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산 자락 음악당이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지난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손열음(34)의 슈만 독주회를 앞두고, 관객들은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들뜬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출입문 사이로 손소독제 냄새와 여름꽃 향기가 섞여들었다.
원래라면 지난달 같은 장소에서 이미 열렸을 무대. 전 석 매진이었으나 바로 그 때문에 코로나 확산이 우려돼 취소됐다. 하루짜리 공연을 23·24일 두 날로 나눠 좌석의 절반인 1277석만 열었다.
지난 23일 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슈만을 연주하는 손열음. /크레디아
손열음은 프로그램 기획력에서 뛰어난 안목을 드러내는 연주자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하고 모차르트 협주곡 최고 연주상과 콩쿠르 위촉 작품 최고 연주상까지 거머쥐었다. 하지만 재즈와 현대음악으로도 스펙트럼을 확장해갔다.
이번엔 28세 슈만이 스승의 딸 클라라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감행하기까지, 짧지만 행복했던 1년간 잇달아 써낸 걸작들에 집중했다. 장식을 배제한 검은 드레스와 흰 드레스를 1·2부에 나눠 입고 등장한 그는 아라비아 넝쿨무늬를 음형으로 옮긴 '아라베스크'로 무대를 열었다. 리스트에게 헌정했지만 처음엔 클라라에게 주려고 했던 '환상곡 C장조', 클라라를 향한 사랑을 대놓고 드러낸 '크라이슬레리아나'까지 사랑과 열정으로 점철된 작품을 잇달아 연주했다.
마지막 '크라이슬레리아나'가 귀에 남았다.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곡으로 '크라이슬레리아나'라고 줄기차게 답해온 손열음은 곡 초반, 재게 움직이는 손끝에서 간간이 번쩍이는 불빛을 터뜨리며 슈만의 심연에 도사리고 있었을 광란의 파도를 그려냈다. 다만 이날 공연 전체에서 강렬하게 폭발하는 포르티시모(ff)의 파워는 조금 약했고, 피아노(p)로 숨죽인 그리움의 대비가 흐려진 듯해 아쉬웠다.
손열음 독주회는 앙코르만 열 곡 가까이 토해내는 '앙코르 파티'로 유명하다. 이번엔 코로나 탓에 절반으로 마무리했지만, 쇼팽과 리스트, 브람스에 이어 드뷔시의 '달빛'으로 마무리해 위로를 안겼다. 리스트의 '탄식'을 치기 전 그는 말했다. "탄식의 시간도 곧 지나갈 거고 다음에 만날 땐 더 강해져 있을 거니까 우린 괜찮을 거예요."
[김경은 기자 e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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