휘감는다. 하지만 폭풍의 눈 아래 잠긴 능선 반대편은 섬뜩하기까지 한 고요함이 내린다. 마치 무너진 능선과 고지대의 지형이 폭풍의 힘을 뚜껑처럼 들어 올려 그 아래 대지를 할퀴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둘은 먼 능선을 따라 길을 고른다. 달의 바다처럼 회색을 띤 광대하고 깊은 분지가 보인다. 빛나는 바위가 분지를 둘러싼 채, 그 위로 비명을 지르는 무의 폭풍이 나선을 그리며 드리운다.


능선은 점점 낮아지고, 돌무더기와 구르는 표석의 밭이 펼쳐진다. 뇌전을 떠올리게 하는 기이하고 병적이기까지 한 노란 빛이 빗줄기 사이로 내린다. 분지 중심에서 벼락이 내리치는 사이클론의 눈 바로 아래, 수 킬로미터 떨어진 지면 위로 튀어나온 구조물이 보인다.


둘은 그곳으로 향한다. 안개처럼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저 멀리서 보기에는 하스가르드나 고르곤 차단문처럼, 폐허가 된 요새나 벼락에 찢긴 탑을 연상하게 한다. 다음 순간, 돈은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전함 선미의 성채(Stern Castle, 각주 1)에 구축된 상갑판과 함교다. 부패와 황폐화를 겪은 음울한 시체가, 만취한 취객마냥 비스듬히 회색 진흙탕에 잠겨 있다. 마치 대양에 잠긴 배의 파편을 보는 것 같다. 방치된 거석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형상을 폐허가, 널찍하니 떠밀려 온 잔해가 목걸이처럼 둘러싸고 있다. 폭풍이 빚어내는 소용돌이의 눈 아래 우뚝 솟은 자해를 향해 밝은 번개가 내리꽂힌다. 그럴 때마다 섬뜩한 포병 사격 같은 굉음이 터진다. 상부 포탑과 부서진 안테나 배열, 방어 철탑 위에 구전이 화환처럼 엉긴다.


“글로리아나급이군.”


돈이 중얼거린다.


복수하는 영혼이야.”

“우리에게 보이는 부분일 뿐입니다.”


돈의 옆에서, 여전히 창에 기댄 채 절룩이는 콘스탄틴이 중얼거린다.


돈은 그런 콘스탄틴을 힐끗 바라본다.


“아니, 이것이 복수하는 영혼의 전부입니다.”


발도르가 입을 연다.


“이 장소 자체, 전부가 그곳입니다. 그와 동시에 아니기도 하겠지요.”


발도르는 잠시 멈춘다.


“최소한,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허락된 부분일 겁니다.”


발도르는 지금 자신이 한 말 전부가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는 듯 말한다. 그리고, 돈은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에서 불안해진다.


“허락되었다고?”


돈이 묻는다.


“그럼 보는 것이 가능한, 이라고 하죠.”


콘스탄틴이 대꾸하며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고 저기로 가야 합니다.”


돈은 자신의 귀에 무언가 소리가 들림을 알아차린다. 고통스러운 벼락의 굉음도, 비가 내리는 소리도, 분지를 가로질러 몰아치는 바람의 소리도, 저 위 깊은 곳에서 울부지는 폭풍의 포효도 아니다. 그에게 들리는 소리는… 충격이 발하는 소리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무기와 갑주가 격돌하는 소리. 격렬한 전투가 빚어낸 멈춤 없고 부자연스러운 중략음.


아주 멀리서 들리는 소리다.


발도르는 창을 들고, 도움 없이 함선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그의 시선이 어깨 너머, 그들이 내려온 능선을 향한다. 돈은 그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인지 안다.


“저들이 올 수 있겠나?”


돈이 묻는다.


“자네 수하들 말이네만-”

“만약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여기 올 겁니다.”


콘스탄틴이 대꾸한다.


“코로스, 다른 이들, 누구라도 말입니다. 직명을 내렸습니다. 어디로 와야 할지도 알 겁니다.”

“자네… 그들이 느껴지나?”


콘스탄틴은 고개를 젓는다. 그의 조심스러운 시선이 돈을 향한다.


“일곱째 아들이시여, 블러드 엔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군요,”

“그랬지.”


돈이 답한다.


“감이 오십니까…?”

“전혀.”


돈이 대꾸한다.


“제9군단의 형제들에게 무슨 일이 닥쳤는지, 무슨 끔찍한 일인지…”


기억 속에서 전율하며 돈이 멈춘다.


“랄도론이 저렇게 된 꼴을 보았지 않나. 나도 모르겠네. 어쩌면 카오스의 반역이 그들 역시 취한 것인지도. 하지만 그보다는-”

“복수심 같아 보이더군요.”


콘스탄틴이 빠르게 끼어든다.


“혹은, 분노처럼 말입니다.”


돈이 고개를 끄덕인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분노가 저들을 괴물로 만들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콘스탄틴.”


돈이 입을 연다.


“상실의 극한에서 연료를 얻은 분노라 해야겠지.”


그의 시선이 발도르를 향한다.


“생귀니우스가 죽었네.”


돈이 말한다.


발도르는 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턱은 거의 싸울 듯이 악물린다. 마치 돈이 뱉은 말을 씹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 형제가 죽었네.”


돈이 다시 말한다.


“다른 형제의 손에 말일세. 루퍼칼이었지.”

“어떻게 아십니까?”


발도르가 조용히 묻는다.


“전해 들었네.”


돈의 말이 이어진다.


“그 말을 신뢰하고 있네. 그리고 만약, 랄도론과 그 친족들이 그것을 느꼈다면… 저들이, 저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하네…”


발도르는 고개를 끄덕이고 저 멀리의 능선을 본다.


“그러니.”


돈이 다시 입을 연다. 그는 디아만티스의 검을 들고서 바라본다.


“이 검을 저 폐선에 가져가서, 내 형제의 심장에 묻을 뿐일세.”


돈은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한다.


“그는…”


발도르가 입을 연다.


돈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본다.


“지난 시간 동안, 그를 생각했습니다.”


발도르의 말이 이어진다.


“생귀니우스를 말입니다. 그는… 저는 정말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로갈.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무던히도 썼는데 말입니다. 어쩔 수 없었지요.”


그의 시선이 돈을 향한다. 발도르의 얼굴에 음울하고 미묘한 미소가 걸린다.


“당신 형제들 대부분도, 좋아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돈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단한 만가로군. 자네치고는.”






두 사람은 1킬로미터, 혹은 그 비슷한 거리를 더 걷는다. 거대한 난파선을 둘러싼 잔해의 가장자리에 일행이 이른다. 이곳 역시 비에 젖은 진흙을 뚫고 솟은 폐허가 보인다. 이름 모를 돌덩어리와 반쯤 묻힌 아치가 있다. 그들은 나아간다.


저 앞에서 무언가 움직인다. 진흙 위로 솟은 정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 널찍한 석제 아치 한 쌍이 흔들린다. 다음 순간, 아치가 솟구치기 시작한다. 그 아래 빨려들고 미끄러지는 진흙이 파문을 일으킨다.


돌도 아니고, 아치도 아니다. 흠뻑 젖은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순간, 그 아치는 사실 길고 널찍한 뿔이었음이 드러난다. 흡사 오로크의 뿔처럼 아래를 가리키며 뒤로 휘어 있는 모양새다. 그 길이만 5미터에 달한다. 낮고 깊은 이마로부터 대칭으로 솟아난 뿔이다. 그 이마는 거대한 두개골을 덮은 채고, 거대한 두개골은 목을 덮었고, 목은 옹송그린 거대한 어깨에 기대어 있다.


거인이나 다름없는 불생자다. 마치 얕은 무덤을 파헤치고 죽음에서 돌아온 존재처럼, 진흙이 흐르는 대지로부터 두 발로 걷는 형체가 솟아오른다. 그 가죽 위로 젖은 진흙이 뒤덮여 있다. 손가락이 대지를 파헤치고 고랑을 빚으며 육신을 곧게 세운다. 풀려난 놈의 발굽 달린 발 하나가 대지를 디디며 똑바로 선다. 놈의 머리는 미소 짓는 해골이다. 말이나 수사슴이 떠오르는 모양새다. 저 하늘을 가로지르는 벼락처럼 타오르는 눈빛이다. 입을 쩍 벌린 놈이 노호를 내지른다. 마치 허리케인처럼 폭발하는 말라붙은 비명이다. 노호와 함께 대지에 괸 물방울이 물보라가 된다.


놈이 다음 순간 그들을 향해 돌진한다. 대지가 흔들린다. 돈은 급하게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검을 들어 맞닥뜨린 순간 후려칠 채비를 갖춘다. 발도르는 보이지 않는다. 야수가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증기와 연기가 놈을 휘감는다. 놈은 돈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언가 다른 것을 향해 돌진하는 것 같다. 돈은 거품 속에 있을 발도르를 찾지 못한다. 발도르가 너무 느리게 움직이는 걸까? 쉬운 목표물에 불과한 걸까? 혹은, 놈의 돌진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그 빌어먹을 머저리가, 제자리에 선 채로 놈과 맞서는 걸까?


불생자가 다시 기성을 내지른다. 놈이 후려친다. 거대한 팔 끝의 거대한 주먹이 물에 잠긴 대지를 후려치며 진흙의 물보라가 솟구친다. 놈이 진흙에서 다시 주먹을 뽑는다. 놈이 후려친 곳 위로, 쏟아진 진흙을 두른 깊고 주름진 분화구가 보일 지경이다.


발도르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돈은 발도르를 볼 수 없다.


불생자가 다시 기성을 지른다. 능선의 경계까지 메아리치는 기성이다. 놈이 몸을 휘저으며 돈을 향해 달려든다. 대지가 흔들린다. 돈은 후려칠 각도를 조정하며 측면으로 돌진할 채비를 갖춘다. 돈이 자기가 목표로 잡을 지점을 정한다.


돈과 불생자가 뒤엉킨다. 너무 거대한 물보라가 일고, 돈은 그 속에서 시야를 잃는다. 끈적한 진흙에 돈의 발이 미끄러진다. 그는 무릎을 노린다. 돈의 검은 젖은 터럭이 엉겨붙은 살점을 파고든다. 하지만 단단한 뼈가 그 일격을 튕겨낸다. 돈은 측면을 힐끗 본다.


그대로 돈은 힘차게 몸을 굴린다. 놈이 자신을 움켜쥐려 함을 알았기에.


놈은 급하게 달려들다 돈을 놓치고, 젖은 대지 위로 놈이 후려친 자국이 또 다른 구멍을 새긴다. 돈은 일어서려 한다. 발이 미끄러진다. 진흙에 흠뻑 뒤덮인 채다. 다시 그가 검을 휘두르고, 놈의 허벅지 살점을 찢어낸다. 비명이 들린다.


다음 순간, 돈은 공성추처럼 가슴을 후려쳐 온 무언가에 부딪혀 그대로 뒤로 날아간다.


그대로 몇 번 구르며, 돈은 대지에 내려앉는다. 진흙이 튀긴다.


돈은 다시 일어서려 한다. 불생자는 천둥처럼 달려들어 그를 쓰러뜨리려 한다. 돈의 검은 진흙 속에 박힌 채 자루가 드러나 있다. 돈은 검을 뽑아낸다. 몸을 돌린 돈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괴물을 향해 그대로 검을 찔러 넣으려 한다.


순간, 빗속에서 금빛 섬광이 인다. 무언가 번쩍이는 것이, 야수의 목을 그대로 뚫어낸다.


놈은 비틀댄다. 진흙 위를 발굽이 짓이기며 비틀거린다. 놈은 목을 움켜쥔 채 옆으로 미끄러진다. 아가리를 쩍 벌린 채지만, 어떤 기성도 없다.


야수의 육중한 육신이 옆으로 쓰러진다. 물보라가 몰아치고 대지가 다시 흔들린다. 놈의 다리가 허공을 차며 경련하며 떨리더니, 그대로 대지로 떨어진다. 놈의 경련하던 팔도 그대로 축 늘어진다.


발도르가 절룩이며 돈을 지나친다. 거대한 시체에 다가간 발도르는 그대로 박살난 놈의 목구멍에 툭 튀어나온 창의 자루를 쥔다. 잠시 멈춘 발도르는 창을 팽팽하게 고쳐 잡고서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아마도, 어떤 이름인 것 같다. 그리고 발도르가 창을 비틀어 뽑아낸다.


다시 그가 절룩이며 돈에게 돌아온다.


“도착하면 말입니다만.”


발도르가 입을 연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죽이겠습니다.”

“콘스탄틴-”

“저는 형제가 있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모릅니다, 로갈.”


발도르의 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저에게 만약 형제가 있다면, 제 손으로 죽이고 싶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신 손에 형제의 피를 묻히고 싶지는 않겠지요. 혹은 기억 속에 남을 죄책감에 시달리고 싶지도 않을 거고. 저는 어떤 감정도 없이 죽일 겁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돈 역시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감정이 얽힐 일이니. 콘스탄틴은 복수를 원한다. 물론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생귀니우스의 죽음이 그를 괴롭히고 있음은 분명하다.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보고 정하지.”


돈이 답한다.


“함께 갑시다.”


발도르가 말한다.


돈은 콧방귀를 뀌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함께 일어서고, 함께 쓰러지는 걸세.”


돈이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게 전부라면, 그 전부를 다해야겠지.”


발도르는 그들이 왔던 길을 마지막으로 한번 뒤돌아본다. 여전히 뒤따르는 이의 흔적은 없다. 디오클레티안 코로스도, 살아남은 파수대원도 보이지 않는다.


아바돈의 흔적도 없기에, 돈은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하지만 발도르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보인다.


“경보를 발령해 뒀네.”


돈이 발도르에게 말한다.


“소집 명령이었지. 자네와 합류하기 전에,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이라면 모두 합류하라는 요청을 보냈네. 내게 남은 모든 권위를 담아 내린 명령이었고. 어쩌면 몇은 올 지도 모르네.”

“어떻게 보낸 겁니까?”


발도르가 묻는다.


“전령을 보냈네.”

“누구 말입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네.”


돈이 답한다.


“한 영혼을 만났고, 도움을 위해 그들을 돌려보냈지(각주 2).”

“그들을 믿습니까?”


발도르가 다시 묻는다.


“그래야 했네.”


돈이 대꾸한다.


“그 말고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각주 1 : 옛날 범선들의 함미, 그러니까 키가 있는 돌출부를 일컫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됨.


각주 2 : 한 영혼을 만났다고 하지만, 뒷 문단에서는 명백하게 목적어를 them이라고 기재하고 있음. 정황상, 악타이와 캇이 융합된 존재임을 돈이 알아봤다는 장치일 수도 있을 것 같음. 다만 아직 나도 결말까지를 안 읽어서 이건 결론을 내기 어려움.


발도르와 돈이 서로에게 꺼지라고 하는 부분의 원어는 Damn You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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