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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소련군의 전시강간 어떻게 봐야하는가?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2.16 2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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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은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속출한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전 세계 사람 6,500만 명에서 7,000만 명이 사망했다. 그 중 소련 측 사망자는 군인 1,000만 명과 민간인 1,700만 명으로 도합 2,700만 명이다. 1941년 6월부터 1945년 5월까지 대략 4년간 소련에선 2,700만 명의 인명이 사망한 것인데, 이는 소련 인구의 1/8 정도 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치른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 이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파시즘을 무찌른 공로가 큼에도 불구하고, 집단서방은 현재 소련이 세운 업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전시 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에 대해선 지나친 악마화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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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에 대한 악마화는 단순히 공업화와 대숙청 그리고 냉전시기 소련의 세력 확장에만 있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시점에 대해서도 서방은 소련과 스탈린에 대한 악마화를 한다. 대표적으로 5가지를 뽑자면 독-소 불가침 조약, 겨울전쟁, 카틴 대학살, 바르샤바 봉기 그리고 소련군의 전시강간을 들 수 있다. 이 중 오늘은 소련군의 전시강간에 대해서 알아볼까 한다. 소련군의 전시강간이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 동유럽으로 진격해나가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후 접수한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독일 여성을 포함하여 200만 명의 여성이 소련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자가 됐다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클리셰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영국에서 제작된 제2차 세계대전 다큐멘터리인 ‘컬러로 보는 세계전쟁(WW2 IN Color)’의 에피소드 11인 아돌프 히틀러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대략 200만 명에 이르는 독일 여성이 소련군에 의해 강간당했습니다.”


단순히 다큐멘터리만 하는 주장일까? 그것만은 아니다. 글쓴이가 상당히 감명깊게 읽은 한국 현대사 서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김태우의 책이다. 그가 2021년에 출간한 책 『냉전의 마녀들』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서 발생한 전시성폭행에 대해 제법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20세기의 전시강간을 언급하며, 한 가지 오류를 보이는데, 바로 소련군에 의한 전시강간 문제다. 책은 소련군의 강간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불과 5년여 전의 유럽에서도 매우 잔혹한 전시 성폭력 사건들이 다수 발생했다. 특히 동유럽 지역에서 독일군과 소련군에 의해 발생했던 성폭력 사건들은 그 대표적 사례로 거론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베를린으로 진군해오던 소련군의 성폭력 사건들이 오래전부터 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소련군에 의해 강간당한 여성은 동유럽의 여타 지역 사례까지 포함하여 최소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김태우, 냉전의 마녀들 -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 창비, 2021, 250쪽.)


그래서 이 책에서 인용한 출처를 한번 찾아봤다. 찾아보니 앤토니 비버(Antony Beever)의 “The Fall of Berlin 1945”였다. 사실 이 책은 2023년 올해,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완역했다. 국내에 번역된 책 제목은 『베를린 함락 1945』이다. 따라서 김태우가 인용한 책의 원 출처를 찾아봤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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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이 모두 깨진 상태였기 때문에 베를린 시민들은 매일 밤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베를린의 두 개 주요 병원은 강간 피해자 수를 9만 5,000명에서 13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한 의사는 베를린에서 강간당한 10여 만 명의 여자 중 1만 명 정도가 사망했으며 대부분 자살이었다고 추론했다. 사망률은 동프로이센, 포메라니아 그리고 슐레지엔에서 고통 받은 140만 명의 사망률보다 훨씬 더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모두 합쳐 최소 200만 명의 독일 여성이 강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다수는 아니더라도 상당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두 번 이상 당한 것으로 보인다.”(앤터니 비버, 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베를린 함락 1945, 글항아리, 2023, 635~636쪽.)


사실 국내에 앤토니 비버의 역사 책들이 다수 번역되어 그렇지, 앤토니 비버는 친서방적인 관점을 가진 학자이며, 때로는 역사 서술에서 허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좌파 활동가 마리오 소사(Mario Sausa)는 앤토니 비버가 쓴 책 “Stalingrad: The Fateful Siege: 1942-1943”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마리오 소사가 쓴 서평의 구절 중 하나만 인용해보겠다.


“서론의 맨 첫 페이지에서부터 나는 어떤 잘못이 있는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비버는 소련을 침공하여 4년 동안 2,500만 명 이상을 죽이면서 섬멸전과 대량학살을 자행한 나치가 아니라, 소련군을 무자비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 책의 첫 페이지에서 비버는 소련군이 탈영병들을 처형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군의 탈영병들 처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왜 비버는 오직 소련군만을 비판하는가? 잘 알려져 있듯이, 독일 헌병은 수천 명의 독일 탈영병들을 재판도 없이 처형했다. 독일 제6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당했을 때, 독일군 항공기에서 투하한 식량 보급품에서 먹을 것을 훔치려던 수천 명의 독일 병사들을 독일 헌병이 처형했다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마리오 소사, 채만수 옮김, 진실이 밝혀지다 - 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개역판), 노사과연, 2011, 252쪽.)


즉, 앤토니 비버가 쓴 스탈린그라드를 예를 들자면, 이러한 문제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숫자의 과장성에 대해 언급하기 이전에 서구 및 반스탈린 성향의 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또 하나의 근거 자료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오시프 스탈린이 유고슬라비아 빨치산 측근 중 하나인 밀로반 질라스(Milovan Djilas)에게 했다는 얘기다. 소련군은 동유럽을 해방하면서, 1944년에서 1945년 사이 유고슬라비아에도 입성했는데, 이 당시 소련군이 유고슬라비아의 아녀자들을 대상으로 적잖은 강간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이는 후버연구소 출신 학자인 로버트 서비스가 쓴 스탈린 전기에도 인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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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럼 스탈린그라드에서 베오그라드까지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땅에서, 완전히 황폐해진 자기 땅에서 동지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체를 넘으며 싸운 사람들을 상상해보시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정상적으로 반응할 수 있겠소? 그리고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한 뒤에 여자와 재미 좀 보는 게 뭐 그리 대수요? 당신은 붉은 군대를 이상적인 군대로 상상하는데, 이상적이자도 않고 이상적일 수도 없소. 중요한 것은 붉은 군대가 독일과 싸운다는 것이오.”(로버트 서비스, 윤길순 옮김, 스탈린, 강철권력, 교양인, 2007, 799쪽.)


이러한 주장의 출처는 2017년 국내에서 번역된 올레크 흘레브뉵의 책, 『스탈린 - 독재자의 새로운 얼굴』에서도 인용됐고, 우크라이나 열혈 지지자 티모시 스나이더의 책 『피에 젖은 땅』에서도 인용됐으며, 하다못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과 스탈린의 업적을 비교적 재조명하려는 책인, 리처드 오버리의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과 제프리 로버츠의 『스탈린의 전쟁』에서도 인용됐다. 그러나 사실 스탈린이 이와 같은 발언을 했다는 것의 유일한 출처는 밀로반 질라스다. 우리는 여기서 밀로반 질라스에 대해 잠시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밀로반 질라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 빨치산 활동을 한 요시프 브로즈 티토 휘하에 있던 인물이다. 그러나 티토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세우고 난 뒤 1950년대부터 반티토진영으로 돌아서 노선을 반공 친서방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냉전 이후 미국 네오콘과의 인터뷰에서 “공산주의는 19세기 유물이자 재앙이다.”라고 할 만큼 극성 반공주의 성향을 보였던 인물이었다. 즉, 그런 인물이 1961년에 쓴 회고록이 스탈린이 그리 말했다는 유일한 출처다. 여러 학자들이 이 질라스가 한 주장에 대해 큰 의구심 없이 인용했다. 그러나 미국 몽클레어 주립대학의 그루버 퍼(Grover Furr) 교수는 티모시 스나이더의 책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스나이더는 독자들에게 1961년에 출간된 밀로반 질라스의 저서 『스탈린과의 대화』가 출처인 것을 밝히지 않았다. 이 책의 문제를 얘기하자면, 첫째 이 책은 사건이 묘사된지 한참 후에 출간된 책이다. 둘째 유고슬라비아와 소련의 사이가 매우 적대적인 단절을 겪은 시대였으며, 셋째 질라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 등을 고려한 것이었다.”(Furr Grover, Blood Lies - The Evidence that Every Accusation Against Joseph Stalin and the Soviet Union in Timothy Synder’s, Bloodlands Is False, Red Star Publisher, 2014, p.465.)


따라서 이와 같은 질라스의 증언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너무나도 손쉽게 학자들에 의해 인용됐다. 일각에서는 그루버 퍼의 책에 대해, 역사학 전공자가 아닌 비전공자의 주장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학자 중에 질라스의 증언에 의문을 가한 사람이 없는 것일까. 찾아보니 있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인 한정숙 또한 『독일 통일과 여성 - 젠더 관점에서 조망한 독일의 분단과 재통일』이라는 책에서 그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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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소련군이 유고슬라비아 북부에서 빚은 강간 사례를 질라스가 비판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 기록은 스탈린 정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던 질라스의 회상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향에 대해서는 이 기술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한정숙 외 지음, 독일 통일과 여성 - 젠더 관점에서 조망한 독일의 분단과 재통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27쪽.)


한정숙은 이 증언이 전반적인 경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지만, 질라스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기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또한 한정숙은 책에서 “소련의 최고지도자였던 스탈린은 나치와 독일 인민은 구분되어야 하며 인민은 생존해야 한다고 공언했으며, 또한 군에 전달된 스탈린의 명령 자체는 교전국 여성들에 대한 강간을 엄금하는 것.”이었다고 기술했다. 따라서 그런 점에서 스탈린의 태도는 슬라브인들을 하등인간으로 여기며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슬라브인들에 대한 잔학한 만행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도록 부추겼던 히틀러의 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한정숙의 주장이다.


이제 다시 얘기를 밀로반 질라스의 근거출처 불명의 주장에서 강간 피해자 숫자로 돌려보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련군에 의한 전시강간 피해자는 200만 명으로 추산하는 것이 서구학계의 클리셰다. 그러나 이러한 추산치는 과장의 의구심이 다분히 드는 추산치다. 그 이유는 앞서 한정숙이 쓴 글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군에 전달된 스탈린의 명령 자체는 교전국 여성들에 대한 강간을 엄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래는 1945년 1월 19일 스탈린이 군에 내린 명령이다.


“위대한 붉은 군대의 장교들과 병사 여러분! 우리는 이제 적국 영토인 독일에 진입하게 됐습니다. 독일인이든, 체코인이든, 폴란드인이든 소련의 붉은 군대가 해방한 지역에 남은 주민들이 해방군대에 의한 폭력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됩니다. 가해자들은 전쟁법에 따라 법적으로 처벌받게 될 것입니다. 해방된 지역에서는 여성과의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폭력과 강간 가해자는 전쟁법에 따라 총살될 것입니다”(https://www.facebook.com/107090729641832/photos/a.114521008898804/1026602984357264/?type=3&paipv=0&eav=Afavt8V-BSIMtCWFZjc3DMyCrrJpdrIkawDZr3Mr9El4q_EUwnWQGDXqKRz7cFIOPcQ&_rdr)


이는 앞서 길게 언급한 밀로반 질라스의 주장과도 대비가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독일을 포함한 피해자 여성들이 있었기에, 강간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 앤토니 비버의 추산치 보다 낮게 잡은 추산치도 있다. 예를 들어, 전시 지도자로서의 스탈린의 업적을 재조명한 제프리 로버츠의 경우 『스탈린의 전쟁』에서 붉은 군대가 자행한 강간의 추산치는 수만 건에서 수백만 건에 이르는데, 정확한 수치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반면 한정숙은 최소 추정치로서 2만 명에서 10만 명 그리고 190만 명설까지 나돈다고 주장했다. 이 두 가지 추정치를 조합해 보았을 때, 소련군에 의한 전시강간 피해자 숫자는 최소 추정치가 2만 명에서 10만 명이고, 건수로는 수만 건 정도라 추정해볼 수도 있다. 로버츠가 말하듯이, 중간이 최소와 최대 추정치 사이에 있다고 치더라도, 200만 강간설은 과장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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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강간 사례가 군대 규모에 비해 적었다는 자료도 있다. 아나톨린 칼린(Anatoly Karlin)이라는 러시아 학자가 쓴 ‘붉은 군대의 독일 여성 강간은 괴벨스의 작품이다’라는 자료에 따르면, 벨라루스 제1전선군의 경우 1945년 4월 22일부터 5월 5일까지 90만 명의 붉은 군대 가운데 총 124건의 범죄 중 72건이 강간이었다고 한다. 이 글에 따르면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는 소련의 붉은 군대를 약탈자와 강간범으로 묘사하고자 했고, 전쟁이 끝난 이후 소련군에 의한 독일 여성 강간 숫자가 2만 명에서 15만 명 정도로 추산되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인 1992년 독일의 두 페미니스트인 헬가 잔더와 바바로 조르가 쓴 책에서 200만 명이라는 추산치가 나왔다고 한다. 또한 그 두 명은 괴벨스가 이용한 소련군이 8세에서 80세까지의 여성을 강간했다는 프로파간다를 거리낌 없이 이용했다고 한다.(https://www.stalinsociety.com/news/redarmyrapeofgermanygoebbels)


이러한 추산치를 보더라도 소련군에 의한 전시강간은 괴벨스의 프로파간다 냉전시기 서구의 반공선전 그리고 냉전 이후 독일 두 우익 페미니스트가 쓴 책이 출처였다. 심지어 나무위키도 앞서 언급한 소련군이 8세에서 80세까지의 여성을 강간했다고 강조했는데, 그 원 출처는 요제프 괴벨스였다. 이와 같은 부적절한 출처를 앤토니 비버가 사용했고, 티모시 스나이더를 포함한 반스탈린 진영 학자들이 사용했으며, 심지어 한국 현대사 전공자이자 나름 진보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학자 김태우도 책에서 잘못된 출처를 인용하게 됐다. 


거기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또 다른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서방 연합군에 의한 유럽 지역의 전시강간이다. 독일 측 학자 미리암 게브하르트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대략 86만 명의 독일 여성들이 서방 연합군에 의해 강간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놀랍게도 게브하르트는 소련군에 의한 강간 피해자들보다 서방 연합군에 의한 강간 숫자가 더 많다고 주장했다. 게브하르트는 미군에 의한 성폭행 피해 여성을 19만 명으로 제시했다. 그녀에 따르면 “미군 점령지의 일부 지역, 이를테면 뮌헨 근교 무스부르크라는 마을에서 독일 주민들은 미군을 위해 문 앞에 주거인의 나이와 성별을 적어두도록 명령을 받았고, 그 마을의 목사는 피해 여성을 병원에 실어다주거나 도피처를 제공해야만 했으며, 성폭행 혐의로 군사법정에 서게 된 미군들은 한결같이 독일 여성이 거부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는 것이다.(이동기, “2차 대전 종전 뒤안, 강간과 학살의 기억”, 한겨레21, 2015.05.28.,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39607.html>.)


이런 점을 보았을 때, 통계에 따라선 소련군 보다 서방 연합군에 의한 전시강간이 더 많았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거기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소련군에 의한 강간 사건이 생각보다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료들도 제법 있다. 단, 이러한 자료들이 비교적 서구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할 뿐이다. 물론 이것이 소련군에 의한 강간이 없었다거나 매우 적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왜 소련군의 전시강간만 제2차 세계대전을 논하는 데 있어서 자주 언급되는가?”다. 글쓴이는 이 점은 바로 서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루소포비아적인 측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서구에게 있어 러시아는 항상 야만적인 이미지로서 형상화 됐다. 그리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속에서, 미국이 소련에 대해 가지는 보편적인 내러티브로 적용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부분은 2022년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잘 나타났다. 전쟁 초기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언론 보도들을 보면, 그것이 설사 사실이 아닌 허위정보여도 사실로서 받아들여졌다. 그 과정에서 서구는 러시아가 마치 서구에게 질 것 같은 존재로, 우크라이나에서 테러와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는 야만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더 나아가 서구의 언론들은 러시아군이 광범위한 강간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구체적인 근거를 찾지는 못했다. 글쓴이는 당시 그런 언론보도를 보며, 한 가지 주제가 떠올랐다. 그게 바로 본 글의 주제인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소련군의 전시강간이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전시강간을 다루는 내러티브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이는 서구와 우크라이나의 내러티브를 통해, 이러한 행간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통해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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