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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팬픽] 애 돌보기는 역시 적성에 안 맞아

자드가자(58.227) 2022.05.27 06:53:35
조회 410 추천 2 댓글 5
														


··················



※ 본 이야기는 요청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럼 즐감해주세요~.


※ 내용이 본편과는 상이해 괴리감이 느껴질 수 있으니 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잔디들이 기분좋게 춤추는 들판


그 곳에서 새파란 새싹들이 자라납니다.


비록 종도, 모양도 다양해서 제각각이지만


색깔은 푸른색으로 똑같답니다.


그렇게 오늘도 새싹들인 끝없는 들판에 


자신들의 푸른색을 가득 칠합니다.



밤바람이 살결을 기분좋게 스치는 어느 밤ㅡ.


"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집채를 몇 십개는 합쳐놓은 듯한 거대한 대저택에 한 남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대체 그리 놀랄 이유가 뭐가 있지? 1년 가까이 집에서 퍼질러져 아무것도 안 하는 널 돌봐온 내 기분은 생각 안 하는 거냐?"


아름다운 밀밭을 연상시키는 금발을 나부끼는 한 여성이 어이없다는 투로 그 남자를 흘겨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아니아니, 잠깐만, 잠깐만······ 지금 세리카, 네 말은······ 나더러 애 돌보기나 하라 이 말이야?"


그렇다. 이 곳은 세리카 아르포네아 소유의 저택.


그다지 특정할 외모라고도 없는 이 남자ㅡ 글렌 레이더스와는 오래 전부터 가족으로 지내와 늘 거리낌없이 한집에서 지내는, 그런 사이였다.  


"모처럼 좋은 기회잖냐? 진작에 동심이 산산조각난 글렌, 널 아이들을 돌보며 치유하라는 거지. 게다가 겨우 일주일이다. 아, 참고로 거절은 없다?"


"······훗."


글렌은 씨익 웃더니 그 자리에서 백덤블링을 하며 순식간에 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다.


그의 자칭 고유 마술 중 하나ㅡ 문설트 점핑 오체투지(五體投地)였다.


"이것만큼은 절대 무리! 아무쪼록 선처를 부디 베풀어주십쇼! 위대하신 스승님! 아니, 부디 자비를······!"


"······하아? 어이, 글렌. 네가 그토록 혐오하는 마술을 가르치란 것도 아닌데······."


관자놀이에 힘줄이 약간 솟아난 세리카는 저자세를 하고 있는 글렌의 두 손을 발로 꾹꾹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를 내려다보며 갓 돋아난 살얼음처럼 한없이 차갑게 말했다.


"지금 네가 거절할 이유가 대체 어딨다는 거지······? 응? 말해봐."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 아, 아알겠으니까 밟지 좀 마아아아아아아악!"


"돈벌이도 없는 널 이 저택에서 먹여주고 재워준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게으른 널 일자리를 알선해주겠다는데 불만 따위가 있다라······?"


"하하, 할게! 한다니까아아아아! 그러니 그 고우신 발은 치워주십쇼, 제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알!"


······참고로 말하자면, 협박에 가까운 세리카의 부탁을 어쩔 수 없이 수락한 글렌은 그 날 손이 팅팅 부어 포크마저 제대로 집을 수도 없었다.



"본의 아니게 결국 오게 되긴 했다만······."


며칠 후, 저택에서 발걸음을 옮긴 글렌의 앞에는 한 커다란 건물 하나가 서 있었다.


알자노 제국 유치원.


아직 학교에 취학하기 어려운 유아들을 대상으로 보육 및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물론 제국 직속 기관이었기에 빵빵한 지원금과 더불어 여러 귀족 가문의 영애들이 많이 입원하는 걸로도 유명했다.


평소엔 시간 개념이라곤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는 글렌이지만 오늘만큼은 세리카가 아침에 강제로 기상시켰기에 제시간에 올 수 있던 것이다.


"그, 그래~ 기껏해야 애들인데 별 일이야 있겠어?"


태연한 척 유치원 건물의 정문을 덜컹 열자ㅡ.


그 안쪽에는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도록 구비된 파릇파릇한 나무들과 풀들이 예술적인 무늬를 띠며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하찮게 보일지도 모르는 한낱 잎사귀들마저도 정원사가 주기적으로 말끔히 정리해놓은 덕인지 하나같이 가지런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대저택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정원이었다.


아무리 예술과는 늘 담을 쌓아놓고 살아왔던 글렌이라도 이 광경을 보고 있으면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과연, 제국이 담당하는 기관은 다르다 이건가······."


약간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글렌은 한산하고 평화로운 정원을 터벅터벅 걸었다.


줄줄이 늘어서있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가끔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흔들려 춤을 추었고, 나무들은 기분좋게 잠들었다.


"설마 이 정도 규모일 줄은 몰랐어. ······암튼 기간만 끝나면 후딱 끝내버려야지, 원."


살짝 혀를 차며 글렌은 곧 기간제이긴 하지만 유치원 교사가 될 사람이라곤 전혀 믿기지 않는 포즈를 취하며 본관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게 글렌이 본관의 문을 무심하게 열자ㅡ.


"와아······ 이건."


주황색 색조의 샹들리에가 은은한 분위기를 풍기며 실내 안을 수놓았다.


그 광경을 본 글렌이 감탄하며 눈을 돌리자ㅡ.


자연스레 문에서 벗어난 그의 시선처리는 수십 메트라 전방의 고급스런 분수대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시선이 향한 곳에는 《자애로운 천사상》이 그 고운 자태를 뽐내며 글렌을 환영하듯 서 있었다.


백옥색의 아름답고 신성한 날개.


그것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익숙한 사람일지라도 우아함이 물씬 흘러나와 한동안은 시선을 빼앗기리라.


말 그대로 이름을 증명하듯 자애로운 표정의 천사는 손에 든 물병으로 꽃에 물 주듯 곱고 맑은 물방울들을 밑에 있는 분수대로 손수 부어주고 있었다.


물에 비치는 따스한 색조의 샹들리에도 분위기를 한 층 더 무르익혔다.


"······세리카 녀석, 진심으로 나 보고 이런 데서 일하라는 거야······?"


하지만 그 절경을 본 글렌의 마음 또한 한 층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알자노 제국 유치원의 경우, 그 해에 들어온 원생들을 기준으로 하여 반을 편성했다.


통칭 A반의 경우, 7살. B반의 경우, 6살. C반의 경우, 5살. 이런 식이었다.


사람 한 명 없는 외로운 복도를 걸어가며 글렌이 안내용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어디 보자······ 오늘부터 내가 맡아야 하는 건······ B반인가. 아아, 귀찮아라~."


가뜩이나 세리카에게서 억지로 끌려왔건만 말이다. 


실은 그도 이렇게까지 시설이 거대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애들 수는 틀림없이 포화 상태에 가까울 테니 힘든 게 여간내기가 아닐 터.


본관의 출입문 오른쪽을 돌고 돌아 한숨을 푹 쉰 글렌은 마침내 B반의 문턱 앞에까지 도달했다.


"~~~~~~?!~~~!"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갖가지 소란스러운 소리가 글렌의 귀를 찔러댔지만 지금 자신에겐 그런 불평조차 할 상황이 못 됐다.


"내 인생······ 기구하기도 하구만······ 세리카 녀석, 날 얼마만큼 골려먹을 작정인 거야?"


늘상 집에 있는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밖으로 나와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너무도 생소했다.


······심지어 걷는 것조차도 말이다.


결국엔 지금은 그냥 눈 딱 감고 문을 거세게 옆으로 밀어내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에이이이이이이이이잇~! 잘 부탁한다, 미래의 나!'



덜컹.



갑자기 웬 처음 보는 수상한 사람이 서슴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반에 있는 모든 아이들의 이목이 그에게 일제히 쏠렸다.


글렌은 살짝 헛기침을 한 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리둥절하는 아이들에게 말문을 열었다.


"아아, 저기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에······ 전 B반 교사로 새로 부임 온 글렌 레이더스라고 함다. 1달 동안 여러분의 교사를 맡게 됐슴다."


뺨을 긁적이며 글렌이 어색한 인사를 마쳐도 여전히 아이들은 그를 의아한 눈길로 쳐다볼 뿐이었다.


'크으으으······! 벌써 이렇게 첫 날부터 고비라니이~?! 역시 나한테 교사 같은 건 안 맞는다고 했잖아, 젠장!'


그렇게 그가 머리를 쥐어싸메며 속으로 절규하고 있자 그에게 청초하게 생긴 한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그······ 렌······? 그렌······ 선쟁님······? 와아, 그렇구나! 잘 부탁드려요, 에헤헤!"


용모는 단정한 데다 마치 순수한 은을 녹여만든 것 같은 은색의 고운 머리카락.


비취색의 선명하고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홍채.


아직 아이답게 피부는 맑고 고와서 당장이라도 볼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면 뽀송뽀송하리라.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정수리 쪽에 고양이 귀처럼 생긴 머리 장식을 착용했다는 것 정도일까.


비록 어린애이긴 해도 그런 야무진 모습에서 귀족 영애 특유의 기품이 흘러넘쳤다.


"······으음~ 그래. 잘 부탁한다. 그나저나, 넌 이름이 뭐야? 물어봐도 될까? 싫으면 대답 안 해도 돼."


글렌이 최대한 그 여자아이의 귀에 들리도록 애써 발음을 또박또박 말하자ㅡ.


"······이름? ······아! 전 시스티나 피벨이라구 해요! 선생님은 그렌! 전 시스티나!"


시스티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내 똘똘하게 대답했다.


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장하게도 벌써 기본적으로 존댓말은 습득이 끝난 상태인 듯 했다.


조금 뭉개지긴 하지만 아마 발음 또한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면 매우 우수한 편에 속하지 않을까.


"저, 저기······ 얘야? 난 그렌이 아니야. 자, 내가 시범을 보여줄 테니 어디 한 번 따라해봐라. 글. 렌."


"······그렌······! 그렌······! 으으으······."


그러나 시스티나도 발음 문제만큼은 어쩔 수 없는지 말이 계속 새어나가고 말았다.


그게 살짝 분했는지 시스티나는 뺨을 부풀리며 몇 번이고 글렌의 이름을 되뇌였다.


"하핫, 그래. 열심히 해라, 시스티나." 


목을 몇 번이나 가다듬어가며 발음을 연습하는 시스티나를 글렌이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일단······ 그건 그렇고······."


그는 손으로 턱을 짚더니 잠시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까 전부터 마음 속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랄까······ 마치 다른 세계에서의 자신이 언젠가 이 아이를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감각······.


"······하하, 역시 말도 안 되겠지? 하도 오랜만에 밖을 나와서 머리가 좀 이상해진 걸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며 잡생각을 털어내듯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자ㅡ.


"시스티!"


잘 익은 레몬처럼 나부끼는 금색의 단발을 가진 또 다른 여자아이가 시스티나 쪽으로 다가왔다.


머리는 잘 손질된 덕에 윤기가 흐르는 황금색 머리카락이 그 아이의 귀여움을 한 층 더 돋보였다.


복장 또한 좀처럼 나지 않는 최고급 원단을 쓴 것으로 보아 적어도 귀족 이상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 루미아!"


표정을 활짝 펴며 시스티나를 바라보던 루미아라는 그 여자아이는 어느 순간 우연히 글렌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그러자 루미아는 마치 버림받은 새끼 고양이처럼 글렌을 경계하며 시스티나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이거 참, 완전히 미움받고 있는 모양이구만······ 나."


"루, 루미아? 왜 그래······?"


그런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시스티나가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었지만ㅡ.


"······으으으, 몰라! 난 저 사람 싫단 말야······! 저 쪽으로 가자, 시스티!"


루미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떼를 부리며 시스티나의 가녀린 손목을 붙잡고 글렌에게서 달아나버렸다.


"하아······ 정말이지. 애들은 다루기가 진짜 힘들다고 이래서······."


한숨을 푹 쉰 글렌은 고개를 들고 교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 레이스가 곱게 달려 있는 드레스를 차려입은 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아무래도 시스티나와 같이 이쪽도 귀족 가문의 영애인 듯 했다.


문득 그런 글렌의 시선을 눈치채자 그 아이는 새침하게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지금까지의 전적으로만 보자면······ 3전 1승 2패, 승률 33%에 해당하는 형편없는 결과였다.


"에잇, 나도 질까 보냐! ······웃차~!"


그러자 글렌은 갑자기 알 수 없는 데서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곧장 앉아있던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더니 또 다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번엔 이전의 여자애들보단 다소 친근해보이는 인상의 남자아이였다.


이미 두 번이나 매몰차게 거절당했던 글렌은 이번에야말로 그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갔다.


"에, 그러니까······ 안녕, 네 이름을 좀 알려줄 수 있을까······?"


평소엔 잘 짓지도 않는 억지 미소를 지은 탓에 얼굴이 일그러지며 뺨이 경련을 일으켰다.


"······녜? 아조씨는······ 누그신데여?"


색깔마다 다른 숫자가 적혀있는 블록을 집으며 놀고 있는 그 아이는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짧은 혀 때문에 발음이 부정확할 수밖에 없었다.


다소 앳돼보이는 느낌에 왠지 씩씩한 오오라가 뿜어져나오는 남자아이였다.


"나는 말야······ 그래, 글렌 엉아라고 부르려무나. 너도 그 쪽이 좋겠지?"


형이라고 하는 건 뭔가 어감이 조금 딱딱해보였기에 부드럽게 순화시킨 편이 좋다고나 할까.


"······엉아······?"


"그래, 엉아. 실은 너랑 친구하고 싶어서······ 뭐, 암튼 그렇게 불러주면 진짜 기쁠 거 같네."


이런 대화는 좀처럼 어색했기에 뺨을 긁적거리며 시선을 피하고 얘기했다.


"어······ 응! ······글렌 엉아!"


그러자 당돌한 그 아이는 고맙게도 씩씩하게 대답해주었다.


"······아, 근데 네 이름은 뭐야?"


"이름······? 아, 마따······! 난 카슈라고 헤!" 


손바닥에 주먹을 탁 치며 귀엽운 포즈로 뭔가를 떠올린 그 남자아이는 자신을 카슈라고 소개했다.


"아~ 으응, 카슈구나.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해. 카슈."


"엉아두 잘 부탁헤!"


비록 그 용모 덕에 어리다고 할 얼굴은 절대 아니었지만 하는 언동은 어딜 봐도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원래 이런 데에는 익숙치 않았을 터인데 어째선지 글렌은 서서히 마음 속에서 알 수 없는 성취감이 느껴졌다.


'이 감정은 대체 뭐지······? 난 애를 돌보는 않는 베이비 시터(Baby Sitter)가 아닌데도······ 이상하게 뿌듯한 건 왜······?'


저 찬란한 햇빛도 그냥 지나갈 듯한 해맑은 미소를 보고 있으면 굳어있던 표정이 풀어지고 자신 위의 시덥잖은 가면도 저절로 벗겨졌다.


"아, 혹시 엉아랑 블록 놀이 같이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단숨에 달려와주마. 뭐, 재미는 분명 없겠지만 놀이 상대라도 되어 줄게."


"그러쿠나······ 우웅! 징짜 고마워, 엉아!"


"훗, 정말이지······."


뭔가 벅차오르는 감정에 그만 글렌은 코를 손가락으로 스윽 비볐다.


아이들은 대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듯 눈 깜짝할 새에 성장한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할수록 각자의 개성은 점차 뚜렷해지고 똑같아 보이던 특징은 점점 두드러지며 개개인을 만들어낸다.


그런 순수한 아이들은 지금도 무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가능성이 열려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글렌은 이 아이들의 성장을 두고두고 지켜보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감회의 물결에 젖어있자ㅡ.


"······응?"


어떤 아이가 자신의 바지를 손으로 살포시 당기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자 그 자리엔 마치 강아지처럼 푸근해보이는 첫인상의 한 아이가 서 있었다.


이번에도 남자애였다.


"······선쟁님······? 글······ 렌, 글렌 선쟁님이라구 해쪄?"


"우오오오오오오오오~?!"


결국 끈질긴 4번의 시도 끝에 이제야 자신의 눈앞에 드디어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아이가 나타난 것이다.


비록 다른 단어들은 모조리 발음이 뭉개졌지만 지금 그런 건 별개의 문제였다.


"······으으으으으응! 그래그래, 글렌 선생님! 자, 따라해봐? 선. 생. 님!"


눈을 부릅 뜨며 다소 거친 인상을 남자애에게 확 갖다 들이밀자 그 남자애는 이내 글썽거리더니ㅡ.


"훌쩍······ 훌쩍······ 으으,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갑자기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초롱초롱한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얘, 얘야······? 왜 그래, 갑자기······?!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 정도로 못 생기진······ 어라? 갑자기 눈물이······."


결국 마음의 상처를 입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후일담으로 카슈에게 대답을 듣기로, 그 애의 이름은 루젤이라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초보교사 다운 모습을ㅡ.


"······."


멀찍이서 루미아가 살짝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루미아의 머릿속은 저 남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왜 굳이 저렇게까지 자신들과 친해지려고 애를 쓰는 건지······ 애당초 귀족도 아닌 일개의 평민이 이 유치원에 온 이유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왕족과 귀족의 자재들로 가득한 이 유치원에서 후줄근한 셔츠와 바지만을 입은 데다 정중앙의 빨간 넥타이는 대충 둘러멘 모습이었다.


어딜 봐도 이 유치원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 만한 품격 있는 교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도 이 글렌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한심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의 마음속엔 분명히 무언가 다른 감정이 존재했다.


'도대체 뭘까? 이 감정은······.'


그리고 루미아가 그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끄으으으으으으으~! 이만하면 됐겠지?"


마침내 B반에 있는 모든 원생들에게 말을 한 번씩 거는 데에 성공한 글렌은 찌뿌둥해진 허리를 시원하게 기지개를 키며 일으켜세웠다.


"뭐······ 그래도 아직까진 몇몇 애들은······ 날 받아주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겠다만."


다른 아이들이 귀족 가문이라고 알려준 웬디라는 여자아이와 여전히 자신을 피하고 있는 루미아, 그 외에도 몇 명 있었다.


"······그나저나 이거 놀라운걸. 내로라 하는 귀족 명문들이 설마하니 이렇게나 많을 줄은······."


나블레스 가문, 피벨 가문 등등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하긴······ 그 알자노 제국의 직속 유치원이니 그럴 만도 한가. 학비만 해도 엄청나게 비싼 걸로 알고 있고."


아무래도 귀족의 딸과 아들들만 보이는 장소이다 보니 늘 최상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지원을 받는다고 한들, 학비는 다른 곳보다 월등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네."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며 아이들이 노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자니 순식간에 하루가 지나가고 말았다.


'내일도 이렇게 나온다라······ 당분간은 언동에 신경 좀 써야겠는걸.'


그리고 그렇게 다짐하며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얘들아, 수고했어. 처음 보는 날 잘 따라와줘서 기특하게 생각해. 그럼 다들 집에 가도 좋아. 아, 행인들은 너희들보다 크니까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고."


""""고맙숩니다, 성생님!""""


아이들은 저마다 태양처럼 환하게 인사하며 교실 문을 나서는 도중 글렌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그래, 너희들도 수고했다. 이 못난 선생 따라오느라."


귀가 인솔 교사는 따로 있었기에 글렌의 역할은 교육 담당까지만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모두 반겨주고 귀가시키자 B반 교실 안엔 어느새 자신만 홀로 떡하니 남아있었다.


"휴우······ 그럼 나도 슬슬 돌아가볼까. ~~~♪"


차오르는 성취감에 무심코 입가에서 휘파람이 흘러나오는 걸 막지 못한 글렌은 그대로 귀로를 걷기 시작했다.



······.



그리고 다음 날ㅡ.


아침에 낭낭하게 하품하고 있던 글렌에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위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그 때문에 바지 주머니 안에 있던 마도 통신기가 진동 때문에 가볍게 흔들렸다.


"으응······? 이 시간에 누가 나한테 전화를······."


의아한 표정으로 통신 단말기를 바라보던 글렌은 잠시 손뼉을 짝짝 치고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아아, 그 뭐냐······ 선생님이 볼일이 하나 생겨서 말이다. 얼마 안 걸릴 테니 너희들끼리 아무쪼록 놀고 있으려무나."


최대한 자상하게 말한 글렌은 조심스럽게 교실 앞문을 닫고 복도에서 아직도 울리고 있는 마도 통신기의 버튼을 꾹 눌렀다.


"아, 예예. 누구심까, 이쪽은 글렌이라고 하는뎁쇼."


축 처진 목소리로 그렇게 힘없이 통화를 받는 순간ㅡ.


"여어, 글렌. 감상을 들어보고 싶군. 유치원 생활은 어때, 역시 즐겁지?"


단말기 너머로 어딘가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리카?!"


"뭐, 당연히 즐겁겠지. 내가 추천해준 곳이니 그럴 만도 해, 응응."


"······."


여전히 자기 할 말만 늘어놓는 뻔뻔한 모습에 글렌은 말문이 턱 막혔다. 


"······전화를 건 이유는?"


원체 세리카라는 여성은 본론을 꼬고 꼬아 결국엔 맨 마지막에 놓아보고 듣는 상대의 유쾌한 반응을 즐겼다.


이것이 그녀가 마도사로서의 별명 《마녀》가 생긴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 뭐, 별 건 아냐. 단순히 지금 네 반에 전학생이 한 명 간다는 것 정도······?"


""············.""


두 사람은 마치 그 순간만 시간이 멈춘 듯 한없이 깊은 침묵에 잠겼다.


이윽고 그 장장한 침묵을 깬 건 세리카였다.


"어느 한 청년이 나한테 말하더군. 『군 출신의 여리여리한 체구를 가진 아이』를 맡아줄 순 없겠느냐고."


"············."


그 말을 들은 글렌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알베르트 이 자식······."


"이야, 그걸 어떻게 또 맞췄지? 솔직히 좀 대단한걸? 의뢰인을 단번에 맞춰버리다니 말야. 역시 내 제자답군 그래, 후훗."


마성의 미모를 가진 한 여성이 통화기 너머로 요사스럽게 웃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에잇! 시끄러! 『뭐가 내 제자다워, 후훗』이냐! 그딴 거, 누구인지는 뻔하잖아! 솔직히 난 지금 이 반만으로도 족하다고!"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서 말이다. 그 쪽 이사장에겐 서류까지 통과받았어. 뭐, 아무튼 막을 수 없다는 것 정도만 알아두라고."


"······역시 네 그런 점은 예전부터 맘에 안 들었어, 쳇."


글렌은 매섭게 혀를 한 번 찬 뒤 마도 통신기를 거칠게 끊어버렸다.


"만약 진짜로 그 녀석이 온다면······ 내 목숨은 2개라도 부족하잖아! 아아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딴 의뢰를 받은 거냐고!"


물리적으로 상처를 입힌다던가, 결코 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어지간해서는 다른 의미로 사고뭉치인 그녀였기에 그런 뜻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몇 번이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오열해봤지만 이미 결과는 돌이킬 수 없을 터.


그렇다면 남은 한 가지 방법은 뻔하지 않은가.


"그래. 사표 내고 오자. 안타깝지만, 지금 내게는······ 그 녀석을 맡아줄 여유 따윈 없고, 자격도 없으니까······."


어째선지 씁쓸한 표정으로 글렌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본관의 현관문을 한숨을 쉬며 열자 글렌은 무심코 뒷걸음질치며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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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8 설문 힘들게 성공한 만큼 절대 논란 안 만들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10 - -
3163 18+ [팬픽] 하얀 소녀에겐 광기를, 덧없는 사랑엔 집착을 [12]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15 607 3
3161 정보/ 신은 우리를 버렸다 [13]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13 489 0
3160 일반 그러고 보니 시스티나 꿈은 [2]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13 260 0
3159 창작 [팬픽] 뭔가 첫 데이트 치곤 많이 엉성해 [11]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13 587 5
3158 일반 오늘은 루미아 데이트랑 얀데레 시스티나 리메이크 [8]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12 284 1
3157 일반 갑자기 생각난건데 [4] Elessa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12 144 0
3156 지름/ 다 모았다 [3] ㅇㅇ(118.221) 22.06.11 344 0
3155 일반 지금 시점에서 이브랑 알베르트랑 싸우면 [7]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11 406 0
3152 창작 [팬픽] 어느 오후의 한가로운 이야기 [13]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11 816 11
3151 일반 파딱 의견이 맞을듯 [1] ㅇㅇ(223.62) 22.06.11 176 1
3150 분석 기계장치의 신 [4] 텐가이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10 309 1
3149 핫산 21권 컬페 핫산 [3] 텐가이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10 627 0
3148 핫산 21권 목차 [12] ㅇㅇ(39.116) 22.06.10 414 0
3147 핫산 21권 컬러 일러스트 번역 [1] ㅇㅇ(39.116) 22.06.10 699 0
3146 정보/ 미리보기에서 나온 장면들 [1] ㅇㅇ(39.116) 22.06.10 335 0
3144 짤/일 21권 컬러 일러 [1] ㅇㅇ(39.116) 22.06.10 464 0
3143 창작 [팬픽] 변변찮은 강사의 휴일 [17]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10 790 8
3142 일반 ㅇㅇ 아닌 유동이 병신인 거는 모든 갤 공통임 ㅇㅇ(118.235) 22.06.10 371 14
3141 일반 스포글 관련해서 주딱한테 질문해볼게 있음 [5] ㅇㅇ(39.116) 22.06.09 180 1
3140 일반 누가잘못했는지는 게이들이 알거라고 생각함 [6] 지메장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9 216 3
3139 일반 BL물 게이는 지 잘못 진짜로 모르냐? [5] ㅇㅇ(223.62) 22.06.09 594 11
3138 일반 내가 유동한명땜에 코드걸어야겠냐 ㅋㅋㅋ [24] 지메장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9 363 0
3137 일반 공지에 나와있을텐데 [14] 지메장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9 246 1
3135 창작 [팬픽] 그리운 재회 [16]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8 625 8
3134 18+ [팬픽] 만약 언젠가의 신혼생활 [10]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8 1377 15
3133 일반 변변찮은 마술강사와 금기교전 21권 기원 39일차 BL물 싫어(114.199) 22.06.08 130 4
3132 창작 [팬픽] 날 응원해준 네가 있었기에 [14]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7 878 10
3131 일반 21권 진짜 기대되긴 하네 [1] ㅇㅇ(223.33) 22.06.07 213 0
3130 일반 변변찮은 마술강사와 금기교전 21권 기원 38일차 BL물싫어(106.102) 22.06.07 93 2
3129 일반 '헤드락' BL물 싫어(114.199) 22.06.06 420 10
3128 일반 변변찮은 마술강사와 금기교전 21권 기원 37일차 BL물싫어(106.102) 22.06.06 96 2
3127 일반 충격적인 비밀이 뭘꺼같냐 [8] BL물싫어(106.102) 22.06.05 339 3
3126 일반 야설 말머리 따로 만들음 [2] 지메장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5 161 0
3125 창작 [팬픽] 널 향한 마음이 곧 떨어질지도 모르니 [8]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5 949 10
3124 일반 변변찮은 마술강사와 금기교전 21권 기원 36일차 BL물싫어(106.102) 22.06.05 110 1
3122 창작 [팬픽] 예? 전근이요? [13] 자드가자(58.227) 22.06.04 573 6
3121 짤/일 얼굴은 그럭저럭 괜찮게 나왔는데...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4 407 3
3120 일반 얘들은 여드름 하나 안나서 부럽네... [5] BL물 싫어(114.199) 22.06.04 212 3
3119 일반 변변찮은 마술강사와 금기교전 21권 기원 35일차 BL물싫어(106.102) 22.06.04 70 1
3118 창작 [팬픽] 갑작스러운 세라의 폭탄 선언 [13]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3 794 8
3116 일반 변변찮은 마술강사와 금기교전 21권 기원 34일차 BL물싫어(106.102) 22.06.03 91 2
3115 창작 [팬픽] [19] 쌓여있는 게 죄는 아니잖아? [8]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2 832 6
3114 일반 실시간 14권 읽고왔는데 노블엔진일안하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2 111 0
3113 일반 개추억ㅋㅋㅋ [1] BL물싫어(106.102) 22.06.02 147 1
3112 일반 변변찮은 마술강사와 금기교전 21권 기원 33일차 [3] BL물싫어(106.102) 22.06.02 169 2
3111 일반 닉언좀 하지마 [5] 지메장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1 176 1
3110 정보/ [정보] 21권 출시 임박 [5]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1 420 0
3107 짤/일 21권 표지 [1] ㅇㅇ(39.116) 22.06.01 303 0
3106 창작 [팬픽] 소원을 담아적은 초콜렛 [17]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6.01 549 6
3105 일반 세리카가 글렌 한 번도 안 건드렸을까? [1] ㅇㅇ(218.38) 22.06.01 36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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