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노예, 특히 여자 노예 문제는 병자호란 때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음.
고거전 때도, 몽골과의 전쟁 때도 포로들을 많이 붙잡아감.
병자호란 때는 몸값을 친정에서 지불한 경우도 있고, 나라에서 지불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전 고려 때는 더 상황이 안 좋아서, 나라에서 몸값 지불해준 경우가 많지 않았음.
돈이 있으면, 가서 데리고 오는데, 돈이 없으면 엄청나게 고생을 함.
효의 개념이 고려시대에도 없던 것은 아니라. 뭐 인간성 문제기도 하고.
몽골 때 어머니를 찾아 수도인 대도까지 가서 어느 집 종살이를 하고 있는 것을 겨우 발견하고,
그 아들이 몸값이 없어 고려에서 대도까지 먼 길을 몇 번 씩 오가는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오래 전 기록임에도 눈물 났었음.
자기 며느리, 손자에게는 그토록 매정했던 우리의 인조께서는 희안하게 환향녀에 대해서는 보호해 줄려고 나름의 조치와 노력들을 했었음.
너네 너무 그러지 말라고 일갈하기도 하고.
특히 남한산성으로 유명한 최명길이 그 문제에 정책도 만들고 여성들의 보호를 위해 애썼는데,
오히려 효종 때 가서 인권이 악화되어 버림.
효종이 이 문제에서 있어서는 방관자 내지는 소극적 가담자라고 해야 할까? 그만큼 이 문제를 방치해 두었으며,
북벌하겠다고 하필 조정이 척화파 일색으로 채워지면서, 이 문제의 보루 역할을 하던 최명길까지 실각해버림.
양반 지들이 지켜주지 못해 놓고는 화풀이는 여자에게 하던 진짜 답도 없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현대 기준일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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