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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59.28) 2021.12.07 03:44:52
조회 26 추천 0 댓글 1

삶이 지루하다.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면, 매일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학원 벽시계 속 시곗바늘이 싫증 난다.

그날도 학원을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집 앞에 도착할 무렴,

허름한 시멘트 계단 사이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왜? 신고하려고?"

그녀는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네?"

당황한 나머지, 존댓말이 나와버렸다.

"장난이야 장난, 너도 한 입 해볼래?"

그녀는 피우던 담배 끝을 나에게 건넸다.

"안 펴요, 그런 거."

나는 괜히 엮이는 게 귀찮아서, 곧장 집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다.

지루한 학교를 끝마치고, 학원을 가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 또 만났네?"

그녀는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어제와 다른 점은, 담배 대신 껌 같은 걸 씹고 있었다.

"아 이거? 담배는 몸에 안 좋으니깐. 너도 한입 할래?"

그녀는 은단 껌을 나에게 건넸다.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건데요?"

그녀의 행동들이 이해가 안 되었기에, 나도 모르게 물어봤다.

"음? 왜 그런다니? 싫으면 먹지 말던가."

".. 아 참! 맞다, 너 다시 만나면 같이 가려던 곳이 있었는데."

그녀는 내 손목을 붙잡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물론 손을 뿌리칠 수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냥 함께 달렸다.

이유는 없었다. 아마 그날은 학원에 가기 싫었던 것 같다.

힘들게 도착한 곳에는 수명이 오래되어, 나뭇가지만 남겨진 목련이

홀로 서있었다.

"어때?"

"다 죽어가는 나무밖에 없는데요."

"그래도, 끈질기게 살아있잖아."

그녀가 처음으로 웃었다. 따뜻한 노을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나 있잖아, 담배 너 때문에 끊은 거야."

"네? 왜요?"

"껌은 같이 먹어도 괜찮을 거 같아서."

그녀는 은단 껌을 다시 내게 건넸고, 나는 껌을 입안에 넣었다.

껌을 씹을 때마다 코와 기도가 시려웠지만,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그날은 밤이 될 때까지 목련 앞에서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날 이후, 나와 그녀는 매일 허름한 시멘트 계단에서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나 혼자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와 처음 만났던 가을을 지나, 추운 겨울이 되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 그녀를 다시 보게 된 건 대학병원 장례식장이었다.

사실 그녀는 심장에 종양이 자라는 희귀암을 앓고 있던 상태였고,

힘든 투병 끝에 병원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향 뒤로 보이는 영정사진 속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면서, 습관적으로 은단 껌을 씹었다.

껌을 씹을 때마다 코와 기도가 시려서 버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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