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귀한 장소에 누추한 사람이 와서 미안할 따름

자막으로 드립을 치고 스캔을 떠놓을 수 없던 진중한 화라서 드립 안 치고 넘겼음

다만, 키르히아이스가 살아있어도 스토리는 크게 안 바뀌었을 거 같음

애초에 오베르슈타인도 존나 태클 걸테고

한 번 금 간 인간관계는 쉽사리 안 메워지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라인하르트는 어릴 적에 누나를 뺏긴 그 투쟁심이 기저에 여전히 남아있음

이런 사람은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적이 없으면 삶의 가치를 잃어버림

'남을 저주하거든 무덤이 두 개'는 저주 뿐만이 아니라 전투광에게도 해당됨,

아니, 전투광은 무덤을 수없이 파서 적을 묻으려 하고 자기 뒤에도 묘혈을 파놓지

라인하르트의 응어리를 풀고 싶으면 동맹에 샤프트가 가진 능력과 양 웬리의 지략을 지닌 천재가 하나 더 튀어나와야만 함

그리고 오직 그런 작자만이, 라인하르트를 사로잡은 뒤, 이리저리 상담도 하고 하면서 애송이가 아니라 진짜 사람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지

라인하르트는 잘 알다시피 애송이로 살다가 갔던 걸로 이야기가 쫑났잖아?

나도 기억도 하기 싫은 6년간의 과거가 있는데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럭저럭 흩어내고, 친구 못 만드는 것 정도를 빼고는 대학 생활 잘 하고 있음

교수들도 나에 대해 언급을 하기도 하고,(그게 어이없는게 이틀 크게 앓아누워서 온라인 수업했다가 돈 아낄 겸 그대로 온라인 수업으로 학기 마친 그런 거였지만)

상담도 받으면서 옛 기억도 흝어내고, 내가 진정 뭘 해야 도움이 될지 찾기 전까지는 힘들는데,

내가 직접 고른 정치외교학과는 사실 신의 한 수였지, 학점도 안정되고 내가 쓰고 싶은 의견도 착착 써보고, 딱이더라

거기에 애초에 나도 양 웬리 다음이라면 서러울 정도의 게으름뱅이기도 하고

나한테는 지금 금발의 애송이와 웬 게으름뱅이 둘의 성격이 고루 섞여서 특히 은영전을 보면 볼 수록 더욱 이입이 잘 됨

어떤 느낌인지 단순히 아는 게 아니라, 작가까지 이랬나 싶을 정도로 딱 보이거든

자막을 가져와서 대강 한글패치하는 동안에도 거부감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음

특히 오늘 갓 작업한 라인하르트 파트가 딱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