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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번역/ 에반게리온 제노사이드 12-7

ㅇㅇ(14.6) 2021.10.04 23:39:37
조회 659 추천 29 댓글 15
														

오늘도 휴일이라 짧게 하나


분량은 길지 않지만 삽화는 많고 내용도 충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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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2호기가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격납고 벽에 부딪히며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었다. 실험용 격납고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튼튼하게 지어졌지만 그렇다해도 견디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벽면을 강화하고 있는 철판 여러개가 이미 휘어져 그 아래의 콘크리트를 노출시키고 있었다. 2호기가 저기서 빠져나오고 싶다면 빠져 나올 것이고 다른 어떠한 것도 그것을 막을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미사토가 할 수 있는건 제발 리츠코가 틀렸기만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건간에 2호기가 고통받고 있는건 명백했고, 2호기가 고통받는다는 말은 곧 아스카도...


미사토는 더이상 보고있을 수가 없었다. 반면 레이는, 주변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없이 서서,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처럼 2호기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다.


"미사토!" 아직 하루나의 콘솔 옆에 서있던 리츠코가 소리쳐왔다. "마야에게 보고 들어왔어! 초호기 탑승 완료!"


"속도 더 내라고 해."


통제실이 마구 흔들렸다. 잡을 구석이 없었던 사람들은, 미사토 포함,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허파에서 바람이 빠져나오는 와중에 강화유리를 거대한 붉은 무언가가 두들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이 와장창 소리와 함께 단번에 박살나고 날카로운 파편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미사토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고 머리를 팔로 감쌌다.


"미사토!"


유리조각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몸을 일으켜세워 무릎을 꿇자 겨우 1미터 남짓한 거리에 레이가 쓰러져있는 것이 보였다. 미사토는 두툼한 재질의 외투에 보호받았지만 레이쪽은 조금 운이 나빴다. 옆으로 누워 헐떡이고 있는 모습을 잘 보니 팔에 얇은 유리조각이 꽂혀 긴 상처를 만들고 있었다.


미사토는 무릎으로 기어가 레이를 들어올렸다. 레이는 조금 몸을 움찔했지만, 미사토가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로 올려두는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레이, 움직이지마." 미사토는 우려가 가득한 표정으로 내려다봤다.


레이는 그 말대로 움직이지 않고, 대신 조용히 말했다. "전 괜찮아요."


"휴우가, 아오바-" 리츠코가 근처 책상을 붙잡고 일어나고 있었다. "가서 마야 도와줘. 통제권 전부 주지령실로 넘기고. 하루나, 여기 남아서 2호기 관측해. 절대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고. 나머진 전부 대피. 장비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신지에게 상황 브리핑 할까요?" 문까지 반쯤 나간 휴우가가 되돌아서서 물었다. "무슨 상황인지 알고 싶어할겁니다."


"아니." 미사토가 말했다. 레이의 몸에서 유리 파편들을 뽑아내다 손바닥에서 피가 나고 있었지만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말할게. 그렇게만 말해둬. 그쪽 준비 끝나자마자 나한테 통신 연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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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기는 아직도 몸부림치고 있었다. 통제실이 또, 그래도 아까보다는 덜 격하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모두 대비하고 있었기에 다들 넘어지지 않고 대피를 이어갔다.


그러고는, 마치 죽음 직전에 저항을 포기한 짐승처럼, 2호기는 움직임을 멈추고 손을 푹 떨구더니, 고개만 들어 좌우를 훑어봤다. 네개의 눈만이 활기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미사토는 2호기가 저렇게 축 늘어진 모습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아스카는 파일럿들 중에서도 가장 숙련된 전사였고, 그녀의 에바도 자연스럽게 주인을 닮아 날렵하게 움직이곤 했었다. 지금 2호기는 축 쳐져 둔중한 꼴이었다.


어째선지, 인간이 아니라 짐승 같기도 했고.


레이가 꿈틀거리기 시작해 미사토는 창 밖의 괴물로부터 시선을 거둬들여야했다. "괜찮아, 레이. 괜찮을거야."











"기억해?"


암흑속에서 아스카의 정신이 낱낱히 까발려졌다. 잊고 싶은 순간들의 형상과 대화들이 눈 앞에 나타났다. 일본에 도착하기 전날 밤 카지에게 몸을 던졌던 순간, 신지에게 벽을 부수고 들어와달라고 초대했지만 버림받았던 순간, 가출하고 오물로 가득한 욕조에 누워있던 순간, 병원에 서서 등뒤에서 자신을 욕하는 간호사의 말들을 듣던 순간, 신지에게 널 미워한다고 말하고 그 말을 곧바로 돌려받은 순간.


"사도가 네 정신에 침입했던때 기억해? 그때의 감각을? 네 머릿속에 빛을 비추긴 했지만 그렇다고 직접 손을 댄 것도 아니었지. 근데도 넌 도자기처럼 산산조각 나버렸어. 남들에게서, 자기 자신에게서 숨기고 싶었던 것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왔지. 어머니를 다시 잃는것 같은 감각이었지? 말하자면, 네 존재의 요약본이 눈 앞에 스쳐지나간거랑 비슷한거야. 사도가 한 일은 너에게 너 자신을 보여준 것 그 이상도 아니었어."


"그랬을때 넌, 자신이 그렇게 강하다고 생각해왔던 주제에, 몸을 움츠리고 우는 것 말곤 아무것도 못했어. 그렇게 깊은 고통을 감당할 길이 없어서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던게 너야. 네 심장을 감싸고 있던 상자가 열리니까, 거기서 나온 감정들은 독이나 다름 없었어. 넌 그게 싫었어. 지금도 싫어해. 네가 신지를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할 수 없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야."


목소리가 잠시 잦아들고, 그 말이 불러온 공허감 속에 아스카는 몸부림쳐야했다.


"네가 병원에 있던 시절, 바보 신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면회 왔던 날 기억해? 그날 몸은 마취되어 있었지만 정신은 내가 무슨 얘기 하는지 알거야. 신지는 널 위해 온게 아니었어. 네게서 원하는게 있으니 온거였지. 널 만졌어.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해 널 사용했어. 아, 기억에 없다 이거야? 네가 거기 반쯤 죽어서 누워있을때, 신지는 네 이불을 들추고 발가벗겼어. 네 마음 같은 것에는 신경쓰지 않고, 그 어떤 사도들도 못한 수준으로 널 능욕한거야. 그 이기심이, 신지가 널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할 수 없는 이유야."


"이제 알겠지, 너의 사랑이라는 것도 결국은 가짜인걸. 그저 인간의 흠결에 불과한 무언가란걸. 그런 가짜로부터 해방되어야 넌 정말로,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 내 손을 잡으면 넌 온 세상의 영광을 얻고 어떤 어둠도, 어떤 어리석음도 없게될거야."


어둠속에서 떠오른 광경에 아스카는 속이 울렁거렸다. 빛이 쏟아져 흙더미와, 그 꼭대기에 마치 기괴한 꽃 같은 모습으로 세워진 비석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옆에, 어린 아스카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그것'이 아스카의 손목을 붙잡고 앞으로 끌어당겼다. 무엇을 보게될지는 아스카도 알고 있었고, 전혀 보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젠 저항할 힘도 없어 아스카는 힘없이 비석 앞까지 끌려갔다.


소류 쿄코 제플린.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 아스카는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으로 이 앞에 선 것은 어머니의 장례식때였다. 그 후로 한번도 어머니의 무덤에 찾아올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아스카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준 여인이 여기 묻혀 있는데 아스카는 한번 방문도 하지 않았다. 아스카는 과거를 묻어버린 끝에 가장 소중한 것마저 묻어버렸다.


"미안해요, 마마."


"이젠 네 말을 들을 수도 없어. 넌 네 어머니에게서 마음을 닫고, 그럼으로서 널 특별하게 만들어준 뭔가도 내버렸지. 여기 서있는건 네 어머니가 아니라 그냥 표식에 불과해. 깊은 상실을 물리적으로 표시하고 있는 표지." 그것은 아스카의 손목을 놔주더니, 아스카와 비석 사이로 걸어가 섰다.


아스카는 감정을 통제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한번 눈물이 뺨에 흐르기 시작하자 멈출 방법은 없었다. 이제 아스카는 한계선을 넘었다. 깨져가는 심장에는 이제 마지막 쐐기를 박는 일만 남았을뿐이다.


"어머니를 잃었을때의 느낌 기억나? 넌 그때 울지 않았잖아. 왜 지금와서 우는거지?"


대답할 수 없었다. 아랫 입술이 통제불능으로 마구 떨렸다.


"넌 배운게 없어? 바보 신지가 너한테 무슨 감정을 품고 있다고 네 멋대로 생각하든, 네가 그에게 무슨 감정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든, 상관 없어. 결말은 언제나 똑같이 여기니까. 모든 것은 죽으며 끝나는거야. 네가 어떻게 행동하든 상관없어. 네 온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다해서 사랑해도 넌 언젠가 그를 잃을거야. 어머니를 잃은 것처럼. 그때가 오면 누가 남아서 널 위로해줄까?"


두번째 비석이 흙더미 위에 생겨났다. 이번엔 다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카리 신지.


절망에 휩싸인 아스카는 고개를 저으며 풀썩 쓰러졌다. 손과 무릎으로 기는 것 같은 모습이 됐다. 땅바닥에 눈물이 떨어져 작은 웅덩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만해..."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제발, 그만... 제발.... 그만..."


"마음의 상처는 다시 찢어지긴 쉽고 닫기는 어려운 법이지. 그만해달라는 이유가 뭐야? 단순히 아파서야? 아니면 이게 진실인걸 깨달아서야? 아님 둘 다?"


몇초 안되는 시간이 몇분처럼 늘어나고, 곧 그 몇분이 평생으로 늘어났다. 공허한 외로움의 평생. 아스카의 평생.


"아-아프니까!" 아스카는 마침내 속삭였다. 눈을 꽉 감자 흘러나오던 눈물의 줄기가 굵어져 턱과 밑의 흙을 적신다. "아파! 그만해!"


어린 아스카가 머리를 두드려줬다. "아픈건 나도 알고 있어. 고통이 곧 네 존재를 규정하지. 고통이 없으면 삶도 없는거야. 어떤 의미에선 넌 곧 고통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어. 내가 창조된 이유도 그것 때문이야. 세상 모든 것의 가치는 곧 그것의 사명이 결정하는 법이고, 내 사명은 바로 이거야.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너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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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아스카에게도 사명이 있었다. 에바를 조종하고, 저주받은 존재들을 저지하고 인류를 구하는데 자신의 재능을 쓰는 것. 이젠 아스카가 뺏긴 사명이다.


"이제 다 끝날거야. 널 영광스러운 길로 인도함으로서 나도 내 사명을 다할 수 있어. 넌 다신 아프지 않을거야."


절망속에서, 아스카는 제발 그것의 말이 맞기를, 다시는 아파도 되지 않기를 바랬다. 아스카는 너무 오랫동안 아팠다.


"제발 ... 아프지 않게해줘."


그 말이 그것을 기쁘게 했다. 만약 입술이 있었다면 미소지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무(無) 속의 하나에서 나왔으니, 모든 것은 다시 한번 무로 돌아가리라."


















"안돼요!" 신지는 조종간에 주먹을 내리치고, 전면 HUD에 떠있는 미사토의 얼굴을 쏘아봤다. "미쳤어요? 아스카랑 싸울순 없어요!"


"저건 아스카가 아니야. 우린 2호기의 통제를 상실한 상태야. 리츠코가 말하길-"


"다 괜찮을거라고 했잖아요!" 신지의 뱃속에선 분노가 두려움과 함께 미칠 것 같은 속도로 치솟아 심장을 터트려버릴 것 같았다. "괜찮을거라고... 괜찮을..."


"나도 알고 있어. 지금은 지금이야. 2호기의 통제를 잃었어. 리츠코가 말하길 저건 사도래."


신지는 토할 것 같았다. 몸이 싸늘해지고, 가슴이 텅 비고, 심장이 멈춘다. "그럼... 그럼 아스카는요?"


"우리도 몰라." 미사토가 침을 삼키는게 보였다. "네가-"


"아스카는요?!"


"우리도 몰라!" 미사토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미안해, 모든 연결이 다 끊긴 상태야. 부탁이야, 힘든건 알지만, 토우지랑 카오루때 같은 느낌인거 알지만, 정말 너한테 이런 일 시키게 된거 미안하지만 그래도-"


"왜 모르는거에요?" 신지는 신음을 내뱉었다. 미사토가 거의 미워지려고 했다. "이건 그때랑 달라요! 전 아스카를 사랑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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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미사토의 뺨을 때렸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미사토의 일그러진 얼굴이 몇단계의 충격으로 변화하더니, 결국엔 숨길수 없는 비통한 모습으로 안착했다. 신지는 한번도 미사토의 눈이 지금처럼 슬펐던 것은 본적이 없었다. "정말... 진심이니?"


"진심이에요! 아스카와 싸우지 않겠어요!" 다음에 이어질 말은 신지 스스로도 자기 귀로 들어야하는 말이었다. "전... 제가 죽겠어요. 아스카를 해칠수는 없어요. 알겠어요?"


미사토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부탁은 하지 않겠어. 내게도 아스카는 소중해. 내가 지금 부탁하는건, 2호기와 싸워서 아스카를 구해달라는거야."


"뭐라고요?" 절망속에 약간의 희망이나마 보이는 것 같았다. "어떻게요?"


"네 손으로 엔트리 플러그를 뽑아내는거야."


신지는 미사토를 노려봤다. 아스카와 자신을 이 상황에 빠트린것을 원망스러웠지만, 또 다른 수단이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했다. "그렇지만... 연결되어 있는거 아닌가요?"


미사토의 대답보다, 지금 신지가 서있는 반대쪽 벽이 움푹 튀어나오며 격납고 전체를 울리는 것이 더 빨랐다. 그쪽 벽에 붙어있던 강철 타일들이 휘어져 날아가고, 마치 빙산이 바다로 무너지듯 콘크리트 벽이 우수수 무너지기 시작했다.


"신지군." 미사토는 아까보다 더 침울한 표정이었다. "전부 네 선택에 달렸어. 우리쪽에서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것 같네. 미안해. 무슨 선택을 하든, 내게 넌 언제나 자랑스러웠다는 것만은 기억해줘. 어느쪽으로 선택하든 그게 네 진심이라면 난 이해할거야." 미사토는 손가락이 입술에 닿았다가, 스크린을 향하고, 화면이 꺼졌다.


그러고나서야 신지는 그것이 작별인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만든 어떤 것도 에반게리온의 분노를 오래 견딜수는 없었다. 지옥의 벽력성과 함께 격납고 벽이 무너져 콘크리트와 휘어진 철근의 산으로 변하고, 짙은 먼지구름이 격납고 전체를 가득 채웠다.


신지는 조종간을 꽉 붙잡고 앞으로 밀었다. 초호기가 그에 반응해 몸을 숙이고 준비 자세를 취했다. 근접전이 될 것이다. 기동할 공간도 없었고 한번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도 없을게 분명했다. 무엇을 하든간에, 정말 제대로 해야한다.


2호기는 낮게 몸을 숙이고 있었다. 먼지구름이 잦아들자 네개의 타오르는 눈이 신지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붉은 장갑은 광채를 잃고, 벽을 두드린 부위들 일부가 움푹 패여있었다. 2호기와 싸우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걸린채 싸우는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카오루때가 어떻게 끝났는지 상기하자, 아스카-


2호기가 몸을 날려왔다.


신지는 본능과 훈련에 기반해 반응했다. 간발의 차였다. 방금전까지 신지가 서있던 쪽 벽에 2호기가 몸을 부딪히고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버렸다.


기회였다. 회피기동의 모멘텀 때문에 멈추기가 쉽지 않았지만, 신지는 어떻게든 반대편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발이 콘크리트 가루로 미끄러워진 강철 바닥에 거의 미끄러질뻔 했다. 몸을 가누고, 아까 빠져나왔던 장소로 다시, 벽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2호기를 향해 달려간다.


충돌의 충격이 어찌나 강했는지 신지는 거의 조종석 밖으로 튕겨나갈뻔 했지만, 덕분에 2호기를 벽에 더 쳐박는데는 성공했다. 박살난 콘크리트가 주변에 구름을 만들어, 지금 적 기체가 새빨간 색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볼 수도 없을뻔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신지는 2호기의 날씬한 상체 밑으로 팔을 둘러 온 체중을 그쪽으로 실었다. 이걸로 무력화시킬 수 있기를 바랄뿐이었다. 나머지 한 손으로는 엔트리 플러그 삽입구를 가리는 장갑판을 떼어냈다. 플러그의 원형 모서리가 드러났다.


아스카가 코앞에 있었다.


2호기가 고통스러운듯 마구 몸을 비틀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다음 순간 그 목이 불가능할 정도로 늘어났다. 네개의 눈이 신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코앞이었다.


2호기가 초호기의 목을 깨물었을때, 처음에는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마치 손가락이 감겨온 것 같은 촉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아프든 아프지않든 상관 없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2호기가 턱을 다물자 뼈가 깨져나가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신지는 목을 부여잡았다. 갑자기 턱 바로 밑을 집게로 꽉 붙잡은 느낌이 들었다. 매순간마다 압력이 늘어나고 있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이제 초호기는 신지의 식도를 뜯어내려는 괴물을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상체에 가해져오는 압력이 줄어들자 2호기는 벽에서 빠져나와 몸을 돌리고는, 초호기의 몸을 벽쪽으로 밀어붙이며 목덜미를 문 머리는 뒤로 젖혔다.


신지는 2호기의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어떻게든 턱을 열어보려 시도했다. 그래야만 발로 걷어차서 떼어내면서 동시에 자기 목젖이 찢겨나가는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턱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신지는 숨도 쉴 수 없었고 활용할 레버리지도 없는 자세였다. 2호기의 체중이 묵직하게 전해져오자 이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하지만 초호기에겐 아직 비장의 수가 남아 있었다.


초호기가 자신을 제발 풀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느껴졌다. 통제를 놓아달라고. 폭주하면 신지는 살 수 있다고. 그렇게 해야만- 안돼! 절대 그럴 수 없었다! 2호기에는 아직 아스카가 들어 있었다. 절대로 아스카를 해칠 수는 없었다. 초호기가 아스카를 해치게 할 수는 없었다.


초호기가 신지와 싸우고 있었다. 초호기는 신지를 보호하고 싶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든 신지만은 살리고 싶었다. 살아갈 가치가 없는 일도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초호기는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나 소중해서 잃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초호기는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가, 세상 전체가 죽어도 상관없었다. 혹시 그렇게 모두가 죽으면 다시 아스카를 만날 수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신지, 제발...


익숙한 목소리의 뭔가가 머릿속에서 말을 걸어왔다. 그 목소리는-


안된다고, 신지는 대답했다. 미사토처럼 자신의 결정을 이해해줬으면 했다. 만약 이대로 죽어도, 최소한 아스카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고 죽을 것이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너무나 많지만 하나만은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팔이 축 늘어지고 눈에 눈물이 고여 시야도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몸을 휩쓰는 슬픔과 상실감은 신지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엔트리 플러그 내부의 LCL 전체에 초호기의 슬픔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초호기의 반항도 멈췄다. 그것도 신지를 이해한 것이다.


이제 2호기가 고개를 젖히면 신지의 목은 바로 부러질 것이었다. 조금 더 인내심이 있다면 이 자세 그대로 교살해버릴 수도 있었고. 턱이 더 세게, 더 세게 조여왔다. 초호기의 목뼈가 마침내 부러지기 시작하고 신지 자신의 것도 짜부라지기 시작하자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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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제 신지의 정신에는 하나의 생각이, 가슴에는 하나의 느낌만이 남았다. 마지막 남은 숨으로 그 둘에 매달려본다.



사랑해, 아스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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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토의 반응은 저기서 신지가 좋아한다 같은 말 안쓰고 사랑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묵직하게 꽂아서 그런것으로 보임. 신지 아스카 사이 심상찮은것 자체는 이미 8장쯤에서 인지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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