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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번역/ 에반게리온 제노사이드 15-10

ㅇㅇ(14.6) 2021.12.22 22:19:32
조회 475 추천 18 댓글 19
														

한 파트만 하기엔 너무 짧아서 뒷파트도 붙였더니 분량 존나 늘어났거든? 근데도 2막 전체 분량 스크롤은 내려가있을 기미가 없어서 걍 강행함;;


ㄹㅇ 작가가 이 챕터 쓰면서 미쳤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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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화)







손에 권총을 꽉 쥐고, 미사토는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구간을 힘껏 내달렸다. 그렇게 서두른 것도 무색하게, 실험용 격납고의 관측실에 도달하자 비정한 현실만이 반겨줬다. 자동문이 폭파되어 활짝 열려있는 문에선 연기와 전자기기가 타는 악취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훈련받은대로, 미사토는 문 바로 옆 벽에 등을 대고 섰다. 후우카가 뒤에 따라와 섰다. 그녀는 네르프의 황갈색 제복 위에 본인이 가져온 군용 장비를 덧대어 입은채로, 도심지 패턴 전술조끼를 받쳐입고, 팔꿈치와 무릎에는 보호대를, 머리에는 등에 멘 가방에 연결된 최신형 바이저를 쓰고 있었다. 비슷한 복장을 한 세 명의 미군 특수전 요원이 따라붙었다. 모두 SCAR 소총을 들고 있었다.


한창 달리던 와중에 하나하나 따라붙은 자들이었다. 마치 다친 가젤을 쫓는 치타 같은 광경이었었다. 허나 지금 그들은 포식자가 아니라 수호자로 이 곳에 온 것이었다.


지킬 사람이 남아있지 않을지도 모르는게 문제였지.


미사토는 자신이 발견할지도 모르는 광경에 대해선 감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들을 이미 잃은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도저히 견딜수가 없을 정도로 무서웠기 때문이다. 폭파된 문 앞에 서서 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은 지금부터 벌어질건지 알지 못하겠는 지금, 그 공포가 되돌아와 미사토를 집어삼켰다. 미사토는 눈을 꾹 감고 조용히 기도했다.


후우카가 미사토의 어깨를 툭툭 치고, 미사토가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자기 동료들에게 수신호를 전달했다. 요원들은 그대로 총을 겨냥하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관측실에 진입했다. 영원 같은 순간이 지나가고, 총성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곤, "클리어."라는 말이 들려왔다.


곧바로 "사상자 있음."이란 보고도 뒤이었다.


가슴이 철렁한 미사토는 황급히 문간을 넘어서며 내부를 훑었다. 평행하게 늘어서 있는 컴퓨터들은 여럿이 총을 맞아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아래쪽 실험용 엔트리 플러그들을 내려다보는 직사각형 관측창 곳곳엔 강화유리에 총탄이 직격했을때 특유의 거미줄 같은 금이 나있었다.


기술진 둘이 아직도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어 있었다. 둘 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컴퓨터들 사이를 가로질러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자, 이번엔 미사토가 아는 얼굴이 나왔다.


이부키 마야의 가냘픈 몸이 관측창에 커다란 혈흔을 남긴채 그 아래 쓰러져 있었다. 제복이 피로 흥건했고 몸 아래엔 그보다 많은 피가 고여있었다. 하나코란 이름의 미국인 요원이 그 옆에 무릎을 꿇고 급히 구급 키트를 꺼내들고 있었다.


마야는 아직 살아있었던 것이다.


미사토는 마야의 이름을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뒤에선 후우카가 나머지 분대원들에게 격납고를 확보하고 아이들을 수색하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미사토가 하나코의 반대편에 무릎을 꿇자 마야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얼굴이 아주 창백하고 눈이 멍했다. 숨 쉴때마다 배를 부여잡은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소-소령님... 제발..."


"아직 괜찮아." 미사토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투로 말하며 하나코쪽을 확인했다. 그녀는 마야의 손을 상처에서 떼어내면서 동시에 압박붕대를 처치하려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지원이 왔어."


마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잘 모르시는거에요.. 아-아카기 선배도 아직 몰라요..."


미사토는 입술을 깨물었다. 리츠코에 대해서 말해도 되는건가 싶었다. 마야는 리츠코를 숭배하다시피 했으니까. 이 일을 계획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략자위대의 침공을 돕고 있을 바로 그 사람을. 지금 마야의 상태를 보아하건대 리츠코의 진실을 알려줬다간 당장 쇼크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마야의 호흡소리가 거칠었다. 곧 몸이 펄쩍 뛰더니 피를 한움큼 토해낸다. 하나코는 상처 주변에 지혈대를 감는걸 마무리하고 이제 상처부위 바로 위의 제복을 찢어내고 있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가망이 없다는건 미사토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미사토는 총을 내려두고 마야의 손을 붙잡았다. "괜찮아, 마야. 괜찮아."


마야가 입을 열자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배는.. 아무것도 몰라요. 여기... 사령관만 노리고 온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무도.. 아무도 다칠 계획은 아니었는데.. 칠드런... 제가 문을 잠궜어요.. 할 수 있는건.. 그것뿐..."


미사토는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찡그렸다. "마야, 리츠코가 무슨 짓 한건지 알았던거야?"


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러곤 한번 또 헐떡이자 턱으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배가.. 아파요..."


하나코에게 미사토가 간청하는 눈빛을 보낼 무렵, 이미 하나코는 모르핀 주사기를 꺼내들어 마야에게 주사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건 이게 다입니다. 복부 총상은 출혈이 심해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미사토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지만, 귀로 듣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배에 총을 맞고 죽는 것은 느리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마야에게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보지만, 어째선지 울고 싶은 기분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미안해."


다시, 마야가 고개를 저었다. 얼굴은 이제 도화지처럼 하얘져있었다. "소령님은.. 절 믿어주셨어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전.. 너무 무서웠어요." 마야는 눈을 감았다. "죄송해요, 소령님. 모두를 구할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정말 바보였어요."


"그런 말 하지마." 미사토는 마야의 손을 꽉 쥐었다. "그런 말 하지마. 네가 남들을 위하는 성격인거 난 알아. 그래서 널 믿는거야."


마야가 다시 눈을 떴지만 미사토는 차마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실수를 했어요." 마야가 미사토의 손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힘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서-선배는 몰라요. 사령관만 노리고 온거라고 생각하지만.. 클루게.. 선배를 죽일거에요 ... 모두 죽일거에요.. 죄송해요..."


말이 입술을 떠나자마자 마야의 손에서도 힘이 빠져나갔다. 그러곤, 천천히, 거의 부드럽게, 마야의 눈빛이 흐릿해지다, 결국 공허하게 미사토를 바라봤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미사토는 뒤늦게 중얼거렸다. "난 널 용서해."


하나코가 피범벅이 된 손을 제복에 문지르며 물러섰다. 그녀는 미사토가 손을 뻗어 마야의 눈을 감겨주는 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카지 이래로 미사토가 한동안 느낄 일이 없었던 상실감이 오랜 친구처럼 되돌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에 천착하고 있을때가 아니었다. 아직 아스카와 신지가 남아있었다. 마야에게 줄 시간은 나중에 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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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카가 내려보낸 요원 둘이 돌아왔다. 후우카는 열린 문 주변을 사주경계하며 하나코와 미사토에게 공간을 주고 있던 차였다. 아마 마야를 발견하자마자 가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해준 배려 같았다.


"격납고 문은 폭파되어 있었습니다." 요원 하나가 탄흔이 가득한 관측창을 가리키며 보고했다. "잠겨 있어서 열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관측창도 뚫지 못한 모양입니다. 칠드런들은 없었습니다. 통풍구로 탈출한 것 같습니다."


후우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잠깐 뜸을 들이다 미사토에게 걸어왔다. "주격납고로 가야해요. 파일럿들이 갈 곳은 논리상 그곳 밖에 없으니."


미사토도 동의했지만, 이건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만약 신지 혼자였다면 어딘가에 숨는다는 합리적인 결정을 기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신지는 아스카와 함께 있었고, 아스카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뼛속까지 에반게리온 파일럿이었다. 아스카는 예측하기도 쉽고 또 너무 무모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스카는 자기 에바 이외의 다른 행선지 같은건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모두가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고 자칫 잘못하다간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아니요." 미사토는 하나코가 마야의 시신을 바닥에 뉘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말했다. "격납고가 아니라, 격납고에 도착하기 전에 찾아내야해요."


후우카는 조금 당혹한 표정이었다. "어디로 올지 알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찾는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어차피 에바 없이는 파일럿들은 그냥 어린애잖아요."


미사토는 재킷을 벗어 마야에게 덮어주고, 단호한 표정으로 후우카를 돌아봤다. "이 쓰레기들도 그걸 잘 알고 있어요. 에바 출격은 무슨 수를 써서도 차단하려고 하겠죠. 우리의 유일한 강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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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후우카의 얼굴에도 깨달음이 찾아왔다. "칠드런들이 격납고에 가는걸 예상하고 매복할거란 말씀이시군요." 후우카는 몸을 돌리며 바이저의 측면을 두드렸다. 투명하던 플라스틱이 청록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전원 산개. 적 발견시 단독 교전을 피하고 보고를 최우선."


두 요원이 장구류가 철컹이는 소리를 남기며 달려가는 동안, 미사토는 다시 한번 마야를 돌아봤다. 하나코는 아직도 마야의 곁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렇게 끝날순 없습니다." 후우카가 말했다. "파일럿은 이미 한 명 잃어봤습니다. 더는 용납할 수 없어요."
















아스카가 거의 열댓번을 걷어차고나서야 통풍창 뚜껑이 떨어져나갔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몸을 돌렸다는 사실 자체가 아스카의 몸이 얼마나 날씬한지, 그리고 얼마나 유연한지를 증거하고 있었다. 만약 여기 자기 혼자 있었다면 아마 할 수 없었을 일이라고, 신지는 생각했다.


아니, 혼자였으면, 여기까지 올 것도 없이 이미 죽었을거라고, 신지는 확신했다.


한쪽 귀가 아직도 심하게 울리고, 특히 날카로운 소리가 작게 멀리서 울렸다. 대체 몇 분을 환풍구에서 기어다녔는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 신지는 사실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마야가 총을 맞았는지, 왜 군인들이 자신을 쫓는건지. 그런 의혹에 휩싸여 멍하니 있는 신지를 아스카가 질질 끌고가야만 했다. 그러곤 폭발. 열과 압력에 최소한 고막 하나가 터진 것 같았다. 아스카가 다쳤는지 여부는 몰랐다. 사실 한동안 둘은 대화 한마디 없었다.


정말 부끄러운 상황이었다. 에바 파일럿으로서 위험에 노출된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이전까진 언제나 초호기가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엔 아스카와 레이도. 직접적인 공격에 노출되어보는건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 충격과 공포에 신지는 완전히 마비되어버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뚫린 환풍구를 통해 재빨리 나가는 것은 아스카였다. 신지로 말할 것 같으면 그냥 이곳에 남아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따라가봤자 아스카의 발목만 붙잡을 것이다.


그러고 있으니, 아스카의 손이 휙 뻗어와 신지를 끌어냈다. 좁고 밝은 복도였다. 신지는 일어나보려 했지만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아스카의 다리에 그대로 고꾸라져 아스카까지 끌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스카는 바로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고, 잠시 그대로 누워 있었다. 신지의 머리를 무릎 위에 둔 채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다. 


신지는 혹시 아스카가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렵고, 자기 자신에게 화가 치솟은 신지는 얼른 일어나 앉았다. "아스카, 괜찮아?"하고 묻는 자기 목소리가 귀에 이상하게, 그리고 작게 들렸다.


아스카는 손을 치우고 일어나 앉은 다음, 고개를 흔들며 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귀가 이상해."


신지는 침을 삼켰다가 귀에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아스카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지금 자신의 청력이 좀 나빠진 수준이 아니라, 아예 오른쪽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폭발의 순간에 신지의 왼쪽 귀는 아스카에게 딱 붙어 있었다. 그때문에 그쪽만 살아남은 모양이다. "어떻게 된거지?"


"환풍구에 수류탄을 던진거겠지."


"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스카의 얼굴이 갑자기 분노로 일그러졌다. "아까 총쏘기 시작할땐 누가 설명해줬어? 안해줬지! 누가 우리 죽이려고 하는데 그 외에 뭘 더 알아야한단거야!"


아스카는 벽에 기대어 억지로 일어났다. 무릎이 꺾이려고 했다. 슈츠의 반투명한 재질 너머로 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것이, 호흡을 통제하려 애쓰자 복근이 힘겹게 수축하고 거의 가려지지 않은 가슴이 들썩이는게 모두 훤히 보였다. 잠시 그러고 나서야 아스카는 벽을 밀치며 완전히 일어서서, 살짝 비틀거리며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어디가?" 신지는 자기도 벽을 짚고 일어서며 물었다. 갑자기 복도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균형감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마 귀가 단단히 망가진 모양이었다. 제발 영구적인 손상만은 아니길 기도하는 신지였다.


"어디가긴!" 대체 뻔한걸 왜 묻느냐는 말투였다. "에바에 가는거지!"


신지는 아직도 쨍하게 울리는 귀를 문지르며 비틀비틀 아스카를 따라갔다. "그렇지만..."


아스카가 몸을 휙 돌리자 사방에 적금발 머리가 휘날렸다. 그러곤 급작스런 움직임에 기우뚱하지만 넘어지진 않았다. "뭐?!"


"이건 사도가 아니잖아."


아스카는 마치 어머니 흉이라도 들은듯 이빨을 드러내며 신지를 노려봤다. 신지는 곧바로 가슴 앞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스카를 화나게 만드려던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도와 싸우는 것도 아닌데 왜 에바가 필요한건지 궁금한건 진심이었다. 모든걸 떠나서, 미사토를 찾는게 최우선인거 아닐까.


"지금 장난해?" 아스카가 마침내 소리쳤다. "공격받고 있잖아! 그게 사도든 뭐든 무슨 상관이야! 우린 에바 파일럿이잖아! 그럼 뭘 해야할것 같아?"


"미사토씨를-"


아스카는 말을 다 들어주지도 않았다. "너 아까 뭐 보고 있었어? 이부키 중위 죽이는거 못봤어? 우리 죽이려는거 못봤어? 미사토가 살아 있을거란 생각은 무슨 근거로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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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 누군가가 신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악의 말이 바로 그것이었으리라. 신지는 가슴이 꽉 죄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입에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마치 거리를 벌리면 지금 아스카의 말이 옳고 정말 미사토가 죽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바뀔 수 있다는 것처럼 신지는 아스카에게서 물러섰다.


신지의 가슴속, 미사토가 차지하고 있는 따뜻한 공간이 갑자기 공허해졌다. 미사토 같은 사람을 잃는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상실은 다시는 견딜 수 없다.


아스카가 한숨을 내쉬자 새빨간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신지에게 다가와, 이젠 수백번은 해온대로, 손을 잡고 손가락을 깍지껴온다. 신지도 아스카의 촉감에 익숙해진터라 예전처럼 움츠러들지 않았다.


머뭇거리며 고개를 들어보자, 아까까지의 차가운 분노는 온데간데 없고 그 자리엔 오직 아스카의 빛나는 파란 눈만이 내보일 수 있는 부드러운 진심만이 남아있었다.


"말을 그렇게 하면 안됐는데," 아스카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도, 미사토도 우리가 안전하길 원할거야. 에바만큼 안전한 곳도 없고." 그러곤, 아스카는 억지로 미소지어보였다. "나 혼자 보낼거야?"


아스카의 말이 전부 옳았다. 미사토는, 지금 어디에 있든간에, 신지와 아스카가 안전하길 바랄 것이다. 에반게리온의 내부만큼 안전한 곳은 없었고 신지는 절대 아스카를 홀로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신지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말은 필요없었다.


"그래. 같이 가자." 아스카가 말했다.


붙잡은 손 그대로, 아스카는 신지를 인도했다. 걷기 시작하자 균형감각도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오른쪽 귀는 아니었지만. 머리가 계속 울렸고 특이한 욱신거림도 이어졌다. 아스카는 걸음걸이도 갈수록 확실해지고 보폭도 넓어졌다. 상황이 급한 것은 동감했지만 그래도 조금 천천히 가줬으면 하는 신지였다.


복도가 곧 갈림길로 이어졌다. 아스카는 좌우로 고개를 돌려봤지만 어디에도 표지판 같은건 없었다. "어..." 아스카의 시선이 신지쪽을 향했다. "혹시 여기 길 알아?"


"아니." 격납고까지의 길은 둘째치고 지금 여기가 구체적으로 어딘지도 모르겠는게 신지였다. 표지판조차 주변에 없는 것이 아무래도 유지보수용 통행로로 들어온 것 같았다.


"좋아."


아스카는 자신만만하게 왼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신지는 바닥을 보고 걸으며 뒤따랐다. 그렇게 모퉁이를 돌다... 신지는 갑자기 멈춰선 아스카의 등에 부딪혔다.


신지와 단단한 무언가 사이에 낑긴 아스카가 신음했다. 신지는 그대로 뒤로 튕겨나 쿵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음 순간, 아스카가 소리쳤다.


"도망쳐!"


멍하니 고개를 든 신지는, 소총을 든 남자를 보고 경악에 빠져 그 자리에 굳었다. 아스카가 곧바로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뛰쳐나가 남자의 복부에 몸을 날렸다. 기습당한 남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뒤로 주춤했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아스카는 왼발을 바닥에 단단히 내딛은 다음 그것을 축으로 몸을 돌려 발차기를 질렀다. 아스카의 발이 옆구리에 직격했지만 아무래도 방탄복처럼 보이는 것에 보호받고 있었다. 남자는 얻어맞으면서도 그대로 아스카의 발목을 붙잡고, 앞으로 전진해 아스카를 넘어트렸다. 


넘어지면서도 아스카는 남자의 옷깃을 붙잡고 잡아당기며 한쪽 무릎을 그의 사타구니에 꽂아넣었다. 끔찍할 정도의 타격에 보고 있던 신지의 몸이 움츠러들 정도였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아스카의 몸 위로 쓰러졌다. 하지만 그는 온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상태에서도 두 손으로 아스카의 어깨를 붙잡았다.


남자가 손목을 붙잡으려는 동안에도 아스카는 마구 때리고 발길질했다. "당장 떨어져 이 새끼야! 죽여버릴거야!"


"그만!" 남자가 헐떡이며 소리쳤다. "죽이러 온게 아니야!"


"거짓말!" 아스카는 남자의 얼굴을 후려치고,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했다. "사람들 쏴죽이는거 다 봤어!"


하지만 신지는, 마야를 쏜 사람들과는 달리, 이 남자가 검은색 차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네르프 제복과 흑백 전투장비의 기묘한 조합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는 입과 코 양쪽 모두 얻어맞아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아스카를 때리지 않고 손목을 붙잡아 고정했다.


"이거 놔!" 아스카는 계속 발길질하고 소리지르며 반항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세가 사나워봤자 덩치에서 밀리는 십대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좀 진정해." 남자는 무릎을 끌어올려 아스카의 팔을 꽉 눌렀다. 아스카의 다리가 무의미한 저항을 계속하는 동안 남자는 사실상 아스카의 가슴을 고정시켰다. "이래봤자 다 소용 없다고."


"이 변태!" 아스카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난 열네살이야!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거야!"


남자는 진지하게 충격 받은 모습이었다. 그의 손에서 힘이 잠시 빠져나갔다.


아스카에게는 그정도면 충분한 기회였다. 손목을 잡아빼곤 마치 망치처럼 주먹을 힘껏 휘두른다. 얼빠져 있던 남자의 턱에 주먹이 그대로 꽂히고 목이 뻑소리를 내며 뒤로 꺾였다. 짐승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아스카는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스카, 그만! 우리편이야!"


망가진 귀로도 신지는 미사토의 목소리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까 넘어진 자리에 그대로 못박혀 있던채로 고개를 돌려보자 미사토가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네르프 제복에 전투 장비를 혼용한 사람 셋이 동행하고 있었다. 청록색 고글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래도 후우카의 갈색 눈은 알아볼 수 있었다. 후우카쪽에서도 신지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아스카도, 고개를 돌리더니, 분노한 표정이 빠르게 혼란으로 변해갔다. 미사토를 보고, 그 다음으론 후우카와 그녀의 옷차림을 본 다음, 상황을 깨닫는다.


"이게 그런게 아니라요!" 손을 들어올리고 분연히 소리치는게 마치 미사토의 화장품을 훔치다 걸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게.. 어..."


하지만 미사토는 그런 해명 같은것에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 대신 곧바로 신지에게 몸을 숙여 끌어안는다.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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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도 미사토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으며 끌어안았다. 그순간만큼은 부모자식 사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둘이 떨어졌을 무렵 아스카도 피칠갑을 한 남자를 놓아줬다. 그는 부러진게 확실한 코를 소매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코만 문제가 아니라 온 얼굴이 난장판이었다. 반대로, 아스카는 얼굴에 피가 좀 묻은 것을 제외하면-본인의 피도 아니었다- 좀 호흡이 가쁘긴 해도 아무 손상도 없었다. 상대쪽에서 일방적으로 맞아줬기 때문일 것이다.


충격에 몸이 굳은 아스카는 주변에 모여드는 요원들을 멍하게 바라봤다. 일부는 아스카에게 큰 감명을 받은 눈치였다. 미사토가 아스카도 안아주려고 할때가 되서야 아스카는 정신을 차리고 미사토를 밀쳐냈다. "이게 다 뭐에요?"


"괜찮아. 친구들이야." 


아스카는 이제 검은 머리 여자에게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남자에게 돌아서더니, 발로 또 한번 걷어찼다. "이 멍청아. 그렇게 말 했어야지!"


"말 했잖아." 검은 머리 여자가 탈지면 한뭉치를 오른쪽 콧구멍에 쑤셔넣는 동안 남자가 한 말이었다. "안 듣고 설친건 너야. 아, 맞다. 성함은 사부로 되신다."


"자업자득이지!" 아스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스카 특유의 골반에 손을 갖다댄 자세를 해보였다. "미사토 친구건 뭐건 상관없거든! 날 대체 어떤 여자로 보고 맘대로 올라타는거야!"


사부로가 씩 웃어보였다. "옷 입은것만 봐선 잘 모르겠는데."


아스카의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곧 귀를 찢어놓을 것 같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변태! 이거 진짜 변태였잖아! 저기 있는 바보보다 더 심해! 어떻게 여긴 이런 남자들만 있는거야! 믿을 수가 없어!"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아스카의 이런 일장연설은 한 귀로 흘리는게 낫다는 사실을 체득한 것은 오직 신지와 미사토뿐이었다. 그래서, 다들 황급히 아스카를 말리려들거나 진정시키려는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미사토는 신지를 일으켜세웠다. 


"마야씨를 쏘는걸 봤어요..." 신지는 미사토의 슬픈 표정을 보고 금새 입을 다물었다. 신지가 물어볼 필요도, 미사토가 말해줄 필요도 없었다.


"너희라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미사토는 신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신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귀 얘기를 꺼내 미사토의 기분을 더 망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신지는 살았고, 마야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사소한 일로 불평하는건 한심한 일 같았다.


아스카가 씩씩거리며 팔짱을 낀 채 신지의 옆에 다가와 섰다. "그래서, 이 인간들 다 뭐에요?" 아스카는 아주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기술진들이 이런 장비 받는단 얘긴 못들어봤는데."


"아스카,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잖니. 좀 착하게 굴어." 미사토의 목소리가 살짝 훈계조였다.


아스카는 어이없단 표정이었다. "알았어요."


후우카가 미사토의 곁에 다가와 바이저 옆 부분을 누르자 청록색 빛이 사라지고 전면부가 완전히 투명해졌다. "공유할 정보가 많습니다. 좀 걸으면서 해도 될까요?"


신지와 아스카는 미사토의 일행과 함께 격납고 방향으로 이동하며 모든 것을 들었다. 전략자위대가 네르프를 공격하고 있고, 에바 출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칠드런들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런 공격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 신지는 두려웠지만, 그보다 가슴이 쓰리게 만드는 것은 후우카와 미사토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후우카의 신원은 모두 거짓이었다. 생각해보면 후우카쪽에서 딱히 신지의 신뢰를 사려고 든 적도 없었지만 그래도 신지는 그녀를 믿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조금 이상하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겠거니 했다. 이젠 다른 말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동기를 신지는 모르는 것이다. 뭘 근거로 외국 군인을 믿는단 말인가? 믿을 수 없기로 따지면 방금 신지와 아스카를 죽이려고 했던 군인들과도 별 차이가 없어보였다.


미사토와 후우카의 설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신지는 이 자들 주변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강해졌다. 반대로, 아스카는 갈수록 감명 받는 기색이었다. 결국엔 혹시 총을 줄 수도 있냐고 후우카에게 묻는 지경까지 갔지만 후우카는 그건 단박에 거절했다.


복도는 곧 개방형 창고로 이어졌다. 신지가 이름도 알지 못하는 온갖 장비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벽에 적혀 있는 글귀로 보아하건대 주격납고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지점이었다. 오른쪽으로 뚫린 복도에 '주격납고 7번 통로'라고 적힌 표지판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이 선두로 좌우를 경계하며 그들은 전진했다. 복도로 들어서자마자 총성이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신지의 망가진 청력으로도 그것만은 확실했다.


"격납고에 적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사부로가 말했다. "이쪽 방향으로 날아오는 공격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항이 있는거야." 후우카가 팔을 흔들어보이자 요원 셋이 복도 끝, 살짝 열려있는 방폭문을 향해 총을 겨누고 빠르게 전진했다.


에바를 조종하는 것 외에 전투 경험 같은건 없는 신지에게도, 문 바로 너머에서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는건 확실해보였다. 총성이 시끄러운게 저 너머에서 총력전이라도 터진 것 같았다.


미국인들이 반쯤 숙인 자세로 전진하는 동안 미사토는 아스카와 신지의 곁에 남아, 무릎을 꿇은 자세로 몸을 낮추고는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하라고 손짓했다. 셋은 모퉁이 뒤에 숨어 서로 딱 붙어 앉았다.


"여기 꼼짝말고 있어." 미사토가 권총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붉은 재킷이 없는 지금 홀스터가 밖에 온전히 드러나 있었다.


아스카가 성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싸우고 싶다고요!"


미사토는 고개를 저었다. "저놈들은 파일럿을 잡으러 온거야. 너희 힘이 두려우니까. 그 힘은 너희가 에바에 탔을때만 발휘된다는걸 놈들도 잘 알고. 네가 지금 나서는건 놈들의 의도에 그대로 말려드는거야."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정신이 없었던 신지였지만, 미사토의 걱정어린 말투를 듣자 떠오르는게 있었다. 작동하는 에바는 두 기뿐이었지만 파일럿은 둘만 있는게 아니었다. "미사토씨, 레이는요?"


미사토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신지는 미사토가 레이의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이는 알아서 잘 피했을거야."


신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줘서 안심시켜주려는 시도란걸 신지는 단번에 알아챘다. 요즘 아스카와 붙어지내면서 신지는 그런 연기를 뚫어보는데 극히 능숙해졌다. 아스카에 비하면 미사토는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미사토는 레이에 대해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걸, 신지는 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걱정은 어느정도 하겠지만 그건 신지나 아스카와 같은 반열은 아니었다.


현 상황에 잘못됐다고 느껴지는게 정말 한둘이 아니었다. 신지가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아스카가 질질 끌고다녀야 했던 것, 마야가 눈 앞에서 죽었는데도 더는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는 것, 이젠 레이의 문제까지...


"누가 다치는건 싫어요." 신지는 자신이 말해놓고도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부루퉁하게 나왔는지 놀랐다. 고개를 푹 숙인다.


미사토가 신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도 알아. 넌 이렇게 살아있잖아?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남도 도울 수 있는거야." 그러곤, 미사토는 아스카에게 고갯짓을 해보였다. "그렇지, 아스카?"


아스카는 짜증난 표정으로 턱을 들어보였다.


미사토는 미소지으며 다시 신지를 돌아봤다.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건 좋은 일이야. 위기 상황에서 네가 어떤 사람인지 진면목이 드러나는거니까. 레이가 네게 소중한 것도 알아. 하지만 지금은 에바에 타는데 집중하는게 최선이야. 우리 희망은 그것뿐이니까."


신지는 미사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젓고 있었다. 미사토는 신지가 애초에 왜 에바를 탔는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랬다는걸. 미사토를 실망시키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진실이었다.


"이젠 네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어." 미사토는 한 손에 총을 쥐고, 나머지 손으로 신지의 뺨을 쓰다듬었다. 최근들어 생겨난 어머니 같은 모습이었다. "넌 이제 다 자란 남자니까. 너 스스로 결정해야하는거야. 난 네 친구로서 널 보호해주려는거고. 네가 우리 만난 첫날부터 날 보호해준 것처럼.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하게해줘. 나머진 모두 나중에 해결하자.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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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구체적으로 뭐에 동의하는지도 모를 지경이었지만.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지 않은가.


"여기 가만히 있어." 미사토는 아까 한 말을 반복하며, 아스카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스카,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아스카의 얼굴에 떠오른 거의 순수한 원망은 단순히 싸움을 거부당한 것 이상의 뭔가가 뒤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스카는 하려던 말도 되삼키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신지가 이해하지 못하는게 둘 사이에 있는듯, 미사토는 아스카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이곤, 금방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다.


미사토가 사라지자 신지는 아스카와 나란히 벽을 기대고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입을 열어도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너무 싫어." 아스카가 무릎을 살짝 끌어당기며 중얼거렸다.


신지도 동감이었다.


다시 한번 레이를 생각해본다. 지금 레이는 뭘하고 있을까? 안전하걸까? 신지에겐 미사토와 아스카가 곁에 있었지만 레이에겐 누가 있을까? 언제나처럼 또 외롭게 있는걸까?


복도 너머에선 전투의 소음이 더 격렬해졌다. 누군가가 명령을 소리치고 있었지만 웅웅거려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총성이 가끔씩 줄어들때마다 맥락을 알 수 없는 말들이 들려오다 끊겼다. 연기가 복도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폭발음이, 비명이 들려왔다. 모든 소리가 벽에 반사되어 실제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신지의 몸을 진동시켜 마치 몸을 떨고 있는 것처럼 됐다.


견디기 힘들었다. 신지는 무릎을 끌어당겨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암흑속에서 총격적은 계속 이어졌다. 살해당하고 살해한다. 신지가 아는 사람들이. 신지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오늘이 끝났을때 대체 몇이나 살아있을까,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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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는 레이까진 떠올랐지만 게이코도 파일럿이란 생각은 여전히 못하는듯 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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