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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가위앱에서 작성

무나강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23 19:54:19
조회 254 추천 3 댓글 1




나는 어린이집에서 일한다. 내 퇴근시간은 9시 10분이다. 그 시간은 또한 어린이집의 문을 잠그는 시간이기도 하고, 마지막 아이가 퇴원하는 시간이기도 하며, 보다 정확히는 그 아이의 엄마, 그녀가 오는 시간이다.


군데군데 흐트러진 갈색머리를 뒤로 묶은 포니테일을 찰랑거리고, 동대문 시장에서 산 듯한 검정 후드와 분홍 반팔로 대충 차려 입은, 바지는 언제나 같은 청바지인, 하지만 옅은 분홍색의 입술은 언제나 상냥한 미소를 짓고있는, 그녀. 그녀는 언제나 9시 10분에 왔다.


9시 05분 즈음엔 시곗바늘에 온 신경이 곤두선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온 방 안에 가득한 것만 같다. 9시 08분에는 현관문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어쩌면 오늘은 1분 2분 더 먼저 오지 않을까 하는마음에.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09시 10분, 그 시간에 딱 맞춰 왔다.


그리고 오늘도, 09시 08분인 지금도 그녀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나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멍하니 현관만 바라보고 있다. 그녀를 이렇게 기다리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오히려 얼마전까지는, 다른 학부모는 다 6시 7시에 퇴원하는데, 나를 매일매일 이 시간까지 남아있게 하는 그녀가 그리 좋게 보이진 않았다.


처음엔 불만이었지만, 나중엔 익숙해졌고, 결국엔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언제나 피곤에 찌든 채, 그러나 한편으로는 밝은 미소를 짓은 채, 딱 9시 10분에만 오는 그녀는 도대체 무슨 연유가 있는 걸까 싶기도 했다.

한번은 아이에게 물어봤지만 자신도 엄마가 정확히 무슨일을 하는지는 몰랐다. 다만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고 이시간에 퇴근한다는 것. 그리고 가끔은 주말에도 출근한다는 정도 밖에는 알지 못했다. 단순히 일이 많은 사람인가보다 싶기도 했지만 그런 밍밍한 대답만으론 2시간 남짓의 지루한 시간을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원장 몰래 학부모들의 자료를 뒤져봤고 오래 걸리지 않아서 그녀의 서류를 찾았었다. 놀랍게도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피곤에 찌든 모습 때문인지 연상이라 생각했었다- 그만큼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은 듯 했다. 남편은 도망간건지 죽은건지, 없다고 적혀졌었다. '사실'은 생각보다 더 밍밍했고 한 쪽으로는 안쓰러웠다.


단순히 어린나이에 낳은 아이를 홀로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 이후로 그녀에게 있던 얼마 안남은 불만은 싹 사라졌다. 아니, 새로운 감정으로 대체됐다고 하는 것이 나을것이다. 사랑은 아니다. 방금 얘기의 어디에 사랑에 빠질 요소가 있는가. 그보다는 연민이다. 하지만 이건 내 착각이었고, 그 연민은 지금 돌이켜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을 향해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동갑이었기 때문일까 그녀에 대해 더 알게되어 그런걸까, 나는 그녀에게 친근감을 느꼈고 가끔씩 몇마디 나누다가, 결국엔 어린이집에서 아주 잠깐의 티타임을 가지는게 일상이 됐다. 탕비실에 쌓인 싸구려 믹스커피의 갈색 향 속에서, 그녀의 퇴근 후와 나의 퇴근 전은 그렇게 맞물렸다.



커피는 물보다 진했고, 대화는 서류보다 더 많은 정보와 감정을 담고 있었다. 남편은 사고로 일찍 죽었다는 사실, 자기는 공장에서 닥치는대로 일을 받고 있다는 얘기, 아직 생활에 문제는 없지만 아이가 크면 더 나갈 돈을 젊을 때 미리 벌어 놔야한다는 생각, 공장에서 여기까지 그리 멀지도 않고 교통비 한푼 아끼기 위해 항상 도보로 다니기에 도착시간이 일정했다는 시시콜콜한 비밀까지, 그녀는 모두 얘기했다.


종이 위에서 '가난'이었던 사실들은, 그녀의 목소리 속에서 '의지'로 느껴졌고, 내가 무지 속에서 느낀 막연한 '연민'은,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에 반사되어 '애틋함'으로 비춰졌다. 그 서글픈 이슬을 닦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감히 얼굴에 손을 댈 용기가 없었다. 그저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살며시 올려놓을 뿐이었다.



우리의 거리는 거기까지였다. 내가 그녀의 뺨을 어루어만질 일도 없었고, 어린이집 밖에서 만날 일도 없었다. 물론 상관은 없었다. 그 때는 아직 더없이 강한 친근감을 느꼈던 것 뿐이니까. 언젠가 시간되면 밥먹자는 말을 할 정도의 사이였지만, 구체적인 숫자까지 정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어느날, 9시 09분이 되고 10분이 되어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초조했다. 혹시 시계가 고장난건가 싶어서 휴대폰을 봤지만 10분이 맞았다. 사고가 난 걸까, 일하다 쓰러진걸까 걱정됐다. 차갑고 무거운 기계가 그녀의 가녀린 팔을 덮치는 상상이 끝나기도 전에 눈을 질끈 감았다. 왜 언제나 가정은 부정적인 것부터 시작하는걸까.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성실한 그녀가 제시간에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혹시나 아이도 걱정하지 않을까, 아니면 아이는 뭔가 알고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물어보려는 찰나, 탁자 위의 휴대폰이 강한 진동을 울렸다. 황급히 확인해보니 그녀였다. 최대한 침착하게, 고조된 걱정을 가라앉히고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도, 단순한 연장야간근무라고 했다. 그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작게 쉬었다.



그런데 그녀는 거기서 끊지 않고 내게 한가지 부탁을 했다. 오늘 굉장히 늦게 들어갈 것 같으니 대신 아이를 돌봐달라는 것이었다. 꽤나 당황스러웠다. 불쾌하지도 반갑지도 않고 그냥 오직 당황스럽기만 했다. 물론 그녀도 사과하며, 오히려 이쪽이 미안해할정도로 면몫없는 듯이 얘기했지만, 그보다는 휴대폰 너머로 그녀를 급하게 부르는 동료들의 거친 목소리 때문에, 나는 일단 알겠다고 했다.



그녀는 집에 도착하면 다시 전화 달라고 한 뒤 황급히 끊었고,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당황함이 걷히고 긴장되기 시작했다. 집? 그녀의? 아니 친구의 집이라면 학생 때도 몇번인가 가 봤다. 그래, 그녀와 나는 친구와 다를게 없으니까. 오히려 긴장하는게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 때 내 머리에는,한 치수 더 큰 흰색 긴팔과 남색 수면바지를 입고 머리를 풀어해친 채 소파에 반쯤 기댄 그녀의 모습이 스쳐갔다.


집까지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에게 몇번인가 얘기를 듣기도 했고, 그리 멀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아이가 길을 알고 있었기에. 그날 따라 더 추웠다고 기억한다. 뿌연 입김이 나오는 만큼 밤하늘은 더욱 청명했고, 반짝이는 수어개의 별빛을 보고있노라니, 누런 가로등은 그저 방해물쯤으로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집에 도착했다.


아이는 익숙한 몸짓으로, 문 앞에 놓인, 식물 하나 없는 싸구려 갈색 플라스틱 화분 아래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서자 어느 집에나 있는 고유한 채취가 느껴진다. 오래된 장판과 벽지의 냄새, 자주 먹는 요리의 냄새, 사용하는 방향제나 향수의 냄새, 그리고 얼핏 느껴지는 그녀의 머리칼 향기.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래지않아 그녀가 받았다. 다행히 지금은 쉬는시간인듯 했다. 나는 연신 미안해하는 그녀의 부탁대로, 아이를 씻기고 냉장고에 마련해둔 반찬과 국을 꺼내 데우고, 함께 저녁을 먹고, 양치를 시키고, 이건 그녀가 부탁한게 아니지만, 아이와 티비를 좀 보다가, 아이가 하품을 할 때 즈음 어린이집에서 자주 읽던 동화책을 읽으며 잠을 재웠다. 이로써 나는 그녀의 부탁, 나의 의무를 훌륭히 수행해냈던 것이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아직 11시가 되기 조금 전이다. 막차까지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뭔가... 굳이 말로 하기 싫은 이유가 날 붙잡았다.


남의 집에서 몇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오랜생활을 적나라하게 보게된다는 것이다. 반찬을 꺼낼 때 냉장고에서 본 맥주 몇캔들, 정성스레 분리수거해 놓은 수십개의 찌그러진 빈 맥주캔들, 찬장에 있던 쥐포나 견과류 따위의 안주들. 나도 모르게, 그녀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와, 나처럼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운 후, 아무도 없는 한적한 이 방에서 티비를 보며 맥주을 까고 견과류를 씹는 모습이 상상됐다. 와 오늘 나 상상력 풍부하네.


​오전 2시 21분. 찰칵. 열쇠가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린다, 철컥.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끼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투욱. 투박한 핸드백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 피곤에 찌든 그녀가, 차가운 맥주 몇개를 미리 깐 채 모락모락 김이 나는 치킨을 놓고 기다리는 나를 보고선 놀라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멎쩍게 웃어보였다.


챙. 우리는 캔맥주를 조용히 부딪히며 건배했다. 이로써 나는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녀의 현관문 안으로 들어왔고,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혹시 민폐가 아닐까 조마조마 했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눈물 찔끔 흘리면서까지 기뻐했다. 분명 치킨보다는 같이 마실 상대가 있다는 것에, 그리고 그것이 나라는 점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랬을거야. 설마 치킨때문은 아니겠지. 아닐거야. 음.


집에서 취기가 오른 그녀는 어린이집에서 차를 마시던 그녀와는 또 달랐다. 자신의 집이라는 장소때문일까 가까워진 나와의 거리때문일까, 더 많은 사실을 멀했고 더 많은 감정을 쏟아냈다. 가끔 혀도 꼬았는데 그게 그렇게 귀여울수가 없었다. 그녀의 뺨이 입술처럼 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풀려버린 눈은 가녀리면서도 매혹적이었다. 입에서는 상사를 까면서도 손으로는 자꾸 나를 만졌다. 그녀가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댄다. 내 후각기관이 그녀의 향기로 마비되는 것만 같다. 나도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내 뺨도 붉어졌다. 내 정신도 온전하지가 않았다. 나도 취했나보다. 그러나 분명, 술에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주사는 웃는 것이었다. 듣도보도 못한 상스러운 소리로 상사를 까던 그 입술로 배시시 웃을 때는 천사가 따로없었다. 그럴 때는 제스쳐도 활발해져 스킨십도 꺼려하지 않았다. 그대로 껴안아 버리고 싶었으나 나라도 이성을 잡느라 고생했다. 그런데 2단 변형이 있었나보다. 그 다음은 운다. 엉엉 운다. 무릎을 두팔로 감아 쭈그려 앉아 엉엉 운다. 까만 우주의 한 조각같은 그녀의 눈썹에서 별빛같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한 두방울, 끊이질 않는다. 나도 덩달아 슬퍼지려 한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붉은 뺨 위에 흐른 슬픔의 흔적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내가 그녀의 뺨을 어루어만지니,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눈물로 가득찬 그녀의 동공에 나의 마음이 흐릿하게 비춰보였다. 그제서야 내가 그녀의 눈물을 닦고 뺨을 어루어 만짐을, 비로소 우리는 구체적인 시간약속을 할만한 친구가 되었음을,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그녀와 그 이상의 관계가 되길 바랬음을, 깨달았다. 어느새 내 눈에도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눈물 한 방울이 뺨을 지나 턱 끝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의 감촉으로 가득 채워졌다.


부드럽고, 약간 축축했다고 기억한다. 립스틱을 안바른건지 지워진건지, 역한 화장품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저 맥주의 쓴맛, 치킨의 매콤한 맛, 그리고 겨울의 깊은 새벽에 느끼기엔 너무 뜨거운 감정이 내 입술에 스며들었다.


잠시의 몇 초 후, 우리는 입술을 때었고,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서로의 코가 스쳤다. 반쯤 열린 입술이 포개졌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혀가 반대쪽으로 건너갔다. 알코올이 조금 섞인 타액이 교차했다. 서로의 입술로 막힌 서로의 입술에서, 희미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거친 입김이 방안을 데웠고 우리의 체온은 뜨거웠다. 나는 너무나 가벼운 그녀를 들어 방바닥에 조심히 내려놓고는, 그녀의 옷을 벗겼다.


분홍 반팔을 올리고 언제나의 청바지를 거칠게 내렸다. 속옷만 입은 그녀의 허연 몸뚱아리는 군데군데 붉게 상기되어있었다. 나는 발등부터, 천천히, 위로 올라가며 키스했다. 골반즈음에 왔을 때 이빨로 팬티를 물어 벗겼다. 그녀는 웃으며, 또 한편으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내 옷을 벗겼고, 나는 벗겨지면서 그녀의 마지막 속옷을 벗겼다. 그렇게 내가 완전한 알몸이 되기도 전에 우리는 방바닥에서 서로의 살을 섞었고, 격렬히 하나가 되었다. 나의 혀가 그녀의 붉게 상기된 꽃잎을 탐했고 그녀의 섬섬옥수가 내 왜소한 젖망울을 어루어 만졌다. 서로에 의해 젖어들수록 쾌락이 진해졌고 사랑이 깊어졌다. 소리를 참으려는 이빨이 목덜미를 깊게 파고들었고 강렬히 갈구하는 손가락은 등에 선명한 손톱자국을 새겼다. 달아오른 취기 때문일까, 끓어올랐던 감정때문일까, 그날 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다행히도, 다음날은 휴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도 나도 출근할 필요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아이가 물을 마시러 방에서 나왔다가 -얇은 이불 하나만 함께 걸친 채- 교차한 우리 둘의 알몸을 보지도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것은 당황하기에 충분한 일이고 또 장면이기에, 나는 기억이 되살아나자마자 황급히 그녀를 깨웠고, 뒤척이던 그녀는 곧 일어나더니 정신을 차렸는지, 얼마 안되는 이불을 전부 끌어당겨 자신의 알몸, 그리고 부끄러워하는 얼굴까지 가렸다. 덕분에 나는 가릴거 하나 없는 알몸이 됐지만.



이른 아침에 나와 함께 알몸으로 깨어난 그녀는 어린이집이나 어젯밤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 때가 성실한 어른과 매력적인 여자였다면, 지금은 나와 같은 나이의 순박한 소녀라고 할까. 그녀와 내가 서로 반대방향을 바라보며 옷을 입는 동안 그녀는 내게 아침이라도 먹고가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11시. 차라리 점심에 가까웠지만 나는 그러기로 했다. 어제 너무 격렬했던 탓일까 배가 아주 고팠다. 그녀도 같은 허기를 느낀다고 생각하니 어딘가가 또 뜨거워지는 듯 했다.


요리를 하고 아이를 깨우느라, 그리고 아이에게 내가 이 시간에 여기 있는 이유를 쩔쩔매며 설명하느라(물론 거짓말로) 실제로 아침을 먹은건 12시 좀 넘어서였다. 아침은 평범히 맛있었다. 나는 백날 자취해도 실력이 안늘던데, 역시 먹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다른걸까. 그녀의 아이가 오이를 싫어하는건지, 그녀는 어르고 달래며 오이를 먹였다. 음 편식은 좋지 않지. 그렇게 생각하며 잡채에 섞인 버섯을 몰래 뺐다. 버섯은 괜찮다. 버섯은 음식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녀가 봐버렸나보다. 이제는 나를 어르고 달랜다. 마치 아이한테 하는 것처럼, 안먹으면 혼낸다는 듯이 눈을 부릅 뜨는 그녀는, 아 정말 이루어 말할 수 없게 사랑스러웠다.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숨을 참고 버섯을 먹었다. 그녀가 미소짓는다. 행복하다.


아이는 다 먹고 양치한 뒤 밖에 나가 논다고 나갔다. 나는 설거지라도 하겠다고 했지만 그녀가 절대로 안된다고 하는 바람에 얌전히 앉아서 그녀가 깍아준 과일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아이가 나간지 10분 쯤 됐을 때, 그녀는 앞치마를 입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우리는 아직도 어제 일에 대해 얘기를 안했다. 그보다는 하고싶은데 꾹 참고 있는 듯 했다. 어째선지 그녀의 자그마한 등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거 같았다. 나는 그녀를 응시했다. 여느때처럼 갈색머리를 뒤로 묶어 포니테일을 하고, 햇빛에 반짝이는 목덜미를 드러내며, 적갈색 앞치마를 두른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의 뒷모습. 나는 과일을 내려놓고 살며시 일어나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열심히 움직이던 그녀의 손이 멈췄다. 내 콧김이 그녀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 표정이, 뺨의 열기가, 그녀의 생각이 느껴졌다. 우리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계속 껴안고 있었고,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이른오후의 따스한 햇볕이 우리 둘을 감쌌다.


​그걸로 끝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았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말이 필요 없던 것이었을까, 우리 둘 사이에는 끝까지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그대로 그녀의 뒷모습과 과일 그릇을 뒤로한 채, 작별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어쨌거나 계속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 나와야했고, 어차피 또 다시 월요일 밤에 만날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밤을 보내고 함께 아침을 먹은 그녀와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청혼을 할 것만 같았다. 반지도 없는데.


그리고 집에 돌와서 대략 멍하니 있었다고 기억한다. 아니 확실히 멍하니 있었다. 의자에 앉아, 아무 생각이 없거나 한가지 생각만 하다가,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고, 잠이 와서 잤었다. 하지만 일요일은 조금 더 충실하게 보냈다. 토요일의 생각을 정리하고 결심을 했다. 결심을 실현하려 외출했다. 돌아왔을 때는 깊은 밤이었다. 몇 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대로 고꾸라져 잤다. 어쨌거나 다음날 일어나야 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리하여 문장의 시간대는 지금 이 시간, 월요일 밤 9시 09분에 이르른다. 나는 지금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내 손은 주머니 속에서 부드러운 정육면체의 상자를 만지작 거린다. 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꺼내서 열어본다. 은색의 매끄러운 금속이 그린 동그라미는, 얇았지만 단단해보였다. 결혼반지는 아니다. 설마, 그렇게 성급하지는 않는다. 나는 우러나오는 설레임과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커플링을 만지작 거렸다. 그것이 내 결심이었다.


나는 아직 그녀에 대해 알아갈게 많다. 나는 이제 겨우 내 마음을 알았을 뿐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자주 쓰는 샴푸는 무엇인지, 그날 밤엔 어떤 마음이었는지, 또 그날 아침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 그래 저기 방 한쪽 구성에서 동화책을 여러권 꺼내 놓고 읽는 그녀의 딸 수현이에 대해서도. 나는 아직 모르는게 산더미였다. 아직 알아가야 할게 많았지만, 그리고 지금은 차도 술도 없지만, 괜찮다. 이제는 확신이 있다.




시계가 09시 10분을 가르켰다.

아, 저기 그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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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가위인 이유는 가위에서 연상한 글이기 때문

가위 - 부엌용 종이용 - 색종이 - 어린이집 - 퇴근시간 - 학부모 - 싱글맘 이런식으로 연상함

그 후부터는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전에 쓴 단편처럼 나도 고통스럽지 않고 읽기도 간편한 글 또 써보려고 썼는데

좀 더 복잡해지고 더 길어지고 더 오래걸린듯

그리고 렞섹씬 거의 쓸뻔했어... 그런거 못써서 안쓰려하는데 의식의 흐름땜에...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간단한 글 쓸 때는 키보드보다 폰이 더 나은거 같음

키보드 잡으면 나도모르게 묘사가 상세해지고 과정이 구체적이게 되는거 같어 전개도 덩달아 커져버리고...

나는 이것을 나 혼자 폰단편 혹은 간단편이라 명명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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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어쩔 수 없는 것 봐봐 얘들아 ㅇㅇ(218.209) 20.03.31 14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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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인어는 오만함을 사냥한다 이거 삼각관계 많이 심한 편이야?? [2] ㅇㅇ(117.111) 20.03.29 211 0
355 오만과 편식 습작으로 돌려졌네ㅜㅜ [3] ㅇㅇ(211.110) 20.03.29 320 0
354 피폐물 추천 ㅇㅇ(125.128) 20.03.29 215 2
353 길잡이 ㄹㅇ인생작 될거같음 [3] ㅇㅇ(39.7) 20.03.29 340 0
352 나 진짜 혐관페티시 있는거 같음 [4] ㅇㅇ(121.160) 20.03.28 705 0
351 사내연애 너무 재밌는데 ㅋㅋㅋㅋㅋ [1] ㅇㅇ(223.62) 20.03.27 254 0
350 춘향전 쓰시는 분이 그기방 쓰신 작가님이구나 ㅇㅇ(110.70) 20.03.27 183 0
349 스포)금란지교 보다 기분잡쳐서 안보련다 ㅇㅇ(223.62) 20.03.26 24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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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가위 [1] 무나강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3.23 25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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