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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현시대에서 철학의 쓸모 (1)

생산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30 17: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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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우리 시대에서 철학의 쓸모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수많은 지식상(知識商)이 “우리는 인문학 멸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며, 시대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는 철학에 관한 실제 군중의 동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본질적 계기는 자본주의의 보편적인 사회경제적 작동 원리에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의 사회화가 전개되는 만큼 분업의 중요성이 날로 확대되는데, 이는 전일적 관점의 발양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지적 생산물의 사회적 사용가치를 소멸시키는 요인으로 된다. 자본주의 발전 경향에서 모든 지식의 성장은 분업의 제약성을 더욱 심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는 철학도 예외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은 그 학문의 근본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다른 영역보다 분업 효율화에 기여함에서 더 큰 제약을 지닐 수밖에 없다. 자본의 부문 간 경쟁에서 수반되는 제 법칙은 부르주아 국가와 개별 자본 전체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서 가장 적합한 노동력을 형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도록 강제한다. 개별 자본가가 원하는 지식은 자연과 사회 발전의 합법칙성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 아니라, 생산 기술의 첨단화 및 자기 상품의 수요 증대를 보조할 수 있는 모든 학문적 수단이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철학은 그보다 제한된 영역을 중점으로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소비의 한 부문인 유희 수단으로서의 그것이고, 하나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선전 수단으로서의 그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산 노동의 특수한 결합 양식, 무정부적인 사회적 생산의 발전으로부터 끊임없이 야기되는 소외는 사회에서 철학의 쓸모가 제약되는 양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철학자들 스스로가, 철학이 실제로 우리 시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상응하는 정도의 쓸모를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는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데 열중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실제이다. 그들의 행동 양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을 반영한다. 자기 자신과 타자 사이의 구체적 관계를 직접적 사물의 관계로 나타나는 물신화와 더불어, 주관적인 영역 내에서 소외의 주요한 양상―개인을 구성하는 사회의 내적 관계와 개인이나 개체의 인격성 자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소외된 의식의 보편적 양태는 부르주아 철학 특유의 경향성을 산출하였다. 철학이 응용 실증과학의 정교화에 어떠한 보조적인 역할도, 또 상대적으로는 주도적인 역할도 할 수 없도록 하는 그들 체계가 지배적인 것이 되었을 때부터 학문의 진보에 있어 철학의 무용성은 이미 입증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그것은 자본의 의도 위에서는 아직 일정한 유용성을 지니지만, 철학이 그러한 유용성을 지닐 수 있는 형태를 전화되었을 때는 이미 철학이 달리 전개할 수 있던, 또는 그럴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수많은 영역이 철학에서 잘려 나간 뒤였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부르주아 사회에서 철학이 실질적으로나 공식적으로나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은 과거보다 명백히 축소되어 있다.


부르주아 철학자 하인리히 리케르트(Heinrich Rickert)는 자연과학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기존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과학적 개념 구성이나 서술의 본질은 우선 각각의 개별적 형상이 ‘사례’로 종속되는 보편적 개념을 구성하려는 데 있다. 이 경우, 사물이나 현상에서 본질적인 것은 사물과 현상이 동일한 개념에 속하는 객체와 공통으로 갖는 어떤 것이고, 순수하게 개성적인 모든 것은 ‘비본질적인 것’으로서 과학에 포함되지 않는다.”1 자연과학의 ‘한계’를 발견한 그는 자연과학과 달리 ‘개성적인 것’을 간취할 수 있는 ‘문화과학’의 토대에 관해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확실히 문화 현상의 의의는 오직 문화 현상의 개성적 특성에 달려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적 문화과학에서 문화 현상의 보편적 ‘본성’을 밝혀내길 원할 수 없고, 개성화하는 방법을 취해야만 한다.”2 이 바덴 학파의 이론가가 제출한 ‘문화과학’에 어른거리는 과학으로부터 철학의 독립 열망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부르주아 철학자에 의해 매우 다양한 양태로서,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주관주의 체계로 재생산되어 왔다.

부르주아 철학 영역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이러한 ‘독자성’의 독은 철학의 쓸모를 매우 제한적인 틀에 가두고자 하는 그 반대급부의 편향과 함께 자라났다.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는 철학의 ‘역할’과 관련하여 ‘낡은 철학’과 비교되는, ‘새로운 철학’을 주문하며 다음과 같이 적는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역사주의에서 벗어나서, 우리 시대의 과학이 보여준 성과들만큼 정확하고, 정교하고, 신뢰할 만한 결론들에 도달하려고 논리적 분석을 시도한다. [...] 새로운 철학은 절대적 진리를 찾아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 철학은 경험적 지식에서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3 과학과 철학이 상호 정립적이라는 것―경험과학의 발전이 보편적이고 특수한 논리적 문제를 항상 야기하며, 논리적 문제가 철학적으로 다루어지고, 정리된 지식 체계가 조만간 과학 발전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전보다 더 광범위한 지식 영역에 적용되어 간다는 역사적 발전 경향, 그것이 진리의 한 축을 구성함이 그의 저서에서는 전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경험적 지식에 객관적 실재의 본질적 관계가 함유되어 있으며, 외적인 경험이 사유로 전화되었을 때 그것에 사유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변증법의 핵심과 그의 견해 사이에는 근본적인 적대가 놓여 있다. 발전과 지양의 경향성을 절대적으로 무시하는 귀결로 그의 주장은 케케묵은 철학적 불가지론의 전형을 또다시 제시하는 것을 넘지 못하였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은 물리 세계에 관한 어떤 지식도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개별 사건은 물론이고 개별 사건들을 지배하는 법칙조차도 확실성을 갖고서 진술할 수 없다.”4 이미 엥겔스는 과학과 철학적 사유 사이의 관계를 정함에서 그것이 하나의 정해진 방향성만을 띤다는 견해를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대부분 자연과학자는 아직도 낡은 형이상학적 범주들을 고수하며, 말하자면 자연에서 변증법을 증명하는 이러한 근래 사실들이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그것들을 상호 간 연관하여야 할 때 어쩔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사유는 필수적으로 요구된다.”5

20세기 초에 들어 과학이 취급하는 대상의 수많은 연관 작용이 실제적인 만큼, 과학에 대한 철학의 관계도 실제적이며, 이것 역시 과학의 객관적 탐구 영역으로 될 수 있다는 관점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이 급속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모든 설명[사실에 대한 과학적 설명; 인용자]은 사라져야 하고, 기술(記述)만이 그 자리에 들어서야”6 한다는 주관주의적 소망과 결합하였다. 부르주아 철학의 이러한 퇴행적 경향―동시에 자기 모순적인―은 아주 정확히, 철학이 인간 지식 발전에 공헌할 수 있다고 할 때 합리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강화할 수 있게 하는 학문적 토양을 그것 발생의 기점보다 훨씬 근본적인 수준에서 제거하였다.


이러한 경향들은 또한 인식된 수다한 것을 구체적 보편으로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철학적 기반인 일원론적-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한 회의적 관점을 양산해 냈다. 수많은 부르주아 철학자가 사이비 ‘자유’ 관념을 퍼트렸다. 이 영역에서 그 누구보다 선두를 달린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결정론이라면 모두 그러하듯이 이러한 태도에서는 개인의 책임이라는 개념이 배제된다. 이론들이야 무어라고 하든지, 사람들이 어떤 사태에 대하여 만족하거나 우려하거나 열광하거나 두려워할 때, 그 일에 대한 책임이 누구 또는 무엇에게 있는지를 실천적인 이유에서 또는 지적 고찰을 위하여 묻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만약 세계의 역사가 인간의 자유 의지와 자유로운 선택에 (이것들이 어떤 개별적 상황에서 실제로 발생했든지 않았든지) 별로 영향받지 않고 별도로 존재하는 힘의 작용 때문이라면, 세상사의 진행에 관한 설명은 그러한 힘의 전개에 입각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주체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거대한 힘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7

‘자유’에 관한 그의 여러 논문에서 드러나는, 철학사에 관한 극도의 몰이해와 무지는 다루지 않더라도, 그가 결정론을 비난하는 것만큼 “책임”이 어떠한 “실천적인 이유”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제공하는 논리적인 근거의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대로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이유”가 없이 임의로 “자유 의지”나 “자유로운 선택”이 나타난다고 하는 설명만큼이나 “신비주의적”이고 “신학적”인 잠꼬대는 없을 것이다. 대체로 일원론적-결정론적 세계관의 노골적인 비난자들은, 그 비난이 최소한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데에 얼마나 많은 일원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성격의 해명이 필요한지 조금의 가늠도 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아주 단순한 수준에서 관찰을 구체적 사실로서 진술하기 위해 수많은 근거를 찾아내고, 근거를 통해 얻은 초기 수준의 범주 구조를 일관한 내용과 형식으로 체계화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물을 언뜻 보아 상이한 사태들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불가피하게 일원론적-결정론적 체계 접근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토대를 허물려 한다면, 탐구란 애당초 필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경우 우리는 우리의 다양한, 그러나 제한적인 경험들에서 도출되는 각각의 견해가 각자 ‘새로운 시작’으로서 ‘자기만의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만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원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의 무화(無化) 속에서는 예컨대, 지금 당장 지구가 원판의 입체 형태를 띠고 있다고 주장해도 이에 반박할 그 어떠한 해명을 가할 수 없다. 그것은 그것대로 다른 체계와 완전히 차폐된 속에서 나름의 ‘사실성’을 보증한 무언가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부르주아 철학은 이 역설적인 내용이 자기의 체계 내에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을 조금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철학적 인식에서 총체성의 공백은 통속 철학과 이른바, ‘비합리주의’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일조하였다. 물론 대중적으로, 철학을 소박한 인생철학, 속류 격언 모음집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현상이 된 것은 결코 근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생산력의 진보와 낡은 생산관계 사이의 격화되는 대립에서 지배의 정당성을 상실해 가는 지배계급의 사고 체계, 즉 지배 이데올로기의 주요한 경향이었다. 19세기 말에 부르주아 철학자들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 이래 그것은 지배적인 현상이 되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통속 철학은 이러한 퇴행을 보여주는 내용의 집약체이다. 그들에게 더 이상 철학은 과학의 발전 경향과는 직접적으로 연관될 수 없는, 또 그래서는 안 되는 학문으로 취급되고 있다. 근거의 총체적인 부실 속에서 제출되는 테제의 정당화는 곧 근거 없이 행해지는, 더 정확히는 ‘직관’을 무기로 하여 수행되는 모든 편견의 정당화였다.


이 모든 경향이 정권에 대한 노동 군중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최대한 단순화하기 위한 지배계급 각고의 노력에 보조되어 발전해 왔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앞선 모든 기조가 각자 힘을 키워오면서 부르주아 국가의 정규적이고 지배적인 철학에는 어떠한 실제적인 연관 체계나 매개된 것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초월적인 ‘직관’의 강조, 연관된 것으로 설명되어야 할 대상의 내부에 포함될 연관의 자의적인 ‘넘어섬’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발전하였다. 이는 논리적 범주 체계의 연속성을 경시하거나, 그러한 것의 원천적인 부정을 정당화하는 경향을 짝으로 달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일반적으로, 구체적 논증을 매우 원시적인 수준의 유비(類推)로 대체한다. 그리고 이 모든 양태는 다시, 철학에 관한 현대의 더욱 노골적인 속류화의 예비 작업일 뿐이다.


철학의 속류화가 철학의 무용함의 원인이 아니라, 철학의 무용함, 즉 그것의 산업적 무용함이 철학의 속류화 원인이다. 철학의 속류화란 다름이 아니라 지배계급 철학의 속류화이며, 지배계급 철학의 속류화는 곧 지배계급 사유 체계의 특질이다. “인문학의 위기”란 두 방향에서 가속화된다: 하나는 지배계급 “인문학”의 내용적 퇴행에서 자연 추동되는 영역에서 전개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또 하나는, “인문학”에 대한 산업적 수요를 감소시키고, 그것이 자본주의 경제 구조에서 하나의 출판 생산 부문으로서 존립할 공간이 더 이상 확장해 가지 못한다는 객관적 과정으로서 전개된다. 이 발전 방향은 기존 철학자들의 뇌리에 남아 있던 학문에 대한 최후의 구시대적 잔재를 파괴하는 데 공헌했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이 지배적인 운동의 저변에는 ‘인문적 지식에 대한 순수한 추구’가 존재하는 법이지만, 그러한 ‘추구’ 역시 적대적 생산관계의 사회적 분업에 빚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므로, 현대의 소부르주아 지식 상인의 현존은 오히려 다분히 자본주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 속에서 일반적으로 그러한 빚을 질 기회는 점차 협소화된다. 철학에 관한 시민사회의 경제적 동기는 (오늘날 맹렬히 관찰되는) 자본주의 상부구조가 철학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식을 만들어 내었다. 장기적인 이윤율의 저하 경향 속에서 전개되는 구체적인 변동 사항들, 다시 말해 그보다 단기적인, 또 개별적인 생산 부문에서 경제적 상황의 변화 본질인 각 부문의 변덕스러운 이윤율의 변동 속에서, 지적 소비재에 대한 자본가의 생산 여부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철학과 연관된 제 부문은 더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이다. 그러나 지식 상인들이 그 자신 노동력을 형성하는 데에는 많은 희생이 따랐다. 그러므로 일단 무계획적으로 양산된 노동력의 판매자, 즉 강단과 그 주변에서 최후의 자존심―육체노동에 대한 오로지 계급 사회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천시를 항상 달고 재생산되는―을 사수하고자 하는 소부르주아 지식 상인에게 “인문학의 위기”는 도저히 방치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는 자본의 부단한 이동에서 배제된 영역에서 활동하는 지식 상인들에게 정치적으로 일정 혁명적인 성격을 부여하였다.


현시대에서 지배적인 철학은 부르주아 관변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교양’을 제공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소부르주아적 허세 속에서 재생산되는 지적 유희로서, 하나의 자극적인 지적 소비재의 생산을 위한 ‘교양’을 제공할 뿐이다. 그러므로 애당초 노동계급의 세계관이 현시대 철학의 주요한 양태를 재생산하기 위한 제 기관에서 그 어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다는 건 자본주의적 발전 도상에서 필연이었다. 철학의 주요한 경향은 노동계급의 의식화에 그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


현시대의 지배적인 철학은 노동계급 의식화의 반대 작용으로서의 특수한 학문적 체계이다. 노동계급의 철학과 계급 사회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점한 철학은 근본적으로 적대적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당파로서 철학의 쓸모를 말한다면 현대사회에서 주로 논해지는 기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에서 논구되어야 할 것이다.


1. H. J. Rickert, 『문화과학과 자연과학』, 이상엽 역, 서울: 책세상, 2004, 87쪽.

2. 위의 책, 152쪽.

3. H. Reichenbach, 『자연과학과 철학』, 김회빈 역, 서울: 중원문화, 1994, 359쪽.

4. 위의 책, 337쪽.

5. MEW, Bd. 20, Berlin: Dietz-Verlag, 1975, S. 475.

6. L. J. J. Wittgenstein, 『철학적 탐구』, 이승종 역, 파주: 아카넷, 2016, 제109절.

7. I. Berlin, 자유에 관한 다섯 편의 논문,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박동천 역, 서울: 아카넷, 2006,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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