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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1997년 알바니아, 미완의 혁명에 대하여

SHPLF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5.22 21: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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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베르 호자 사후 라미즈 알리아와 살리 베리샤가 부상하자 알바니아노동당과 사회주의 사회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사회 일부 구성원들의 희망과는 달리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알바니아 경제는 밑바닥으로 추락했으며, 노동자 중 3분의 2는 연금보장 권리를 박탈당했고, 발칸반도 소국의 시골지역 학교들에서 80%가 폐교당했다. 레케 법전(The Code of Leke)으로 제도화된 피의 복수는 1600여 가정이 은신하도록 강제했다. 오늘날 세계 주류 매체들에서 횅횅하는 반공주의와 더불어, 우리는 알바니아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앞서 언급한 조치들의 원인과 배후에 대해 세세하게 들여다볼 예정이다.

1992년은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이 종언을 고한 해였다. 경제는 연쇄적인 폰지사기와 피라미드식 거품투자에 따라 자유화됐다. 전체 투자금 손실량은 12억 달러에 달했고 노동인민과 가족 구성원들의 평생저축금은 하루아침에 증발됐다.

"알바니아에서 피라미드 금융사기 현상은 경제규모에 비해 전례없이 컸고 경제붕괴의 정치사회적 파급력이 이루 말할 수 없었기에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피라미드 사기로 인한 부채의 액면가격은 국내총생산의 반수 가까이 차지했다. 많은 알바니아 국민들이 -인구의 3분의 2가- 다단계 회사에 재산을 투자했다. 다단계 회사들이 파산하자 걷잡을 수 없는 소요가 발생했고, 정부는 붕괴됐으며 무정부 상태로, 2천여 명이 사망했던 준(準) 내전 상태로 치닫았다.”

- 크리스토퍼 자비스, 『알바니아 피라미드 금융사기의 흥망성쇠』中


정부 당국과 연줄을 맺고 있던 알바니아의 신생 자본가계급은 "인구 대다수가 시장기구와 제도적 기제들에 익숙치 않았다"는 구실로 인민들의 고혈을 쥐어짤 수 있었다. (1)

3월 13일 즈음 알바니아의 모든 대도시들이 시위대 인파들로 뒤덮이자 해외 국가들은 알바니아에서 자국 시민들의 대피에 나섰다. 1996년 5월 26일은 민주당과 개혁주의적 "사회당" 양 당이 연루된 선거조작에 따라 대중적 불만이 최고조로 분출된 날이었다. 경찰서와 정부 공관들은 말 그대로 집중포화를 맞았다. 3달여 동안 이어진 시위 도중 국내총생산과 통화가치가 하락하자 (2)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급증하면서 알바니아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1997년 1월 24일 수많은 인파들이 알바니아 남부에 위치한 루시녜 시내 주요 거리들을 점거했다. 시위대는 정부가 관장하던 무기고에서 소총 50만 정과 기타 무기들을 탈취했다. 외무성 장관 셰후는 시위대로부터 공격받았다.

같은 해 1월 26일 수많은 시위대원들은 티라나에 군집하여 진압경찰과 재차 충돌했다. 시위와 소요는 비슷한 시각에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고, 정부 공관과 파출소는 지속적으로 공격받아 방화당하기 일쑤였다. 3월 1일 알렉산데르 멕시(Aleksander Meksi)가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살리 베리샤 알바니아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했고, 전국을 군경과 정보당국(SHIK)의 통제 하에 두어 소요사태에 맞섰다. 그러나 베리샤는 근로인민대중의 수중에 들어간 무기들을 회수하지 못했다. 당시 알바니아 인민들 중 1만여 명이 고향을 떠나 이탈리아에 망명한 것으로 추산됐다.

가두시위와 행진이 알바니아 북부에서 주를 이뤘다면 남반부 지역은 알바니아 공산당(PKSH)의 중심 활동무대로 기능했다. 뛰르끼예의 신문매체 《에메끄(Emek)》지 1997년 4월 1일자 기사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다.

"블로러 저항위원회에서 인민들과 알바니아 공산당의 영향력은 매우 지대했다. 수많은 군중들이 격일마다 치러지는 회의에서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가지 단호한 점이라면 '우리는 결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는 사실에 있다."

《혁명민주(Revolutionary Democracy)》지는 "블로러(Vlora)에서는 저항위원회의 통솔 하에 질서가 흔들림 없이 유지됐다. 혼란도, 절도도, 우발적인 총격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3)

저항위원회는 알바니아 남부 전역에 걸쳐 형성됐고, 풀뿌리로부터 조직됐으며 건설됐다. 저항위원회의 사무를 맡은 위원들은 인민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선출됐으며, 행정기관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었다.

《에메끄》지에 따르면 알바니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들 중 한 명은 "알바니아 인민들의 반파쇼 항전은 동족상잔인 '내전'으로 폄하당했다"고 말했다. 알바니아 공산당과 인민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붓듯 파르티잔 대원 2만 8천명이 희생된 반독일-이딸리아 해방전쟁은 더 이상 국가적 기념행사가 아니게 됐다. 신생 자본가정부는 세계에 알바니아 인민들이 사회주의와 엔베르 호자의 모든 유산을 지우는 데에 행복해할 터라고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을 구슬리며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1997년 4월 10일 독일공산당 기관지 《붉은 여명(Roter Morgen》은 알바니아 총리와 이탈리아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 오간 상세한 대화가 전국에 걸친 질서 복구라는 미명 하에 외국의 군사개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문을 펴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알바니아 공산당은 머지않아 수많은 공산당들에 의해 즉각적으로 채택된 "알바니아에서 손 떼라!" 제목의 성명문을 발표했다.

나토군의 합동작전과 "알바 작전"(Operation Alba)으로 불린 대(對)알바니아 군사개입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 7장 결정문 1101호에 의거했다. 이는 고립무원에 빠진 살리 베리샤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토군은 이딸리아군 2500명과 프랑스군 천 명, 그리쓰군 700명, 뛰르끼예군 500명, 에스빠냐군 500명, 로므니아군 4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뉴요커(New Yorker)》지 1997년 7월 4일자 기사에 따르면 살리 베리샤의 퇴임으로 대통령이 된 빠또스 나노(Fatos Nano, 친자본주의 민영화에 앞장선 알바니아 "사회당" 대표로 1992년 반혁명 당시 라미즈 알리아로부터 당내 권한을 승계받았다 - 역자 주)는 "유럽연합에게 시장경제와 알바니아에서 자본주의 복귀작업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약조했다. 기자는 같은 호에서 "저항운동을 주도했던 알바니아 공산당은 알바니아의 혁명적 전통에 충실하다"는 내용을 더했다. 알바니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성원들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봉기는 우리나라 인민들에게 막대한 경험과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수십년 동안 사회주의를 경험했고 독립을 귀중하게 여기는 인민대중은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4)

알바니아 공산당 당원들은 무엇이 일어났고, 인민권력 붕괴 이후 일련의 사태들이 어떻게 격화됐는지 해외에 널리 알리고 있다. 2001년 9월 8일자 인터뷰에서 라베르 쓰뜨로까(Laver Stroka)는 반혁명 초기 라미즈 알리아(Ramiz Alia)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한다.

"엔베르 호자 사후 라미즈 알리아는 1985년에 겨우 한 표 차이로 알바니아노동당 총서기에 선출됐다. 막중한 고비를 넘긴 뒤 알리아는 공산주의자들과 인민을 회유하기 위해 재앙을 초래한 시기의 막을 열어재꼈다. 집권 초창기에 그는 -엔베르 호자의 생애와 저작을(인민대중은 엔베르 호자가 무엇을 지향했는지 알았기 때문) 강조하는 대신, 장래에 취할 행동의 토대를 닦기 위해 손수 전임자와 결부시켰다- 엔베르 호자를 매일마다 언급했다. 알리아는 코르처(Korca)와 티라너(Tirana)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 엔베르 호자 동상을 건립했고, 엔베르의 이름을 따서 각종 조직과 장소, 기업체들의 명칭을 개명하였다. 그는 모든 사전작업을 끝마치고 나서야 본색을 드러냈다. 예컨데, 매주마다 자발적 주말노동은 의무사항이었지만 노동조직의 유연화에 따라 선택사항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본분을 자발적으로 완수했다. 라미즈 알리아는 노동조직의 유연화로 인기를 잃고 위신이 실추됐다. 그는 1990년 피플스 보이스(People's Voice) 지와의 인터뷰에서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간 모순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개혁과정을 점진적으로 시행해나갔다'고 밝혔다. 이러한 일화를 말하는 이유는 라미즈 알리아가 알바니아 노동당의 적이었고, 엔베르 호자의 지지자였다기 보다 당과 엔베르 호자 모두의 적이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라미즈 알리아는 인민들에게 수정주의자로 인식됐다. 티라너에서 반혁명세력의 반달리즘에 -엔베르 호자 동상이 무너진 시기- 대항하는 집회들에서 수많은 참가자들은 라미즈 알리아가 인민들을 배반했다고 여겼다. 라미즈 알리아가 문제였다는 인민들의 시각은 바로 이와 같았다." (4)

- 라베르 쓰뜨로까, 알바니아공산당(PKSH) 중앙위원회 위원 겸 지로카스터르 당 위원회 제 1서기


알바니아에서 반혁명이 인구 상당수한테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노동자들은 위에서 살펴보았듯 직접적으로 행동에 나섰고, 알바니아에서 사회주의를 재건하기 위해 스스로를 무장하였다. 알바니아의 공산주의자들은 여전히 엔베르 호자가 알바니아 노동당 서기장으로 있던 시기에 일궈낸 진보적, 사회적 성취들을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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