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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번역/ 에반게리온 제노사이드 5-2

ㅇㅇ(14.6) 2021.07.08 17:30:55
조회 660 추천 19 댓글 9
														

오늘은 웬지 제노사이드부터 하고 싶은 기분이라 그러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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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레이를 이용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아카기 리츠코는 전술 정보 디스플레이로부터 몸을 돌려 이카리 겐도 방향을 보며 말했다. "이미 조치를 취해놨습니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완전한 손실은 방지할 수 있을겁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릴리스의 영혼이다. 레이가 아니라." 이카리는 리츠코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옆에 있는 후유츠키는 자신의 개인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마 미사토의 작계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지금쯤이면 세부사항을 거의 다 암기했을 것이고.


"제가 무슨 의미로 한 말 같습니까?" 실험복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으며 말하는 리츠코. "레이의 신체에 관한게 아닙니다."


"설명해라."


"유사시 영혼이 상실되지 않도록 영호기 엔트리 플러그에 장치를 설치해놨습니다. 누전차단기와 비슷한 구조로 작동하는 물건입니다. 플러그의 생명 유지 시스템이 레이의 생명 신호가 끊기는 것을 감지한 순간 회선을 차단하는거죠."


"그래서? 모종의 회수 장치를 설치했단건가?"


"그 비슷한겁니다. 코어만 보존된다면 영혼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영호기의 코어에는 영혼의 일부만이 들어 있는 상탭니다. 하지만 아무리 조각에 불과하다해도 어쨌든 영혼이죠. 한 그릇에 동시에 두 영혼이 존재할 수는 없으니 가장 최근에 포획된 영혼을 업로드하고 기존의 영혼을 제거하는 기능을 프로그래밍 해뒀습니다. 레이가 죽으면, 영혼이 이 시스템에 의해 포획되고 코어 내에 저장될겁니다. 하지만 영혼을 보존하더라도 더미 시스템 없이는 육체의 대체품이 없습니다. 그 부분은 나중에 해결해야할겁니다."


스스로도 조금 놀란 부분이지만, 리츠코는 레이에 대해 이런식으로 말하는게 전혀 기분 좋지는 않았다. 그 조그만 괴생명체에게 어떤 애정이 있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레이의 상실은 곧 리츠코가 여태껏 해온 모든 일의 상실도 의미했고 그런 노고에 흔히 동반하는 감정적 애착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레이의 영혼은 중요했다. 에바 그 자체보다도 중요했다. 하지만 그 영혼이 깃들어 있는 몸은, 리츠코의 관점에선, 일종의 유전적 변이체로 과학 실험의 산물에 불과했고, 그런 실험들에서 나오곤 하는 다른 결과물들 이상의 애정을 줄 필요는 일절 없었다. 이카리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지만. 리츠코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이유로.


레이의 DNA가, 외양이 그녀와 닮았다고 해서 같은 사람이 되는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카리는 두번째 레이에게서 감정적 애착을 결코 떼어내지 못했었다. 아마 자신이 직접 길러내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두번째 레이의 상실은 그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리츠코에겐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세번째의 상실도 비슷할 것이다. 미사토가 읽은 보고서에 거짓말을 적어놓은 것도 그래서였다. 일이 이렇게까지 쉽게 풀릴 것은 또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었지만.


"하지만 그렇게 보존된 영혼을 릴리스의 온전한 현신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이카리의 말이 리츠코의 상념을 뚫고 들어왔다. "미래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부분이다."


"레이가 여태껏 겪은 접촉들을 고려해보면 현 상태에서도 영혼의 완전함 같은건 어불성설입니다. 이미 알고 계실텐데요. 원래 영혼은 재창조하거나 복제할 수 없는만큼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카리. 그에겐 어차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마 현 상황이 끔찍하게 싫을 것이다.


리츠코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뚫을 수 없는 위장을 꿰뚫어보려 시도했다. 찻잎으로 점 치는거나 다름 없는 짓이었다. 평소라면 이런 짓은 하지도 않았겠지만 지금 하려는 말을 하려면 최대한 준비되어 있는 편이 나았다.


"제 조치를 신뢰하시지 않는다면, 차라리 초호기를 내보내는쪽이 훨씬 간단할겁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리츠코는 말을 내뱉고, 겐도가 폭발하는걸 기다렸다.


이카리 겐도. 언제나 알쏭달쏭한 이카리 겐도는 이번에도 리츠코를 놀라게 했다. 어떤 반박도 심지어 감정도 내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 계획에선 유이도 레이만큼이나 중요하다." 겐도는 그저 차분하게 말했다.


리츠코는 어째선지 이쪽이 더 불편했다. 겐도가 초호기를 그 이름으로 부르는건 언제나 리츠코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더 밀어붙일 시점이었다.


"유이는 인류보완계획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리츠코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퉁명스러운 어조로 나왔지만 어쨌든 사실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레이죠. 초호기는 손상되어도 나중에 복구하면 그만입니다. 이부키 중위가 이미 기술적인 가능성을 한번 증명했잖습니까. 레이는 다릅니다. 레이의 육체를 잃으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네가 더미를 파괴해서 그렇게 됐지." 준엄한 어조로 상기시키는 겐도였다. "넌 레이를 죽이려고 했다. 기회가 될때마다 레이를 괴롭혀왔고. 이제와서 레이를 걱정한다고 주장하는건가?"


리츠코는 고개를 저었다. "핵심적인 장비를 잃을까 우려하는 것 이상의 우려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라고 한건 사실 사령관님을 의미한겁니다. 제 말에는 객관적으로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레이보다 초호기의 대체가 훨씬 쉽고 레이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사실이니까요. 제가 제시하는 방안들은 지금처럼 시간이 한정된 상황하에서 할 수 있는한 가장 안전하도록 고려한 것들입니다. 지금 상황의 문제는 사령관님이 정의하는 안전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과 다른 것 같다는거죠."


겐도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말이 먹혀들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리츠코는 한걸음 더 밀어보기로 결정했다. "요점은 이겁니다. 대안이 있는데 왜 레이로 도박을 두는겁니까?"


"나쁜 대안은 대안이 없는것과 마찬가질세. 아니 그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지." 후유츠키가 여태껏 바라보던 스크린에서 고개를 들고 리츠코를 쳐다보며 말했다. "우린 이미 위험한 영역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동의하는 바다." 겐도가 평소보다 더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길 권하는 바다. 아카기 박사."


어이없는 말이었다. 리츠코는 입에 비웃음이 떠오르려는 것을 억눌러야했다. 어떻게되든 사실 상관 없었다. 겐도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건간에, 그는 지금 미사토의 순진함과 리츠코의 복수심에 붙잡혀 옴싹달싹할 수 없는 상태인게 현실이었다.


어느쪽을 선택하든 그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위험에 빠트리게 될 것이다. 레이가 나갔다 죽으면 그의 계획도 끝이다. 초호기가 나갔다 파괴되면 '그녀'를 잃는다. 겐도의 퀸. 온 세상을 맞바꿔서라도 돌려받고 싶어하는 사람.


"2호기는 어떻지?" 겐도가 물었다.


"어떻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리츠코는 대충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서판이 이미 안전장치와 함께 설치된 상태입니다. 문제는 세컨드 칠드런쪽입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손상되어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차라리 파일럿 직위를 박탈하고 대안을 찾아보는게 더 쉬울겁니다."


"그 부분은 이미 조치를 취해놨다." 리츠코는 그 말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당연히 그랬겠지. 사람을 이용하고 내다버리는 것이 그의 특기 아닌가. "러시아측에서 지원해주기로 했다. 마르둑 기관은 생략할 계획이다."


"세컨드쪽 반응은 지금 생각해볼 필요는 없겠지요. 그런데 신경쓸 여유 같은건 없으니까."


리츠코는 다시 홀로그램에 주의를 돌려, 우상단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곧 사각형 버튼이 그 자리에 떠올랐다. 버튼을 누르자 여태 떠있던 지도가 사라지고, 사도를 뒤쫓고 있는 항공기로부터 송신되어오는 영상이 떠올랐다.


사도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빙의당한 에반게리온 A호기는 마치 초현실주의 화가의 악몽에서 기어나온 것 같은 형상이었다.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열댓개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어 흰 장갑이 번쩍이고 있었다. 양산형기의 디자인을 기반으로 건조된 물건이니만큼 머리 부분도 둥글고 긴 주둥이까진 양산형기와 흡사했지만, 검붉은 눈이 양 측면에 달려 있는 것이 달랐다. 마치 악독한 포식자처럼 길게 찢어진 눈이었다. 축 늘어진 긴 팔의 끝에는 하얀 발톱이 달려 있었다.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아주 우아하게 날고 있었다. 거대한 날개가 마치 비정상적으로 커진 조류를 연상시켰다. 주변에는 붉은 경고등을 밝히고 있는 항공기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대부분은 전투기였다.


"더는 사도가 나올리가 없었다는거, UN에서 알아차릴때까지 얼마나 걸릴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상관없는 일이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겐도는 리츠코가 띄운 화상에도 질문에도 별 관심이 없는 투였다. "눈 앞에 보이는 현상보다 신비주의적인 예언 나부랭이를 믿을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을테니까. 고대의 괴문서보단 자신의 눈이 더 중요한 법이지."


"최소한 연기라도 해야합니다.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지으시죠. 정식 사도로 명명되게."


겐도는 큰 이유가 없으면 딱히 연극도 하지 않는 인간이었지만 리츠코는 최대한 문제의 소지를 줄여놓고 싶었고 겐도도 그 점을 똑바로 봐야할 것이었다. 사해문서를 대충 훑어보기만해도 현 상황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걸 유엔에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럴 눈치가 없으면 제레측에서 단서라도 던져줄 것이다. 비록 최근들어 신망을 꽤 잃은게 제레이긴 했지만. 겐도의 말마따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위협은 공포의 차원도 다른 법이긴 했으니까. 


마침내, 겐도는 홀로그램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실망스러운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 비슷한 것을 던졌다. "사마엘."


리츠코는 그 이름의 의미를 알았다.


"죽음의 천사요? 조금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죽음도 결국엔 극복해야할 장애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라는 의미지."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야. 


"겁주려는거죠." 리츠코는 입꼬리가 말려올라가려는 것을 억눌러야했다. "죽으면 모든게 끝이니까. 죽음의 두려움. 강력한 도구."


겐도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대비는 반드시 끝내놓도록." 그 말을 끝으로 책상의 버튼을 누르고, 개인용 엘리베이터가 하강하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금 더 상식적이고 연극을 싫어하는 성격의 후유츠키는 정상인처럼 문을 사용했다. 곧 회의실에는 리츠코만 남게됐다.


한숨을 내쉬며, 리츠코는 다시 홀로그램쪽을 돌아봤다. 검디검은 배경에 사도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날갯짓을 하고 있었지만 소리는 제공되지 않아 펄럭이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리츠코는 악의와 힘이 함께 실려오는 것 같은 그 날개 소리를 이 자리에서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마엘...


"내가 보매 푸르스름한 말이 나오니, 위에 탄 자의 이름은 죽음이라. 지옥이 그의 뒤를 따르더라." 리츠코는 씁쓸한 웃음을 터트렸다. "다 속아넘어가겠지." 세상에는 뻔히 예측 가능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원래 큰 거짓말일수록 잘 속으니까. 이번 거짓말은 벌써 몇백만명을 죽였고."


이건 겐도의 거짓말인것만큼 리츠코의 거짓말이기도 했다. 리츠코에게도 죄가 있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든, 스스로 어떻게 정당화하고 있든 상관없이, 리츠코는 겐도의 명령을 실패 없이 모두 수행했다. 심지어 한때는 그게 정당한 일이라고 믿기까지 했다. 리츠코는 유죄였다.


행동으로든, 행동의 부재로든, 모두가 유죄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신지는 이게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순간 자신은 이미 깨어있으며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참이었단걸 깨달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잠에 든 기억도 깨어난 기억도 없었는데. 방을 비추는 희미한 회색빛으로 보아하건대 이른 새벽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신지의 기준으로도 조금 이른 시간.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아스카가 떠난 지금 신지의 아침 루틴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빨리 일어나라는 고함도, 아침 좀 먹자고 보채는 사람도, 어떤 종류의 자극도 없었다. 아무 일도 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도 신지 마음의 일부는 바깥의 모든 일은 무시하고 가만히 누워있고 싶었다. 아무 의욕도, 누구 하나 의지해오는 사람도 없는 지금 왜 굳이 하나하나 신경써야 한단 말인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예전에, 아스카가 병원에 있고 혼자 남아 끔찍한 외로움 속에 카오루를 애도하던 때와 똑같았다. 아스카는 상황이 자기 마음에 안들면 신지의 문을 두드리고 끌고 나가는 일도 있었다. 적금발 룸메이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고 없어진 뒤에야 그게 그리울 수도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종류의 것이었다.


지금 아스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시끄러우니 당장 전화 좀 받으라고 소리쳤을거다. 신지는 확신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한번 하품하고, SDAT 이어폰을 귀에서 빼낸다. 잠드는데, 외롭다는 사실을 잊는데 음악말고 도움이 되는 것은 없었다. 핸드폰을 쳐박아둔 책가방을 집어들고 손을 넣어 안쪽을 뒤지기 시작한다.


몇초만에 핸드폰이 손에 잡혔다. 열어서 귀에 갖다대며 반대편 손으로는 눈을 비빈다. "여보세요." 신지는 졸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하며 다시 침대에 주저앉았다.


"신지군...."


속삭이듯이 작은 말소리였지만 이부키 마야 중위의 목소리인건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야의 목소리에는 특이한 리듬감 같은게 있었다. 초호기에서 라디오를 통해  숱하게 들으며 익숙해진 목소리였다.


"이부키씨?" 눈을 비비며 하품하는 신지. 방에 아무도 없지만 황급히 입을 가렸다. "무슨 일이에요?"


"지금 어디야?" 신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질문이 되돌아왔다.


"집이요. 이부키씨-"


"좋아. 차량 보낼게. 너무 이른 시간인건 알지만 상황이 발생했어. 카츠라기 소령님이 전화부터 하라고 하셨거든. 이미 봤을까봐 걱정하셨던건지. 빨리 준비해."


"미사토씨요?" 신지는 졸려서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슬슬 되돌아오는 정신속에, 신지는 평소 부드러운 이부키 중위의 목소리에 오늘은 걱정이 묻어나고 있는걸 깨달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지 자신도 걱정되기 시작했다. "뭘 보는데요? 무슨 일이죠?"


"문제가 생겼어. 지금 이렇게는 말해줄 수 없지만 도착하는대로 다 가르쳐줄거야. 부탁이니까... TV는 보지마. 카츠라기 소령님께서 보지 말라고 하셨어."


"네?"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요?"


"그냥 보지마. 부탁이야."


아직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았어요."


"정보부에서 몇분안에 도착할거야. 옷 입고 준비해둬. 나 이제 가봐야하니까." 그러곤 전화가 뚝 끊겼다. 다급한 기색이 역력해 신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급작스럽게 되찾아온 침묵속에, 신지는 핸드폰을 계속 귀에 가져다대고 혹시 무슨 말이 더 나올까 기다려봤다. 몇 초 그러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폰을 닫은 다음 가방에 던져넣는다.


집에 있다고,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난 지금 집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아닌걸.


신지는 고개를 들고 방을 둘러봤다. 엄밀히 말하면 방도 아니고 창고였다. 원래 쓰던 방은 아스카가 이사해 들어온 날 차지하고, 신지의 물건들은 상자에 담긴채 이곳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신지는 그 일로 딱히 아스카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원망하는게 맞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때도 가끔 있었지만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때 상자에 담긴채 옮겨진 물건들 중 일부는 아직도 그대로 상자에 들어있는 상황이었다. 신지는 아직도 이 공간을 자기 집으로, 방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시절의 신지는, 아스카가 비록 시끄럽고 짜증나게 굴긴 했어도 언젠가 친해질 수 있을거라 믿었었다. 어쨌든 둘 다 에반게리온 파일럿이 아니던가. 아야나미와 그랬듯 아스카와도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아야나미는 죽었고, 아스카는 신지를 증오했다.


상실과 실패의 기억들에 신지는 뱃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모두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지금 또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도와달라고. 에바를 조종해달라고. 제발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모든걸 만회하려면, 아스카를, 레이를, 자신에게 기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다면, 그렇게 해야만했다. 다른 길 같은건 없다.


신지는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일 먼저 손에 집히는 옷을 입는다. 어제 저녁에 아침 준비를 하며 의자 등받이에 걸어놓은 교복이었다. 옷을 다 입은 다음엔 방 문을 열고 텅 빈 거실로 나갔다. 새벽 특유의 회색빛에 발코니에서부터 조금씩 새어들어오는 주황빛이 섞여들고 있었다. 어떤 조그만 소리도 없이 외롭고 조용한 아침이었다. 텔레비전 앞을 지날때 갑자기 유혹이 피어올랐다.


왜 미사토가 티비는 보지 말라고 했을까? 굳이 마야에게 언급까지 해가며? 봐선 안되는거라도 있단걸까? 경보 같은건 듣지 못했고 마야도 사도 공격 같은 얘기는 하지 않았었다. 현상황에서 신지는 그정도 일이 아니면 뭘 보든 별로 신경도 쓰지 않을것이었다. 최소한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입술을 앙다물며 생각에 잠기는 신지. 아스카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너 바보야? 봐선 안되는거면 TV에 왜 나오겠어?"


웬지 맞는 말 같았다. 아스카의 말은 보통 다 맞으니까.


리모콘을 들어 전원을 켰다. 뉴스 채널이 몇번이었는지 기억해내려 했지만, 잠시 후 무의미한 일이란 것을 깨달았다. 모든 채널에서 같은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공포에 가득찬 해설자들이 똑같은 영상에 대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었다. 나름 숱한 죽음과 파괴를 목격한 신지에게도 이건 섬뜩한 광경이었다. 악몽 같은 불길과, 그 중심에 서있는 낯설면서도 또 고통스러울 정도로 익숙한 괴물. 가슴이 철렁하고 입이 벌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또 이렇게 됐어. 신지는 생각했다. 다시 한번. 


정보부 요원이 현관 벨을 눌렀을때, 신지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문을 열지 않는 것도 잠시 고려해보는 신지였다. 하지만 신지에게 그런 선택권 같은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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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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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본 공식 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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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텍스트 묘하게 안맞쥬


밥먹고 어드바이스 앤 트러스트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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