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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번역/ 에반게리온 제노사이드 8-6

ㅇㅇ(14.6) 2021.08.10 00:54:31
조회 1055 추천 30 댓글 22
														

도저히 이 부분 놔두고 딴거 할 수 없어서 이것부터함


어드바이스 앤 트러스트는 평소보다 분량 긴게 임박해서 내일은 그것만 한개 하고 제노사이드는 못할덧? 레이드도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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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영웅은 무슨.


길고 무익한 수색 끝에, 신지는 오후 늦은 시간이 되서야 집에 돌아왔다. 현관문 앞에 멈춰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신지. 하지만 출입 카드를 긁으려고 보니,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대고 가슴이 꽉 조여왔다. 미사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출입 카드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럼...


신지는 심호흡을 하고 집으로 들어섰다. 역시, 가장자리가 붉은 스니커가 현관 복도에 내팽겨쳐져 있었다. 텅 빈 주방을 지나 거실에 도착한 신지는 아스카의 방 쪽을 확인해보려다,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스카가 베란다에 서 있었다. 콘크리트 난간에 팔꿈치를 얹고, 고개를 푹 숙인채로. 아직도 체육복 차림이었지만 곳곳이 주름져 엉망이었다. 부르마에 넣어입는 체육복 윗옷이 밖으로 빠져나와 거의 부르마 전체를 덮고 있었다.


등을 돌린채라 신지가 집에 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무시하고 있거나. 둘 중 어느쪽이든 아스카는 돌아서지 않았다. 아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신지는 책가방을 거실에 내던지고 베란다로 향했다. 문을 살짝 밀어 더 열고 조심조심 걸어나가본다. 가슴이 콩닥대는게 거의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신지는 곧 자신에게 쏟아질 분노에 대비해 마음을 굳혔다. 바깥 하늘은 호박색 물결이 파란색을 지워나가는 것 같이 한창 밝은 주황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태양이 지평선 근처에 걸려 석양이 닿는 모든 것을 주황색으로 물들이며 길고 깊은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스카는 아직도 반응이 없었다. 신지는 그렇게 얻은 몇 초 동안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해봤다. 아무것도 떠오르는게 없었다. 신지의 감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 깊은 죄책감과 후회와 상처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하긴 할까?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신지는 무슨 말이든 해야했다. 아스카의 기분을 낫게 만들어줄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 결과로 또 자신에게 화를 내더라도. 이번엔 도망칠 수 없었다. 그런 선택지 따위 아스카가 소중하다고 고백했을때 이미 스스로 지워버린지 오래였다.


그래서, 신지는 한 걸음, 한 걸음 아스카에게 다가갔다.


"왜 왔어?" 몇걸음 거리까지 다가가자 비로소 거친 목소리로 묻는 아스카. 신지는 깜짝 놀라 거의 펄쩍 뛸 뻔했다. 아스카가 신지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자 긴 적금발 가닥이 바람에 휘날렸다.


신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준비가 안됐다. 뭔가 바보같지 않은 말 몇이 떠올랐지만 전부 무성의한 사과처럼 들리는 것들 밖에 없었다. 아스카가 그런걸 원할 리가 없었다.


"위-위원장이..." 어색하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마침내 중얼거리는 신지. "무슨 일 있었는지 얘기해줬어. 괜찮아, 아스카."


"나가." 아스카의 목소리가 정말 위험할 정도로 낮은게 그대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아스카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고개를 돌려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냥 그렇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는 신지였다. 아스카가 원하는 대로-


그때, 신지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아스카는 팔꿈치를 난간에 대고 손으로는 얼굴을 감싸쥐고 있어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 속에 묻히고 있었다. 그런 자세에선 손가락 관절쪽이 눈에 확 띌 수 밖에 없었다. 너클 부분이 새카맸다. 아무래도 말라붙은 핏자국 같았다.


신지는 충격에 숨을 들이켰다. 두려움도 완전히 잊혀졌다.


"그거 아프겠어."


신지는 천천히, 마치 조금이라도 겁나면 물어버릴 것 같은 다친 동물에 접근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아스카는 확실히 그런 동물처럼 행동할 것이다. 폭력적으로. 그래도 아스카의 피를 보자 신지는 용감해질 수 있었다.


"그게 뭐 어쨌다고?" 아스카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 원래 아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말이었다. 정말인 것 같아서, 신지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더 슬픈 말이었다. 신지에게도 책임이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달리 손에 난 상처는 신지도 고칠 수 있었다.


"보게 해줘." 신지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꺼져!" 아스카는 휙 몸을 뺐다.


회오리처럼 혼란스러운 움직임들이 뒤따랐다. 아스카가 빠져나가는걸, 혹시 그러다 또 다치는걸 원하지 않았던 신지는 황급히 손을 뻗어 아스카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스카가 발꿈치를 땅에 대고 몸을 뒤틀어, 신지는 아스카의 손을 잡아당겨야 했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아스카쪽으로 끌려갔다. 잠깐 균형을 잃은 신지는 막 몸을 뒤틀던 아스카에게 그대로 쓰러졌다. 아스카가 몸을 뒤로 빼자 신지는 난간과 아스카 사이에 끼어들어갔다.


폐에서 공기가 단번에 빠져나가, 아스카의 손을 놔주고 옆구리를 부여잡아야했다. 아스카는 다시 신지쪽으로 몸을 돌렸지만 뒷걸음질치려다 왼발이 베란다 의자에 걸려버렸다.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었다. 아스카는 잠시 비틀거리다 큰 소리를 내며 옆구리로 넘어졌다. 신지는 무릎이 후들거려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일어나 앉아 신지를 노려보는 아스카의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손에는 아까보다 심하게 피가 나고 있었다.


"이 멍청아!" 고래고래 소리치는 아스카. "이 바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가는 몸을 웅크리고는 손을 들어올려 얼굴을 가린다. "난 ... 네가 ..."


미워, 신지는 속으로 대신 마무리했다.


그날 밤의 재림처럼 느껴졌다. 신지가 아스카를 미워한다고 한 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신지는 그날의 실수로부터 배움을 얻었다. 처음에는 아스카를 멀리하게 만들었고 나중에는 아스카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게 만든 그 가슴의 통증으로부터 신지는 배웠다. 지금도 용기를 쥐어짜야하긴 했지만, 신지는 아스카를 홀로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아스카가 어떤 상처를 줘도 그럴 수 없었다.


신지는 천천히 아스카의 곁으로 갔다. 옆구리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사도와의 전투 이후 차츰 나아가던 가슴도 다시 통증이 도져 마치 유리조각을 폐에 뿌려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무시하고, 신지는 아스카의 피흘리는 손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아스카는 훌쩍거리며 눈을 비볐다.


"네 동정 같은건 필요 없어." 작게 중얼거리는 아스카. "그건... 날...."


가리려고 애쓰고 있지만 상기된 볼에 눈물 자국이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스카의 눈은 지치고 잠겨 있었고 너무나 새파란게 마치 사파이어 같았다.


"동정이 아니야." 신지는 아스카의 손을 감싸쥐었다. 아스카의 손가락이 마치 깃털처럼 신지의 손바닥을 스쳤다. "부탁이야, 난.. 난 아스카 기분이 나아졌으면 하는 것뿐이야."


"넌 못해," 아스카는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아무도 못해. 넌 그것도 모르잖아."


신지는 고개를 숙여 아스카의 손을 봤다.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도저히 똑바로 눈을 마주치고 들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클이 정말 엉망이었다. 피부가 곳곳이 까여있고 피가 나고 있었다. 피가 나지 않고 있는 곳들은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전부 퉁퉁 부어 있었다. 뭔가를 한대 때려서 생길만한 상처가 아니었다. 아주 단단한걸 계속해서 쳤으리라.


무의식적으로 신지는 손가락을 펴 아스카의 손등을 부드럽게 훑었다. 마치 직접 닿으면 다치게할까 겁나는 것처럼 살갗에 간신히 닿는 정도였지만 상처가 뜨겁게 열을 내고 있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신지가 의사나 뭐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판단에 그런게 필요하진 않았다.


"빨리 소독 안하면 덧날거야."


아스카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눈물도 멎었고 그 자리에 분노처럼 보이는 것이 돌아와 있었다. 그러고는, 한참 후에, 얼굴을 들고 있는 것도 포기했는지 어깨를 푹 수그리고 고개도 더더욱 깊이 수그렸다.


"이런거 느끼기 싫어," 아스카가 속삭였다. "혼자 있기 싫은게 싫어. 누가 신경써주길 바라는게 싫어. 그런거 생각하는게 싫어. 네 생각하는게 싫어. 이런 감정이 싫어."


신지는 뭐라고 반응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죄책감이 온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것도 신지 때문이었던 것이다. 물론 아스카의 일이란게 절대 그렇게 단순한적은 없었지만. 신지를 정말로 놀라게 한 것은 그 완전할 정도로 절망적인 목소리였다. 이미 다 포기해버린것 같은 아스카의 목소리.


신지는 자신이 아스카를 생각하는만큼 아스카도 자신을 생각해도 아무 문제 없는거 아닌가 생각했다.


"아-아스카, 내-내 생각해?" 놀란투로 말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좀 너무 떨렸다. 신지는 아스카와 손가락을 엮고 마치 상처입은 새를 들어올리는 것처럼 부드럽게 아스카의 손을 감싸쥐었다.


아스카는 이마를 찡그리며 깊이 숨을 들이켰다. 그러곤 고개를 숙여 맞잡은 손을 내려다봤다.


"응," 아스카는 혐오스럽다는 듯 입을 비죽이며 인정했다. "많이. 나 정말 한심하지?" 웃음소리 비슷한걸 내는 아스카였지만 너무 힘이 없어 곧 흐느낌처럼 변했다.


"하..한심하지 않아. 나도 아스카 생각해."


가끔은 별로 점잖지 않은 방식으로. 아스카의 복장이랑 아스카가 예쁘다는 사실 때문에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 있는게 아니었다. 신지는 아스카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가까워지고 싶었다. 친구로 생각했다. 혹시 소망이 이뤄진다면 그 이상이 되고 싶었다.


아스카는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왜 생각하는걸 싫어하는건지, 혹은 싫어해야한다고 생각하는건지 궁금했다. 그렇게까지 나쁠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


"난 네가 아냐." 아스카가 말했다. "난 너랑 달라."


"그래, 아스카는 더 강-"


"너 바보야?" 아스카는 신지가 말을 끝낼 기회도 주지 않았다. 잔뜩 화난 기색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날 봐. 이게 강해보여?"


신지의 생각에 겉으로 강해보이는 것과 실제 강한 것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었다. 아스카 본인이 그 증거였다. 45kg이나 될까말까한 덩치의 아이가 에바에 타면 얼굴에 미사일을 맞고도 계속 싸울 수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한 것들을 숱하게 견뎌왔다.


"아스카는 강해," 신지는 지금 낼 수 있는 가장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스카는 나보다 강해. 이렇게 말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사실이야. 아스카도 속으로는 알고 있을거야. 싸울때도 언제나 앞장서잖아. 한번도 겁먹은 적 없이."


아스카는 고개를 들고 신지를 노려봤다. "그러고 매번 실패했잖아. 기억안나?"


"그렇게... 생각해선 안돼."


"그럼 어떻게 생각해야하는데? 한번 말해봐!"


"나도 몰라," 신지는 말해놓고도 스스로가 바보 같다 느꼈다. "그래도, 강함에는 그런 것만 있는게 아니야. 난 한때 내가 남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에바에 탄다고 생각했어. 예전의 나는 내가 비겁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에바는 괴물이라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아스카는 신지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기색이었다. "우린 달라! 넌 언제나 남들을 위해 싸웠지. 난 날 위해 했어. 네겐 선택권이 있었어. 난 다른 가진게 없어서 파일럿이 됐어. 난 정말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다른 것을 가져보려 한 적이 없어서 그런거잖아, 라고 생각하는 신지였다. 신지는 고작 1년 동안 에바를 조종하고도 숱한 고통을 겪었다. 아스카는 어릴때부터 평생 그 일만을 해왔다.


"그런 말 하지마." 부드럽게 말하는 신지. "세상에 에바가 전부는 아니잖아."


"내겐 전부야. 에바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 에바를 조종할 수 없으면 난 무시당하고 버려져. 쓰레기처럼. 벌써 한번 그랬어. 너도 그랬잖아. 너무 비참하고 아프고...." 아스카는 고개를 돌렸다. "...마마랑 똑같아. 카지도. 너도."


신지는 잠깐 망설였다. 아스카의 목소리에서 절절한 고통이 느껴져왔다. 갑자기, 어제 나눈 대화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어머니 같다고?"


"내가 에바를 조종하는건 그렇게 해야 특별해지기 때문이야. 그래도 그것보다 더, 나 자신을 위해 한거야. 그렇게 하면 마마가 다시 날 봐줄까봐. 근데 내가 파일럿이 된 날 마마는 ..." 아스카는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마마는... 가버렸어. 끝까지 내가 필요 없었던거야."


"난 아스카가 필요해."


뜬금없이 튀어나온 말에 아스카는 잠시 말을 멈췄다. 신지를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떨군다.


"아니. 넌 무적 신지야. 넌 나같은거 필요 없어. 넌 절대 지지 않아. 언제나 자랑하고 뻐기려고 나가있는거야. 나랑 비교되게 만드려고. 내게 굴욕을 주고 비참하게 만드려고." 아스카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손을 쫙 펴 가슴에 갖다댄다. "내가... 내가 기다리고 있을땐 와주지도 않았으면서!"


슬픈 사실이었다. 신지는 아스카의 마음이 빛나는 광선에 더럽혀지던 순간 아스카가 지르던 비명을, 그것을 듣고 있던 순간의 고통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 끔찍하던 시절 신지는 연달아 벌어지는 사건들에 완전히 압도되어 있었다. 만약 아스카가 자신에게 가깝게 다가오는걸 허락해줬어도 신지쪽에서 자신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는 아야나미가 죽었다가 돌아왔는데 아야나미가 아니었고, 카오루가 와서는...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아스카는 버려지고 잊혀진채 홀로 고통받았다.


"미안해." 신지는 정말 진심이었다.


"나한테 신경쓰는척 하지마!" 아스카의 대답이 거의 발작적이었다. "넌 그럴 자격도 없어. 그게... 그게 날.. 강간했을때 넌 대체 어디 있었어? 넌 이해할 수 없어. 넌 이해 안해. 2호기가 왜 비어있는지도 모르잖아."


나도 노력했어, 라고 신지는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얼마나 무의미하고 공허한 말인지도 신지는 이해했다. 노력만으론 아스카에겐 부족했다. 아스카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신지에게도 부족한 것이다. 아스카를 도우려면 신지는 더 솔직해져야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내게도 아무것도 없었어." 목소리를 유지하는게 힘들었다. "그냥... 죽지 않는게 다였어. 여기 오기 전까지는. 여기 오고 에바가 생겼어. 미사토씨와 레이를 만났어. 아스카를 만났어."


아스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달라."


"다르지 않아." 아스카의 빛나는 파란 눈에, 충혈되고 눈물로 가득하지만 신지의 눈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그 눈에 집중하며 말하는 신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정말 다르지 않아, 아스카. 우리 고통은-이 고통은," 신지는 가슴에 손바닥을 갖다댔다. "같아."


"내 고통이 어떤지 네가 어떻게 아는데?"


천천히, 신지는 손을 뻗어, 머뭇거리면서도 부드럽게, 아스카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면 ... 나도 알고 싶어. 이해하고 싶어. 그렇게 해서... 아스카를 위로하고 싶어."


"네 위로 같은건 싫어!" 아스카는 다시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이되어 몸을 돌렸다.


"아스카... 제발."


아스카는 온갖 감정들이 도가니속에서 끓어오르다 하나가 되어 대체 어떤 느낌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게 된 것 같았다. 고개를 젓는 그 얼굴에 원래의 자아에 그렇게 중요한 요소인 자존심과 분노가 모두 사라져 있고 다른 무언가가 떠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신지가 하고 있는 말이 불편할 정도로 깊은 곳에 닿고 있는게 분명했다.


"넌 아무것도 몰라," 중얼거리는 아스카. 눈이 촉촉히 젖어 있어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안단 말이야? 넌 그냥 바본데. 넌... 너는..."


신지의 뺨에도 씁쓸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스카를 돕고 싶어," 신지는 훌쩍였다. "어떻게 해야할지 가르쳐줘."


"넌 아무것도 못해." 아스카는 고개를 떨구고 조용히 흐느꼈다.


눈물 때문에 온 세상이 흐릿해진 신지는 아스카가 그곳에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처럼 아스카의 어깨를 꽉 쥐었다. "제발, 아스카."


아스카는 기다려도 답이 없었다. 영원 같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고는...


"약속해," 가까이 다가오는 아스카의 목소리는 간신히 귀에 들릴 정도였다. "상처주지 않겠다고 약속해.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무슨 행동을 해도.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


어떻게 그런걸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아스카에게 의도적으로 상처주지 않겠다고 할 수는 있어도,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거라는 약속은 아스카에게도, 신지 자기 자신에게도 할 수 없었다. 그런건 거짓말이다. 지킬 수 없는게 처음부터 뻔하니 안하느니만 못한 약속이다. 깨어진 약속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었다. 신지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못지킬걸 아는거야. 신지는 빠르게 차오르는 절망감 속에서 생각했다. 돕겠다고 약속하겠지만 언젠가 약속을 깨트리고 아스카가 옳았다는 사실만 증명하게 될거야.


"약속해!" 아스카가 신지의 팔을 붙잡고 격하게 흔들었다. 다른쪽 손, 아직 신지의 손을 잡고 있는 손이 꽉 죄어와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아님 널 증오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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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약속할게."


부드럽게, 아스카가 팔을 감아왔다. 신지도 따라하며, 아스카의 머리카락을 훑으며 어깨 뒤로 팔을 둘렀다. 아스카의 등에 올려진 손이 마구 떨렸지만, 다음 순간 신지는 자제심을 잃고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신지는 그대로 둘의 눈물범벅이 된 뺨이 한뼘거리에 올때까지 아스카를 끌어당겼다.


아스카의 호흡에 몸이 오르락내리락하는게 그대로 느껴졌다. 아스카쪽에서도 신지의 호흡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스카의 심장이 뛰는게 느껴졌다.


남은 거리를, 아스카가 스스로 좁혀왔다. 신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따뜻하고 빨갛게 상기된 뺨이 신지의 뺨에 와닿았다. 아스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신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도 더이상 필요 없었기에, 신지는 그저 아스카를 안은 팔에 힘을 더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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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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