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II 군단의 주인불사조, 계몽자, 물을 가져오는 자 펄그림.
그리고 슬라네쉬의 가장 총애하는 받는 자.
M31 당시 펄그림이 위치한 행성에 온 적이 있는 나르보 퀸의 도움으로 제 12 천인대의 지휘관 사보나와 함께 파비우스 바일은 펄그림의 행성에 도착합니다.
행성은 펄그림의 뜻에 따라 뒤틀린 케모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사방에 말그대로 시체가 쌓여있어서, 파비우스가 본 산 하나만 하더라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수십억 구의, 적어도 여섯 세대 가량분의 시체가 이루어진 마경이었습니다.
펄그림은 과거에 자신이 행한 케모스 정복보다 더 완벽한 해법을 찾기 위하여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는, 매일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끔은 상대측이 이기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파비우스는 이를 보고 역시 펄그림은 미친놈이라 말하며 기겁합니다.
코덱스에는 아무도 펄그림이 있는 곳을 모른다고 나오지만, 의외로 행성에는 필멸자 순례자들과 노이즈 마린들이 꽤 돌아다닙니다. 나르보 퀸이 말하기를, 믿음이 굳건하다면 쉽게 찾을 수 있다합니다. 다만, 펄그림의 드높은 기준을 못 통과하면...
계속해서 움직이다, 사보나와 나르보 퀸은 악마들과 싸우게 되고, 파비우스만 정원 내부로 들어가 멜루신을 만나게 됩니다.
멜루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버지.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당신의 믿음을 보여주기 위한 순례입니다.'
'둘 다 내게는 없는 것들이로군.' 파비우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은 어디에 있느냐? 아직 살아있다고 믿어도 되겠지?'
'너의 노예들은 살거란다, 파비우스. 그리고 지금 걱정해야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란다.'
파비우스는 재빠르게 돌아서서, 단두대의 칼날이 내려오는 것 처럼 묵직한 대검의 일격을 고통의 지팡이를 들어올려 막았다. 파비우스는 일격을 막았으나, 그 힘에 의해 팔과 가슴의 근육이 파열된 것을 느꼈다. 외과기가 경고음을 보내고, 전투 자극제 주입기 펌프가 미친듯이 쉭쉭거렸다. 두번째 일격이 날아오자, 파비우스는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나 겨우 피하였다. 세번째와 네번째 공격이 그를 기둥까지 몰아붙였다.

아드레날린 주입기가 불난 듯 작동하여, 그의 앙상한 팔다리에 힘을 주입하였다. 전투 자극제가 혈관에 흘러들고, 파비우스는 세상이 몹시 느리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홀로그레픽 조준기가 시야에 목표를 표시하자 파비우스는 권총집에서 신경 바늘총을 꺼내어 들었다. 그를 공격한 자는 거대하고도 빨랐다. 도대체 어떤 악마지? 파비우스는 바늘총을 발사하였고, 독성 다트들이 대기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황금 칼날이 번뜩이더니, 날아가는 다트들을 배어버렸다. 다시금 일격이 앞을 갈랐고, 팝비우스는 절박하게 검의 궤적에서 피했다. 칼날은 기둥을 쪼갰다. 파비우스는 그를 공격한 자가 은빛 풀들을 해치며 기어오자 동상 뒤에 어설프게 몸을 숨겼다.
'너는 누구냐?' 파비우스가 신경 바늘총을 장전하며 상대를 불렀다. '이게 대체 무슨짓이지? 나는 싸우고자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비단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대담한 얼굴로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이곳에서 그 누구도 그러지 못하였는대. 수치스러운 줄 알아야지, 파비우스. 목마른 별들 사이로 평화란 없다는 것을 넌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느냐.' 기어오는 존재가 땅바닥에 검을 그으며, 부서진 기둥을 너머 다가오자, 거친 비늘소리가 들려왔다. '희망이란 없다, 미래도, 과거도 없다. 오직 현재의 유혈만이 존재하리라.'
'그 말은 전에도 들은 적 있지.' 파비우스가 고통의 지팡이를 세게 쥐며 말하였다. '하모니행성에서, 캔티클 시티의 내 연구실에서.' 그는 말을 들으며 입술을 적셨다.
침묵이 찾아왔다.
그러자, 돌이 갈라졌다. 파비우스는 천천히 위를 올려다 보았다. 풍성한 백발을 가진, 어린애와 같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있는 존재가, 그를 내려다 보았다.

'반갑구나 파비우스. 영겁의 세월만에 보는 것 같구나, 그렇지 않니?'
'아버지.' 파비우스가 험악하게 말하였다. 파비우스는 동상을 거칠게 밀치고 몸을 돌려, 움직이면서 니들건을 발사하였다. 또아리를 틀고 있던 펄그림은 눈으로 쫒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순식간에 움직였다. 고통의 지팡이로 펄그림의 황금 칼날을 막자, 지팡이에 속박된 악마의 영혼이 비명을 질렀고, 파비우스는 밀려났다. 그를 상대하면서 파비우스의 파워 아머의 서보에서 굉음이 들렸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빨라졌구나, 파비우스' 펄그림이 말하였다. '드디어 스스로에게 무슨 강화수술이라도 했느냐? 어쩌면 너의 유전자에 무언가를 섞어놓았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이곳까지 싸우러 온 것이 아니오.' 파비우스가 이를 악다물고 말하였다.
'물론 그렇겠지. 그래, 너는 항상 군인이 아니었지, 안 그러느냐? 형제들과 함께 싸우기보다는, 형제들의 몸을 가르고 잘라내기에 바빳었지.' 펄그림이 부드럽게 칼을 들어올려 파비우스를 날려보냈다. 파비우스는 부서진 기둥에 몸을 부딪치고, 무릎을 꿇은채 손으로 땅을 짚었다.
파비우스는 파워 아머의 부상 경고음을 끄고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세웠다. 고통의 지팡이가 계속해서 경고를 주절거리며, 머리속에서 속사였다. 파비우스는 지팡이를 세게 쥐어잡으며 놈을 닥치게 하려 노력했다. 지팡이는 겁에 질렸고, 파비우스는 지팡이를 탓할 수 없었다. 마치 범 앞에 개가 본능적으로 겁을 먹는 것과 같았다.
파비우스는 몸을 돌리며, 그의 주위를 돌고 있는 펄그림을 찾으려 애썻다. 그의 유전적-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봤을 떄와 그다지 변한게 없었다.
'내가 한 일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어. 당신도 알 탠대. 비록 최근에 당신 머리 속에 무슨 바람이 들어간건지는 모르겠지만.'
펄그림이 웃었다. '말은 언제나 청산유수지, 파비우스!' 그가 몸을 돌리고, 멜루신을 처자보았다. 그녀는 파비우스와 펄그림이 대면하는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파비우스는 그녀가 망설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광경을 즐기는 것인지 궁금했다. '보았느냐? 내 말하지 않았더냐. 지금 이 순간에도, 녀석은 이 모든 과정에 자신이 한 역할을 부정하고 있지 않느냐. 녀석은 언제나 고집이 강했지.' 그는 파비우스를 다시 돌아보았다. 펄그림의 지나치게 완벽한 모습 위로 조소가 떠올랐다. '너무 그녀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말거라, 내 아들아. 나의... 손녀는 그저 너를 돕고자 했을 뿐이란다. 물론 너는 분노에 눈이 멀어 이를 보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이건 정말이지 집안 내력인 것 같구나.'
파비우스가 그를 노려보았다. '우린 가족이 아니야. 그저 유전적인 공통점만을 지녔을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파비우스가 얼굴을 일그려트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 유전적인 공통점도 없지. 당신은 그저 악몽에 불과해, 아버지. 곧 은하계 모두가 깨어날 악몽.' 그리고 그는 멜루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도 똑같다, 딸아. 너는 진실을 왜곡하여 거짓으로 만들었다. 도대체 왜?'
'진실을 지키기 위한 거짓도 거짓인가요?'
파비우스는 진절마리 치며 손을 내저었다. '이 어리석은 녀석아, 그럼 거짓이 아니고 뭐겠느냐? 이유가 어찌 되었건간 거짓은 거짓일 뿐이야!' 파비우스는 펄그림을 가리켰다. '저자가 나에게 그렇게 가르쳤어. 비록 지금 저자가 잊었다하더라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파비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실수했구나. 여기 와서는 안됬어. 알아야만 했었는대, 이건 처음부터 함정이었어.'
'아, 파비우스 정말이지. 이 어찌나 오만한지!' 펄그림이 몸을 들어올려, 가지에 매달린 과일 한 알을 집어들었다. 그가 한 입 배어물자, 어두운 과즙이 그의 뺨과 가슴에 흘렀다. '너는 한번도 함정에서 벗어난 적이 없단다, 애야. 너가 레르의 사원에 발을 들인 그 순간부터,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함정에 빠진거란다. 인정한단다. 너의 욕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복잡했지, 허나 결과는 다른이들과 똑같단다. 너 역시 다른 형제들처럼 욕망의 노예일 뿐.'
'그럼 당신도 노예에 불과하나, 아버지?'
펄그림이 한번 더 과일을 베어물며, 온몸으로 맛을 즐겼다. '나는 노예로 태어났단다, 파비우스. 내가 케모스를 접수하고 나서도, 나는 계속해서 노예였지. 아나테마가 내게 찾아와서 내 모든 업적을 무로 되돌렸어.' 펄그림은 과즙투성이 손으로 그를 가리켰다. '그게 우리란다. 우리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지. 너가 실험실에서 만든 돌연변이들과 다를 바가 없이 우리는 우리의 운명의 주인이 아니란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유일한, 진정한 자유는 오직 주인을 고를 자유뿐이라는 것을 알았단다.'
파비우스가 몸을 돌렸다. '당신이 나약하다는 것은 항상 알고있었어.' 그가 말했다. '우리가 모두가 그랬었지. 앙그론의 자손들이 그 고생을 하며 앙그론의 비위를 맞추어주었듯, 우리도 잘못해서 당신을 오냐오냐 떠받들어주었지. 월드 이터들이 붉은 천사를 망가트렸듯, 우리도 당신을 망가트렸어. 황제가 원한대로 완고하게 뜻을 관철하고 당신을 지도하는 대신, 당신 변덕과 심술을 맞춰주기나 했지.'
펄그림은 물어뜯은 과실을 파비우스의 발치에 던졌다. '떠받아들어주었다고? 지금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냐?' 몸의 비늘이 떨리는채로, 그는 몸을 일으켰다. '네놈은 매 번 나를 거역했다, 파비우스. 내가 네놈의 죄로부터 네놈을 지켜주었음에도. 네놈이 대성전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직 어둠의 신들의 은혜 때문이다. 헤러시 때는 말할 것도 없지. 이 우주에 티끌이라도 정의라는 것이 있었더라면, 네놈의 뼈는 진작에 썩어문드러져있었어.'
펄그림은 다른 과일을 하나 더 따서 먹었다. '하지만, 너는 아직도 살아있지. 우리 군단에 닥친 운명은 너가 초래한 것이고, 그에 대한 대가로 너는 아직도 살아있는 거란다. 감사하거라 파비우스.' 펄그림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너는 감사 할 줄 모르는 녀석이니.'
'감사? 감사라고?' 파비우스가 성을 냈다. '내가 진정 우리 군단의 파멸을 초래했다면, 그 단초를 제공한게 누구인대? 군단을 파멸시킬 설계를 만들라 한 것은 누구였고, 그 설계를 시행시킨것도 누구인대? 여지껏 이 모든 것은 당신이 한 짓이었어, 아버지. 당신은 내게 내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했어. 당신은 말도 안되는 수준을 원하였고, 내가 당신 요구를 만족시키치 못할 때마다 성을 냈지.'
펄그림은 마치 파비우스의 말을 곱씹는 것 처럼 과일을 잘근잘근 씹었다. '혹은 어쩌면 그냥 네가 너무 빠르게 포기한 것일지도.' 그는 미소지으며, 과일을 한 입 더 배어먹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더 이상 무얼 먹고 마실 필요가 없단다. 적어도 육체적인 이유로 먹을 필요는 없지.'
'참 대단하시군.' 파비우스가 무관심하게 말했다.
'그래, 나도 그리 생각한단다.' 펄그림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는 과거 내가 가지고 있었던 수 많은 필멸적인 존재들의 단점들이지. 분노는 또 다르단다. 나는 오직 내가 원할 때만 분노하지. 혹은 그냥 지루해질때나.' 그가 몸을 기울였다. '왜 그녀가 너를 이곳으로 데려온 지 아느냐? 바로 너를 지키기 위해서란다.'
'나를 지켜-?' 파비우스가 멜루신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녀의 은색 눈이 파비우스의 시선과 맞닿았고, 파비우스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무엇으로부터?'
'너 자신이지. 대부분은. 지금까지 너의 가장 큰 적은 너 자신이란다. 너의 잘못, 너의 집착.. 너의 육체 그 자체가 너를 집어삼키고 있지. 너는 진정으로 엔트로피 그 자체구나.' 펄그림은 파비우스를 향해 기어갔다. '이르든 늦든, 너를 쫒는 적들이 언젠가 너를 찾아올거란다. 드루카리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이. 어쩌면 그게 아바돈이 될지도 모르지. 에레부스는 확실히 너를 쫒을 태고. 언젠가는 신들께서 너에게 흥미를 잃으시겠지, 파비우스. 그 때는 그분들의 노예들이 너를 죽이러 너에게 찾아올거란다. 하지만 지금은... 아, 지금은.' 펄그림은 네 개의 손으로 박수를 쳤다. '지금은, 너의 가치가 입증되었단다. 이 게임에서 너의 역할은 정해졌단다. 이제, 나의 아들아, 너에게는 목적이 주어졌단다.'
'내게는 언제나 목적이 있었어.'
펄그림이 비웃었다. '지금의 인류가 이리도 재미있는 한, 이 은하계에 신인류가 설 자리는 없단다. 하지만 괴물들은 필요하지. 그리고 괴물을 만들 수 있는 자도.'
파비우스가 신음소리를 내었다. '괴물이라니.'
'오 그래. 너는 기괴한 것들을 창조하는 대에 있어서는 늘 뛰어났지. 다른 잡다한 것에 빠져 본업에 소홀했던 것이 유감이구나.' 펄그림이 느긋하게 손짓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지. 이제, 너가 해야할 것을 하거라. 신들께서 원하시니, 너는 그리 따르게 되리라. 마침내 순환이 완성되었구나, 내 아들아.'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파비우스가 멜루신을 돌아보았다. '저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냐?'
'내 말은.' 펄그림이 말을 가로챘다. '이제 유치한 일들은 그만두라는 말이다. 네가 신놀이 하는 것도 이제 끝났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너는 그저 작은 존재일 뿐이란다.'
펄그림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한 파비우스는 눈을 크게 떳다. '나를 노예로 만들려 하는군.'
펄그림이 웃었다. '네가 첫 실험쥐를 가를 때 부터 너는 신들을 섬겨왔단다, 파비우스. 네가 지식을 탐구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너는 너 자신을 그분들께 진상한 셈이야.'
'나는 그러지 않았다.' 파비우스는 그렇게 말하였으나, 그 자신도 자신의 목소리에 확신이 없는 것을 알았다.
'너는 나 또한 그분들께 바쳤지. 물론 너의 형제들도. 인정하든 안하든, 처음부터 너는 군단의 몸에 흐르는 혈독이었어. 비록 나는 개인적으로 너의 노고에 고맙지만, 다른 이들은 전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
펄그림은 파비우스의 머리에서 헬멧을 벗기고, 그의 손톱으로 파비우스의 머리를 긁어 피를 흘리게 하였다. 파비우스는 상처에 몸을 움찔거리고 뒤로 물러섰고, 펄그림은 그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그들이 너의 약점을 알게되면 너를 쫒을 거란다. 그들 뿐만이 아니지. 내가 만난 모든 하찮은 워로드들, 너가 배신한 모든 형제들이 네 살점 한 덩어리라도 얻으려 달려올 거란다.'
파비우스가 돌아서며, 절박하게 고통의 지팡이를 휘둘렀으나, 펄그림은 마치 아버지가 아이의 장난감을 빼았듯 무기를 치워버렸다.
'물론, 바로 그것이 너가 이곳까지 온 이유겠지. 잘못을 저지르고는 아버지 뒤에 숨을려하다니, 못된 아이같으니라구.' 펄그림은 파비우스 주위를 계속해서 돌았다. '하지만 너는 나를 아버지라 여기지 않지, 안 그러느냐 파비우스? 너가 골백번을 말했듯이 말이야. 그렇다면 너가 한 말을 번복하는 셈이니?'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파비우스가 성을 내자, 펄그림은 그를 날려 기둥에 처박았다.
펄그림이 웃었다. '지금까지 내 말을 듣기는 한거니?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게 아니란다. 신들께서 그리하셨지. 지금까지 너의 일대기는 모두 그분들의 손에 의해 태초부터 적힌 거란다. 기뻐하거라, 파비우스. 너는 이 위대한 계획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부품이로구나.'
'당신은 미쳤어.'
'그렇지. 너가 미쳤듯, 그리고 이 우주가 미쳤듯이.' 펄그림은 파비우스의 뒷통수를 세게 쥐어잡았다. '하지만 너가 이룩할 수 있는 위업에 대해 생각해보거라, 파비우스. 그저 어둠의 대공께서 주시는 선물을 받기만 하면되... 그러면 너도 나처럼 될 수 있단다.'
'난 당신처럼 되고 싶지 않아.'
펄그림의 손아귀가 더 강해졌다. '거짓말을 하는구나, 파비우스. 나는 완벽함 그 자체야. 우주의 정수로 단조한 완벽한 인간 그 자체*. 한 때 너가 나에게 그리 말하지 않았더냐?'
(*Vitruvian Man: 레오나르도 다 반치의 해부도 그림)
'한 때는, 그랬었지. 지금 당신은 무언가 다른 존재야.' 펄그림의 손톱이 머리 깊숙이 박히자 파비우스는 몸을 움찍거렸다. 그의 피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는 너는 아무것도 아니지, 파비우스. 내 관대하여 너를 살려둔것 뿐이란다. 허나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라.' 펄그림은 고통의 지팡이를 파비우스의 가슴팍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면 나를 죽일셈인가, 아버지? 토라진 애들이 장난감을 찢어발기듯 나를 찢어죽일건가? 아니면 왜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 말해 줄탠가?'
펄그림이 파비우스를 풀어주자, 파비우스는 쓰러졌다. '항상 직설적이구나, 아들아.' 펄그림이 그를 지나쳐 기어가며, 피묻은 자신의 손가락을 핧았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너 또한 맡아야할 역할이 있단다.'
파비우스는 자신의 뒷머리를 만졌다. 상처는 이미 사라져있었다. 파비우스는 펄그림의 말이 끝나자마자 물었다. '그리고 그 역할이란 것은 뭐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란다. 그건 장담하지. 너는 무기를 제련하고, 병사들을 만들거란다. 그리고 그것들을 적과 아군 모두에게 줄 거란다. 그리고 더 나은 무기와 병사를 연구하고, 쉼없이 노력할거란다.'
'왜 그래야만 하지?'
'왜냐하면 전쟁이란 무기와 그것을 다룰 병사들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놀이니깐.' 펄그림은 파비우스이 발치의 흙 아래에 고통의 지팡이를 던졌다.
파비우스는 펄그림을 올려다 보았다. '예전에는, 당신은 전쟁을 단순히 놀이따위로 치부하지 않았는대.'
펄그림이 잠시 망설였다. 아주 잠시동안, 펄그림의 괴물과도 같은 모습이 사라지고, 파비우스는 한 때 펄그림이었던 위대한 인간의 파편을 엿볼 수 있었다. '예전에는, 나는 그저 어렸었고, 어린애들의 꿈과 같은 것들을 믿었었지. 전쟁은 놀이란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놀이일 뿐이지.'
'그렇다면 나는 이 전쟁에 발을 들였다는 건가?'
'너는 항상 이 전쟁에 있었단다. 그저 몰랐을 뿐이지. 지금에 이르러서도, 너의 오만함이 그 사실을 인정치 않는 것 같구나.' 펄그림이 미소지었다. '최소한 그점에서, 너는 나를 아득히 능가한단다. 가능했더라면, 너의 그 오만함을 자랑스러워 했을탠대.'
펄그림이 파비우스를 향해 몸을 기울이자, 파비우스는 그의 향 아래에 감추어진 엠피리온 적인 부패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너는 이곳에 도움을 바라고 왔지. 그에 대한 내가 바라는, 그리고 슬라네쉬께서 바라시는 대가는 다음과 같다. 너의 타고난 역할, 그 맡은 바를 다하라. 그러면 너의 창조물은 다가오는 폭풍으로부터 살아남을지어다. 함께 그들을 우리의 날개 아래에 보호할지니, 파비우스. 과거 한때 나는 위대한 교육자였으니, 그들에게 새로운 소리와, 살육과, 쾌락을 가르칠 것이 기대되는 구나.'
'그 따위짓은 용납못해.'
펄그림은 마치 충격받은 것 마냥 몸을 뒤로 기울였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거래지 않느냐.'
'우리의 거래는 신인류의 안전이지. 나의 적으로부터는 물론이고, 당신으로부터도. 나의 창조물들은. 그들 모두는, 그 어떠한 간섭도 없이 그들의 운명을 찾아나서게 될 것이야.'
'만일 우리의 사랑스러운 멜루신처럼, 그들이 슬라네쉬를 섬기기로 결정한다면?'
파비우스는 오랫동안 입을 열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그것또한 그들의 선택이지.' 그는 펄그림을 올려다 보았다. '당신과는 다르게 말이지, 아버지. 나는 내 실수로부터 배운바가 있거든.'
펄그림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내가 너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란다, 파비우스. 다른이들이 같은 실수를 영원히 반복하는 동안, 너는 새로운 실수를 만들지. 그리하여 모든 것이 흥미롭게 돌아가게 만들어.' 펄그림은 몸을 돌리고, 파비우스가 인지하지 못하는 무언가의 명령를 듣는 것 마냥 고개를 숙였다. 잠시후, 그가 몸을 돌렸다. '너의 말대로 하겠다. 좋은 거래로구나.'
'그래.' 파비우스가 몸을 돌렸다. '그렇다면 나는 이만 가보겠어.'
'오 잠깐만. 아직은 안된단다.' 펄그림이 재빠르게 파비우스를 감쌋다. '먼저, 충성의 서약이 필요하단다.'
'어떤 형태의 서약을 말하는 거지?'
펄그림의 미소가 그의 안면보다 넓어졌다. 잠시후, 정원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치 먼지가 바람에 날아가듯, 펄그림과 멜루신도 함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검은 우주와 그 사이 별들만이 남았다.
'내가 무얼 해야하나?' 완전한 침묵 끝에, 파비우스가 물었다. '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에 대한 대답으로, 무언가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평평한 돌 제단이었다. 한 사람이 눕고도 반은 남을 정도의 크기였으며, 제단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에 의해 만들어진 완벽한 제단이었다. 최초이자 최후의 제단. 그리고 그 위에는 - 단검이 있었다. 아주 원시적인 단검으로, 돌을 깨서 만든 날을 동물의 털로 감은 물건이었다.
파비우스는 그것들을 바라보고, 위를 올려다 보았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오직 침묵만이 있었을 뿐, 신들을 그저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만을 바라보았다. 파비우스는 제단으로 가 단검을 들었다. 단검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었으나, 인류가 아는 그 어떤 무기보다도 무거웠다.
파비우스가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파워 아머, 인피 코트 - 모든 것이 사라졌다. 외과기와 고통의 지팡이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혼자였다. 수백년 만에 처음으로,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혼자였다. 파비우스는 아포세카리의 시점에서 자신을 진찰하였다. 말라비틀어진 몸, 뼈가죽에 들러붙은 피부의 주름들, 거칠디 거친 블랙 카라페이스 점속 노드, 검버섯들, 그리고 나약한 육체의 악취까지.
'아... 내가 아는 친구놈 중 한 놈이 내게 세상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자주 말했지. 제단 위에 몸을 바치는 제물, 그리고 제단 위 제물을 단검으로 베는 제사장. 내가 기억하는 것 보다 훨씬 오랫동안, 나는 항상 칼을 잡고 있는 쪽이었는대.' 파비우스는 말을 하면서 단검을 휘둘렀다. 제단은 어느새 순식간에 수술대가 되고, 그의 단검은 메스가 되었다. 파비우스는 자신의 실험들을 떠올렸다. 자신이 시간을 벌기 위해, 지식을 얻기 위해, 그리고 자유를 위해 희생시킨 실험체들을.
그가 이스테반과 그 후 희생한 형제들의 얼굴들. 테라의 수 많은 무고한 이들을.
불타버린 세상들에 있었던 그의 아이들을.
'하지만 지금은, 이제 내가 제단 위에 몸을 누울 차례로군. 다시금 태양이 떠오르고, 풍작과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 희생할 제물이 될 차례로군.'
파비우스는 제단 위로 올라가, 두 손으로 단검을 잡았다. 결심하는 대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록 파비우스는 자기 자신에게 더 심한 수술도 여러번 하였으나,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 그는 단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단검에 찔린 순간은 거의 느끼지 못하였으나, 그 이후의 고통은 느낄 수 있었다.
파비우스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마치 거대한 돌풍이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불어오듯,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 침묵이 찾아왔다.
'다 끝났구나, 그리 어렵지 않았게지, 그렇지 않더냐?'
피투성이에 몸을 떠는 채로, 파비우스는 그의 유전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는 제단에서 몸을 구르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에는 상처가 없었고, 다시 파워 아머를 입은 상태였다. 외과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다시금 정원이 그의 눈 앞에 펼쳐졌다. 악마들을 환희에 차면서 기쁘게 떠들었다. 악마들 중 몇몇은 파비우스도 아는 악마였다. 과거 그와 마주치고 물질세계에서 쫒겨난 악마들이, 이제는 그의 굴종을 만끽하고 있었다.
속이 매스꺼워진 파비우스는, 단검을 내밀었다. 단검은 아직도 그의 피로 흥건했다.
'내가 당신 몸에서 그 비늘들을 잡아뜯어낼 힘이 있다면 말이지, 아버지. 당신에게도 절대 잊지못할 고통을 선사해주고 싶군.'
펄그림이 눈썹을 올렸다. '파비우스... 네가 그리 말하는 것은 처음 듣는 구나.' 그가 미소지었다. '어쩌면 너도 그리 고루하지만은 않은 모양이구나' 펄그림은 단검을 잡고 피를 핧았다. '스스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구나. 친애하는 나르보와 그 발굽달린 시정잡배가 널 기다린단다.'
'우리의 거래는 어떻게 되는거지? 나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은?'
펄그림은 퇴장하면서 어깨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약속은 지켜질거란다, 내 아들아. 두려워 말거라. 너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전에 알아차릴 거란다.' 그 말과 함께, 펄그림은 산록으로 사라지며 도발적인 웃음 소리를 남겼다. 파비우스는 그를 따라가려했으나, 멈추었다.
파비우스가 몸을 돌리자 멜루신이 기다렸다.
'멜루신.' 파비우스가 말을 걸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아버지.' 멜루신은 한 걸음 물러나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하지만 얼마안가, 그들이 당신을 찾아올 것입니다. 준비하옵소서.'
파비우스는 손을 떨어트려 가슴에 대었다. 그녀의 말과 함께, 파비우스의 두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
'그 때가 언제란 말이냐?'
그가 고개를 올리자, 그녀는 이미 사라진 후 였다.
수천년만에 만나자 마자 서로 치고 박는 두 부자.
데몬 프린스 프라이마크에게 겁없이 돌직구 날려대는 파비우스 옹.
재미있는 것은 저래보여도 타락전이나 후나 펄그림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파비우스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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