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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깜깜문학] 유쾌하지 못한 네 명 - 2 -

Prome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4.10 02:39:42
조회 1612 추천 8 댓글 13
														



1편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darkest&no=1946&page=2


천둥이 치는 듯한 외침이었다.

레이널즈에게 있어 이번 수색은 어떻게든 완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특수한 상황 하에서, 특정한 이들의 허가를 받아야만 비로소 펼칠 수 있는 깃발마저 꺼내들었다. 전시라면 이 단독행동 하나만으로도 온갖 복잡한 서약을 어긴 셈이나 지금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그래. 그 말대로다. 서약이 무슨 대수인가?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은 성물.

이른바 기사단의 것.

세상의 모든 성물은 기사단의 지하에 잠들어있어야만 한다.

더군다나 폐허에 흩어져있는 성물들은 하나같이 과거 영지의 재력을 가늠케 할 만한 지고의 보물들이었고 이번 수색으로 찾아낸 성물 또한 살아있는 성자의 삼위를 으스러뜨리고 눌러담은 진품의 강제유언[holy scream]이었다. 과거 한 때, 파벌마다 경쟁하듯 성자사냥에 열중하던 시대에 성자는 들판에서, 교각 아래에서 그 신성함을 만천하에 드러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뛰어난 제조 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장미십자회가 남긴 영원히 아름다운 잔인함.

살아있는 고다이바 여인.

레이널즈는 죽은 가주의 안목에 혀를 찼다. 가주는 무엇을 이루려고 하였는가, 그것은 알 도리는 없으나 이 시점에서 단 하나는 확실했다.

성물을, 가지고, 돌아간다.

생리적으로 혐오감을 주는 해괴한 미의식이라 할지라도 성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전해지는 열의는 메마른 폭풍과도 같아 주니아와 킬디는 잠깐 몸을 떨었다. 파티 내에서 전투원들 사이에 온도 차이가 나는 경우는 흔하게 있지만 이래서야 퇴각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심판당할 것 같았다.

"...그래... 일어나... 그래야지..."

낮고 작은 목소리로 디스마스가 대답했다. 여전히 바닥에 바짝 엎드려 꾸물거리고 있었지만 간신히 대답할 수 있을 만큼은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흥, 내 말은 들은 척도 안하더니."

킬디가 전방과 대치하며 한 쪽 손만을 뒤로 뻗었다.

"동성애가 점점 심해져서..."

"......."

으스스한 농담에 킬디의 전의는 한층 낮아졌다.

"시체도둑... 손 빼지 말고 이리 줘 봐. 아직 혼자서는 일어...."

그 때, 레이널드가 킬디의 목을 노려 힘껏 대검을 휘둘러다. 둔탁한 소리가 좁은 통로에 퍼져나갔다. 잠잠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저기... 참수 기사님... 사교계 물을 먹어본 결과 눈에 보이는 질투는 마이너스 요인이..."

디스마스를 껴안듯 쓰러진 킬디 위로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몇 올 떨어졌다. 허공에서는 레이널드의 검이 거대한 도끼와 힘싸움을 하며 듣기 싫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재미없다! 재미-없다! 재미가 없단 말이다! 디스마스여, 일어나라. 그렇지 않으면 밟고 지나가겠다!"

코끼리가 끄는 마차가 지나가는듯한 소리를 내며 레이널즈가 전진했다. 킬디는 아직 팔다리를 가누지 못하는 디스마스의 목덜미를 붙잡고 깃발이 세워져있는 뒷자리로 이탈했다. 이제 전열은 기사 하나, 겁쟁이 둘, 자원봉사자 하나라는 이상적인 구도가 되었다.

레이널즈는 밀리는 일 없이 침착하게 공격에 맞섰다. 그 동안 킬디와 주니아가 디스마스를 일으켜 세웠으나 누군가 부축을 하지 않으면 서있지도 못할 만큼 디스마스는 약해져있었다.

할 수 있는건 듣고 말하는 것 정도인가?

킬디의 눈에 디스마스는 이제 틀려먹은 것 같았다.

"주니아, 이거 아까부터 왜 이래? 이 딱딱한 머리가 문제인가? 고칠 수 있어?"

주니아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아마...."

업보.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신녀의 눈에는 디스마스가 업보에 짓눌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역시 그런가."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킬디는 뒤를 돌아보았다. 일부러 거리를 둔 채 싸워주고 있는 레이널즈는 성스러운 스크롤으로 해골들을 야단치거나 그게 안먹히면 냅다 빛의 창을 쏘거나 철퇴에 맞으면 스스로를 치유해가며 그야말로 요란벅적하게 싸워나가고 있었다.

"이야... 폐허에만 오면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구만 저건..."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지나치게 강했다.

"돌대가리 좀 부탁할게. 좀 냄새가 나더라도 참아."

주니아에게 디스마스를 맡긴 킬디는 허리에 찬 수많은 단검을 양손 가득 꺼내들었다. 빛이 있다. 그렇다면 던지면 반드시 맞힌다. 레이널즈에 비할 수는 없지만 여력도 충분했다. 깡패 하나 없다한들 여기서 무덤을 팔 생각은 없다.

"해골들! 누가 먼저 눈구멍이 뚫릴래?"

킬디는 철과 철이 부딪히는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그만 둬... 병신취급... 하기냐..."

디스마스 본인도 지금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마녀년이 어떤 수작은 부린지는 모르지만 징후는 명확했다. 태어난 이후로 좋은 일이 그다지 많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온갖 안좋은 일들만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쏘고, 마차를 열고, 베고, 짐을 풀고, 쏘고, 마차를 열고...

그럼에도 디스마스는 잔뼈가 굵은 악당이었고, 그런 나쁜 기억과 더 나쁜 기억[직업적 단점]이 두개골 밑에서 불을 지르며 설친다한들 해야 할 일을 포기해버리는 말랑한 감수성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주니아의 어깨에 팔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은 한 손 뿐이었다. 디스마스는 이로 총알을 물고서 천천히, 조급해하지 않고 권총을 장전했다. 디스마스에게 권총은 몸의 일부와도 같았고 손이 조금 떨린다고 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아직... 할... 수..."

권총을 이교도 마녀에게 겨눈 그 때,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던 악몽이 그를 덮쳤다.


으응..........?  

너도 알 때가 되었나...? 

그 일도 오래...... 네 어미는........ 마차를 타고 가던 중에...... 지독한 놈들이었단다....... 그래도 너를........  얼마나 세게 끌어안고...... 죽었지만........ 여드레나 되고도..... 지켰단다....... 너를 품속에....... 풀 수가......  팔을...... 할 수 없이....... 지금 네가 있는..... 힘 아니겠니?

자랑스러워하렴!


베고, 짐짝을 풀고.

쏘고, 마차를 열고.


여드레나. 그 일도 오래됬지. 그러니까 지금 네가. 마차란다. 어머니의 힘 아니겠니? 너도 알 때가 되었니? 그녀는 죽었지만. 그 일도 오래됬지. 지독한 놈들이었어. 풀 수가 없었단다. 자랑스러운 어머니지. 으응. 그 일도 오래됬지. 너를 안고. 여드레나 되고도. 그 일도 오래. 그게 어머니 아니겠니? 결국 팔을. 스템던 행 마차에. 상상이 되니? 죽었지만. 여드레란다. 그 품에.


그 일도 오래됬지.

풀 수가 없었단다.

너희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렴.


베고, 짐짝을 풀고.

쏘고, 마차를 열고.


"...야, 비켜."

갈라진 목소리. 멀찍이 싸우고 있는 레이널드를 치유하던 주니아는 디스마스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디스마스는 다른 누군가에게 말을 걸만큼의 여유도 없어보였다.

"거기서 안비켜?"

퀭한 표정으로 디스마스가 중얼거렸다. 권총을 흔들어 휘휘 비키라는 행동을 취하더니 다시 혼자 중얼거리지 시작했다.

"하... 하하하하... 그래, 그런가. 너도 애 엄마다 이거야?"

힘없이 다른 방향으로 권총을 향해보았으나 안색만 뚜렷하게 나빠질 뿐이었다.

"...이봐. 쫓아올 셈이냐? 따라붙어서? 너도 알다시피 그건 사고였어. 정상에서 돌을 던졌는데 사람이 죽은거나 다름없잖아. 내가 알고도 그랬을 것 같아? 내 앞에 선다고 내가 신경이라도 같아?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쏘지 못할 것 같아?"

디스마스는 공황에 빠져있었다. 주니아는 디스마스에게 무언가 말해주려 했으나 지금은 레이널즈와 킬디를 돕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고, 성서를 다시 펼쳤다.




킬디의 예상대로 디스마스 없이 전투는 마무리되었다.

힘겨웠냐고 한다면, 죽도록 아픈 꼴을 몇 번이나 당해야했지만 이교도 마녀 하나와 해골 둘을 뼛가루와 다진 고기로 만들 수 있었다. 전투의 끝, 일어설 힘도 없는 세 명은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한편 레이널즈는 그것들의 머리를 쳐 내기 위해 여분의 힘과 수고를 들이고 있었다.

"하여간 부지런하다니까..."

참수 기사님이다.

"흠, 힘겨웠던만큼 성스러운 전투였다. 전리품의 나의 것이다."

"아, 안가져 안가져."

레이널즈가 시체를 뒤지는 것을 보고 킬디는 손사래를 쳤다. 그녀가 알기로 참수 기사님은 던전에서 전리품을 챙기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인간적인 행위였고 그의 수두룩한 강박증 중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하는 것이었다. 저런 흠이라도 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어울릴 수 없는 인종이다.

"누가 시체도둑인지..."

이교도의 품 속에서 유리 구슬 비슷한 것을 찾아낸 레이널즈는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가만히 쳐다보았다. 킬디 옆에서는 주니아가 디스마스를 보살피고는 있었지만 디스마스는 상태는 계속해서 나빠지기만했다. 저대로는 마을로 돌아가서 한 동안, 혹은 평생동안 요양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이래저래 다들 바빠보이네. 킬디는 사양하지 않고 전투 후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너무 꽉 닫힌 코담배갑을 열기 위해 이런 저런 자세를 취하는데 '그 소리'가 들려왔다.

끼기기기기기기긱.

끼이이이이기긱.

기기기기긱.

"뭐야 이 소리?"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킬디는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길 기대하며 아직 어두운 복도에 시선을 집중했다.

깃발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빛. 길을 가리키기 위해 존재하는 광명.

달리 말하자면 빛은 누구에게나 길이 될 수 있다.

얄궂게도 유일하게 어둠이 걷힌 이 곳에, 간신히 끝난 전투의 열기가 식지 않은 이 곳을 향해 거대하고도 거대한 형체가 다가오고 있었다. 유난히 좁은 폐허의 복도에 몸통이 꽉 끼인 채로 엉금엉금 기어오고 있었다. 거체는 긴 양팔을 두더지처럼 둘러 벽에 끔찍한 손톱자국을 내가며 천천히, 하지만 한 번 움직일 때 마다 엄청난 거리를 전진해오고 있었다.

무덤도굴꾼은 음식이 역류하는 간신히 참아냈다.

"아...아..."

구울이다...

무덤도굴꾼들의 영원한 악몽. 아직 애벌레 티를 벗지 못했을 적에 그녀 또한 대형 구울과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 억제해보려 했으나 달그락 소리를 내며 공포와 기억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 때는 한 쪽 가슴과 손가락 두 개로 불운에 대한 벌금을 치를 수 있었지만 다른 동료들은 그러지 못했다. 길고 거친 손톱에 순서대로 꿰인 두 명은 즉사하고 말았다. 킬디가 그들보다 실력이 좋아서 살아남았던 것이 아니다. 그들이 킬디보다 무능했던 것이 아니다. 단지, 운이었다. 그 때 전열에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두 명은 구울의 먹이가 되었고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고칠 수 없는 실어증에 걸렸다. 그녀는 주니아를 쳐다보았다.

주니아 또한 이가 부딪치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어째서 이 순간인가?

한 명은 전력 외의 짐짝이고 전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전원 지친 상태다. 전부 괜찮은 척을 하고 있을 뿐, 방금 전투는 말하자면 한 쪽 팔이 없는 채로 싸워서 이긴 것이다. 막 꿰매놓은 자신의 옷 안쪽처럼, 저 찌그러진 갑옷 안쪽도 괜찮을 리가 없다. 그 말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일도 힘겹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운이 없을 수가 있지? 싸움이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찢긴다. 다시 찢기게 된다. 그들처럼. 아니, 이번에는 저 손아귀에 붙들려서...

아.

아아.

지독하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희망이 없다.[Hopeless]

킬디는 손에서 코담배갑을 떨어뜨렸다. 꽉 닫힌 코담배갑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바람이 불어왔다.




한 가지.

영원히 이기기만하는 경주마가 없듯, 영원히 이어지는 영웅담도 없다.

모험을 하는 이상 언젠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잇따른 불행과 심원한 악의로 인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그들은 앞에서부터 뜨거운 바람을 불어오는 것을 느낀다.

기분 탓이 아니다. 실제로 덥고 무거운 바람이 불어와 그들을 통과해서 지나간다. 그게 무엇인지, 어디서 어째서 불어오는지는 모른다. 정체는 알 수 없는 그것은 얼굴을 지나 등 뒤로 빠져나간다. 몰랐던 자신의 땀냄새를 느낄지도 모른다. 형태만큼은 바람의 형태를 하고 있으니까 머리카락이 뒤로 한 올 슥 지나갈지도 모른다. 더우니까 숨을 크게 들이 마쉴지도 모른다.

그 순간 인간은 생각한다.

재능이 허락하는 만큼의 준비. 가져갈 수 있는 최대한의 물자. 영혼을 혹사시키는 분투. 그럼에도 찾아온 커다란 위기. 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이길 수 있을까? 이번에도 살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인간은 깨달게 된다.

할 수 없다.

고작 몇 발자국 전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를 것 없었는데 지금은 목 바로 위까지 구더기 떼가 차올라 있는 것이다. 해치던 입장에서 저항하는 입장으로 추락한다. 너무하고도 너무한 현실.

그 때, 인간의 두뇌는 절망을 앓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절망한다.

생각하기 때문에 절망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구조물의 임계는 거기서부터 비롯된다.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나, 생각을 하는 탓에 여기서부터는 포기하게 된다.

그 다음은 온통 절망을 생각하느라 바쁜 두뇌가 평소대로 작동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세포를 동원한다.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죽음을 앞당긴다. 신을, 동료를, 운명을 믿기 때문에 아무리 고매한 영웅이라도 떼를 쓰듯이 살려달라며 조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거기에 논리와 이성은 없다.


"레이널즈! 내가 이번에는 폐허를 피하자고 했지? 피하자고 했을 텐데? 구울이잖아! 어쩐지 '느낌'이 안좋았단 말이야! 이대로 내가 죽으면 이것들이 영원히 나한테 들러붙을거 아냐!"

구울을 알아본 디스마스가 허둥지둥대며 일어서다 허리가 뒤로 꺾여 쓰러졌다.

그 누구의 입에서도 아아. 이제 죽게생겼네... 하는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위기를 뛰어넘은 직후의 최후라는 것은 그렇게 고상하지 않다. 약해질 만큼 약해진 자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죽음이란 언제 찾아와도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오고 이를 갈다가 어금니가 부러지는 일이다.

저 멀리서 해골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지된 세상에 침입한 해골은 그대로 주니아의 머리를 강타했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주니아는 쓰러졌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봐! 덤벼! 너도! 구울도!"

쓰러졌던 디스마스가 자다 깬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권총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명백히 착란 상태였다. 지금 그의 눈에는 어디를 쳐다봐도 두 명이 따라붙어있었다.

“하하하... 어째서... 하필 이럴 때 내 앞에... 그게 아니라면 당연한건가? 이제서야 나를 끌고가려고? 등신처럼 서있지만 말고 내 말에...!”

그 때 신녀, 주니아가 디스마스를 끌어안았다. 어느새 일어서서는 디스마스를 꼭 끌어안았다.

"뭐야! 너까지 들러붙어서는!"

"디스...마..., 갠... 갠차나..."

주니아의 머리에는 피가 흥건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똑바로 서 있었다.

"꺼져... 속편한 소리 하지 마... 여기서는 끝날 수 없어..."

"그... 그래도... 괜...찮잖아... 스...스... 스스로..."

신녀에게 죄를 사할 권한은 없다. 그러니 기도한다.

"원해서 망가지는 사람은 없으니까."

주니아는 똑바로 말을 할 수 없다. 도저히 고칠 수 없을 만큼의 실어증을 앓고 있다. 그러나 여기 있는 모두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 목소리는 분명히 모두의 귀에 닿았다.


킬디는 얼굴에서 손을 뗀 뒤 소녀처럼 무릎을 세우고 거기에 양 팔을 올린 뒤 얼굴을 반쯤 파묻었다. 이런 행동을 하기에는 적당한 나이였지만, 이런 행동을 해본지는 까마득하게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편지라도 써둘걸.

레이널즈는 들고 있던 대검을 내리고 벽에 등을 기댔다. 두터운 투구 안쪽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성기사는 빛이라도 비치길 기대하듯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구울은 이제 지척까지 다가왔다.


"진심이야?"

디스마스가 말했다.

신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녀는 강도를 안고 기도했다.

흐르는 피는 멈출 기색이 없었다.

말을 할 수 있던 없던,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죽.어.서.도. 그녀는 신녀였다. 그러니 그녀는 죽어서도 기도할 수 있다. 신에게 비는 것은 할 수 있다. 영혼을 끌어안는 것이 신의 역할이라면, 영혼을 신에게 데려다주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다. 그러니 그녀는 죽어가는 지금도 기도 할 수 있다.

그 순간에 남자가 무엇을 생각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시 대원칙에 대한 이야기. 신을, 동료를, 운명을 믿었다면 쉽게 생을 포기할 수 없다-.

죽음은 거기서부터 가속된다.

그러나.

또 다른 한 가지.

그러나.

인간의 임계를 넘어버리는 것.

그러나 그 어두컴컴한 절망마저 자신의 기량으로 삼아 먹어치운다면,

그것이야말로 영웅의 소질이며,

그러니, 틀림없이 영웅의 일면은 무언가가 어.긋.나.버.린 인간인 것이다.



침묵.

침묵이 강림한 폐허.

"지옥에 떨어져라..."

디스마스가 고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너도 그 젖먹이도, 죽었으면 얌전하게 지옥에나 가라."

디스마스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침묵을 찢었다.

"이제부터 일 년 내내 피칠갑을 해서 나를 따라다닌대도 아직은 따라갈 생각이 없으니까 먼저 가서 기다려. 언젠가는... 그렇군. 언젠가는 더는 물러설 곳이 없을 때가 오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아직 더 할 수 있어. 나야 지옥행으로는 일등 빠따지만 이것들까지 같이 둘둘 묶어서 너희한테 가줄 생각은 없다고. 그러니까 뒤졌으면 지옥불에나 타오르고 있어라! 여기서 뻘뻘 돌아다니지 말고!"

디스마스는 허공을 향해 플린트록 권총을 쐈다. 장전은 옛저녁에 되어있었다. 강도의 음울한 정신 속에서 하나가 쓰러졌다. 그리고 침착하게 장전하고는 한 발을 더, 쏘았다. 똑바로 조준했기 때문에 빗나갈 일은 없다. 하나가 더 쓰러졌다. 강도의 음울한 정신 속에서 무언가가 죽었다.

"그... 그런... 일... 필요...."

그것이 보이기라도 하는듯 주니아가 디스마스의 손을 꽉 잡았다.

이 남자는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기 위해 싸웠다. 육체의 고통이 차라리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다. 덜어내기 위한 싸움. 그러니 이 남자가 양심으로 인해 무너지는 것은 예정된 결말이었다. 허나 지금 남자 안에서 중요한 것이 어긋났다.

영웅의 소질?

영웅적인 기상?

무엇이라고 부르던 그것의 본질은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뒤틀리는 것이다. 그건 인간 존재 안쪽의 척추등뼈 역할을 하는 뼈대일 수도 있고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터져버린 영혼인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죽어야 할 순간. 시체가 될 미래. 턱과 손아귀 힘으로 자신의 운명을 강제로 비틀어 열어버리는 것이 바로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 정도 댓가는 치러내야 간신히 타산이 맞다.

"좋아. 이 느낌이야. 역시 머리에 총을 맞고도 사는 놈은 없지."

디스마스는 부드럽게 주니아의 손을 풀었다. 그 순간 주니아가 죽은 듯이 쓰러졌고 디스마스는 그녀를 조심히 받아 늬었다. 강인해보이는 손등에는 빨간 손바닥 자국이 꽉 찍혀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이다.

아직은 조금 더 할 수 있다.

콜튼 도로의 악마는 무덤도굴꾼에게 다가갔다.

"거기 시체도둑, 그 자세 마음에 드냐? 네가 무슨 부잣집 딸내미야? 안 돼. 대답하지 마. 네 유머 감각은 쓰레기야. 그냥 일어나."

킬디는 입을 삐죽거리고는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디스마스는 성의껏 듣는 대신 손을 내밀었다. 킬디는 당연히 그 손을 무시하고 일어나서 흙먼지를 털었다. 디스마스는 그늘 속에서 그 자세 그대로 커다란 손아귀를 몇 번 쥐었다 폈다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레이널즈는 어느새 채비를 갖추고 구울을 향해 서 있었다.

어쩌면 이 남자야말로 항상 죽을 각오가 되어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는 누구보다도 빠르다.

"자... 전부 집중해... 저건 그냥 못생긴 고깃덩어리야."

"네 그렇군요..."

킬디는 메모하는 척을 했다.

"깡패님, 작전은 있으신가요?"

"가까이 오기 전에 내가 양 쪽 눈을 처리한다. 자신 있어. 한 명은 목. 왼쪽에 붙은 식도 말고 오른쪽에 있는 숨구멍을 막아야해. 거인은 두 개가 따로 나 있으니까, 저 덩어리도 분명히 그렇겠지. 나머지 한 명은 손톱을 막아선다. 두 명 다 자신이 있어야 할 거야."

"숨구멍... 숨구멍... 오른쪽... 오른쪽...."

킬디가 중얼거리며 소매에서 마들렌을 꺼냈다.

"당연하지만 길게 끌면 안 돼. 집중해라. 전부 살아서 돌아간다."

"디스마스여, 그새 영웅이나 할 법한 대사가 썩 어울리게 되었군.”

레이널즈가 말했다.

"아아, 이분께서 영웅이면 나는 대주교다."

누가 들으랄것도 없이 킬디가 말했다.

구울의 망가진 폐가 끔찍한 소리를 내뱉었다. 세 명의 모험가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적에게 달려들었다.



- End -




[알게된 사실]

1. 기사단은 사실 무시무시한 곳.

2. 무덤도굴꾼의 이름은 킬디. 사라진 사교계의 여왕!

3. 주니아와 킬디는 롱 텀 듀엣.

4. 거인은 목구멍이 두 개.

5. 디스마스, 부활!



[다음화 예고]

언제나처럼 선술집에서 놀다가 주니아의 머리를 빼앗기고 온 주니아!

"주니아! 아빠가 분명 맞고 다닐바에야 때리고 다니라고 말 했을텐데!"

딸바보 강도, 도굴꾼, 기사는 장비를 챙겨 선술집으로 향한다!


흐어어억! 엄청난 힘이야!

페더급 어퍼컷 챔피언의 위치 이동 효과를 버틸 묘안이란?


그것은... 아직 암흑 속! 그것이... 깜깜스트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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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4 AD 현물 경품 획득 기회! 아키에이지 지역 점령전 업데이트 운영자 24/06/20 - -
2053 일반 기습보정 개장수와 함께라면 챔피언 수집가도 [1] 병신보면짖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13 193 0
2052 일반 다키스트던전 좋아하는데 질문좀 [1] ㅋㅋ(211.36) 16.04.13 143 0
2051 일반 튜토리얼에선 열쇠가 아예 안나오게 설정돼있는걸까? [3] ㄱㄹㅇㅂ(221.138) 16.04.13 190 0
2050 일반 다키스트 사망버프가 정확히 뭐임? [6] ㅇㅇ(1.237) 16.04.13 244 0
2049 일반 ㅅㅂ 수집가 개새끼 짱난다 [2] ㅇㅇ(183.103) 16.04.13 236 0
2048 일반 챔피언 언제부터 조져야되냐? [2] Plancar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13 190 0
2047 일반 콜렉터에게 털렸는데 어쩌면 좋음? [2] afs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13 97 0
2046 일반 인턴들 다 정규직 만드니까 돈이 안모인다 [2] Plancar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13 181 0
2045 정보 레드훅한테 답변이 왔네ㄷㄷ [2] ㅇㅇ(183.103) 16.04.13 1883 11
2044 일반 개인적 취향이 다분한 추천/선호 조합 [4] 병신보면짖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13 729 0
2043 일반 역마차에 마지막 업글 질문 [2] ㅇㅇ(183.103) 16.04.13 144 0
2042 일반 머스킷티어 모드 까니까 겜 실행이 안댐 물음표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12 377 0
2041 일반 지도랑 2랩 광대랑 바꿨다.. [1] ㅇㅇ(210.113) 16.04.12 180 0
2040 일반 개장수 회피탱도 은근 너프급으로 좋은거 같음 [1] 병신보면짖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12 687 0
2039 일반 조합 하나 추천해본다 ddr(116.127) 16.04.12 191 0
2038 일반 밑에 말한 조합 좀 괜찮은데? [6] Plancar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12 425 0
2037 일반 NG+를 하는 중인데 나에겐 영 맞지 않는 것 같다. [2] afs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12 240 0
2035 일반 그 한글패치중에 스트레스 잘보이게 하는 그거 구글드라이브 링크좀 써주랴. [2] 얀닌(211.220) 16.04.12 212 0
2034 일반 닼던 스팀 가격(할인) 변동 정보 [6] ㄱㄹㅇㅂ(221.138) 16.04.12 1528 0
2033 일반 1,2열 노상 고물상 쓸만함? [4] 얀닌(121.176) 16.04.12 183 0
2032 일반 머스킷티어 총 쏘는 타격감이 좀 아쉽다ㅠㅠ [5] ㅇㅇ(183.103) 16.04.12 747 0
2031 일반 키야 영웅적 기상 뜨니 선원들 보스전에서 최고네 [2] 얀닌(121.176) 16.04.12 23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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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일반 나병이는 강인함에 인장반지만 있으면 죽일려해도 힘들껄 [4] 파아란츄리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11 42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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