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들: 과학에 의지할 것인가 우신(雨神)에 의지할 것인가? (마이클 로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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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 Michael Roberts 에 대해서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3083076
의 저자 소개 부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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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마이클 로버츠 블로그 / 2017년 10월 3일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17/10/03/economic-crises-look-to-science-or-the-rain-g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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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류경제학자들은 또 한 번 왜 ‘경제학’은 글로벌 금융폭락이 다가오는 것을 예측할 수 없었나와/또는 내가 2009년 대침체의 종식 이래 지속해온 장기불황이라고 기술해온 것을 종식시킬 효과적인 정책들을 제공할 수 없었나를 가지고 논쟁을 벌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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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13/11/11/why-the-crisis-and-will-there-be-another-imf-spe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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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경제학자들인 존 퀴긴 John Quiggin 과 헨리 파렐 Henry Farrell 은 한 논문에서 그 논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몇몇은 학계 외부의 경제학자들을 비난한다. 다른 이들은 저명한 학계 내부의 경제학자들을 비난한다. 그 외 사람들은 여전히 정치가들이 어떻게든 자신들이 듣고 싶어 하는 충고에만 귀를 기울이려고 하기 때문에 경제학의 충고는 현실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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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논문에서
http://www.columbia.edu/~js3204/papers/macroempiric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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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퀴긴과 파렐은 주류경제학이 유용한 것이 되는 데 실패한 진짜 이유는 무엇을 할지에 대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의 합의의 결여라고 판단한다. 경제학자들은 긴축이 경제에 좋은지 나쁜지에 합의할 수 없었다; 또는 경제학자들이 정치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여부에 합의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합의 결여의 이유는 이론상의 차이들이 아니라 “사회학”이었다. 이 말로 그들은 주류경제학자들이 순수한 객관적 ‘경제학자들’이 아니라 “그들이 그 내부에 살고 있는 정치체제들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도 <장기불황 The Long Depression>에서 동일한 지적을 했는데, 퀴긴과 파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저명한 학계 내 경제학자들은 다른 사회과학자들 훨씬 이상으로 대학과 재무부, 연방준비은행, 국제통화기금 그리고 세계은행 사이를 오가기 쉽다. 이것은 경제학이 다른 사회과학들보다 훨씬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외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내적인 학문적 위신의 한 중요한 형식으로 전환시키면서 경제학자라는 직업의 모양새를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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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했던 것처럼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10/05/26/how-the-official-strategists-were-in-denial/
<장기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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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하면, 정부와 중앙은행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들은 (자본의 세력으로부터 시작되는) 흐름에 몸을 내맡긴다: “그렇게 경제정치의 세계와 경제사상의 세계는 깊이 엮여 있다. 어떤 경제학자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영향의 수로들은 드물게만 한 방향으로 흐른다.”
이 결론은 퀴긴과 파렐을 경악하게 하고 당황하게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마르크스를 읽었다면, 그들은 그 밖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150년 전 <자본론>의 상품과 화폐 장의 한 각주에서 고전경제학과 속류경제학을 구별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여기에서 확실히 말해두지만, 나는 패티 이래로 부르주아 생산관계의 내적 연관을 탐구하는 모든 경제학을 속류경제학과 대립시켜 고전경제학이라고 일컫는다. 이에 반해 속류경제학은 피상적인 관련 안에서만 돌아다니면서, 이를테면 가장 조잡한 현상을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부르주아들의 자기 필요에 따라 과학적 경제학에 의해 오래 전에 제공된 재료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반추한다. 그 밖에도 속류경제학은 자신들의 세계를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부르주아들의 천박하고 독선적인 생각을 체계화해주고 현학적으로 치장해줌으로써 그것이 영원한 진리라고 선언해주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Capital, vol. 1, p. 174 – 175).
마르크스보다 앞서, 프레드릭 엥겔스는 1843년 자신의 <정치경제학비판 요강>에서 경제학의 추세를 다음과 같이 예견한 바 있다: “우리가 판정해야 하는 경제학자들이 우리 시대에 근접해 있을수록 우리의 판단은 더 엄정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스미스와 맬서스가 산재해 있는 단편들만을 발견했다면,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은 자신들 앞에 완성되어 있는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올 수 있는 귀결들은 모두 나왔다; 모순들이 충분히 분명하게 드러났지만 그들은 전제들을 검토하려 들지 않았고 여전히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보증했다. 현 시대에 더 근접해 있을수록 경제학자들은 정직으로부터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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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비판 요강>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44/df-jahrbucher/outline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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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잉여가치학설사>에서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속류경제학자들 - 절대 이들을 우리가 비판해왔던 경제 탐구자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 은 자본주의 생산체제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것의 표피적 외양만을 의식 속에 반영하는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대표자들의 개념들, 동기들, 기타 등등을 번역한다. 그들은 그것들을 하나의 순수 이론적 언어로 번역하지만 지배분파, 즉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하고 그러므로 그들의 취급은 순진하고 객관적이지 않고 변호적이다.”
달리 말하면, 현대 주류경제학이 제시하는 한껏 돌출해 있는 강요하는 듯한 이론은 순수하게 중립적이고 편향적이지 않고 논리적인 것으로 제시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순진하고 객관적”이지 않으며 순전히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호론이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계급투쟁은 과학적 부르주아 경제학의 종언을 고하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떤 정리가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자본에 이로운가 해로운가, 자본에 편리한가 불편한가, 자본이 허락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가 되었다. 사심 없는 연구 대신 돈벌이를 위한 논쟁이 자리를 잡았고, 편견 없는 연구 대신 비양심적이고 불순한 의도를 가진 변호론들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Capital, vol. 1, p. 97).
최근 두 주류경제학자 에미 나카무라 Emi Nakamura 와 존 스타인손 Jon Steinsson 은 자신들의 논문 ‘거시경제학에서의 식별 Identification in Macroeconomics’ (컬럼비아 대학교, 2017년 9월 30일)의 서두를 다음과 같이 열었다: “어떤 학문적 기획도 해당 현상에 관한 견고한 경험적 지식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밀턴 프리드먼은 그의 1976년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이 점을 잘 말했다: ‘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하나의 행위노선을 권고하려면, 우리는 먼저 그 행위노선이 실제로 그 목표를 촉진할 것인지 여부를 알아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가능한 행위노선의 귀결들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확실한 과학적 지식은 분명히 그 행위노선이 바람직한지 여부에 대한 규범적 판단의 선행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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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학에서의 식별'
http://www.columbia.edu/~js3204/papers/macroempiric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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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당한 말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주류경제학에서의 주요 경험적 질문들 다수는 대불황 직후 거시경제학이 경제학의 별개의 하위분과학으로 출현했을 때인 80년 전과 동일하다. 이것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경기순환의 원인은 무엇인가? 어떻게 재정정책이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가? 왜 어떤 나라들은 다른 나라들보다 더 빨리 성장하는가? 우리 분야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나 그것을 거리를 두고 조감하는 이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싶어질 것 같다: 어떻게 이 모든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우리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들을 알지 못하고 있을 수 있을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렇지만, 저자들은 낙관적이다. 그들에게서, 문제는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변호론에 갇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에서는] 어떤 인과관계 분석에서든 맞는 변수들을 ‘식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경제학은 물리학 같은 실증주의적 학문이며 단지 그것이 경제를 이해하는 수준이 경험적 연구상의 추가적 난점 때문에 물리학이 물리 현상을 이해하는 수준에 뒤처져 있을 뿐이다.
경제학은 ‘자연과학’이 진보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거시경제학과 기상학은 몇 가지 방식들로 유사하다. 첫째, 양 분야들은 고도로 복잡한 일반균형계들을 다룬다. 둘째, 양 분야들은 장기적 예측들을 하기 힘들다. 이 이유로, 기상학의 발전을 고찰하는 것은 거시경제학에서의 우리의 연구의 잠재적 상승경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옛날에, 그러니까 근대과학이 출현하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기후를 좋게 하기 위해 우신에게 비는 것을 비롯해 얼빠진 일들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러나 기후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이해가 개선됨에 따라, 사람들은 우신에게 비는데 훨씬 시간을 덜 들이고 기상채널을 시청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되었다.”
저자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경제학에서 진리를 향한 그러한 진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진보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소박하다. 편향되어 있지 않은, 객관적인 실증주의적 과학적 분석의 정화(精華)로 밀턴 프리드먼을 인용하는 것부터가 그 소박성을 예시해 준다. 프리드먼은 1970년대에 민주주의적으로 선출된 칠레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시킨 피노체트 장군을 위한 경제고문으로서 활동했던 전력을 포함해 자본을 위한 이데올로기스트의 비길 데 없는 예였다 (프리드먼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나의 저서 <대침체>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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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침체>
https://www.amazon.com/Great-Recession-Michael-Roberts/dp/14452440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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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 견해로도 경제학은 하나의 학문/과학이다. 더 정확히는,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그것은 정치경제학,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구성하는 사회적 관계들에 대한 연구이다. 물론, 우리는 인과적 변수들을 식별하는 방식으로 사실들에 비추어 경제 이론들을 시험할 필요가 있다. 실로, 우리는 우리의 이론들을 시험하기 위해 예측들을 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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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들에 비추어 경제 이론들을 시험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12/11/22/bayes-law-nate-silver-and-voodoo-economics/
우리의 이론들을 시험하기 위해 예측들을 행해야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16/06/10/modelling-the-mainstream-by-fine-and-rodr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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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류 경제학이 어떤 체계적인 방식으로든 그렇게 하는 것을 기대하지는 마시라.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보존하고 방어하려는 욕구에 의해 구제불가능하게 왜곡되어 있다. 저자들이 말하는 대로 말이다: “오늘날 거시경제에 관한 정책 토론들은, 유감스럽게도, 이데올로기에 의해 크게 영향 받는다. 정치가들, 정책 고안자들 그리고 심지어 일부 학계 내 경제학자들조차도 어떻게 거시경제 정책이 작동하는 지에 관해 증거보다는 신념에 토대를 둔 강경한 견해들을 견지해 왔다.”
그렇지만 저자들은 자신감을 버리지 않는다: “이 유감스러운 상태가 지속하는 유일한 이유는 서로 다른 거시경제 정책들의 귀결들에 관한 우리의 증거가 여전히 고도로 불완전하고 엄중한 비판을 받을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분야의 미래에 관해 낙관적이다. 우리는 거시경제 수준에서 어떻게 경제가 작동하는지에 관한 견고한 경험적 지식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획득되고 있음을 본다. 세월이 지나 우리가 어떻게 경제가 작동하는지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축적하게 되면, 거시 경제학에서 ‘우신들’에 대한 믿음의 여지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고 견고한 과학적 사실들에 대한 의존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글로벌 금융폭락과 대침체가 보여준 것처럼 주류경제학은 기상학자들이 태풍과 폭풍을 예측하는 데 진보를 이룬 만큼의 진보를 이루지 못했다.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그것이 [경제학에서의 예측이] 여전히 이성이 아니라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신에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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