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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 이론의 현실과 한국 현대사 연구
I. 변혁 운동과 이론의 현실
최근 몇 년간 한반도를 둘러싼 객관적인 현실의 변화는 한 마디로 분단사회라고 규정할 수 있는 우리 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한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의 이념과 현실 체제가 몰락했다는 점과, 또한 그것이 자본주의적 세계 질서의 강화와 재편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세계사적 변화가 남북한의 개별 사회 구조와 한반도 전체의 분단 구조에 일정한 영향을 끼쳐 그것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의 변화가 남북한 사회의 기본적인 내부 문제, 또는 모순 구조가 온존한 채 외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우리 사회의 '질곡의 외피만이 변화하는 상황' 이라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전체 민중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는 지양되어야 할 정치 권력이 계속 헤게모니를 장악한 채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응하여 자신들의 지배 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지배 구조의 재편은 일정한 정도의 양보를 수반할 수 있고, 또한 반드시 지배 권력의 내부적 모순 구조를 탈피하는 의외의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회의 변혁을 지향하고자 하는 이론이나 세력이 현실의 이런 혼란스러운 외면적 변화에 휩쓸린다든지, 아니면 주체적인 노력을 방기한 채 역사에서의 의외의 결과만을 기대한다든지 한다면, 더 이상 자신들의 이름 앞에 '변혁'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한반도는 또다른 형식의 분단 사회, 아니면 우리가 정확히 모르지만 어쨌든 새로운 형태의 질곡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고, 그것의 극복은 지금보다도 더욱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그런데 이에 선도적으로 대응해야 할 우리의 변혁 운동과 이론의 현실을 살펴보자. 변혁 운동은 전반적으로 구심점을 갖고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대안을 제시한다기보다는 무엇보다도 전체 역량이 절대적으로 감소하면서, 각자의 입장에 따라 개별적으로 현실에 접근하는 침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변혁 운동 세력의 역량이 무력화되면서 현실의 지배 정치 논리에 개별적으로 흡수되는 것이다. 변혁 이론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론도 운동과 마찬가지로 무엇보다도 대중적인 저변이 축소되는 것이 눈에 두드러진다. 70년대에 네오맑시즘이나 종속 이론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80년대를 거치면서 변증법과 맑스-레닌주의, 그리고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논의로 발전해가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해 왔던 변혁 이론의 연구자나 연구 집단의 감소가 눈에 두드러지게 뜨이며, 이러한 이론적 입장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도 격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나마 계속 변혁 이론의 관점을 고수하고 있는 연구자들이나 집단도 사회주의의 몰락에 따른 내외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일부는 과거에 수정주의 또는 기회주의라고 단언했던 이론들과의 접맥을 꾀하거나 다른 부분에서는 변혁의 형식 논리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II.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미래
운동과 이론의 이러한 침잠의 직접적인 계기는 사회주의의 몰락이다. 어떤 형태로든 운동과 이론의 현실적인 모델이자 이론적 근거가 되어왔던 현존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그로 인해 사회주의 이론이 완전히 무력화됨으로써 남한 사회의 지배 세력과 이데올로그들은 그 동안 상당히 몰려 있었던 수세적 국면에서 벗어나서, 동요하는 사회 체제를 다시 확고하게 장악하고 변혁 운동의 제 세력들을 무력화시킬 수 잇는 생각치도 않은 호기를 잡은 것이다. 또한 이는 통일 문제에서도 남한의 지배 권력이 역으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우리 사회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서구의 맑스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 정당, 또는 사회주의적 발전의 길을 지향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에서도 대동소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마치 19세기 제국주의의 식민지 분할 전쟁을 다시 반복하는 것처럼 미국, 일본, 유럽을 주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열강들이 전세계의 자본주의적 재편을 꾀하고 있다. 일국적인 차원이나 전세계적인 차원에서나 자본의 모순 구조와 갈등 구조는 그대로 온존한 가운데, 사회주의 세계의 와해로 자본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노력 없이도 자본의 세계적인 지배의 외연이 더욱 확대되고 자본의 지배 구조가 더욱 공고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세계사를 보는 두 가지 관점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지금 우리가 묵도하고 있는 현실이 단순하게 사회주의 체제의 와해라는 '외적 요인'으로 인해서 언젠가는 현실화될 자본주의의 모순이 그대로 온존한 채 일시적으로 자본주의적 질서가 강화되고 확대되는 것이라면, 사회주의 체제가 어떤 식으로든지간에 현재의 혼란을 극복하고 다시 사회주의적 발전의 길로 나가는 경우에는 역으로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일국적 차원이든 세계 자본의 차원에서든 모순이 증폭되어 현재화되는 상황을 예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주의 체제를 자본주의 분업 체계에 편입시키려고 했던 자본주의의 노력이 컸을 수록, 더욱 폭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설사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현재와 같이 자본주의적 질서에 편입되어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계속 모색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이 과거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방식의 운동 법칙을 답습한다면, 오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결국 어느 시점엔가는 자본의 모순이 전면적으로 폭발하는 계기가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일시적으로 후퇴했다가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다시 대두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세계사의 현실을 자본의 운동 논리와 역사에 대한 맑스주의의 전면적인 재수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달리 말해서, 자본의 운동 논리와 역사에 대한 맑스의 설명은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 것이고, 사회주의를 와해시키고 자본주의적 질서를 강화할 수 있는 우리가 규명하지 못한 자본의 또 다른 위력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예견할 수 있는 역사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범위내에서의 개량의 차원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현재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그들뿐만 아니라, 변혁 이론에서 변신하는 수많은 절충주의적 모델이나 통합 이론들의 본질적인 입지점은 후자의 입장에 서는 것으로 보인다.
III. 변혁 이론의 반성
다시 우리 사회의 변혁 이론으로 돌아와보면, 변혁 운동과 이론의 침체는 기본적으로 이처럼 세계사적 차원의 문제가 우리 현실에 덧씌어진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런 침체를 벗어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세계사적 차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혁 이론의 이러한 답보 상태에는 다른 한편으로 반드시 우리를 규정하는 객관적이고 외적인 요인때문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원인이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런 이론의 침체를 가져오게 만든 기본적인 요인들을 우리 변혁 이론이 이전부터 자체적으로 안고 있었고, 이것이 사회주의의 몰락이 형성한 외적인 요인에 맞물려 현재와 같은 양상을 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요인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외래적인 변혁 이론의 패러다임에 보인 지나친 정도의 관심에 비하여, 우리 현실의 역사와 사회 구조에 대한 해명의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 그것이 서구 맑스주의자의 이론이든, 제 3세계 이론이든, 정통 맑스-레닌주의 이론이든, 아니면 북한의 '주체 사상'의 이론이든간에 우리의 길지 않은 변혁 이론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현실과 모순을 설명하고 타개책을 제시하기 위해서 우리 현실의 모순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고투를 하기보다는 외래적인 이론이라는 '매타포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변혁 이론이 진단한 현실은 '메타포어적 현실' 이었고, 제시하는 대안은 '메타포어적 대안' 이었다. 우리의 이론 논쟁의 상당 부분은 현실과 괴리된, 외래 이론의 '대리적 소모전'이엇다. 이것은 우리의 변혁 이론사가 연구 성과의 역사적 축적이나 논쟁의 유기적 연결점을 갖지 못하면서, 서구 네오맑시즘에서 종속이론, 종속이론에서 변증법적 철학, 변증법적 철학에서 맑스-레닌주의, 거기서 다시 한국 사회 성격론, 그리고 뻬레쓰뜨로이까 논쟁으로 몰려다닌 것으로 증명된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이렇게 본다면 변혁 이론의 답보 상태는 이제 더 이상 옮겨갈 '이론'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둘째, 분단 사회의 이론이라는 한계이다. 1945년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변혁 이론이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이다. 한국 전쟁을 결정적인 계기로 해서 완전히 고착화된 우리 사회의 분단 구조는 남한 사회의 변혁 운동뿐만 아니라 변혁 이론의 뿌리도 거의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30년이라는 한 세대의 단절을 경과하여 변혁 운동과 마찬가지로 변혁 이론도 우리 사회의 시대적 모순의 발전에 따라 완전히 자생적으로 이 땅에 싹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우리 변혁 이론이 기본적으로 나름대로 이어져 온 자기 역사를 갖지 못한 '뿌리 뽑힌' 이론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이론의 전세대는 거의 전부가 우리 역사에 대한 변혁적 전망을 심어주지 못했고, 따라서 우리 사회의 모순 구조에 대한 분석과 해명의 연구 성과물을 우리에게 전수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분단을 합리화하는 역사관과 이론의 식민주의적 태도를 심는 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물밑듯이 들어오는 외래적인 변혁 이론은 아무런 여과 없이 젊은 변혁 이론가들에게 손쉽게 '우리의 이론'으로 등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셋째, 이처럼 단절된 역사를 갖는 변혁 이론은 현실에 대한 천착을 소홀히한 채 급조된 패러다임으로 단번에 현실을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조급함'을 보인 점도 있었다고 본다. 물론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에 대응하는 변혁 운동과의 연결을 위해 불가피한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서 각각의 운동론과 이론 틀에 집착해서 현실과는 괴리된 공허한 소모적인 논쟁과 편가르기를 하는 모습까지 보이기에 이르렀던 것은 우리 스스로 자성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보다는 각자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우리 현실에 더욱 근접하는 이론의 구체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 '사회 구성체 논쟁'이나 뻬레쓰뜨로이까 논쟁'과 같은 일천한 우리 변혁 이론사의 대표적인 논쟁이 그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한국 사회의 변혁 이론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논쟁의 결론들을 다시 현실에 적용해보고, 거기서 자신의 이론들을 더욱 가다듬는 지속적인 노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예컨데, 한국 사회 성격 논쟁의 경우, 물론 그것이 계속 우리의 이론 논쟁의 전유물이 될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론을 한층 더 폭넓은 현실에 적용하고 다시 자신의 이론을 보완하는 성과물들을 내는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런 작업이 없는 가운데서, 또 다른 논쟁으로 관심의 초점만 옮겨가는 우리 이론의 행태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 이것은 꼭 변혁 이론에만 해당된다고는 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특히 저변이 부족한 변혁 이론의 경우에 두드러진 것 같아서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외국의 변혁 이론이나 아니면 역사적인 경험을 소개하는 데에서 한마디로 그동안 너무 손쉽게 '전문가'들이 등장했고, 그런 '전문가'들은 자신이 아는 것보다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현실에 기반을 둔 이론을 완전히 소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최소한의 수준이 분명히 있다. 이러한 최소한의 수준이 전제되지 않은 채, 그런 이론들을 소개하고 평가하며 더 나아가서 우리 현실을 설명하는 데 자기 멋대로 원용하는 것은 쓸데없는 '이론의 과잉 상태'를 낳는다.
예컨데, "뻬레쓰뜨로이까 논쟁"이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쏘련이나 동구 국가들의 역사나, 혁명과 건설 과정 전반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서, 너무 앞서서 '사회주의의 발전이냐', 아니면 '후퇴냐'라는 결론을 내리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이를 두고 어느 사회 못지않게 활발한 논쟁을 벌였지만, 대부분 이에 관한 빈약한 지식을 개의치 않고 과감하게 사회주의의 운명을 단언하는 피상적인 진단에 그쳤다. 그리고 정작 필요한 사회주의의 역사와 사회 구조를 폭넓고 깊이 있게 파악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런 태도가 전제되지 않은 논쟁은 개념의 혼란을 초래하고 천박한 동어반복을 거듭하다가 이내 수그러들고 만다.
이렇듯 변혁 이론이 침체와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이 초래한 외적 현실 때문만은 아니고, 우리 변혁 이론의 역사성과 풍토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IV. 한국 현대사 연구 과제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변혁 운동과 변혁 이론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재로서는 확실한 해답을 찾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들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자본의 세계적 차원에서의 운동 논리에 대한 해명이 여러 각도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전반적 위기론'을 넘어서는 자본의 역동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현재의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자본의 운동이 어떤 형태와 법칙성을 취하는가? 그것은 과거의 운동과 본질적인 차이점을 취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해명을 통해 전체적으로 자본주의화되어 재편되고 있는 세계 질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사회주의 와해의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규명이 잇어야 한다. 현재의 단편적인 진단을 넘어서서 좀더 근본적인 원인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몰락상을 보이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의 미래를 더욱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먼저 자본의 세계적 구도하에 놓여 있는 한국 자본주의의 위상은 이러한 재편된 세계 질서하에서 어떤 위상을 갖게 되는가를 따져야 할 것이다.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주의적 재편과정에서 과거에 누렸던 세계 분업 체계 하에서의 제한된 특혜마저도 전일화되어가는 세계의 자본주의적 재편 과정에서 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 경제의 현위기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된다. 정경간의 갈등과 대립은 이런 상황에서 가장 민감하게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는 한국의 독점 자본의 불만 표출이며, 자구 노력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지배 권력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단일화된 지배력을 갖고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강요하는 세계 자본과 우리의 독점 자본 사이에서 명확한 입장을 설정하지 못한 가운데, 이른바 '통일 정책'으로 돌파구를 찾으면서 지배 권력을 게속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 이에 반하여 변혁 운동과 변혁 이론은 앞에서 설명한 제 요인으로 인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서, 주체적인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현실을 관망하거나 아니면 개별적인 차원에서 현실에 흡수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현재의 무기력 또는 관망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각기의 입장에서 우리 현실의 구도를 밝히는 작업을 시도하는 가운데서 재결집할 수 있는 공통의 새로운 터전을 잡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현대사에 대한 반성과 정리, 냉정한 평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우리 문제의 철저한 정리는 침체된 변혁 이론에 새로운 활력과 방향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변혁이란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한국 사회 성격론에 관한 논쟁이 벽에 부딪히면서 우리 현대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부터였다. 불과 10년 정도의 일천한 역사를 갖는 현대사 연구가 과거 분단을 합리화하고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역사관을 깨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8.15 직후의 변혁 세력에 대한 새로운 평가, 분단의 원인, 한국 전쟁의 책임 소재, 근대화 개발론의 본질 등 한국 현대사를 보는 시각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이와같은 한국 현대사 연구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앉고 잇었다. 일천한 연구의 역사에 기인한 경험적, 실증적 사료의 빈곤과 조야한 방법론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묻혀진 역사적 자료를 발굴하고 현대사의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서 단계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또 하나의 기본적인 문제점이 발견된다고 본다. 각각의 이론적 입장, 또는 정파적 입장에 따라 한국 현대사를 재단하려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역사 연구의 출발점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관, 또는 입장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은 불가피하고, 또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쳐서 역사의 구체적인 연구의 결과들이 그런 원초적인 입장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더욱 풍부하고 완성된 현실 이론으로 발전하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론이나 정파적 입장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한다면, 역사 연구의 의미는 사실상 없는 것이라고 본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우리의 변혁 이론이 더욱 현실에 뿌리를 튼튼히 내려서 진정으로 우리의 변혁 이론이 되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역사 연구가 이러한 고식적인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항상 우리의 변혁 이론이나 현대사 연구는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고 본다. 한국의 변혁 이론이건 어떤 입장에 서 있는 한국 현대서 연구든간에 일반적으로 또 다른 의미에서 식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전체적인 분위기의 침체에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연구와 서술 태도 자체에도 문제가 있기 대문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것이 한국 사회를 신식민지 독점 자본주의론의 입장에서 보든, 아니면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의 입장에서 보든, 어떤 이론적 정치적 입장에서 출발하느냐 하는 것은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그러한 입장에서 최대한의 열려 있는 태도와 유연성을 갖고 우리 현대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의 태도가 전제되지 않은 가운데 이루어지는 우리의 역사를 쉽게 풀어쓴다는 이른바 '역사의 대중적 형상화'의 작업은, 물론 이러한 측면도 절대로 소홀히될 수 없는 사항이긴 하지만, 내용이 없는 공허한 작업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
이 책에 실린 한국 현대사의 각 논문들이 이러한 한계를 완전히 극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이런 문제들을 의식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이려고 애쓴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우리의 침체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기 바란다.
현실은 거역할 수 없다. 언제나 현실은 역사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변혁 운동이나 이론도 현실에 대응한 자기 변신을 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과학은 현실의 선전 대원일 수는 없다. 현실의 형태는 미래 앞에서 무력하다. 오직 현실의 이성적 내용만이 시간을 매개로 하는 새로운 지양태 속에서 담보되는 까닭에, 우리는 일견 불확실해 보이는 현실의 소용돌이에 담긴 합리적 내용과 한계를 규명하려는 것이다.
1992년 2월, 펴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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