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홍콩 시위가 벌어진지 정확히 5년이 되는 해입니다. 홍콩시위에 대해 여러가지로 의견이 나오기 때문에 한 목소리 내볼까 합니다.
문제의 본질
홍콩 시위의 본질이 여러가지로 해석되고 있지만 실질적인 본질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불만이었다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정치적인 이유나 혹은 서구 세력의 추동 등이 이유로 꼽히기도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누적된 홍콩의 경제적 모순에 있습니다. 물론 정치적 자유주의와 같은 이슈도 화두가 되었지만, 이것은 중국 공산당의 체제 그 자체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반응이라 보아야하지 근원적 이유는 아닙니다. 공산당 체제에 대한 반감은 홍콩의 극심한 양극화와 자본주의적 모순에 있습니다.
홍콩은 국가가 부동산을 소유하면서 경매를 통해 사기업에 토지를 임대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기업의 투기를 부추김으로서 주택 가격의 상승을 초래하였습니다. 또한 홍콩 정부의 자유방임적 정책으로 인하여 홍콩은 전세계에서 가장 경제적 양극화가 극심한 지역으로 손꼽힙니다. 홍콩에서 상위 1%는 전체 부의 16.3%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50%는 11.6%를 차지합니다. 평균 임금상승률 역시 3.1%에서 그칩니다. 한편 임대, 이자 등에서 나오는 수익은 홍콩 전체 GDP의 53%를 차지하는데 이는 홍콩이 실질적으로 거대자본과 관료독재에 의해 통치되는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2019년 홍콩 구의원 선거 당시 대다수의 야권 후보자들이 주택 임대료 인하와 임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더 나아가 시위 참여자 대다수가 저소득층의 20~30대 청년이었는데, 이는 경제적 소외계층인 청년세대가 경제적 모순을 이유로 시위에 참여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중산층 이상 계급에서 친중파를 지지하는 여론은 81.3%에 수렴해 실질적으로 홍콩 시위가 민주 대 공산당이 아닌 청년 하위계급 대 상위계급이라는 계급투쟁적 성격을 띄었음을 보여줍니다.
시위의 근본적 한계점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홍콩 시위는 시초부터 성공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현실적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첫번째 한계는 이 시위가 분명히 계급투쟁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위 참여자들이 스스로를 계급화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것은 주로 청년 세대였는데, 시위 참여자의 약 70% 정도가 20~30대의 청년층이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지만 계급은 본질적으로 세대가 아닌 경제적 격차에 의해 결정됩니다. 40, 50대의 노동자들을 시위에 포섭하는 한편,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적 학생 계층을 쳐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이 없이 청년 민주세대 대 기성 세대의 구도로 시위가 잡히면서 시위가 스스로를 계급화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시위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혁명은 그 이후의 체제와 국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하나 홍콩 시위는 민주시위가 성공한 이후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홍콩이라는 국가의 현실적인 한계와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로 독립하는 것도, 다시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도, 일국양제를 유지하는 것 모두가 한계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시위에 참여한 각계층이 바라는 새로운 홍콩의 모습이 달랐던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정리하자면 때문에 홍콩 시위는 89년 시위와 비슷한 전개를 보였다고 생각됩니다. 두 시위 모두 시위자들이 스스로를 계급화하지 못했고 이후 어떠한 국가를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통일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89년 시위에 참여한 초기 학생들은 이미 미국 대사관을 드나들 정도로 친미 자유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해 시위에 참여한 노동자 다수는 그런 의제에 관심이 없었고 이는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홍콩 시위 역시 마찬가지로, 이공계 대학생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반면 절대다수의 빈곤층 학생 및 중립적 위치에 있던 기성세대 노동자들은 경제적 평등을 더욱 추구하고자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주류 자유주의 언론들이 시위를 계급화하여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민주주의라는 관념적인 것으로 형상화하며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질문을 회피하면서, 시위에 참여할 잠재성이 있었던 대다수 노동계급이 시위에 무관심해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제국주의에 포섭된 시위
한계에 더해 서구 제국주의의 전술에 홍콩 시위가 너무나 쉽게 이용되었다는 점도 큰 문제였습니다. 서구 제국주의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서방언론들은 시위를 다루면서 홍콩의 경제적 불평등을 조명하는 대신 민주주의 대 독재로 시위를 단순 도식화했는데, 이는 시위 자체가 점차적으로 초기의 의제에서 벗어나 서구 제국주의에 휘둘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미 몇몇 시위자들이 영국 국기를 흔들면서 영국 체제가 좋았다고 선전하고 다녔는데 이는 민주주의라는 서방언론식 해석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영국 통치기에도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적 식민독재가 자행되었습니다) 잠재적으로 연대 가능성이 있었던 중국 본토 및 홍콩 내의 좌익 그룹과 단절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서구 제국주의는 시위를 추켜세우면서 일반 대중에게 거의 인지도가 없던 조슈아 웡과 아그네스 처우를 시위의 추동자로 내세웠는데 여기서부터 시위의 실패가 예고되었다고 봅니다. 시위대에 참여한 사람 중 다수가 하위계급에 속했으나 조슈아 웡은 중산계급 출신인것도 모자라 크리스트교를 믿고 서구식 교육을 받은 명백한 부르주아 자유주의 성향이 있었기에, 시위대 절대다수와 유리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홍콩 시위를 대표한다면서 홍콩의 하위계층을 지휘하는 전위 조직을 구축하기는 커녕 서구 언론과 인터뷰를 잡고, 서방 제국주의 정치가들에게 구호를 요청하는 등 도움이 안되는 짓만 거듭했지요.
궁극적으로 서구 제국주의에 홍콩이 포섭되면 절대다수 홍콩 인민의 생활 여건이 더욱 악화될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했는데도 말입니다. 홍콩의 근원적 한계는 자유방임적 경제정책과 이로 인한 하위계층의 경제적 파탄에 있지 민주주의는 부차적인 문제였단 말입니다. 설령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고, 자유선거가 시행되더라도 일부 중국 대기업과 영국계 재벌이 부의 90%를 소유하고 있다면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시위대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해야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일찍이 서구 제국주의에 포섭되며 운동의 주체성을 갖출 기회를 놓치게 되고 말았습니다.
중국 인민과의 연대 실패
때문에 중국 본토 인민과의 연대에 실패했고 이것이 시위 실패의 핵심적인 원인이었다고 봅니다. 중국 본토의 인민 역시 최근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점에서 홍콩 인민과 연대할 잠재성이 있었습니다. 한데 홍콩 시위대는 서구 제국주의에 포섭되면서 너무나도 빨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서구민주주의와 영국 제국주의 추종으로 잡고 말았고, 시위의 메시지부터 지도부까지 하나 일관된 점이 없어지면서 중국 인민과 좌익 그룹에 있어 확신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어찌되었든 홍콩은 중국에 종속된 지역이기에, 중국 인민과의 연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중국 인민과의 연대를 처음부터 부정해버리면서 홍콩 시위가 필연적으로 대안을 제시할 수 없게 되었고 이는 실패로 이어졌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서구 제국주의의 중국 침탈이라는 도식을 중국인들의 뇌리에 깊게 남기면서, 중국의 체제 결속만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고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이러한 여러가지 한계와 문제점의 근원은 시위를 이끌 전위당이 부재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시위에는 필연적으로 유아적, 맹동적, 혹은 기회주의적인 의견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시위의 메시지와 지향점, 참여 계급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이는 러시아 혁명도 그랬습니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반면 홍콩 시위가 실패한 것은 결국 혁명을 지도할 수 있는 전위당 유무의 여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민대중의 자발성을 확보해야하지만 동시에 인민대중을 지도할 당이 존재해야 혁명이 더욱 효과적으로 조직되고 일사불란하게 지반을 넓히고 향후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성공을 일구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홍콩 시위는 이렇듯 계급투쟁을 전개시켜야할 당이 부재함으로서, 시위가 파편화되고 이후 제국주의에 포섭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실패했다고 생각됩니다. 향후 한국에서의 정치적인 변혁 역시 시위를 지도할 전위당이 존재해야만 가능함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참조 자료
All SCCEI China Briefs (2024). How Hong Kong Became One of the Most Unequal Places in the World.
Thomas Piketty / Li Yang (2022). Income and Wealth Inequality in Hong Kong, 1981–2020: The Rise of Pluto-Commu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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