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날 민족문화라 여겨지는 것은 전근대 시기 생활 풍습과 관련되므로, 민족문화는 허상이라는 관점
민족이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인 것은 맞지만, 민족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은 그 지역의 심리적이고 문화적이며 지리적인 양식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대부분 나라의 민족문화는 전근대 시기의 풍습과 항상 관련됩니다. 다시 말해, 어느 나라 민족문화든 전근대 시기부터 유구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생활 풍습과 직접적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유를 들어 민족문화를 단순 허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2. 한민족의 문화라 여겨지는 것은 이민족의 풍습도 섞여 있는 것이기에 ‘순수한 민족문화’가 아니며, 따라서 ‘한민족의 민족문화’란 있을 수 없다는 관점
이건 민속학적으로 고찰되어야 하는 영역이라 지금 당장 구체적인 것까지 다루기는 어렵지만, 어느 나라 민족문화든 그 낱낱 요소의 발생적 계기를 따지면 다양한 인구 집단의 풍습과 연계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요소가 뭉쳐져 한번 형성된 문화는 상대적인 보존력을 갖추고 있기에 그것과 이질적인 문화와 수많은 주·객관적 형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각국 문화 충돌 양상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요소입니다. 이 대립 관계의 발전 양상 속에서 부르주아적 생산관계가 개입하였을 때 비로소 각자 질적으로 구별되는 민족의 문화들이 분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의 모든 나라의 민족문화에서 타 민족이나 인종에 대한 배타적인 요소가 관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족문화의 발생적이고 질료적인 측면 대부분은 자본주의적 관계가 발달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근래의 전근대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이 성숙한 규정으로 되기까지 발전 양상 속에서 부르주아의 이해관계에 의해 선별된 것만이 남게 되고, 이것이 최종적인 민족문화를 구성하게 됩니다.
3. 제국주의-식민지 관계는 모조리 자본주의 모순이 그 현상의 심급에 있는 것이므로 민족 모순은 허상이라는 관점
이 문제는 수십 쪽에 달하는 글로 답해야 하는 문제긴 해서 속성으로 던져 놓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설명이 약간 추상적이고 단편적이어도 이해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일단 상술한 관점의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면, 모든 자본주의 모순 역시 인간 사이 관계의 특수한 모순 형태이고, 인간 사이 관계의 특수한 모순은 그 또 근원적으로는 생화학적 분자 간 운동이며, 이 운동도 역시 그보다 저차적인 형태의 운동으로 나누어질 것이니 결국 모든 제국주의-식민지 관계는 미립자의 관계로 환원될 수 있습니다. 피상적인 계급 환원이 ‘계급적 관점’에 있어 자기 배반적인 이유는, 그 계급 환원에 동원되는 내용의 표현이 그것을 비계급적인 무언가로 환원시킬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환원은 현실 사태의 구체성을 파악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못 줍니다.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발전한 이래 각 제국주의 국가가 어떠한 동기로 식민지를 개척하고, 식민지는 또 어떠한 관계로 제국주의와 대립을 하며, 이 과정에서 주로 어떠한 주·객관적 내용 규정이 재생산되는지 구체적으로 봐야 하는 겁니다. 아주 간단하게는, 제국주의-식민지 관계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대립 양상의 성립에서 민족이라는 게 완벽히 허상에 속하는 경우에 그 관계가 과연 성립할 수 있는지 따져 본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식민지배는 필연적으로 피지배 민족 집단에 대한 전 영역에서의 차별을 가져오며, 그 반대 민족의 사회경제적 특수를 정당화합니다. 이러한 양상의 본질은 독점자본의 초과이윤 획득을 위한 제국주의 세계 재분할에 있습니다. 본질 운동의 전개는 민족 간 모순을 심화함으로써 양 민족의 성격 차이를 끊임없이 추동, 피지배 민족과 지배 민족 사이의 내용적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합니다.
제국주의 시대에서 이와 같은 민족 대립이 끊임없이 발전하는 이유는, 식민지에서 제국주의 자본의 점유하고자 하는 대상이 해당 나라의 어느 특정한 계급의 영역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나라 전체 영역의 강토·자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일제가 농지 약탈과 더불어, 1915년 조선광업령을 통해 광산까지 약탈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1930년 조선어업령을 내려 물에서 나는 생활 수단까지 통제하고자 했습니다. 식민지에는 다양한 계급이 분화되어 있는데, 서로 적대적인 계급들도 어디까지나 그 나라의 자연적 토대 위에서 생활하므로, 제국주의 자본의 보편적 의도와 식민지 민족 사이의 대립은 필연적입니다. 제국주의 국가는 일차적으로, 식민지에서 협력자를 물색하고, 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면서 점차 그 나라 민족경제의 자연적 기반을 완전히 자기 수중 아래 두려고 합니다. 이마저도 부족해서 제국주의 민족은 다양한 방면과 수단을 통해 민족 융합 정책을 실시하면서 식민지 지배를 원활하게 하고자 합니다. 현대 신식민지 체제에서는 몇 가지 통제 수단이 소멸하였지만, 여전히 그 나라 경제를 예속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이 활용·강구되고 있습니다. 핵심은 식민지 체제가 어느 한 계급에 대한 공격을 넘어서, 그 식민지 민족에서 일정 (제국주의에 대한) 피억압의 관계에 놓여 있는 모든 계급의 이해관계와 적대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조건이 부득이하게 민족 모순을 재생산합니다.
공산주의자는 민족적 대립 양상을 외면하거나, 그것을 ‘계급’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 대립 양상이 지니는 의의를 보존하며, 그것이 계급적 이해관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식민지 피지배·피억압 계급에게 각인시켜, 계급 전선의 형성·발전을 위한 주체 역량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식민지에서 계급 전선이란, 구체적으로 한 민족의 계급 전선입니다. 공산주의자는 특수한 사회 체계 내부에 산재한 개별 모순을 계급모순으로 성장·전화시킬 수 있는 모든 매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 토대 위에서 계급 전선을 구축해야 합니다. 사다리 없는 계급적 주체 역량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민족 모순의 근저에는 계급적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고히 견지해 나가면서, 각 민족 간 불필요한 대립을 최대한 해소하고 제국주의 민족과 피압박 민족 간 대립이 계급적 양상을 띨 수 있게 유도, 그러한 대립이 계급의식 확산의 매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공산주의자의 전술적 과제입니다.
변증법적 논리학에는 심급으로 규정된 본질적인 것이 자기 복귀를 개시하면서, 다양한 현상 규정을 자기의 필연적 경로로 구성해 내고, 이러한 경로로서의 현상이 대상의 구체성을 파악하는 데서 중요한 결절점으로 되는 지점을 해명해 나가는 영역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연구할 때는 그것이 특정한 시작 지점과 상대적인 목적 지점을 복귀해 나가면서 자기의 질적 체계를 유지하며(그리고 동시에 자기 사이클 내부의 모순을 심화해 나가면서 자기 사이클의 소멸을 정립하는), 그 과정에서 다양한 규정을 자기의 구체성을 완성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삼는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민족만이 아니라 여성, 성소수자, 생태 영역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현 시대 자본주의 기본 모순의 자기 전개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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