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주후에는 사용한 교실을 대청소하게 되었다. 음악실부터 시작해 악기실, 복도, 파트연습실을 청소한다. 교복은 더러워지기 쉽기 때문에 저지나 티셔츠 또는 학교가 지정한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학생이 대부분이었다. (중략)
쿠미코는 칠판지우개를 잡고 귀퉁이에 설치된 클리너에 지우개 표면을 눌러댔다. 위이잉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나며 분필가루가 기계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오, 잘되는데”
들은 기억이 있지만, 지금 여기서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가 귀에 와 닿았다. 쿠미코는 반사적으로 클리너의 스위치를 껐다. 순간 뒤돌아보니 활짝 열린 문으로
아는 얼굴들이 둘 보였다.
“뭔가 부원 엄청 늘었네. 역시 오마에 부장. 수완이 좋아”
거리낌없는 큰 소리로 말을 걸어온 두 사람은, 졸업생인 나카가와 나츠키와 요시카와 유코였다.
사복 차림의 두 사람은 옷 취향이 정반대였다. 조금 큰 듯한 검은 티셔츠와 기장이 짧은 데미지진을 입은 나츠키는 보이시한 인상을 주었고, 흰 블라우스에 핑크 플리츠 스커트를 입은 유코는 걸리(girly)한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헤어 액세서리는 서로 짝을 맞춘 듯했다.
“이건 말야 얘가 내 흉내를 내는 것일 뿐!”
유코가 재빨리 선을 그었다.
“그다지 흉내내는 건 아닌데? 그것보다 반대로 니가 내 흉내를 내는 거 아냐?”
“하아?”
“정말이지 유코는 그렇게나 나를 좋아하는 거구나”
“바보아냐?바보아냐?바보아냐?!!”
“오오 non breath 엄청난 폐활량이네”
도발하듯 박수를 치는 나츠키에게 유코가 덤벼들려 하고 있었다.
보다못한 쿠미코가 입을 열었다.
“선배들...그만 진정하세요. 저희는 익숙한데 1학년이 놀라잖아요”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더니 이윽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청소로 바쁘게 움직이던 1학년 부원들이 갑자기 나타난 방문자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2학년, 3학년 부원들은 익숙한 모습에 속속 작업으로 복귀하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신가요? OG방문이라고 하셔도 오늘은 청소뿐이라”
쿠미코의 물음에 유코는 방문객용 슬리퍼 속 발가락 끝을 좌우로 흔들었다.
“수고하는 후배들을 위해 선배가 간식을 준비해 왔다는 거지”
“네에 짠!”
나츠키가 복도로부터 옮겨 온 것은 3개의 쿨러박스였다.
유코가 기세좋게 뚜껑을 열자 안에는 갖가지 상자 아이스크림이 섞여 담겨 있었다.
쿠미코는 눈을 반짝였다.
“이건...갓갓이네요”
“그치? 훌륭한 OG에게 감사하라고”
가슴을 활짝 편 유코 옆에서 나츠키가 딴지를 걸었다
"아니 이거 우리가 나눠서 낸 건데"
"일단 20분 정도 휴식시간을 갖도록 할까요. 모처럼 받은 아이스크림이 녹아버릴 거 같으니...지금부터 15시까지 휴식입니다! OG께서 간식을 사오셨으니
밖에서 작업 중인 애들한테도 말 전해줘!"
아이스크림의 효과인지 부원들의 집합은 매우 빨랐다.
후르츠맛 아이스크림, 초코렛이 코팅된 한 입 사이즈의 바닐라맛 아이스크림, 소다맛 아이스캔디.
한 명 한 명에 대한 아이스크림 배부가 끝날 즈음엔 음악실 안에서 느긋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유코선배, 오랜만이네요"
체육복 차림의 레이나가 가볍게 인사를 건냈다. 청소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오늘 그녀는 머리를 한 갈래로 묶고 있었다.
"후배 오랜만. 드럼 메이저는 잘 되고 있어?"
미소를 건내는 유코의 눈매는 학생 때에 비해서 부드러웠다. 눈썹에서 삐져나온 브라운 색의 아이라인이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단 제 할 수 있는 만큼 해낼 생각입니다"
"코사카가 그렇다면 그렇게 되겠지. 선페스도 멋있었어"
"보러 오셨던 건가요?"
"모처럼이라고 생각해서 말야. 뭔가 강렬하게 그리워지더라고. 졸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어중간하게 올라간 유코의 양 손이 쥐어졌다 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나츠키의 눈이 언뜻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코가 입을 열었다.
"키타우지...올해는 어때? 전국 갈 수 있을 것 같아?"
"목표는 전국 금상이라 그걸 따려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답은 산뜻했지만 레이나의 시선은 곧장 눈 앞의 선배에게 머물러 있었다.
후, 유코의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럼 다행이야. 전국대회 응원하러 갈거니까. 티켓 추첨 당첨될지 모르겠지만"
"유코 선배가 온다는 걸 알면 모두 기뻐할 거예요"
"코사카가 입발린 말을 하네. 별일이야"
"입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이니까"
레이나의 답에 유코의 손가락 끝이 갑자기 펄떡거렸다.
눈썹 끝을 찌푸리고 팔을 모으더니 유코는 "아-" 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십중팔구 부끄러운 걸 숨기고 있는 거다.
"두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 때가 오다니 2년 전만 해도 생각할 수도 없었던 건데"
"레이나도 유코 선배도 변한 거예요. 물론 좋은 쪽으로"
"그런 쿠미코도 변했잖아?"
"그래요?"
"막 입학했을 때의 쿠미코에게 부장 하라는 말은 할 수 없었겠지"
그렇게 말하며 나츠키는 흰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뾰족한 송곳니는 그녀의 매력 포인트다.
"그러고 보니 내일부터 휴가잖아? 갑자기 하는 말이지만 글피에 시간 있어?"
"글피에요?"
휴일은 3일이지만, 그 중 2일은 이미 일정이 차있었다. 내일은 리리카에게 권유받아 대학 축제에 참가할 예정이었고
모레에는 모두 수영장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글피는 비어있었지만 불꽃놀이 대회가 있다. 누구와 갈 약속은 없어서 특별히 지장은 없었지만."
"지금 예정된 건 없는데요"
"그럼 딱 잘 됐네! 글피에 미조레네 음대 연주회가 있어서 말야. 모처럼 화려한 무대니까 모두 같이 보러가자고 이야기를 했거든"
"모두라고 하시면?"
"나랑 유코랑 노조미. 티켓이 2장 남아서 코사카랑 쿠미코가 일정이 없으면 한번 권유해볼까 했어"
"그건 기쁜데요. 왜 저희를?"
같은 대학에 다니는 유코, 나츠키, 노조미와 달리 미조레는 부내 음악대학에 진학했다.
타키, 니이야마, 하시모토의 출신대학으로 쿠미코와 레이나도 견학을 간 적이 있었다.
아이스캔디 끝을 샤삭 하고 씹으면서, 나츠키는 입술 끝을 가볍게 핥았다.
"두 사람이 오면 미조레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럴까요?"
"그게 사이 좋았잖아? 같이 한솥밥 먹었던 사이이고"
"그런 이유라면 취주악부 부원 모두가 해당됩니다만"
"야야 사소한 건 됐잖아. 그래서 갈 거? 안 갈거? 어느쪽?"
답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거 물론 가고 싶어요"
"좋아 미조레도 기뻐할 거야"
나츠키가 손을 뻗어 쿠미코의 머리카락을 구기적 구기적 휘저었다.
이 감각 왠지 그립다.
무심결에 웃어버린 쿠미코에게 "아이스크림 녹는다" 하고 나츠키가 말했다.
"어라, 나츠키 선배 아닌가요?"
복도 창문 창틀에서 쑤욱 얼굴을 내밀었다.
"카나데 오랜만이네. 아이스크림 받았어?"
"다이어트 중이라서 사양할게요"
"그런 말 말고 젊은 애는 많이 먹어야지"
나츠키가 쿨러 박스에서 아이스크림을 끄집어 내더니 카나데에게 들이밀었다. 포장지에서 스멀스멀 냉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차갑다고요" 하고 카나데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나 내심 싫은 것만은 아닌듯했다.
"잘됐네 카나데쨩"
"아무것도 잘된 거 없다고요!"
휘익 하고 고개를 돌리는 카나데를 보며 나츠키는 더욱 능글능글하게 웃고 있었다.
"신경써 줘서 고마운 주제에"
그런 선배의 말을 카나데는 즉각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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