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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LAS/번역 Advice and Trust (59)

ㅇㅇ(14.6) 2021.06.26 12:11:38
조회 596 추천 33 댓글 14
														

골치아픈 작업 끝났으니 이제 좀 쉬워질듯


어드바이스 앤 트러스트는 에피당 길이가 꽤 짧게 안정화된 구간이라 부담없이 한개씩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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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8장 25/26






지오프론트 제 298-B동 아파트는 세컨드 임팩트 이후의 일본 기준으로 매우 크고, 호화로운 장소였다. 위치도 숱한 장갑판과 방어 시설 뒤에 숨은 안전한 곳이었다. 내부 가구들은 최신 기술과 유행의 집약체였다.


그리고 춥고, 외롭고, 고양이와 울고 있는 여인 한 명, 그리고 텅 빈 와인 두 병을 제외하면 텅 빈 장소이기도 했다.


'어쩌면 세에에에번째 병일 수도. 기억 안나. 알아서 움직이던데.' 리츠코는 생각을 해보려 애썼다. 와인은 집중력에 도움은 안됐지만 절실히 필요했던 진통 효과는 확실했다. 병원에서 먹은 진통제에 그게 더해지니 이제 물리적인 고통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전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하지만 리츠코는 피곤했고 겉과 속이 다 아팠고 둔감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외로움마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곧 무너질 것을 예감한 리츠코는 차라리 혼자 있고 싶었다. 이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따라오려는 마야를 떼어내는데는 좀 노력이 필요했다. 마야는 딱 봐도 상태가 좋지 않은 리츠코를 혼자 두려고 하지 않았고, 리츠코를 향한 마야의 걱정과 헌신은 너무 유혹적이었다. 리츠코는 거기에 넘어가버리고 싶어 병원에서 거의 울뻔했다. 그래도 리츠코는 오늘 자신의 상태가 매우, 매우 나쁠거란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마야에게 내일 보자고 말하고 보내버렸다.


"이이런걸 보여줄슌 업지. 이런건. 내가 얼마나 돼...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한 짓 절반만 알아도..."


리츠코는 침대 위에서 몸을 굴린 다음 비틀거리며 앉았다. 여태 한번도 겐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천재 과학자, 컴퓨터의 마법사, 음험한 계획의 동료... 그리고 걸레. 가끔 리츠코는 자신이 그 부분을 스스로도 얼마나 원하는지 혐오감까지 들 지경이었다.


'그래놓고 미사토랑 카지는 또 비웃었지. 둘은 최소한 서로 사랑하고 아끼기라도 하는데. 겐도는 널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쓰기나 할까?'


"닥쳐..." 한심한 목소리들. 와인으로 잠재운 줄 알았는데 또 튀어나오고 있다. 리츠코는 비틀거리며 일어선 다음 또 한병 찾아내러 주방으로 향했다.


걷는 동안 거실을 둘러본다. 세련된 가구와 장식들. 개중 몇개는 고양이 테마.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없다. 어울리지 않는 책 한권이라던가 하여튼 그에게 속한 물건은 하나도 없다. 선물도, 꽃도, 아무것도. 한번도 여기서 밤을 보낸 적이 없고 방문 자체가 드물다. 언제나 리츠코쪽에서 먼저 가야했다. 겐도가 부르거나 아니면 리츠코쪽에서 그냥 가거나. 그렇게 가면 보통은 받아주곤 했다.


'받아주면 어쩔건데? 그래봤자 넌 도구일뿐이야. 인형보다 못해. 그 인형한테까지 동정 받는 주제에. 인형은 그를 원하지도 않는데. 그런 바보는 나뿐이야. 너랑... 어머니.'


드디어 나올게 나왔다. 진통제 먹은 위에다 술을 쏟아붓는게,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보는게, 겐도의 진심에 대해 생각해보는게 차라리 더 낫다고 느껴질 그런 무시무시한 생각. 하루종일 피하려고 애써왔던 생각.


'어머니가 살인자였다고.'

 

리츠코는 냉장구 문을 재껴열고 마지막 남은 와인 병을 잡아꺼냈다. 코르크를 뽑는데 헛손질만 두번했다. 침실로 출발하기도 전에 고개를 젖혀 병채로 들이킨다. 혹시 운이 좋으면 그대로 잠들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살인자였어. 첫 레이를 죽였어. 자살은 그래서 한거지...'


리츠코는 머리를 흔들며 싫은 생각을 떨쳐내려 애썼다. 어지럽기만 더 어지러워졌다. 방이 빙빙 돌고 바닥이 젤리처럼 물컹거리기 시작했다.


'너도 어머니를 똑 닮았고.'


침실 책상 앞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리츠코. 손에 들고 있다가 비틀거리며 내려놓은 와인병이 컴퓨터 옆에 놓여 있던 고양이 조각을 쳐냈다.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가 튕겨나간다. 검은 고양이는 모니터쪽으로 굴러가서 멈추고, 흰 고양이는 책상 모서리 밖으로 떨어지려는걸 잡아보려 했지만 손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져 박살난다.


'이것봐라, 메타포다 이거지.' 


"나아안 달라. 달라. 난 절대로..." 머리가 욱신거렸다. 몸이 아팠다. 배가 아팠다. 병원에서 받아온 진통제 통에 손을 뻗는다. 어린이 방지 뚜껑이 와인 세병을 들이킨 상태에선 리츠코 방지 뚜껑도 겸하는 모양이었다. "...마기에서 뛰어내리진 않을거야!" 통을 결국 열지 못한 리츠코는 열이 터져 집어던져버린다.


'너 지금 와인 네병째 끝내기 직전이고 약은 약대로 더 먹으려고 하잖아? 넌 의사야, 리츠코. 진통제랑 알콜을 이만큼 같이 복용하면 뭔 일 벌어지는지 기억 안난다 같은 소리 할거야? 이거 반쯤 죽고 싶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서 해보는 엉성한 자살 시도인거 계속 부정할거야?'


리츠코는 왕방울만해진 눈으로 침대에 떨어져 있는 약병을 바라봤다. 이빨을 훑는 혀에 와인의 텁텁한 뒷맛이 쓰다.


'너 그생각 해봤잖아. 레이를 죽이는거. 저번 '증량'이 진짜 그냥 안정화 목적이었다고 주장하는거야? 겐도의 관심을 뺏어간 걸로 벌주고 싶었던거잖아. 네 생각에 위험하다 싶은 수치 바로 아래까지 주사했고 딱히 그 전에 혈액 검사 같은거 해볼 생각도 안했지. 다 알고 그런거야. 혹시 너무 많이 주사한거였으면, 오, 실수했네, 하면서 수조에서 클론 하나 또 꺼내면 됐지. 그냥 인형이니까. 레이가 그렇게 '사고'로 죽어도 넌 눈물 한방울 안 흘렸을거야.... 어머니랑 똑같아.'


뱃속이 마구 요동쳐서 화장실로 뛰어가야했다. 와인과 위액을 한껏 토해내기 직전에 겨우 변기에 도착했다. 토사물에 와인 비중이 어찌나 높았던지 변기가 무슨 미개인들의 제례에 공양물로 쓰이는 피 한접시 같았다. "난..어머니랑 달라... 달라..." 구역질이 마침내 멈추자 리츠코는 힘없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머리 좀 염색했다고 다른 사람이 될줄 알았지? 한번 보자. 겐도의 수석 과학자, 에바와 마기를 유지보수하고, 침대에서 봉사하고, 관심 받고 싶어 안달났고, 레이를 제거해버리고 싶고... 인정할건 해야지. 염색 몇달 안하고 레이를 죽이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딱 어머니가 되는거야. 차이점은 정말 그정도 밖에 없어. 아, 마기에서 뛰어내리는 부분도 있지. 어쩌면 레이 죽이기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자살 종점에 먼저 도착할 수도 있겠는데? 그거 하난 어머니를 뛰어넘겠구나.'


"아니야...난...절대..." 리츠코는 변기에 대고 중얼거렸다. "달라... 그렇게 되지 않을거야... 아니야... 사고였어..." 웅얼거리는 와중에 침과 콧물 줄기가 변기로 뚝뚝 떨어진다. "그냥 잊고 싶어서... 마신거야..." 뜨겁고 씁쓸한 눈물이 곧 침 줄기에 합류한다. "생각하기 싫어... 아파... 외로워..."


비틀거리며 일어선 다음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대충 바닥에 내던진다. 뒷정리는 아침에 하자. 만약 아침에 일어난다면.


'어머니랑 똑같아... 바보같고, 눈이 멀었고, 이용 당하고...'


리츠코는 잠시 화장실 문간에 기대섰다. 바닥에 핏자국이 있었다. ....자신의 방향으로? 내려다보고, 왼발을 들어 확인해본다. 발바닥에 아까 깨진 고양이 조각 파편이 박혀 있었다. 상처도 피도 방금까지 인식하지 못했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또 메타포다 이거지? 상처 받고 도망치면서도 자기가 상처 받았다는 것도 모르고...이거봐라, 손에는 피가 범벅이네.'


네번째 시도 끝에 겨우 조각을 뽑아내는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이젠 손가락을 베였다. 여전히 손도 발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멍청하긴. 넌 네가 엄청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그냥 이용 당하는거란거 알고 있었으면서도 계속 합리화만 해오고. 한번도 어머니 얘기는 해준적도 없었어. 개자식. 너 지금도 그 사람 전화 오면 당장 달려갈거지? 외로운건 싫으니까. 미사토랑 마지막으로 봤을때 게으른 술주정뱅이라고 조롱했었지. 그냥 나랑 대화가 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내가 아팠을때 찾아와준건 걔 뿐이었는데. 걔랑... 마야. 오늘 밤에 또 쳐낸 마야.'


도저히 피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피 같은거에 언제부터 신경 썼다고.'


그래서 리츠코는 그냥 주변 바닥에 아직 널려있는 파편을 피해 침대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중간에 팔을 뻗어 와인병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고. 병을 나이트 테이블에 조심스레 올려놓은 다음 침대에 쓰러진다. 차갑고 텅 빈 킹 사이즈 침대. 언제나 그랬듯이.


"한번도 자고간 적 없어..." 입에서 위액과 와인의 맛이 났다. 손을 옆으로 뻗어 파트너, 연인, 누구든 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확인해본다. 차가운 이불과 약병만 붙잡힐 뿐이다. 리츠코는 몸을 떨며 병을 밀어냈다.


이불은 여전히 차가웠다. 옆 자리가 너무 공허했다. 리츠코는 무언가의 부재에 이렇게까지 조롱당하는 느낌은 또 처음 받아봤다.


'매력이 있었던걸까? 관심을 줘서 그런걸까? 어머니가... 그렇게 된 직후에 나타나서 그런걸까? 엘렉트라 컴플렉스 장난 아니다, 그치? 외로운게 그렇게 무섭니? 아무도 널 원하지 않는게 그렇게 무서워? 이미 있는 친구도 그렇게 대하는데 당연히 아무도 널 원하지 않지.'


"마야는..."


'그 착하고 바보같고 순진한 마야. 네가 어떤 인간인지 아는게 하나도 없지. 네 손이 피범벅인 것도 모르고 겐도의 계획을 돕고 있는 것도 모르고. 여기서 널 보고 네가 뭔 생각하는지 알 수 있으면 아주 역겨워할걸. 한번 그 얼굴 상상해봐... 너 정말 대단해, 리츠코. 미사토랑 카지는 다시 사귀지. 둘은 아니라고 해도. 호라키도 남자친구가 있지. 그 퍼스트 칠드런마저 친구가 있대. 넌 뭐가 있니?'


리츠코는 더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옆 베개를 붙잡고 으스러트릴듯 껴안는다. "아파... 싫어... 혼자인건 싫어..."


'다 네가 자초한거잖아. 여기 와주겠다고 한 단 한사람마저 너 스스로 밀어내버리고 연락도 하지 말라고 했잖아. 너 혼자인게 싫은건 확실하니?'


"싫어... 혼자는..."


막을 수 없는 불청객 같은 생각이 또 떠올랐다. 마야가 옆에 누워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손을 뻗어 머리를 매만져주는 모습이. 이마에 손가락이 와닿는 감촉을 거의 실제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리츠코를 위해서. 그저 리츠코를 위해 있어주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가슴이 아팠다.


"걘 몰라... 알게...알게 해서도 안돼..."


'네가 깨어났을때 옆에 있어줬지. 두번이나. 그럼 겐도보다 두번 더해준거네.'


"날 미워할거야..."

   

'확실해? 겐도가 널 사랑해줄거라고 생각했을때도 틀렸잖아. 너 그렇게 혼자 있고 싶니? 오늘은 중간에 멈추고 토했다치자. 다음번에도 그럴거란 자신 있어?'


추억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죽은 직후 리츠코에게 나타난 그. 자신에겐 이제 리츠코 밖에 없다고 간청하던 그 모습. 큰 키에 어둡고 지배적인 그 모습에 리츠코는 녹아내렸었다. 그를 믿었었다. 스무다섯살의 뭣모르는 리츠코가 자신을 '유혹'하게 허락해줬을때 리츠코는 그의 손길에, 몸의 무게에, 모든것에 전율했었다. 자신을 필요로 한다고 느꼈었다. 욕구의 대상이 된다고, 충만해진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이젠 그 작은 '유이'라는 속삭임이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심지어 저번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


'마야가 널 미워할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지... 확실한건 겐도가 너한테 신경쓰지 않는다는거야. 마야는 신경써줄지도 모르고. 미사토는 너한테 와줬잖아. 카지는 어떻고? 미사토랑 카지도 서로 용서하고 다시 시작했는데, 넌 왜 새로 시작하지 못하는거야? 아직 탈출구가 있을지도 모르는거잖아.' 


"그래도..."


'미사토랑 카지랑... 마야가 너한테서 등 돌리면 딱 지금 상황으로 되돌아오는거야. 뒤집어 말하면 여기서 뭘하든 더 나빠질 수도 없다는거지. 아님 저쪽에 있는 약 더 꺼내먹고 그냥 끝내버리던가.'


리츠코는 한참동안 베개를 마치 구명 밧줄처럼 끌어안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마침내 결심한 리츠코는 떨리는 손으로 와인병을 올려둔 나이트 테이블로 손을 뻗어...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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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썼듯이 슬슬 포커스가 조연들을 향하기 시작하는 분량임. 신지 아스카 달달한 이야기 많이 남았지만 예전처럼 99%쯤 둘에게만 집중되진 않을것. 그래서 여기부터 호불호 좀 갈린다고 말이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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