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대한민국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와 반공주의적 군부 지도층이 정치인이 된 세상이었다.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는다’는 정권은 공산주의의 ‘공’자만 나와도 사회주의의 ‘사’자만 나와도 검열과 감시를 일상적으로 일삼았다. 이런 군사독재 정권 시기 민주화 운동가들이 겪어야 했던 지적 사상적 암흑기는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을 정도다. 1964년 미국의 통킹만 사건 조작으로 전면화된 베트남 전쟁(Vietnam War)은 당시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는 전쟁이었다. 중국이나 소련 같은 사회주의권 국가들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프랑스 등과 같은 서방 진영 또한 이 전쟁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전쟁에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참전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가 바로 박정희의 한국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와 박정희 군사 정권을 겪던 한국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 1960년 한국의 국민들은 4.19 혁명으로 이승만을 몰아냈지만, 가난에 허덕였다. 그로부터 1년 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이른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 하여 경제성장을 주도했고, 이 경제성장 과정에서 황금 빛 엘도라도와 같은 시장을 찾았다. 그 시장이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다. 이들에게 있어 베트남 전쟁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자, 국민들에게 반공투쟁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따라서 박정희는 이른바 월남파병을 단행하며 “조국을 떠나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거룩한 전쟁”으로 국민들에게 교육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의 경험이 있던 한국사회는 이승만 시절부터 강력한 반공국가였다. 이승만을 이은 박정희 정권은 그 반공주의를 더 구체적으로 체계화시켰다.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은 박정희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국제적인 인식과 시각을 국민들의 반공정서를 이용해서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박정희 정권의 행보에 반기를 든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저항적 지식인의 표본이자 민주화운동가인 리영희(李泳禧)였다.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60년대 리영희는 현재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했었다. 영어 실력이 매우 뛰어났던 리영희는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이 전쟁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한국의 어용언론들이 ‘반공성전’으로 미화시키는 것에 반대했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베트남 전쟁의 역사적 본질을 사실대로 보도하고자 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근무했던 그는 어용언론사에서 베트남 전쟁 취재 및 한국군 파병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를 써 줄 것을 강요당하고 회유를 받았지만, 끝까지 거절했다.
1974년 그는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에서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작성했다. 그가 집필한 『전환시대의 논리』에 따르면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의 독립전쟁이자 민족해방전쟁이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해서 1세기에 걸친 베트남 인민의 독립전쟁이자 민족해방전쟁인지를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근거를 들어 논증해냈다. 이 책에서 리영희는 베트남 전쟁이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식민지배와 일제의 침략, 프랑스의 재침략 그리고 미국의 침략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해서 미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인지 밝혀냈다. 1964년 미국이 베트남 전쟁 참전 구실로 내세웠던 통킹만 사건이 사실은 미국의 조작극이었다는 사실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아래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 공화국(Republic of Vietnam)이 사실은 베트남 식민지 세력의 잔재라는 사실도 아주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입증했다. 따라서 리영희는 박정희 정권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은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서방 연합국의 침략전쟁이며, 이들이 부도덕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입증해냈다. 리영희는 호치민이 한 평생을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살아왔고, 당시 호치민이 치르고 있던 베트남 전쟁 또한 미국에 맞서 독립을 쟁취하려는 투쟁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지적 암흑기이던 시대 이런 사실을 주장하면 처벌받고 빨갱이로 몰릴 수 있던 시대에 이런 역사적 사실을 얘기한 인물이 바로 리영희였다.
『전환시대의 논리』에 나온 베트남 전쟁의 진실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당시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전환을 선물해주었다.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리영희가 베트남 전쟁을 통해 입증한 사실은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가르쳐온 반공주의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를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맞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 또한 그가 입증해낸 베트남 전쟁의 진실은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사실로서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리영희가 입증한 베트남 전쟁의 진실은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훌륭한 일이고 대단한 업적이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통해 반공의 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이고 기만적인지를 증명해냈다. 물론 이걸 두려워한 박정희 정부는 1975년 베트남 전쟁의 종결과 더불어 그를 긴급조치 9호 위반 즉 반공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두었지만 말이다. 그가 제시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시각은 수많은 이들에게 철학전 전환 즉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시각은 베트남 전쟁의 명백한 진실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이들은 반공주의자들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리영희 선생의 베트남 전쟁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해준 위대한 흐름이었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전환시대의 논리』에 있는 내용을 인용하며 마치겠다.
“미국이 월남 내란을 월맹과 공산주의자의 원조·지령·사주에 의해서 시작된 침략이라는 명분으로 전면적인 군사개입을 하기까지의 베트남 정세는 대체로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한마디로 그것은 프랑스 제국주의·식민주의에 반대해 싸운 베트남 인민의 80년의 투쟁과 반민중적 권력에 대한 민중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고려돼야 할 전쟁이다.”
출처 : 전환시대의 논리 p.397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