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보좌파 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을 세가지 꼽자면 (1) 5.18 (2) 소련붕괴 (3) 통합진보당 해체사건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님. 이중에 임팩트와 영향력은 1번이 제일 큼.
그 이유는 몇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1) 국가 자체에 대한 회의감 확산 - 무자비한 학살을 저지른 국가에 대한 반감이 크게 확산되었음. 그 이전까지는 <그래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민주적 선거를 통해 잘 개혁해야한다>라는 입장이 우세했다면, 그 이후로는 <그냥 혁명을 해서 정권을 부셔버려야한다>라는 입장이 대두되었음.
(2) 미국에 대한 반감 확산 - 미국이 전 정권을 묵인하면서 미국을 자유민주주의 선도국가로 보는 입장이 무너졌음. 흔히 평등의 PD와 반미의 NL이라고 하지만, 틀린말임. 당시 운동권과 진보좌파 진영에서 친미는 존재하지 않았고 PD와 NL 모두 미국을 양키 제국주의로 취급했을 정도로 5.18의 파급은 컸음
여기서 (2)번을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진보좌파의 역사가 좀 더 잘 설명되는게
반미 의식이 들끓으면서 미문화원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졌고, 민족통일민주쟁취해방투쟁위원회 (이른바 삼민투) 를 중심으로 반미 - 광주 인식 운동이 일어났음. 이때 삼민투를 이끈 주요한 리더로는 함운경, 강기정 등을 들 수 있음.
함운경이 주도한 삼민투의 미문화원 점거 사건은 광주 학살 진상을 알리는 동시에 학생운동 탄압 가속화로 투쟁방법론이 아닌 반미투쟁노선에 대한 이념싸움으로 확대되었고, 이것이 CNP논쟁을 거쳐 NL-PD 논쟁, 즉 사구체 논쟁으로 확대된 것임.
이중에서 NL을 중점에 두고 설명하자면, NL의 처음과 끝은 모두 광주학살과 연관이 되어있음. 초기 NL을 이끈 지도자들이 대부분 광주전남 지역 출신(89 임종석 전남장흥, 90 송갑석 전남 고흥, 93 강병원 전북고창...) 인것이 광주학살과 연관이 있고
특히 5.18의 중심이었던 전남대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심해서 1990년대 이후 한총련 주체사상파의 거점으로 작용했음. 전남대는 1990년대에 서울대를 비롯한 각종 대학교를 선도하는 좌익 학생운동권의 중심이 되었는데
이러한 주사파 계열에 맞선 비주사 계열 즉 자주혁신 자민통은 용인외대임. 근데 이것도 재밌는데, 당시 용인외대에서 非주사 NL운동을 이끈 사람들은 성남 출신임. 당시 성남은 인구 80% 가까이가 광주전남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 역시 광주학살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평가가 많음.
전남대 중심의 주사파 NL은 이후 형해화되어 더불어민주당으로 흡수되었고(대부분 전향했음) 용인외대의 非주사 NL은 경기동부연합으로 발전함
아무튼 알게 모르게 한국 좌파에 영향을 준 사건이 5.18이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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