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4 vs d4는 체갤의 만년 떡밥 중 하나임. c4나 nf3같은 수와는 달리, d4와 e4는 트랜스포징 자체가 없는 별도의 생태계를 구축했고, 그 덕분에 첫수로 인해 체스의 게임 양상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특성 탓에, e4와 d4 유저는 서로 치고받을 수 밖에 없는 태생적 운명을 가지고 있지. "테스트 해본 결과 e4가 제일 좋다"라는 바비피셔의 말 처럼, 과연 e4가 d4에 비해 우월한걸까? 이걸 알아보기 위해, 심해부터 천상계까지의 e4와 d4의 승률과 난이도를 알아봄. 이번 내용은 생각보다 꽤 길어서 귀찮은 사람은 그냥 세줄요약만 봐도 무방함.

1. 승률

1) 일반 유저들의 승률

리체스의 오프닝 탐색기에 들어가면 첫수 승률과 플레이횟수를 볼 수 있어. 여기서 데이터베이스를 마스터로 하면 FIDE 2200 이상 플레이어들의 통계를 볼 수 있고, 데이터베이스를 lichess로 바꾸면 일반 리체스 유저들의 오프닝 데이터베이스를 볼 수 있어. 그리고 여기서 레이팅 평균을 지정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저레이팅과 고레이팅의 e4 d4 픽률과 승률을 확인해볼수 있음.

보면 알겠지만.레이팅이 낮을 때는 e4의 승률이 d4보다 낮고, e4 유저가 압도적이지만 레이팅이 올라갈 수록 d4 유저들이 늘어나고, e4 승률이 늘어남. 2500대에서는 야예 래피드와 클래시컬에서 e4승률이 d4승률보다 더 좋은 걸 알 수 있어. 이유는 아마도 다들 예상하듯이 초보들은 e4 오프닝을 먼저 배우는 편이고, 상대적으로 d4 유저가 적다보니 d4 대처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오프닝에서부터 게임이 터지는 경우가 많아서일거야. 나도 저레이팅일때는 퀸즈 갬빗 상대로 꽁폰인 줄 알고 무조건 먹었거든. 하지만 레이팅이 올라갈수록 e4의 승률이 올라감. 아마 이 이유는 내 추측이지만 밑에 난이도 부분에서도 나오듯이 e4의 이론양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이론이 약한 저레이팅에서는 승률이 낮지만 이론이 강해지는 고레이팅 때 승률이 올라가는 게 아닐까 싶음. 물론 이건 내 뇌피셜이고 반박시 니말이 맞음.

2) 상위권의 승률

아마추어 레벨에서, 레이팅이 올라갈수록 d4보다 e4가 승률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그럼 과연 이러한 추세가 프로급 레벨에서도 적용이 될까? 이를 위해 일단은 체스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는 유명한 사이트 몇 개에서 첫 두 수의 픽률과 승률 차이를 확인해봄.

유명 사이트의 체스 데이터베이스 통계야. elo 레이팅 범위나 수집한 기간 등으로 인해 픽률과 승률이 좀 들쭉날쭉하지만 일관되게 유지되는 게 하나가 있지. 바로 d4가 e4보다 승률이 높다는 사실임. 그럼 이걸 토대로 상위권에서는 d4가 e4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이에 관해서 무려 경제학 교수님께서 연구한 자료가 있음. 1.e4 – "Best by Test"? (Part 1) | ChessBase, 1.e4 – "Best by Test"? (Part 2) | ChessBase 자료가 궁금한 사람은 여기로 들어가서 확인해보도록 하셈. 간단히 요약하자면, 상위권 레벨에서 D4가 승률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자기보다 레이팅이 낮은 상대일 때 D4를 선택하고 자기보다 레이팅이 높은 상대일 때 E4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음. 그래서 D4가 승률이 높은 이유는 D4가 우월해서가 아닌, D4로 시작하는 게임이 애초부터 백이 유리한 게임인 경우(백이 레이팅이 높은 경우)가 많아서임. 그래서 이러한 값을 보정한 뒤(솔직히 여기 부분은 ㅈㄴ 어렵고 뭔소린지 몰라서 나도 해석하는 걸 포기했음. 혹시 통계잘알이 있으면 댓글로 저 가중치를 어떤 식으로 보정했는지 설명좀 해주셈)결과를 냈을 때, e4가 0.2% 정도 D4에 비해 승률이 좋다고 볼 수 있음. 다시 말해 일반 GM레벨에서는 e4가 상대적으로 d4에비해 우월하다고 볼 수 있음. 다만 이 글은 2014년도 때의 글이고, 2021년 현재도 과연 이럴지는 알 수 없지. 하지만 난 저 계산 방식을 2021년 데이터베이스로 다시 해보기는 커녕 이해조차 못한 상태이고, 저것보다 더 좋은 최신의 분석 자료도 없는 거 같아서 그냥 저 자료를 인용함.

3) 슈퍼GM의 승률

다만 저 사이트에서 조사안한 게 있어. 바로 아웃라이어라고 정의한 레이팅 2700+대의 슈퍼GM들이지. 그렇다면 이들의 승률은 어떨까? 근데 사실 이건 별 의미가 없음. 왜냐하면 슈퍼 GM들은 선호하는 수가 다 다르고 자기가 잘 쓰는 능숙한 오프닝들도 다 다름. 덕분에 우리가 아는 슈퍼GM들에게서 일관적으로 나오는 승률 데이터 따윈 존재하지 않음. (웨슬리 소나 MVL, 네폼니아치는 d4보다 e4가 픽률, 승률 둘 다 높고, 두보프와 딩 리런은 d4가 픽률은 높지만 e4가 승률이 높고, 칼슨과 피로우자는 e4가 픽률이 높지만 d4가 승률이 더 높음)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체붕이들을 위해, 현재 체스 슈퍼GM top 20의 e4 d4 승률과 픽률을 조사해봄.

의외로 최상위권에서도 e4가 많이 쓰이는 걸 볼 수 있어. 승률 역시 왔다갔다를 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잘 보면 알겠지만 e4 d4 중에 픽률이 낮으면 승률이 높은 경향이 있음.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 이유는 자신의 주력 오프닝은 상대방에게 오프닝 프렙의 기회를 주기 때문에 가끔씩 허를 찌르는 픽으로 상대방을 무너트리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음. 결국 슈퍼 GM 레벨에서 e4와 d4는 취향차이 정도로 볼 수 있겠네.

4) 엔진 승률

지금까지 우리는 일반 유저, 프로급 레벨에 이어 인간계 정점을 찍은 슈퍼GM들의 승률을 확인해봤음. 하지만 그렇다면 인간계를 넘어선, 천상계에서의 e4 vs d4 승률은 어떨까? 스톡피쉬, 알파제로, 릴라제로의 첫 수 선호도를 확인해봄. 먼저 알파 제로의 첫 수 선호는 1712.01815.pdf (arxiv.org) 이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논문의 6쪽에서 12개의 그래프가 나오는데, 그래프가 의미하는 바는 훈련 시간에 따른 알파 제로의 오프닝 선택 비율임. 여기서 e4의 대표격으로 볼 수 있는 루이로페즈는 훈련 시작 6시간이 지나자 꽤 많은 빈도수를 보여줬는데 정작 7시간 뒤에는 급격하게 비율이 줄어들음. 반면 d4의 대표격인 퀸즈 갬빗의 경우 꾸준히 비율이 증가하면서 알파 제로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오프닝 중 하나가 되었지. 흥미롭게도, 알파제로는 c4의 가치를 되게 높게 평가하는 걸 볼 수 있음. e4는 물론이고 d4보다도 고평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실제로 알파제로가 스톡피시와 싸울 때 가장 승률이 좋은 오프닝은 잉글리시 오프닝이었음.

릴라제로는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릴라제로의 오프닝 초이스는 Opening Choice by Leela - Chess Forums - Chess.com 여기서 확인할 수 있어. 사실 출처도 제대로 안 남기고 사진만 덜렁 남긴 저 걸 믿어야하나 말아햐나 고민을 많이 하긴 했는데, 릴라제로가 D4를 선호한다는 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으니 굳이 다시 검증하지는 않겠음. 마지막으로 스톡피쉬는? 아쉽게도 이거에 대한 정보 찾아서 인터넷을 다 뒤졌는데도 공신력 있는 답변을 찾긴 힘들었음. 일단 엔진의 픽은 D4인걸로 생각하자.

2. 난이도

이제 심해부터 천상계까지의 e4와 d4의 승률을 보았으니 난이도를 한번 살펴보려고 해. e4 vs d4 난이도는 어떨까? 오프닝에서 난이도는 여러가지가 있겠지. 바리에이션의 종류, 포지션의 복잡함 정도, 트리키한 함정 유무등. 다만 이 모든 것을 분석하기는 힘들테니 우리는 일단 바리에이션의 종류만 보려고 해. 과연 e4 vs d4 둘 중 뭐가 더 바리에이션이 많을까?

이건 Chess Archaeology - Library: Openings 에서 나온 ECO 인덱스들을 노가다로 정리한 표임. 보면 알겠지만, e4가 d4보다 훨씬 더 바리에이션이 많은 걸 알 수 있음. 그럼 e4가 더 어려운 거 아닌가요?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여기서 함정이 있음. 왜냐하면 'e4' 자체는 d4보다 바리에이션이 많지만, e4오프닝의 종류보다 d4 오프닝의 종류가 훨씬 더 많다는 걸 고려해야함. 너가 e4를 둔다면, 비엔나 게임, 이탈리아 게임, 루이로페즈, 스코치 게임 등 다양한 오프닝을 염두에 두고 플레이할 수 있음. 반면 D4의 경우에는 유효한 욥션이 퀸즈 갬빗 정도를 제외하면 전무한 걸 볼 수 있음. 자 그럼 너가 초보자 레벨에서 오프닝을 선택할 때 e4 오프닝이 좋을까 d4 오프닝이 좋을까? 답은 간단함. 무조건 e4임. 이탈리안 게임이나 스코치 게임 같은 경우는 바리에이션도 적고, 백이 선택해서 들어간다는 장점이 있음. 반면 퀸즈 갬빗같은 경우에는? 이미 너가 c4를 두는 순간부터 QGA, QGD, slav 3개로 나뉘어지고, 그 중 QGD는 시실리안과 루이로페즈 다음으로 이론양이 많은 오프닝임. 물론 런던 시스템이라는, 바리에이션이 적고 꽤 괜찮은 오프닝도 있지. 하지만 이건 닫힌 포지션에서 게임을 하는 거고, 오픈 게임과는 다른 감각을 요구함.

그러면 E4가 D4보다 쉽냐? 또 그건 아님. 왜냐하면 e4의 끝판왕인 루이 로페즈의 경우 이론양이 방대한 걸 볼 수 있는데 거기에 시실리안이라는 이론 끝판왕까지 공부해야함. 그렇다고 루이 로페즈와 시실리안이 조용하고 단조로운 게임이냐? 또 그것도 아님. 게다가 카로칸이나 프렌치 같은 오프닝들 역시 생각보다 이론이 방대한 걸 알 수 있음. 사실상 e4야말로 체스계의 "easy to learn, hard to master"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음.

자 그럼 이제 어느정도 난이도를 알 수 있을 거임. 초보자 레벨에서, d4보다는 e4가 쉽다는 걸 알 수 있음. 왜냐? d4는 런던 시스템 아니면 퀸즈 갬빗을 써야 하는 반면 e4는 선택지가 크게 4가진데, 스코치 게임, 이탈리안 게임, 루이 로페즈, 포나이츠 게임임. 루이 로페즈야 퀸즈 갬빗 급의 미친 난이도를 자랑하니 배제한다면, 3개 다 크게 건전하지 않은 오프닝도 아니고, 비숍의 빠른 전개와 그로인한 빠른 캐슬링으로 기물활동성이 보장이 되며, 라인이 복잡하고 바리에이션이 많지도 않음. 결국 자기 주력 오프닝 라인을 잘 아는 게 초보 레벨 오프닝의 핵심인데 그점에서 e4가 넘사벽임. 당연히 입문자들은 e4를 좋아할 수 밖에 없음.

그렇다면 e4가 d4에 비해 쉽냐? 그건 아님. 일단 첫째, 루이 로페즈와 시실리안 디펜스의 이론양이 넘사임(표 보면 알겠지만 루이로페즈 + 기타 디펜스 + 페트로프 + 필리도어의 이론양이 D4 이론양 전체보다 더 많음). 둘째, e4는 날카로운 포지션으로 가기 쉽기 때문에 최상위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밀릴 때 무승부 유도 전술을 잘 하기가 어려움(통계를 보면 e4가 d4보다 승률은 낮지만 대신 무승부율 역시 낮음) 셋째, 현재 엔진과 최상위권에서 평가하는 루이로페즈의 대표적 카운터 베를린디펜스를 깨기 위해선 압도적인 엔딩 실력이 있어야함. 결국 e4를 마스터한다는 것은 오프닝, 미들게임. 엔드게임 모두를 잘 해야한다는 것과 같은 말임. 물론 바리에이션의 유무로 난이도를 따지는 건 사실 거의 무의미하지만(표에서는 카탈란 오프닝이 바리에이션이 지우코 피아노와 같은 22개인데 그렇다고 카탈란 난이도가 지우코 피아노와 비슷하다고 볼 순 없음) 이론의 방대함을 대략적으로 확인해본 다는 것에서 의의를 둠.

세줄요약

1. 내 실력이 낮을수록 d4, 높을수록 e4가 좀 더 좋다. 다만 최상위권에선 그냥 취향차이이다.

2. 난이도로 봤을 때는 입문은 e4가 더 쉽지만, 마스터하기는 d4가 더 쉽다.

3. 엔진은 d4가 젤 좋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너랑은 상관이 없다.

참고자료

분석 • lichess.org

https://en.chessbase.com/post/1-e4-best-by-test-part-1

https://en.chessbase.com/post/1-e4-best-by-test-part-2

Opening Choice by Leela - Chess Forums - Chess.com

Chess Archaeology - Library: Openings

1712.01815.pdf (arxiv.org)

Chess Opening Explorer - 365Ch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