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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팬픽] XX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아니그냥없어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9.02 21:01:20
조회 1519 추천 13 댓글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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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응······."


평소와 달리 어딘가 어색한 감촉에 문득 눈이 떠졌다.


아직 비몽사몽한 얼굴로 천천히 몸을 침대에서 일으켰다.


부족한 잠에 시달린 탓인지 자꾸만 감기는 졸린 눈을 억지로 비비고 주위를 힐끔 둘러보자.


내 눈앞엔 내 집이 아닌 다른 기이한 공간이 펼쳐져있었다.


뭔가가 이상했다.


제대로 기억을 못할 리도 없다. 어젯밤에도 몇 번이나 꾸벅 졸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쓰러지듯 잠들어버렸다.


아니면 혹시 무슨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하지만······ 단순히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감각이 마치 현실처럼 명백히 생생했다.


궁핍한 환경 때문에 한동안 구경조차 못했던 침대에서도 정말 오랜만에 자서 그런지 그 감촉이 몹시 낯설게 느껴졌다.


즉, 여긴 꿈이 아니라 현실 속 세계란 뜻이리라.


"하아······ 나, 요즘 들어 이상한 일을 많이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제 와서 그리 놀랄 것도 없다.


생각해보면 여태 살아오면서 이것보다도 역한 일들을 구역질이 치밀 정도로 많이 겪었으니까.


침착하게 굴러가는 사고로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몇 가지 선택지들을 도출해냈다.


'만약 정말로 납치였다면 신체를 구속시키거나 이동에 제약을 주는 게 일반적인데······.'


언뜻 보기에 범죄에는 거의 공통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는 법. 예외도 있었다.


범죄의 성질, 목적, 수법에 따라 방금 내가 말한 것처럼 유동적으로 달라지는 몇 가지가 그 예시였다.


어처구니 없는 한숨을 작게 내쉰 나는 어렴풋이나마 이곳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방 안을 둘러보았다.


결코 귀족들이 쓸 법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 아니었다.


가구 위에 부드러운 융단이 깔린 것도 아니었다.


결국 벽지나 바닥재로 보나, 곳곳에 설치된 가구들로 보나, 어딜 봐도 그저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방이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들만을 갖춘, 고급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낡지도 않은 그저 그런 방.


'······하아~ 어쩔 수 없지. 다른 방도 더 둘러봐야겠네. 이대로 밖에 못 나가는 건 곤란하니.'


또 다른 유용한 힌트가 될 만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내가 턱에 손을 짚고 일어나려고 한 그때였다.


"쿠울, 드르렁~ 쿠우우우울~."


왠지 익숙한 소리에 내가 딱딱한 얼굴로 시선을 천천히 아래로 내리자ㅡ.


아니나 다를까 그곳엔 글렌이 평소랑 다름없는 맥빠진 얼굴로 마치 쥐 죽은 듯 자고 있었다.


"꺄악?! 그, 글렌······?!"


"으음, 쿠울~ 음냐······."


······다행이다, 아무래도 못 들었나 보네.


조금 놀라서 큰 소리가 나왔는데 아직도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걸 보면.


다만, 말로 그래봤자 자세한 사정을 따질 여유 따윈 지금의 내게는 없었다.


그야 단지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뺨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혼란스러워진 머릿속이 순식간에 폭주하기 시작했으니까.


거의 얼어붙다시피 기계적인 목각음만 반복하던 심장이 마치 거짓말처럼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후후, 글렌은 지금 내가 바로 자신 옆에서 이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려나?


"······."


하지만 이대로 혼자만 의식한 모습도 마치 바보 같다고 생각해서 다시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글렌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평상시에는 그토록 차갑고 메말랐던 얼굴에 마치 마법이라도 건 것처럼 나도 모르게 웃음꽃이 잔뜩 피어난다.


뭐, 한껏 들뜬 기분은 아무래도 한동안 가라앉을 낌새가 절대 안 보이고······.


그, 그럼 이대로 단둘만 있는 방에서 글렌이 무방비하게 잠든 모습을 조금 더 감상해볼까······?


절대로 사심이 섞인 건 아니니까. ······응, 아마도, 그럴 것이다.


"분명 평소에도 글렌은 이런 식으로 자는 거겠지. 후훗, 정말이지, 몇 년이나 지나도 여전히 어린애 같다니까."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참지 못하고 흐뭇한 기분이 든 나머지 그만 쿡쿡 웃음이 터져나오고 말았다.


정말, 얼마나 피곤했으면 셔츠 단추는 제대로 잠구지도 않은 데다, 코까지 고는 거야?


그래서 더 사랑스럽지만.


"후우~ 조금은 날 더 의식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나 같은 미녀는 의외로 흔치 않다구, 글렌? 알고 있어, 응?"


자는 글렌의 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거나 검디 검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후후후······."


아아, 이대로 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내가 그런 망상에 가까운 생각에 빠져있는 순간ㅡ.


"으, 응······."


세상 편하게 자고 있던 글렌이 깨어났다.


하아, 역시 행복한 순간은 오래 가지 않는 법이구나. 나로선 조금 아쉽지만.


"어······ 아, 아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너, 넌 이브?! 네, 네가 왜 여기에······?!"


······아니, 그렇게까지 놀라면 아무리 나라도 좀 상처받거든?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아니, 잠깐······ 그보다 여긴 어디야?! 이상하다, 분명 방이었는데? 이브 넌 대체 왜 여기 있고······."


"하아······ 모르겠어. 나도 깨어났는데 여기지 뭐야. 한 번도 본 적 없는 곳인걸."


당황한 글렌의 목소리에 나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납치인가 설마."


"아니,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어설픈 초짜가 아니고서야 팔다리를 구속도 안 시키고 그냥 둘 리가 없잖아?"


"칫, 그럼 일단 밖으로 나가보는 수밖에 없나."


내 나름대로 상황을 종합하고 간추려서 추론한 사실들을 전해주자, 글렌은 지긋지긋하다는 듯 혀를 찼다.


"응, 그래야 할 것 같아. 무엇보다 이 방엔 부수고 나갈 수 있는 창문도 없는 모양이고."


그런 대화를 나눈 우리는 곧바로 주변을 경계하며 탐색을 개시했다.


만에 하나이긴 해도, 혹시나 범인이 방 밖에서 몰래 들키지 않도록 위장 잠복해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신체를 자유롭게 방치한 건 오히려 이쪽이 방심해서 함정에 빠지도록 유인한 걸 수도 있었다.


"내가 먼저 선두로 나갈게. 혹시 모르니 넌 뒤에 딱 붙어 있어. 절대 떨어지지 말고."


으, 이런 상황에서 그런 심장에 안 좋은 대사를 내뱉는 건 좀 반칙 아냐? 정작 남의 속도 모르면서······.


그렇게 속으로 독백하면서도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왼손으로 사전에 영창(스톡)해둔 흑마 【쇼크 볼트】를 준비했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간단한 비살상용 마술인 데다, 아직 배우는 학생들도 배울 수 있는 기초 마술에 불과하다.


하지만 위력을 조절해가면서 사용할 경우, 의외로 여러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틀림없이 지금만큼 유용한 순간은 없으리라.


일단은 【감지 마술】로 적이 이 집에 없는 걸 확인했어도 혹시 몰랐다.


적도 우리랑 같은 타입의 마술사일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말이다.


덜컹!


"뭐, 뭐야 진짜 아무도 없잖아?"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긴 했지만 김 빠지게도 예상대로 범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응?"


주변의 경계를 늦추지 않고 집 안을 샅샅이 조사해가면서 탐색을 재개했다.


하지만 이윽고 테이블 위에서 어딘지 모르게 수상쩍은 종이를 발견했다.


아무런 글자도 적히지 않은, 말 그대로 순수하게 새하얀 종이였다.


"잠깐만, 글렌. 이리 와 봐. 뭔가가 있어, 여기에."


"······응?"


주방을 꼼꼼하게 살피던 글렌이 내 쪽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자, 잠깐. 이거 진짜로 위험한 거 아냐? 거, 거리가 너무 가깝······ 에헤헤, 뭐 이것도 나름대로······.


"아, 이건······ 그렇군. 뭔가 수작을 부려놓은 모양이구만. 참 나, 이런 뻔한 수를 쓰다니······."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한 글렌이 【토치 라이트】로 손가락에 작은 불꽃을 깃들었다.


그리고 단지 공간을 밝히기 위해 사용되는 하찮은 불꽃으로 종이를 비스듬히 기울이더니 표면만 살짝 그을렸다.


"······봐봐, 종이에 마력을 흘려서 글씨가 안 보이게끔 했어. 구닥다리 방식이지만 나름······ 어, 어라······?"


그러자 불빛에 반응해 글씨가 서서히 표면에 나타났지만······.


"······아니, 분명 잘못 본 거겠지. 그럴 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글렌은 깜박인 눈을 손으로 비비더니 다시 그 종이를 똑바로 응시했다.


"으음~ 저기, 이브······? 이 글씨 좀 읽어줄래? 눈이 좀 이상한걸? 혹시 벌써 노안이······ 하하."


"······어, 자, 잠깐······ 그, 그게······."


건네받은 종이 위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다.


"세, 세······."


읽으면서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서 최대한 발음이 안 이어지도록 띄엄띄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어, 어쩔 수 없잖아?! 난 이래봬도 귀족······인데! 이, 이런······.


"섹······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이라는데?"


"······."


"······."


그 순간, 글렌과 나 사이에는 어둠처럼 짙고 고요한 정적이 내리앉았다.


"······어, 아~ 음. 그게······ 죄송합니다. 역시 못 하겠군요. 전 이만······."


"······."


하지만 글렌이 결국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달아나려는 걸 나는 손가락으로 그의 소매만 살포시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봐? 이, 이브······? 너 왜······."


"명령이야······ 거기 멈춰. ······잠시 나랑 어울려줘야겠어. 당신······."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솔직히 조금은 밉지만.


언젠가 그에게도 솔직해질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아, 아니 너 지금 제정신이야?! 여기 적혀있는 의미는 어린애가 아닌 이상 너도ㅡ."


"상관없어. 그래도 상관없단 말야······.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 정말?"


기어들어갈 법한 목소리를 간신히 쥐어짜내 말했다.


"······."


"귀, 귀족인 나한테 그런······ 상스러운 글자를 읽게 한 건 당신이거든? 그러니까······."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게 하겠다는 듯 나는 그의 허리를 두 손으로 껴안았다.


어딘가 편안하면서도 두근거리는 체취가 코 끝을 스친다.


왜 이렇게 반할 포인트가 많은 거야 당신은? 이럼 마치 들이대는 내가 바보 같잖아······.


"야, 잠깐? 이, 이브······?"


진짜, 모처럼 내가 당신을 있는 힘껏 껴안고 있는데 고작 내놓은 첫마디가 겨우 그거야?


더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그를 휘감은 팔에 힘을 한 층 더 실어 꼬옥 껴안아주었다.


그의 등에 내 가슴의 감촉이 생생하게 전해지리라.


이로써 이제 글렌에게 더 이상 도망갈 수단은 없겠지, 응.


그래, 한 순간 까먹고 있었어. 까맣게 잊고 말았어.


진작에 나는 이 남자의 다정함에 반했다는 걸······.


그래서.


이번만큼은 솔직하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이런 나라도······ 당신을 좋아해도 될까? 쭉 곁에 있어도 될까? 그게 아니면······ 난······."


그럼에도 밀려오는 죄책감에 내가 미처 뒷말을 이을 수 없어진 순간ㅡ.


꼬옥!


글렌은 아무 말 없이 나를 품 속에 가득 껴안았다.


"······그, 글렌······."


"제멋대로 말하기나 하고. 그런 거 알까 보냐. 네 마음 가는대로 해. ······대신."


그리고 내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로 숨을 불어넣듯 속삭였다.


"······난 의외로 과격하니까 그 점은 명심해. 지금까지의 한을 전부 되갚아주마. 알겠냐?"


"응······♥"


얼굴이 잔뜩 새빨개진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글렌이 이끄는 대로 침실로 끌려가고 말았다.



추신 : 두 번째로 1인칭 시도해봤는데 볼만 하셨다면 다행이겠군요. 빠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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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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