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오른팔, 하시미르 펜링 백작(글 김)

우평삭 · 2024.05.23 12:42:42

왜인지 뒤로 갈수록 개인적인 해석이 늘어나는 것 같지만 어쩌겠어요 스파이스 금단증상이 이렇게나 무서운 걸.

스파이스를 제때 섭취합시다.

영화판에서는 비록 잘렸지만, 샤담 4세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하시미르 펜링을 빼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만큼 샤담에게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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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샤담과 펜링은 사촌이자 둘도 없는 죽마고우였다. 하지만 샤담의 아버지었던 선황제 엘루드 코리노 9세는 한창 제왕학 공부에나 열중해야 할 아들이 놀러만 다니니 이런 둘을 매우 탐탁치 않아했고, 샤담 또한 편집증에 가깝게 자신을 갈궈대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둘 사이는 나날이 벌어졌지만 한편으로 샤담은 이미 황태자인데다 야심이 차고 넘쳤으므로 언젠가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오를 날을 꿈꾸며 칼을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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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명 연장 효과가 있는 스파이스를 엘루드가 다량 섭취하고 있는 것을 아는 펜링은 이것을 샤담에게 지적한다. '황제께서 영원히 사실 테니, 이대로는 평생 가도 황위를 물려받지 못할 것'이라고. 이를 들은 샤담은 크게 절망한다.

한편 황가의 상황도 영 껄끄러웠는데, 버니우스 백작가가 랜드스래드의 동의를 등에 업고 황제에게 낼 세금을 비행 횟수로 떼우는 등 사실상 띵깡을 부리면서 코리노 가문의 수입이 크게 줄어서 격노한 엘루드가 랜드스래드 계약을 파기해버린 일이 있었으며, 우주 조합이 아니꼬워 인공 스파이스를 만들려는 틀레이랙스와 뒤로 손을 잡아 틀레이랙스가 파디샤 황제 권한대행으로 익스 행성을 강제 점령하는 것을 묵인했다. 사실상 랜드스래드와 길드를 쌍으로 적으로 돌려버린 것.

민심이 험악해짐을 눈치채고 자신 또한 야망에 차 있었던 샤담은 결국 펜링과 모의하여 선황제 엘루드를 암살하기로 한다. 물론 대놓고 암살할 수 없으니 암살은 아주 천천히 길게 진행되었는데, 식사에 극소량의 독을 넣거나 잘 때 독을 지속 흡입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결국 익스 침공 2년 후, 엘루드는 독살되었으며 증거인 시신은 발빠르게 태워 없앤 뒤에 실수로 먼저 화장해버렸다고 공표함으로써 엘루드의 최종 사인은 자연사로 처리된다.

이 암살에서 누구의 비중이 더 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원작에서도 '실행범은 펜링'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 정도였으니 계획은 둘이 짰을지언정 직접 손을 더럽힌 사람은 펜링이었을 확률이 높다.

차마 황태자인 샤담을 지목할 수 없었으므로 화살이 모조리 펜링에게 돌아가 정치적으로 엄청난 집중포화를 받지만, 샤담은 '펜링은 내 가장 친한 벗이니 여러 말 말라'며 이를 무시하고 계속 친분을 유지했다.

그렇게 그는 킹메이커로서 샤담 코리노 4세의 최측근이 되었으나, 이를 과시하지 않고 배후에서 묵묵하게 황제를 보필했다. 원작 1부에서도 계속 지나가듯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통째로 아라키스로 이주한 후, 펜링은 주인이 없어진 칼라단 행성계의 대리 총독이 되어 샤담이 아라키스로 행차할 때까지 이 곳을 다스렸다. 중간에 한 번, 부인과 함께 기에디 프라임에 가서 씨도둑질 대상인 페이드 로타 하코넨을 지켜보기도 했다.

1부 마지막에서, 그는 샤담의 마지막 히든카드로써 등장한다. 그는 샤담의 가장 절친한 벗이기 이전에 냉혹한 살인기계이자 퀴사츠 헤더락 후보였다. 엘루드가 펜링을 매우 탐탁치 않아했던 것은 어쩌면 이 성정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검술로도 작중 최고 실력이어서, 황제가 폴을 죽이라 했을 때 거부하지 않았다면 폴은 정말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예지가 안 통해서 순수 검술로 싸워야 되는데 그조차도 펜링이 한 수 위니까.

하지만 펜링은 원작에서 묘사된 바 없지만 베네 게세리트를ㅡ그리고 그들의 퀴사츠 헤더락 계획을ㅡ은연중에 증오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선천적 고자라는 이유로 베네 게세리트에게는 은연중에 멸시받고 있었으며, 아내인 마고트가 자신을 사랑해서 결혼하려 했을 때 교모가 결사반대하였고, 결혼하고 나서도 자신이 고자라 퀴사츠 헤더락이 될 아이를 만들 수 없으니 자신의 아내더러 씨도둑질을 해오라 명령해서 마고트가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해야 했다.

결국 그도 퀴사츠 헤더락 계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몸이었다. 그나마 폴보다 더 나아 보이는 이유는 그가 고자여서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자기와 같은ㅡ어쩌면 더할지도 모를ㅡ폴을 마주하게 되니, 황제 명령보다 동병상련의 측은함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 어린 아이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저 아이도 베네 게세리트 때문에 원치도 않는 큰 짐을 지고 있구나.'

그렇게 그는 순수한 동정심과 연민만으로 황제이자 절친인 샤담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누가 봐도 대역죄지만 샤담은 그냥 면상 한 번 후려치고는 더 책망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도 펜링의 속사정을 다 알고 있거니와, 큰딸인 이룰란 또한 베네 게세리트의 일원이다. 그 또한 펜링과 베네 게세리트 간의 악연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황권에 위협이 되지 않는 상부상조 관계니 묵인했을 뿐.

또 자기 병력도 다 갈리고 결투 대리인으로 내세운 페이드 로타 하코넨도 죽은 시점에서 이미 황제는 진 판이다. 펜링을 추가로 내보낸 순간 이미 황제는 억지를 쓰는 시점이었다. 퀴사츠 헤더락을 제외하고 전황의 시점으로 보면 펜링은 자신이 충분히 이길 수 있음에도 상대에 대한 연민을 방패삼아 총대를 매고 친구의 마지막 체면치레를 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

'황제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날뛰다 결국 굴복했다.' 보다는

'황제께서는 잘 싸웠으나 그의 친구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하여 진 것이다.' 가 더 오명을 남기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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