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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대회 참가] 동생, 내 소중한 동생

ㅇㅇ(182.211) 2022.09.17 03:51:46
조회 561 추천 13 댓글 0
														

"···뭐?"

이화는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다. 터질듯이 팽창한 그녀의 두 눈동자가 짙은 핏빛을 반짝이며 하이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얘 봐, 진짜 몰랐나 보네."

그러한 반응이 의외라는 듯, 하이눈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카샤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무법 지대에서 가장 강한 자를 부르는 '호칭'이야."



----------------



처음 세상을 자각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시체투성이 뿐이였다. 마치 이곳은 죽어버린 땅이라는 듯 풀 한 포기조차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고꾸라져 있었다.

자신을 제외한 생명체는 단 하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가 낳아준 그녀의 동생이었다.

이화.
천애고아인 이연에게 있어선 유일한 혈육이다. 그럼에도 딱히 정이란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생긴 것은 나름 귀엽다만, 큰 병이라도 앓고 있는 건지 아기 때부터 시름시름 아팠다.

그래도 가족이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주웠지만 이연은 여전히 그런 동생을 골칫덩이로 여겼다.

"이화. 일어날 시간이야."

이연의 부름에 그녀를 쏙 빼닮은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눈을 떴다. 동이 채 트기도 전의 이른 새벽이었지만 이화는 꿋꿋이 몸을 일으켰다.

"으음···"

한창 클 때의 어린이들은 유달리 잠이 많다. 하지만 어리광은 풍족한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다. 갓난 아기 때부터 언니와 함께 인간쓰레기 바닥에서 굴러먹은 이화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재료는 냉장고에 다 챙겨놓았으니 알아서 밥 해먹고. 괜히 심심하답시고 나와서 설치지 말고. 알았어?"

다소 냉정하게 들릴법한 잔소리였지만 이화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동생을 바라보던 이연은 발걸음을 돌렸다.

출근해야하는 시간이었다.



* * *



무법지대의 외곽 경계 지역.

그곳에는 히어로 클랜 휘하의 정보부 블랙핸드 제 4지부가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이연은 늘 그랬듯이 다 쓰러져가는 폐건물로 다가갔다.

주변의 부랑자들은 뭐 저런 곳으로 들어가냐며 핀잔을 던졌지만 이연은 무시로 일관했다.

그런 반응에 열이 받았던 것일까.

지저분한 장발을 허리까지 기른 거구 한 명이 이연의 앞을 막아섰다.

"이봐, 아가씨."
"······"

빠직.
이 년이 지금 내 말을 대놓고 씹은 건가.

"어이.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은 해줘야 할 거 아냐?"

이연은 말 없이 눈앞의 사내를 응시했다.

무법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나약한 쓰레기. 그녀의 관심을 끌기에는 턱도 없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싸가지 없는 년이!"

사내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눈앞의 계집 따위가 감히 그따위 건방진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다니.
이래 봬도 이 구역에선 어깨에 힘깨나 쓴다는 실력자인 이 블루옹 님을-

- 콰직!

"아, 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막힘 없이 뻗어나간 사내의 커다란 주먹은 이연의 털끝에도 닿지 못한 채 토막나 있었다. 고통을 참다 못한 그는 결국 입에 거품을 물고 바닥에 몸뚱이를 쳐박았다.

그리곤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히이이익!"
"이런 미친!"

재미난 사건이라도 기대하던 부랑자들은 그 광경을 보고선 부리나케 도망치기 바빴다. 그제서야 이연은 폐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있는 것이라고는 먼지 몇 톨 뿐인 공터.

이연은 공터의 중앙에 다가가 발을 굴렸다.

"열어."

그녀의 한 마디에 허름해 보이던 바닥이 열리며 블랙 핸드 4지부의 입구가 드러났다. 입구에는 매일같이 봐오는 외팔이 한 명이 차렷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셨슴까, 지부장님!"

록스타 싱클레어.
그는 잿빛 성으로 불리우는 싱클레어 가문의 사생아였다.

가문에서 도망칠 때 당하기라도 한 것인지 왼팔 하나는 없었지만, 실력 하나는 뛰어난 놈이었다.

"그래, 별 일은 없었고?"
"일은 무슨.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나불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본부 놈들 요즘에는 통 조용하단 말이죠."
"그럼 됐어."

이연은 손을 휘저으며 중앙 통제실로 향했다. 오늘도 지침 받은 것은 없으니 그저 가만히 자리를 때우다 가면 되겠지.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아니라면 관심을 두지 않는 그녀의 성격상, 히어로 클랜 본부에서 어떻게 나오든 상관하지 않았다.

- 똑똑.

"지부장님, 록스타임다!"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수다를 떠는 것은 이연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지부에서도 말 많기로 유명한 록스타라면 더더욱.

"커피 가져왔슴다. 그것도 지부장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블랙으로요!"
"···들어와."

마지못해 허락하자 록스타는 잽싸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함께 향긋한 커피 냄새가 내부로 퍼졌다.

"어때요, 신경써서 준비한 건데."

넉살 좋은 웃음을 흘리는 록스타를 이연은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확실히 맛 하나는 뛰어난 커피였으나 왠지 모르게 반응해주고 싶지 않았다.

워낙 귀찮게 구는 놈이라 그런가.

"큼큼. 지부장님."

평소 같았다면 대뜸 이런저런 말을 떠들었을 텐데.

오늘은 살짝 달랐다. 록스타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근심과 진지함이 서려 있었다.
답지 않게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의문에 빠진 것도 잠시, 록스타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방금 전 명령 하나가 하달되었습니다."
"클랜에서 말이지?"
"네, 그런데···"

록스타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말이 끊겨 짜증이 난 이연은 그를 다그쳤다.

"말해. 문제라도 있어?"
"블랙 스네이크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랍니다."

꿈틀.

평정심을 유지하던 이연의 미간이 구겨졌다.

"확실해?"
"예, 제차 확인받은 명령입니다. 헌데···"

"지부장님 혼자서 하셔야 한답니다. 나머지 인원들은 급하게 차출해야 한다고···."

이연은 헛웃음을 흘렸다.

블랙 스네이크는 무법 지대에 자리잡은 빌런 집단 중 가장 크고 강한 놈들이었다. 아무리 지부장인 이연이라도 위험해질 것은 뻔한 사실.

인원 차출 또한 시기가 묘하고.

수뇌부 놈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이연은 짧은 시간 뇌리에 자리잡은 의심을 지웠다. 그들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대중의 눈길을 예민하게 의식하는 히어로 클랜의 정체성을 신뢰할 뿐.

"현 시간부로 제 4지부 요원들 전부 이동시켜. 블랙 스네이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록스타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죄송함다 선배···."



* * *



"큭···!"

은빛 섬광이 허공에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이연의 허리춤을 스치고 지나갔다.

'빈틈!'

이연은 재빨리 에스트를 끌어올려 일대를 시뻘건 화염으로 물들였다. 커다란 불씨가 춤을 추듯 넘실거리며 블랙 스네이크의 본거지를 집어삼켰다.

"크아아악!"
"뜨, 뜨거워! 너무 뜨거워어어어!"
"당황하지 말고 불부터 꺼 이 새끼들아!"

- 후우.

잠시 숨을 돌린 이연은 빠르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누가 봐도 선명한 매복의 흔적.

자신이 언제, 어디로 올지 사전에 전부 파악하고 있지 않고선 불가능했다.

'대체 어떻게?'

정보가 새어나가기라도 한 건가?

쒜액!

어느새 천장 끝까지 기어올라간 화마를 꿰뚫고 예의 은빛 섬광이 날아왔다. 이연은 속 이동의 기프트를 발동해 간발의 차로 공격을 피했다.

"고속 이동··· 죽은 레이먼드의 기프트를 그대로 사용하다니. 소문이 사실이었군."

역시 기프트 강탈자라 이건가.

그리 중얼거린 금발의 남자가 고개를 주억였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은 버림받은 개에 불과하지. 네년의 죽음은 이미 확정되었다."

버림받은 개라니?

'저 놈 지금 무슨 말을···'

"그만 발악하고 이만 뒤져라!"

성난 외침과 함께 공중을 배회하던 수십 개의 화살들이 일제히 이연을 향해 내달렸다. '절대 추적'의 기프트를 머금은 화살들이 섬광을 번쩍이며 가속했다.

"그 화살들은 죽을 때까지 영원토록 널 추격할 것이다. 이만 포기해라!"

하나하나가 막대한 물리력을 가진 화살 수십이 코앞에 다가왔다. 왠만한 상위권 히어로라도 맥 없이 당할 만한 엄청난 연계기.
하지만 이연은 숨결을 가다듬고 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멈춰."

- 우뚝!

마치 처음부터 그러했다는 듯, 화살들은 일제히 멈춰서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금발 남자의 얼굴에 경악이 깃들었다.

"저런 것까지 가능하다고?"

'젠장,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더러운 클랜 놈들, 이 따위 거짓말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주하려던 그의 앞에 이연이 신형이 나타났다. 채 당황하기도 전, 복부에 끔찍한 고통이 박혀들었다.

"으으으윽!"

배 깊숙히 꽂인 화살이 내장을 해집자 남자가 온몸을 비틀었다. 온 몸이 피로 물든 이연은 입가에 살포시 웃음을 머금으며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화살을 잡고 있던 손에 한층 더 힘을 주었다.

꽈드드득!

"으아아아악!"

생살이 유린당하는 고통은 각성자라고 해도 쉬이 버틸 수 없다. 그것은 블랙 스네이크의 리더, 제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연은 섬뜩한 목소리로 바닥에 엎드린 그에게 질문했다.

"클랜이 시켰어?"
"···!"
"대답 안하면 화살 하나로 안 끝날 텐데."

오싹.
살짝 실금을 해버린 제크라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마, 맞아! 클랜! 클랜의 수뇌부에서 직접 의뢰한거야!"
"뭐라고?"

꾸드득!

더욱 깊게 파고든 화살에 제크라의 복부에서 핏덩이가 튀어올랐디.

"흐아아아악! 진짜야! 진짜라고!! 제발 믿어줘!"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던 그는 곧이어 움직임을 멈췄다. 연이은 고통을 이기지 못한 쇼크사였다.

그 모습에 이연은 난감에 찬 웃음을 흘렸다.

"클랜 이 미친놈들이··· 꽤나 궁지에 몰렸나 보네."

사냥이 끝난 사냥개를 삶아먹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논한 윗대가리들의 행동 지침이다. 이미 한창 썩어버린 히어로 클랜이라고 예외는 될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현명한 이연은 이미 일찌감치 알고 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클랜에게 있어 대중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야. 그걸 감안하고 블랙핸드에 몸을 담고 있었던 건데···'

기어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자신을 토사구팽하겠다니. 클랜의 뒷구멍 처리를 위해 여태껏 헌신해온 이연, 자신을.

"개새끼들이···."

받은 것은 반드시 배로 갚아준다. 무법 지대에서 살아남은 그녀의 철칙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히어로 클랜이라 해도, 기프트 강탈자의 철칙을 빗겨갈 순 없으리라.



* * *



현관문의 문고리가 거세게 흔들린다.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 카펫을 적시며 비린내를 풍긴다.

이연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집 안에 들어섰다.

"젠장, 피가···"

블랙 스네이크, 안 그래도 강한 놈들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매복에 몸 이곳저곳에 부상을 입었다. 침실에 있는 구급 상자를 꺼내들어 이연은 이를 악물고 상처를 꿰맸다.

한창 치료에 집중하던 도중 어린 동생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기, 언니. 어디 아파?"

방문 너머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걱정스러운 말투에 담겨 있는 슬픔은 무감각한 이연이라도 흠칫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밥은 챙겨 먹었어?"
"응. 난 아까 먹었는데··· 언니는 안 먹었잖아. 그래서 내가 죽 가져왔어."
"죽?"

이화가 제대로 요리를 할 줄 알았던가?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뒤로하고 이연은 침대에서 엉거주품 일어나 문을 열었다.

이연을 쏙 빼닮은 회색빛 머릿칼과 붉은 눈동자. 아가자기하니 예술적인 이목구비.

객관적으로 상당히 귀엽다 할 만한 그녀의 동생이 밥그릇을 들고 서 있었다.

"이리 줘."
"응 여기!"

이연이 손을 내밀자 이화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역겨운 피 냄새를 풍겨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뻐하는 동생을, 이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받으며 이연은 조심스레 숟가락을 움직였다.

"······"
"어, 어때?"
"맛없어."
"엑···."

겉모양은 그럴듯 했지만, 맛은 아니였다. 밥알은 제대로 익지도 않았고 야채는 여전히 차갑고 딱딱했다. 이연은 단번에 시무룩해진 이화의 모습을 차분히 응시했다.

시간에 쫒기며 바빴던 평소와는 달리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며 그런 걸까.


낡아서 구멍 난 옷가지와 손가락에 새겨진 잔상처들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약은 잘 먹고 있는 거지?"

"안 먹으면 혼낸다 그랬자나······."


그랬지, 참.


이화가 어린 마음에 안 먹을까 짜증이 나서 내뱉은 건데,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이화, 이제 너는 자러갈 시간-"


괜히 드는 측은한 마음을 애써 무시하고 동생을 재우려던 그때,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가 들려왔다.


- 띵동.



······?


단 한번도 들은 적 없는, 오밤중에 길게 울려퍼지는 벨소리.

이연은 불길함을 감지하고 에스트를 끌어올렸다.


'이 집의 위치는 아무도 모를 텐데?'


-접니다, 지부장님. 문 좀 열어 주십쇼!


틀림없는 록스타의 목소리였다. 가장 가까운 직장 동료이기에 문을 열어주려 했지만, 찐득한 위화감이 이연의 다리를 타고 기어올랐다.


그놈이라고 해서 이 곳의 위치를 알 리는 없으니까.

더군다나 아까 들었던 '버림받은 개'라는 단어까지···.


'그렇지만 록스타는 가문에서 도망친 놈이야. 수뇌부와의 접점은 없을 텐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이 늦은 시간에."

"정말 죄송함다. 정말 급한 일이라. 문 좀 열어 주십쇼."


평소와는 다른 쎄한 말투.


무법 지대를 전전했던 그녀의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일단 돌아가. 내일 출근해서 보고하도록 하고."

"정말 급한 일입니다만."

"내가 두 번 말해야 하나?"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기도 잠시, 평소와는 다르게 록스타의 사나운 기세가 느껴졌다.


"문 부수고 진입해."


콰지직!


현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났다. 직후 자욱한 먼지를 뚫고 푸른 전격이 몰아쳐온다. 고개를 돌려 간단히 피한 이연이 록스타를 노려봤다.


"록스타 싱클레어. 결국 선을 넘는구나."


당장이라도 찌를 듯한 살기를 풍겨대는 이연의 눈빛에 록스타는 목덜미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블랙 스네이크가 입힌 부상이 아니었다면 절대 죽일 수 없었겠지.


"부상이 꽤 커 보이시는데, 얌전히 죽어주시는 건 무린가요?"

"누가 죽을 거라 생각해? 설마 너희가 나를?"


상처입었어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개새끼 몇 마리가 비벼볼 상대가 아니라는 뜻.


하지만 그 개가 수십 마리라면 어떨까.


"어두워서 그런가. 아무래도 상황 파악이 안 되시는 모양이네요 지부장."


이연은 황급히 록스타의 후방으로 눈길을 던졌다. 어둠 속에 숨어있는 인원은 대략 서른 명. 것도 전원이 블랙핸드의 정예 요원들이었다.


"그 많은 인원을 어디로 데려가나 했더니. 내 뒤통수치려고 그런 거였어?"

"아시잖습니까. 클랜의 명령은 절대적이라는 것을요."

"지랄."


- 시작해.


록스타의 고갯짓에 블랙핸드 요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한명 한명이 강력한 기프트를 휘두르며 이연에게 칼날을 들이댄다. 개중에서는 살벌하게 번쩍이는 천둥번개를 휘감은 놈도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이연은 눈을 감았다.


'내면의 힘을 모조리 끌어올린다.'


일전에 있었던 무법지대 왕과의 싸움에서 강탈한 기프트를 지금 이 순간 모조리 방출한다.


이연의 손끝에서 미친듯한 돌풍이 휘몰아쳤다. 강철이나 머금을 법한 중후함과 칼날을 연상케하는 날카로움을 자랑하는 수백 줄기의 바람이 일대에 강림하여 적들을 찢어발겼다.


"끄아아아악!"


요원들 전원이 쓰러지고 돌풍이 멎자, 이연의 두 다리에서 핏물이 터져나왔다. 아직 채 회복되지 않은 상처가 꿈틀거리며 피를 토해냈다.


이연은 이를 악물고 기절을 버텨냈따.


아직 록스타가 남아있건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러다간 정말···


- 쒜액!


나무 뿌리만한 덩굴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덮쳐왔다. 이연은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목을 감겨 켁켁거렸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네요, 지부장. 정말 위험했어요."

"커··· 헉."

"악감정은 없습니다."


콰악!


굳세게 휘감긴 덩굴이 경동맥을 조이며 압박해온다. 눈 앞이 흐려지며 주마등이 스쳐지나가려는 순간, 갑작스레 이화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투정 하나 없이 말 잘 듣고.

냉철하게 대해도 서운해하는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았으면서.

모두가 등을 돌렸을 때 유일하게 자신을 걱정해주고 위로해준 아이.


어설픈 솜씨로 만든 죽은 맛은 없었을지언정, 여태껏 이연이 먹은 요리 중 가장 따뜻했다.


'내 동생, 이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내 가족. 나에게 있어 그나마, 그나마······


소중한 존재.


"크, 으윽!"


그 아이에게 못해준 것들이 죽음 직전에 와서야 아쉬워진다. 그런 만큼, 이딴 식으로 후회를 남기고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눈앞의 이 새끼를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


이연은 바닥까지 힘을 짜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덩굴은 더욱 강하게 휘감겨왔다.

벗어나고 싶은데, 미친듯이 벗어나고 싶은데··· 이 야박한 몸뚱아리는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는다.


연신 느껴지는 좌절감에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마지막에 남은 것은 실소 섞인 광기 뿐이었다.


"푸, 푸흡! 푸흐흐!"


고통과 좌절은 인간을 포기하게 만든다. 극복할 수 없음을 체감하고 스스로 꼬리를 내린 채로, 인간은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아연과 같은 극소수는 포기 대신, 미치기를 택한다.


광기.


어린 두 자매가 무법 지대의 바닥에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건 기프트 강탈자라는 전대미문의 능력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방대한 에스트 또한 아니었다.


승리와 염원을 향한 집착이 순수한 광기로 변질되어 그녀를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죽어! 빨리 죽으라고!"


이연에게서 느껴지는 흉폭한 광기에 공포에 질린 록스타가 마구잡이로 에스트를 쏟아부었따. 에너지를 받고 순식간에 무럭무럭 자라난 덩굴이 솟구쳤다.


허나 그것은 끝내 이연의 몸에 닿을 수 없었다.


"커··· 억!"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기도 전, 록스타의 뒷목에 새파란 식칼이 박혀들었다. 그가 덩굴로 흘려보냈던 에스트가 통제를 잃고 방향을 상실한다.

록스타가 고개를 돌리자, 어린아이 하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피범벅이 되버린 식칼을 쥐어잡고 있었다.


"언니!"


···아.


록스타는 자조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통증이 덩굴을 바스락뜨린다.


그와 동시에, 이연의 핏빛 눈동자가 밤하늘의 달빛에 비추어지며 강렬하게 번뜩였다.


"클랜을 위하여.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연의 손끝에서 록스타의 뇌수가 터져나갔다.




* * *



"실패했다라···"

"예, 주인님."


쿠구구구.

음산한 성 위로 막강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기운을 받고 자란 식물 줄기들이 하늘에 닿을 듯한 기세로 성 전체를 휘감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그의 비서는 몸을 일으킨 주인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인간을 초월한 반신 앞에서 저항 따위는 무력하리라.


"잿빛 성의 군주께 광명이 있으리."


히어로 클랜의 엘더, 레긴 싱클레어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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