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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LAS/번역 Advice and Trust (87)

ㅇㅇ(14.6) 2021.08.02 18:48:57
조회 587 추천 35 댓글 14
														

전례없는 3등분 에피소드 마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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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에바 수송 시스템으로 내려갈 수 있는 한계까지 다 내려갔지만 터미널 도그마는 그보다도 깊은 곳에 있었다. 지금 2호기는 현수교 하나를 통채로 옮길 수 있을만한 초대형 케이블과 발걸이에 의지해 강하 중이었다. 다른 때였으면 인류 공학의 쾌거에 조금은 감탄했을 아스카였지만 지금은 조바심만 든다.


"빨리 빨리 빨리! 왜 이렇게 느려!"


"아스카, 지금도 안전 속도를 10% 상회하고 있어!" 휴우가가 경고했다.


"그때 화산에선 잘도 안전 심도보다 몇백미터는 더 밀어 넣었으면서 지금은 왜 못하는데요! 빨리 이 특수무기인지 뭔지 챙겨오게 내려보내줘요!" 


"부러지기라도 했다간 널 다시 올려보낼 수단이 없어!"


"아! 정말 짜증나네!" 아스카는 발걸이를 걷어차고 뛰어내렸다. "2호기 하강합니다!"


아스카는 남은 120 미터를 그대로 낙하해, 일반적인 경우였으면 2호기의 다리 장갑과 뼈를 모조리 다 부숴버렸을 속도와 모멘텀으로 착지했다. 숙련된 낙법에서 나온 착지자세에서 곧바로 다시 일어나 눈앞의 복도를 내달린다. 반대쪽 끝에는 거대한 문이 보였다.


"거의 다 됐어, 레이! 기다려!"










'서드 임팩트는 없다 이거지.. 최소한 이런 접촉으로는. 그럼 세컨드 임팩트는 뭐였단거야?' 곰곰히 생각해보는 미사토.


"3호기 곧 영호기 위치에 도달합니다!" 휴우가의 목소리가 그녀의 상념을 뚫고 들어왔다.









3호기는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다. 넓은 도로와 무장 건물에 기댄채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 영호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레이!"


사도의 광선이 아직도 영호기 주변 도로를 정오의 햇볕처럼 환하게 밝히며 쏘아지고 있었다. 카오루의 시각에서 그 빛은 더더욱 밝았지만...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었다.


그 광선은... 아야나미의 빛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마치 선물 포장지를 찢는 것처럼. 에반게리온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광채가 파일럿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오는 것은 막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이제 잦아들고 있었다. 곧 있으면 그녀의 자아 자체가 사도에게 완전히 노출될 위기였다.


'안돼!'


카오루는 앞으로 달려나가며 3호기의 AT 필드를 빔과 영호기 사이까지 전개시켜보려 시도했다. "아야나미! 내 말 들려?"


영호기의 옆에 마침내 도달, AT 필드를 펼쳐 보호에 나서는 카오루. "레이! 레이! 대답해! 나 왔어!"


"으응? 크웨? 브러...." 통신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횡설수설이 들려왔다. 통신창에 뜬 레이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한쪽만 뜨여있는 눈이 홍채를 거의 집어삼킬 정도로 커진 동공으로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 카오루쪽에 고정됐다. 그러자 마치 카오루에게서 멀어지려는듯 몸부림을 치며 팔다리를 휘두르지만 움직임이 매우 엉망이었다. "아아안돼에... 저리...가! 너 죽일거야! 죽어! 죽여어!"


"레이, 괜찮아! 나-"


사도의 광선이 뚝 끊겼다.


카오루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봤다. "무슨..."









"소령님, 사도의 형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휴우가가 스크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궤도상에서, 사도의 네 날개가 접히더니, 가지가 뻗듯 날개들이 갈라지고, 다시 펼쳐졌다. 이제 여덟개가 된 날개가 미세하게 각도를 바꾸며 조준점을 교정했다. 그리고는, 다시 노래한다.








카오루에겐 반응할 시간도 없었다. AT 필드에 1초도 될까말까한 시간 동안 마찰감이 느껴지더니, 다음 순간 사도의 빛이 그의 정신에 치고들어왔다.







 




수조가 그의 집이었다. 그의 감옥이었다. 어머니였다. 아버지였다. 세상이었다.


다른 어떤 것도 알지 못했다.


바이저를 쓴 노인이 돌아왔다. 그는 종종 와서 카오루를 쳐다보곤 했다. 언제나 직접 나타나기 전에 기계음과 가쁜 호흡 소리가 먼저 들리곤 했다.


"넌 타브리스다. 우리의 구원의 열쇠가 되는 존재. 종말의 영광을 가져올 존재다." 


카오루는 들을 의향은 있었지만 혼란스러운건 여전했다. "어떻게?"


"죽음으로."














"3호기! 나기사! 내 말 들려?" 미사토는 리츠코의 어깨 너머로 절박한 시선을 던졌다. 심리그래프가 레이의 때와 똑같이 마구 날뛰고 있었다. "나기사, 대답해!"


"아아아아아아악! 나가, 나가 나가!"








카오루는 외로웠다. 외로움이 곧 일상이었다. 평생 만나본 사람은 넷뿐이었고 그나마도 대화를 해본 것은 둘 뿐이었다. 그나마 킬의 부관이 음악을 소개해줘 시간을 보낼 거리가 생겼다. 피아노는 배우기 쉬웠다. 바이올린은 약간 까다로웠지만 대신 더 흥미로웠다.


텅 빈 콘크리트 방에선 소리도 더 잘 울렸다.


'부름'이 위안이 되어줬다. 언제나 불타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위로가 되어줬다. 모든 고통의 끝, 모든 외로움의 끝을... '완성'을 약속하는 그 부름.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졌다. 근원을 찾아 순수한 환희 속에 끝을 맞고자 하는 그 부름이.


리린들이 깔끔하게 몰살되버릴거라는 사실은 조금 슬펐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데.


그리고... 환상들이 보였다. 아무도 딱히 묻지 않았기에 카오루쪽에서도 남들에게 밝히진 않았다. 임무를 수행하러 떠날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인가를 묻자 이카리 신지와 다른 칠드런들에 관한 파일이 주어졌다. 다른 것들엔 지나가는 시선만 준 카오루였다. 알고 싶은 것은 서드 칠드런뿐이었다.


그렇게 순수하고... 또 외로운 존재. 카오루는 사랑에 빠졌다. 최소한 자신이 그 개념에 대해 알고 있는 한도 안에서. 자신과 닮은 리린. 외롭고, 파멸의 운명이 기다리고,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환상에 따르면, 아주 잠시라도 친구가 되어줄 사람.


그리고, 자신을 죽여줄 사람.


그가 정말로 만나고 싶었다.










"장갑판으로 보호할 순 없나?"


"안됩니다. 장갑판이 배치되어 있지 않은 구역입니다!" 아오바의 대답이었다.


미사토는 이를 악물었다. "VTOL 편대 띄워! 악천후고 뭐고 상관 없으니까 저 광선 막을 방법 찾아내야해!" 다시 주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는 미사토. "나기사! 좀만 버텨!"












"어서...조금만....그래!" 방금 짜낸 코드에 마기가 오류 없음 판정을 내리자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 리츠코. 통신 버튼을 눌러 2호기와 무전 연결한다. "아스카, 코드 업데이트 들어갈거야, 지금!"












"코드 업데이트? Was zur Hoelle quasselst du da, du verrueckte Hexe? (무슨 개소리야 이 미친 마녀야?)" 아스카의 불평은 관측창에 새로운 창이 열리고 빠르게 넘어가는 코드들이 띄우는 신호음에 묻혀버렸다. "이거 뭔데요? 이 마당에 비디오 드라이버 업데이트 같은거 하는거면 각오해요!"


리츠코는 독일어 부분은 못들은척했다. "원론적으론 그 비슷한거 맞아. 네가 지금 가는 곳에는 기밀 정보가 있어. 이 업데이트를 통해 관측 필터를 적용해서 네가 봐선 안될 것들은 다 가릴거야. 넌 무기만 집어들고 돌아오면 돼."


"그 무기란건 볼 수는 있는거에요, 아님 내 친구가 위에서 저러고 있는 동안 난 눈먼채로 허우적대고 돌아다녀야하는거에요?"


"무기는 따로 강조처리될거야. 헤븐즈 도어 개방."


"헤븐즈 도어? 이름을 무슨...악!" 에반게리온조차 왜소하게 만드는 거대한 문이 열리자마자 온 세상이 회색빛에 아무 디테일도 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깔끔하던 시야가 갑자기 90년대 초 컴퓨터 게임처럼 기하학적으로 극히 단순한 형태가 됐다. "이렇게 해놓고 뭔 수로 길을 찾으란거에요?!"


"그냥... 앞으로 쭉 전진해. 직선거리로 정면 400m 지점이야."


"술 쳐먹고 만든 게임 화면 같단 말이에요!"


"5분만에 만든 코드에 뭘 바래! 불평은 그만두고 빨리 움직여!"


불평을 중얼거리며 최대한 빨리 앞으로 움직이는 아스카. 그래픽이 개판이라도 어쩔 수 없다. 의외로 도움이 되는 구석도 있었다. 회색과 직선으로 구성된 세상에서 번뜩이는 외곽선은 한눈에 들어왔다.


"창인가...? 뭐지?" 아스카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뭔지 고민할 시간 같은건 없었다. 뭐가 됐든 빨리 쓰는게 우선이다. 에바 스케일에 맞게 거대한 붉은 창의 창대를 잡고 몸을 돌려 떠나려는 아스카.


...그렇게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잡아 당겼는데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다. "아 정말 짜증나네! 빨리 나와!" 자세를 고치고 더 제대로 잡아당겨본다. 박혀있는 무언가로부터 천천히 뽑혀나오기 시작했다. 전혀 만족스러운 속도는 아니었다. 아스카는 관측창에 거대한 직사각형으로 뜨는 모종의 물체에 발을 갖다대고 있는 힘껏 밀어내기 시작했다.


창이 기괴한 쩌어억 소리와 함께 뽑혀나오고 2호기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찌됐든 창은 튀어나왔다. 아스카는 재빨리 일어나 문쪽으로 뛰어갔다. 뒤에서 들려온 거대한 첨벙 소리는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으으으.... 저리.... 가...."


고개를 휙 드는 미사토. "레이?! 방금 뭐라고 했어?"


"저리... 가슴... 아파..."


레이의 마구 흔들리는 시선은 아직 통신창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까 의식을 잃은 뒤를 기준으로는 제일 명료한 움직임이었다.


"조금만 버텨, 레이! 아스카가 가고 있어!" 레이의 주의를 끌어보려 하지만 통신 채널로 울려퍼지는 카오루의 비명 때문에 쉽지 않다. "나기사, 너도! 아스카가 곧 갈거야!"


"미사토씨! 출격시켜주세요! 제발!" 신지가 간청하고 있었다.


"그럴 수 없다." 깔끔하게 거부하는 겐도.


미사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사령관님, 죄송하지만 이렇게-"


"초호기는 그대로 대기한다. 발진 시켜봐야 무력화될뿐이야."


"아버지!"


"통신을 끊어라."


휴우가가 고개를 휙 쳐들었다. "사령관님-"


"끊어. 명령 불복종을 하나하나 들어줄 이유는 없다."


휴우가가 말없이 미사토를 쳐다봤다. 미사토는 사령관과 언쟁하고픈 충동을 억눌러야했다. "신지 무전 꺼."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휴우가가 버튼을 누르자 신지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신지는 통신창에 떠오른 '음소거' 배너를 보고 말을 잃었다. 곧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좋아요! 아버지가 원하는게 이런거라면!"


내면에 집중하는 신지. '어머니! 도와주세요!'


초호기가 주먹을 쥐었다.









통신으로 들려오는 비명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다른 귀로부터 완전히 감추고 있었다. "이카리, 너무 앞서나가는거 아닌가? 저걸 사용하는건 이르네."


겐도는 잠시도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위원회는 이미 에바 시리즈의 양산에 들어갔다. 지금이 기회야, 후유츠키."


"그래도..."


"시계바늘을 뒤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미는 것은 가능해."


"노인들이 용납하지 않을걸세."


아주 미세하게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겐도. "제레가 행동에 나서기 전에 마무리해놔야 할 일이야. 영호기와 그 파일럿을 지금 잃는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3호기는?"


또 한번의 으쓱임. "제레의 졸개는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상관없어."


"허락도 없이 롱기누스의 창을 멋대로 썼다간, 보복이 뒤따를걸세..."


"적당히 둘러댈 이유만 있으면 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콧방귀를 뀌는 후유츠키. "이유? 자네가 말하는건 핑계겠지."


"3호기 파일럿의 뇌파가 불안정합니다! 영호기 파일럿은 0.06 까지 감소!" 이부키 중위가 경고했다.


"생명 유지에 문제가 생기는 수치야." 리츠코의 말투에 불안감이 역력했다.
















"그아아아! 그르으으윽...아아아아아아!" 카오루는 정신을 집중하려고, AT 필드를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눈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레이가 움직이기 시작한건 거의 인지하지도 못했다. 옛 기억과 두려움이 아직도 그의 정신을 꽉 붙잡고 있었다.












열다섯명이나 됐다. 여태껏 본 중 제일 많은 숫자였다. 제레의 구성원들이 그를 직접 마중하러 나온 것이다. 다들 미소 짓는 얼굴로 그가 얼마나 위대한 임무를 수행하러 가는 것인지 말했다. 카오루는 환상을 통해 자신이 아마 실패할거라 알고 있었다. 인류보완이든, 죽음이든, 어찌됐든 고통의 끝인 것은 같았다.


바이올린을 가져가는건 허용되지 않았다. 그건 조금 슬펐다. 다른 소지품이 있거나 한것도 아닌데.


그래도 그는 미소지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숫자의 사람들이었고 모두가 그 자신부터가 기다리고 있는 죽음으로 그를 떠나보내는데 기쁜 기색이었다.


좋았다.










"2호기 상승중! 사출기까지 90초 남았습니다!" 아오바가 보고했다.


"나기사! 후퇴할 수 있겠어?" 다시 말을 걸어보는 미사토.


비명과 헛소리만이 되돌아왔다.













"날 죽여, 레이. 제발!"


"신지가 직접 하게 내버려뒀어야 했는데. 아님 지금이라도 아스카한테 넘기거나. 아스카는 아주 기꺼이 죽일거니까." 퍼스트 칠드런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온기도 없었다.


"미안해! 내겐 선택권이 없었어!"


"그럼 처음부터 거짓말한거지. 그땐 선택할 수 있다고 했으면서."


"난 정말로 노력했어! 내가 약했을뿐이야! '부름'은-"


"한심한 것. 난 내 부름에 저항했어. 이 실패작아. 내가 대체 너에게서 뭘 봤던걸까."


"그냥... 끝내줘. 날 죽여줘. 다 끝내달라고."


"그럼 가서 끝내, 이 쓰레기야. 신지가 죽었으니 이 세상이 어떻게되든 난 상관없어." 아스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네가... 네가 신지를 죽였어!"


"어쩔 수 없었어! 날.. 날 막으려고 했으니까!"


"배신자. 거짓말쟁이. 배신자."


"미안해! 제발..!"


"거짓말쟁이."








초호기가 팔을 굽혔다. 구속구의 잠금장치들이 삐걱거리다... 부서지며 몇톤짜리 잔해를 사방에 흩뿌렸다. 잠시 후 두 팔 모두 해방됐다. 신지는 그대로 수동 사출 버튼을 눌렀다.






"초호기 발진 중입니다!"


미사토는 아오바에게 몸을 돌렸다. "뭐라고?"


"수동 사출 기능을 사용했습니다!"


"구속구는 어쩌고?"


키보드를 두드려보는 아오바. "구속구는... 부서진 모양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전력을 차단해라. 초호기가 지표면에 닿게해선 안된다." 겐도가 명령했다.














사출기의 전원이 끊기며 끔찍한 쇳소리와 함께 초호기가 멈춰섰다. 초호기 본체의 전력도 끊겨, 붉은 비상등이 켜지고 내장 배터리 제한시간이 플러그 인터페이스에 떠올랐다.


신지는 욕설을 내뱉으며 조종간을 내리쳤다. "좋아! 5분이면 충분해! 조금만 기다려, 레이, 카오루군!"


신지는 초호기를 사출기로부터 분리하고 통로의 측면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출구를 봉쇄해라. 이런 일에 낭비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겐도가 명령했따.


두꺼운 강철 방폭문이 사출구를 막기 시작했다.


거대한 보라색 주먹이 곧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레이는 눈을 깜박였다. 의식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엔트리 플러그 안에 있는건가? 누가 비명을 지르나? 목이 아프다. 지금 비명지르고 있는게 본인인걸까?


눈에 초점이 잡히질 않았다. AT 필드가 밖으로 노출된 신경 같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따끔거렸다. 누군가... 누군가 근처에 있다..?


사도다!





적을 죽여!


레이의 손.. 혹은 릴리스의 손일까? 영호기의 손이 부들부들 떨며 왼쪽 어깨를 향하고, 거기서 튀어나온 프로그레시브 나이프를 붙잡았다.


적을 죽여....







"영호기 활동재개했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나이프를 장비...?" 아오바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묻어났다.


미사토는 다시 레이에게 말을 걸어봤다. "레이, 뭐하는거야? 후퇴해! 200 미터 남쪽 지점에 회수용 해치가 있어!"


"죽여... 사도... 사도가 옆에..." 레이가 웅얼거렸다. "죽여...적을..."


영호기가 몸을 뒤틀고 있는 3호기를 향해 반쯤 걷고, 반쯤 기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적이 근처에 있었다. 초점도 생각도 집중할 수 없었지만 느낌만은 분명했다. 아담 스폰의 걸리적거리는 존재감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레이는 이 세상을 보호해야한다. 친구들을 보호해야한다.


레이는 나이프를 들어올렸다.






"레이! 멈춰! 그건 3호기야!" 미사토가 소리쳤다. 푸른 에반게리온은 이제 3호기에 팔이 닿는 거리까지 가있었다. 검은 에반게리온은 이제 땅에 쓰러져 마구 몸부림치고 있는 상태였다.


영호기는 3호기를 비추고 있는 사도의 광선까지 들어가, 팔을 쳐들었다.


사도의 빛이 살짝 틀어져 다시 영호기를 비췄다.


레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초호기가 시가지 지하 경계까지 도달했습니다! 이대로면 1분 안에 지표면에 도착합니다!" 아오바가 말했다. "전력은 3분 32초 남은 상탭니다!"


겐도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LCL 압력 최대치까지 올려."










신지의 몸 주변에 압박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곧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은 압력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압력이 줄어들고, 곧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신지는 지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요, 어머니.'


 






"LCL 압력 기능이 응답하지 않습니다. 시스템 고장입니다! LCL 순환도 멈췄습니다만 문제가 생기기 전에 본체 전원이 다할겁니다!" 아오바가 말했다. "2분 48초 남았습니다. 초호기 지표면 도달!"


10년 이상을 알고 지냈기에 후유츠키는 겐도의 어깨가 미세하게나마 굳어지는걸 눈치챌 수 있었다.





"레이! 카오루군! 내가 왔어!"


바쁘게 내딛는 발에 도로가 마구 패였다. 마지막 모퉁이를 돌때는 미끄러져서 반대편의 무장 건물에 부딪혔다.


저 앞에, 영호기가 3호기 앞에서 나이프를 치켜든 모습이 보였다.












"2호기 2지역 통과중! 곧 지표면으로 나옵니다!" 휴우가가 보고했다.


'저게 롱기누스의 창이다 이거지. 저건 밑에 있는 사도보다 덜 중요한 비밀이다 이건가? 왜?' 고심하는 미사토였다. 


붉은 에반게리온이 손에 창을 꽉 쥐고 사출구 플랫폼에서 걸어나왔다. "신지, 이 바보 멍청아! 레이 데리고 빨리 피해!"


"카오루군도 구해야해!" 


초호기는 두 에바의 옆에 도달했다. 조명탄처럼 도로를 밝히고 있는 사도의 빛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이전에 사하퀴엘을 저지했을 때처럼 AT 필드를 전개한다.


"아무도 죽지않아! 내가 있는 동안은!"


반경 1 킬로미터의 모든 창문이 동시에 깨져나갔다.


"이 빌어먹을 바보야! 네 생각도 좀 해!" 아스카는 머리 위로 창을 들어올리며 창대를 굳게 고쳐잡았다. "미사토, 이거 제대로 되는거겠죠!"


"창에 유도기능이 달려있다. 조준이 끝나면 바로 던지면 돼." 후유츠키의 지시였다.


아스카는 몸을 뒤로 젖히고,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내 친구들 놔줘, DU VERFICKTEN HURENSOEHNE!"


2호기는 전신의 근육을 모두 동원해 하늘로 창을 던져올렸다. 아킬레스가 그 광경에 부러워하고 호메로스가 아름다움을 찬양할만한 투척이었다. 그것은 의로운 분노와 사랑으로 쏘아진 것이었다. 온 하늘이 그 가는길을 따라 불타올랐다.


창이 괴성을 내며 하늘로 쏘아지자 먹구름이 마치 크기가 커지는 반지처럼 폭발하며 찢어졌다.











레이의 눈에 마침내 초점이 돌아왔다. 초호기가 영호기의 손에서 부드럽게 나이프를 빼내는 모습을 멍하게 쳐다보는 레이.


'아.. 신지가 왔네. 다 잘된거구나, 그럼... 아스카는 어딨지? 안아주고 싶은데..'


'...온 몸이 아파.'


생각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창은 상승하며 계속 가속해, 채 20km도 가기 전에 마하 9를 돌파했다. 아라엘의 AT 필드는 마치 포탄에 직격당한 유리창처럼 깨져나갔다.


죽어가는 사도가 낸 비명 소리는 우주의 진공마저 뚫고 주변에 울려퍼졌다.






"목표 완전히 침묵." 아오바의 목소리에 안도감이 가득했다.


"에바 영호기, 초호기, 3호기 모두 안정되고 있습니다. 심리 그래프 일반 수치로 되돌아갑니다."


"초호기 손상은?" 차가운 목소리로 묻는 겐도.


"없습니다. 창이 목표에 도달할때까지 신지군의 AT 필드가 견뎌낸 것 같습니다."


"창은 어떻게 됐나?" 후유츠키의 질문이었다.


휴우가가 잠시 자신의 콘솔을 두드렸다. "제 1 우주속도를 돌파, 현재 달 궤도로 향하고 있습니다."


"회수할 방법 같은건 없겠군." 한숨을 내쉬는 후유츠키.


"그렇습니다."


깍지 낀 손 밑에서, 겐도는 미소지었다.













"너! 바보야! 이 멍청한.. 멍청한 바보야! 다신 그런 짓 하지마!" 아스카의 노려보는 눈이 '신지! 너 때문에 무서워 죽을뻔 했어! 절대로 그러지마! 사랑해!'라고 말하고 있었다.


"미안해, 아스카. 그런 약속은 할 수 없어." 비록 미안하다는 듯한 미소와 함께였지만 신지의 눈빛은 담담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나도 알아." 아스카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2호기를 다른 에바들 쪽으로 몰아갔다. "레이는 괜찮은거지?"


"레이?"


".....으으응...." 영호기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카오루군? 듣고 있어?"


3호기로부터 아주 조금 더 큰 소리가 들려왔다. "난......듣고있어, 신지군." 기침하는 카오루. "아야나미씨는 괜찮은거지? 이것밖에 못해서... 미안해."


"레이는 살아있어, 카오루군." 신지는 빠르게 다가오는 2호기로 시선을 돌렸다. "해냈어, 아스카. 다들 무사해."


통신창에 뜬 아스카는 아직 화가 덜 풀린 얼굴이었다. "오, 그렇겐 못넘어가지! 오늘 한소리 들을 각오 단단히 해놔. '너무 용감해서 바보 같은 우리의 영웅이에요' 이런건 변명으로 인정 안할거니까. 밤에 아주 각오하라고!"


"아스카, 난-" 그 순간 전원이 다하며 초호기가 축 늘어지고, 통신도 끊겼다.


"그걸로 도망칠 수 있을줄 알고, 바보 신지! 오늘은 절대 그냥 안넘어가!" 아스카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조종석에 등을 기댔다. "나 어떡하지. 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그 웃음도 새 통신창을 열자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레이..." 조심스럽게 불러보는 아스카. "너.. 괜찮은거지?"


레이가 힘없이 고개를 들렸다. 코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좌우 동공의 크기가 다른 것을 보자 아스카의 입에서 쉬잇하고 충격 받은 쇳소리가 새어나왔다. "...카, 스카.. 있어... 신지.. 여기.. ㄴ기사..."


아스카는 어깨를 움츠렸다. "레이, 억지로 말 하지마. 곧바로," 얼굴을 찡그리는 아스카. "아카기 박사한테 데려다줄게. 쉬고 있어. 우리 이겼으니까."


힘없이 미소지어보이려는 모습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레이는 곧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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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고 제노사이드 들간다.


아라엘전 직전에 보면 여기까지 진행된 신지랑 아스카가 아라엘 빔 맞는다고 큰 타격이 있을까? 하는 반응이 있던데 그래서 그런가 레이랑 카오루가 직격으로 맞네. 


또 생각해보면 신지랑 아스카가 맞더라도 위기 조성할 껀덕지가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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