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2009년에 작성된 틀딱 리스트임을 밝혀둠. 글쓴이는 토니 에반스라는 리버풀 전문 기자로, 구단 역사에 대한 책도 두어 권 썼음. 현재는 인디펜던트 소속.
50. 페르난도 토레스
2007-11
50위 안에 비집고 들어와서 놀라셨나들? 암, 암, 리스트에 들어갈 선수는 차고 넘치고 말고. 하지만 예의상 그를 뺄 수는 없었다.
토레스는 엄청난 재능을 지녔고 향후 커리어에 따라 탑 10까지도 넘볼 만하다. 그러니 이건 일종의 격려 차원이라고 생각하자.
아, 아니다. 내가 잘못 이해했네. 혹시 더 높은 순위에 있을 거라고 예상한 건가? 하하, 녀석은 거성들의 대열에 이제 막 합류했을 뿐이다. 읽다보면 왜인지 알게 되시리라.
49. 롭 존스
1991-95 243경기
그래서 얘가 누군데? 묻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잉글랜드 축구가 배출한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에게 부상만 없었다면, 여러분은 지금 네빌더러 "게리가 누군데?"라 하셨을 것이다.
존스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갖췄다. 그를 오버래핑 머신으로 만든 왕성한 체력, 풀백으로서는 훌륭한 수준의 크로스, 탁월한 태클까지.
허나 10년 전 그는 A매치 8경기 출장에 그친 채 불과 27살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해야만 했다.
존스가 부상으로 신음하지 않았다면 네빌은 국가대표로 얼마나 뛸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최소한 에릭손이 국민 절반을 상대로 빅엿을 먹인 2003년의 호주전은 뛰었을 터다.
(역주: 2003년 호주전은 친선전임에도 시청률이 50퍼에 육박했으며, 잉글랜드 업튼 파크에서 열린 홈경기였음에도 졸전 끝에 역대 최초이자 현재까지도 유일한 잉글랜드의 호주전 패배로 남아 있음. 당시 네빌은 첫 실점 상황에서 마크맨을 놓치며 헤더를 대줌.)
48. 브루스 그로벨라
1981-94 628경기
나도 돈 때문에 골을 내주지는 않았으며 승부조작범들을 쫓아내려 노력했다는 그의 말을 믿고 싶다. 훌륭한 일 아닌가.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맨유전에서 다른 방향으로 다이빙했음에도 실수로 볼을 막는 바람에 12만 5천 파운드를 잃어야 했다고 말하는 영상이 찍힌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설사 농담이었다 하더라도.
그게 그로벨라가 낮은 순위에 위치한 이유다. 1984년 로마에서 보여준 춤사위에도, 물구나무나 유쾌한 행동들과 멋진 선방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니다, 그냥 솔직해지련다. 난 그냥 그가 싫다. 50명에서 아웃이다. 새로운 48위를 정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선수들을 제외시키는 작업 중에 있긴 하지만, 혹시 (스티브) 맥마나만을 찾는 분이 계시다면 세탄타 스포츠 쪽을 찾아보시길.
(역주: 그로벨라는 다른 팀의 몇몇 선수들과 함께 승부조작설에 휘말린 적이 있음. 결국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판결이 났지만.
또한 1984년 챔결-당시는 유러피언 컵-에선 로마를 상대로 승부차기에서 골대그물을 씹어먹고 괴상한 춤을 추는 등의 행위로 실축을 유도하며 우승을 이끌어냈으며 평소에도 기행으로 유명했음. 구글에서 이미지 검색 한번 해보는 걸 추천. 생긴 것부터 웃김ㅋㅋ
그리고 맥마나만은 당시 세탄타 스포츠라는 현지 방송사에서 활동 중이었음.)
48. 피터 톰슨
1963-74 416경기
아버지께서는 혀 뒤쪽을 튕겨서 분무기처럼 거의 보이지 않게 몰래 침을 뱉는 방법을 나에게 가르쳐주셨다.
당신께서는 "이걸 할 줄 아는 사람은 너랑 나, 그리고 피터 톰슨밖에는 없단다."라고 하셨다. 톰슨은 다른 이들이 못하는 걸 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만큼 그 말은 신뢰성을 담고 있었다.
얼마나 훌륭한 윙어였는가! 딕시 딘조차도 톰슨과 이안 캘러핸 사이에서 뛰었으면 시즌 60골의 기록을 넘었을 거라 공언할 정도로 그를 탐냈으니 말이다.
유려한 볼 컨트롤과 뛰어난 크로스 능력으로 그는 샹클리의 팀에서 11년간 주축으로서 활약했다.
(역주: 딕시 딘은 에버튼 레전드로, 1927-28 시즌의 리그 60골은 현재까지도 잉글랜드 1부 리그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음.)
47. 재키 발머
1935-52 312경기 111골
1946-47 종전 후 첫 리그 우승팀이라는 타이틀을 이끈 주역 중 일원. 1946년 11월엔 3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작성한 바 있으며, 알버트 스터빈스와 함께 상대 수비진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는 로컬 보이였지만, 대중문화 레전드인 스터빈스의 휘광에 가려진 감이 없잖아 있다.
(역주: 스터빈스는 35위에 있음. 자세한 건 거기서.)
46. 사미 히피아
1999-09
이스탄불의 영웅들 중 하나다. 견고하며 믿고 맏길 만한 선수. 생긴 것도 단단하게 생겼다. 센터백이라면 응당 이래야지. 이상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45. 맷 버스비
1936-39 125경기
1939년 비숍 오클랜드에서 막 이적한 20살의 밥 페이즐리를 도운 훌륭한 주장이었다.
6개의 리그 타이틀과 3개의 유러피언 컵, 리그 컵을 들어올리게 될 그가 버스비를 자신의 멘토였노라 언급한 것을 생각해보라.
허나 안타깝게도, 전쟁이 그의 커리어를 끝장냈으며 이후 버스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가끔은 그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중에 구글에 검색해봐야지.
(역주: 알다시피 버스비는 이후 맨유의 감독으로 부임해 좆되는 커리어를 남김. 드립 이해못한 리붕이 없제?)
44. 피터 비어슬리
1987-91 175경기
1980년대 후반 달글리시가 멋지게 리빌딩한 스쿼드의 한 축이었다. 비어슬리-반스-올드리지로 이어지는 공격진은 보는 것만으로 황홀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맨유랑 에버튼에서 뛴 시점에서 40위권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건 좀 아니지.
43. 엘리샤 스콧
1912-34 468경기
전설적인 골키퍼로, 딕시 딘과의 대결들은 신화처럼 회자되곤 한다. 당신도 아마 이런 일화를 들어봤을 것이다.
스콧이 라임 가(街)를 걷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딕시와 마주쳤다. 딘이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스콧이 길바닥 위로 번개처럼 몸을 날려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가상의 공을 막아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믿는다. 우리 아버지가 해준 얘기거든. 침뱉는 법을 알려주신 그 분 말이다.
42. 예지 두덱
2001-07 186경기
이스탄불의 유사-그로벨라를 위한 팩트한접시) 제이미 캐러거도 이 순위에 지분이 있다. 왜냐면 두덱에게 그걸 하라고 알려준 게 캐라였으니까.
41. 밥 페이즐리
1939-54 277경기
1950년 FA 컵 결승전에서의 패배는 페이즐리만한 호인이 아니었다면 한 선수의 커리어를 망쳐놓았을 것이다.
그런 그조차 여름에 팀을 떠날지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잔류를 택한다. 50년대 암흑기, 2부 리그에서의 경험은 20년 후 감독으로서 일군 성공을 더더욱 달콤하게 해 주었으리라.
(역주: 버스비 항목에서 적었듯 페이즐리는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챔스 우승을 포함, 샹클리를 이어 붉은 제국의 패업을 이어가는 감독이 됨.)
https://www.thetimes.co.uk/article/the-50-greatest-liverpool-players-5b9mjjlwhw8
(유료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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