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구약 성경의 생령 - “네페슈”
창세기 2장 7절의 “생령”이란 말은 히브리어로는 “네페슈 하야”(nephesh chayah)인데 살아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하야”와 “숨쉬다”는 동사 “나파슈”(naphash)에서 나온 명사인 “네페슈”가 합쳐져, “숨쉬며 살아 있는 존재”(living being), 곧 생명체를 뜻한다.
그래서 새 국제 번역(NIV)이나 개역 표준역(RSV) 성경 등은 그것이 무슨 몸이 없는 혼 같은 것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예전처럼 “생령”(living soul)으로 번역하지 않고 “산 존재”(living being)로 고쳐 번역한 것은 잘한 일이다. 한 때 창세기 2장 7절의 “네페슈 하야”를 “생령”(living soul)으로 번역했던
흠정역(KJV)도 새 흠정역을 내면서 “산 존재”(living being)로 바꾼 것은 특기할 일이다.
“생령” 혹은 “영혼” 등으로 표현된 히브리어 “네페슈”는 구약에 무려 754회나 나오는데 그 중에 22번은 새, 물고기, 짐승 등을 가리켰으며, 7번은 사람과 짐승을 동시에 가리켰다.14 영혼(네페슈)을 불멸의 혼백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다음의 성경절에서 확인해 보자.
⎆ 레위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 신 12:23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이상에서 “생명”으로 표현된 말은 히브리어로 “네페슈”인데, 자주 “영혼”으로 잘못 오해되는 말이다. “네페슈”를 불멸의 영혼으로 생각하고 “생명” 대신 “영혼”을 넣어 말을 만들어 보라. “육체의 영혼은 피에 있다”든지, “피는 그 영혼인즉 네가 그 영혼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말라”는 희한한 말이 된다. 피가 생명일 수는 있어도 영혼일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영혼”으로 번역된 이 “네페슈”를 일반이 오해하는 대로 그런 불멸의 혼백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되는가? 도살장에 죽어 넘어진 소나 밥상에 오르는 물고기, 석쇠에 걸려 구어지고 있는 닭들에게도 불멸의 영혼이 있다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실제로 물고기, 새, 파충류와 육축들이 인간과 동일한 “네페슈”로 불리우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 20, 21, 24, 30절의 “생물”은 모두 “네페슈”의 번역이다.
그런데 역시 번역하는 사람의 판단이나 문맥에 따라, “네페슈”는 “사람”, “생명”, “생물”, “짐승”, “마음”, 죽은 사람 등으로 표현되었고, 절반 이상은 “영혼”(soul)으로 번역하여, 마치 죽은 후에도 존재할 수 있는 빗물질 적인 혼백(魂魄)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기 십상(十常)이게 만들었다. 참 뜻인 “생명”(life)으로는 119번 번역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영혼”(靈魂 · soul)으로 대부분 번역되어 불멸의 혼백으로 인상을 주는 이 “네페슈”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살아 있는 생명체 혹은 생명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지, 인간 속에 있는 어떤 독립적인 본질로 죽을 때 몸을 떠나 존재하는 무슨 귀신같은 불멸의 혼백이 결코 아니라는 결론이다.
(10) 신약 성경의 생령 - “프쉬케”
살아있는 생명체를 가리키는 구약의 히브리어 “네페슈”에 해당하는 신약의 헬라어는 “프쉬케”(psuchē)인데, 신약 성경 전체에 105번 쓰였다. 이 말 역시 번역하는 사람의 판단에 따라, “생명”으로 40번, “마음”으로 3번 표현되고, “영혼”(soul)으로는 58번이나 번역되었다.16 이러한 말의 혼동(混同) 때문에 다음과 같은 혼란(混亂)을 일으키는 비평이 나오게 마련임을 실례로 든다.
(가) 비평 훼케마
“신약 성경에는 최소한 두 번 ‘프쉬케’가 사람이 죽은 후에도 계속 존재하는 인간의 어떤 양상임을 지적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 첫 번 예가 마태복음 10장 28절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프쉬케)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프쉬케)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 구절에서 ‘프쉬케’는[안식일교회의 가르침처럼…] 한 인간 전체[全人]를 뜻하는 명칭일 수가 없다.…그렇다면, 몸이 죽을 때 ‘프쉬케’도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변증
말뜻의 혼동과 함께 선입관이 가져오는 혼란이 단순한 말씀을 복잡하게 만드는 실례이다. 이 말씀을 계속 설명해 내려가는 문맥인 마태복음 10장 39절에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자기 목숨(프쉬케)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프쉬케)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앞 절인 28절에서 “영혼”으로 번역한 같은 말을 39절에서는 “목숨”, 즉 “생명”(life)으로 바르게 번역하여 본 뜻을 바르게 드러내고 있다.
참 뜻이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 육신의 생명을 빼앗길지라도,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골 3:3)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주어진 그 영원한 생명(요 5:24; 요일 5:11, 12)은 핍박 자들이 빼앗지 못할 것이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잠시
뿐인 육신의 생명을 버리는 일까지도 두려워 말라는 격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이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골 3:4)날 것이며, 생명을 잃을지라도 다시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10장 28절 말씀이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뜻이 아님을18 같은 내용의 말씀인 누가복음 12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4, 5절).
오히려 마지막 심판 때에(계 20:12~15),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반대의 뜻이다. 왜냐하면, “죄를 범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고 선언되어 있어 영혼은 불멸이라는 생각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죽은 후에도 영혼이 있다는 두 번째 증거로 훼케마 씨는 다시 다음의 예를 들고 있다.
(다)비평 훼케마
“두 실례 가운데 두 번째 것은 계시록 6장 6~11절에 있다.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프쉬케 복수인 프쉬카스]이 제단 아래 인하여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하니.”
(11) 제단 아래 있는 영혼
(가)반증
훼케마 씨는 위에 묘사된 영혼들이 순교 당하여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로 죽은 후에도 의식을 가진 채 부르짖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 말이 참이라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잃은 각 시대 모든 순교자들의 형체도 없는 허다한 영혼들이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는 좁은 제단 아래 오글오글 밀집(密集)해 있으면서 원통함을 참지 못하여 소리 지른다는 뜻인가? 그러한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라.
주지하는 대로 요한계시록은 심오한 영적인 진리를 주로 상징을 통하여 드러내고 있다. 실례로 앞 장인 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어린 양이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5:6)는 것으로 계시에 나타났다. 모든 것을 통찰하시는 완전한 지성의 상징인 일곱 눈과 누구라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인상 깊게 상징한 일곱 뿔이다. 분명히 상징적 의미인 것이다.
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는가? 제단은 성소의 뜰에 있던 것으로 제사장은 희생제물의 피를 제단 사면에 뿌렸다(레 1:5; 3:2; 17:6). 그래서 억울하게 죽은 순교자들의 희생의 피도 제단 아래 있는 것으로 적절히 상징 되었다. 또한 같은 레위기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17:11) 속죄하는 것으로 표상되어 있다. 피는 희생제물의 생명을 상징한 것이다. 제단 아래 뿌려진 희생제물의 피는 제물의 생명(프쉬케)이 희생된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 피를 신원하여”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결국 피가 부르짖는 것이다.
어떻게 피가 부르짖는가? 하나님께서도 아우를 죽인 가인을 향하여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10)고 말씀하셨다. 이른 바 문학에서의 의인법(擬人法)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한다고 표현되었다(히 12:24).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으로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6:11)셨다고 했는데, 육신의 실체도 없다고 상상들을 하고 있는 영혼들이 어떻게 두루마기를 입을 수 있는가?
상징과 실제를 구별하지 못하면 이상과 같이 해석상의 혼란을 겪게 마련이다. 훼케마 씨가, 신약에서 “영혼”으로 번역된 “프쉬케”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의식을 가지고 존재하는 어떤 본질이라는 증거로 제시한 이상의 두 경우가20 모두 성경과 상식에 일치하지 않는 모순 된 주장임을 밝히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신, 구약 성경에 “생기”, “호흡”, “신”, “영”, “영혼”, “생명”, “목숨”, “생물”, “마음”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된 구약의 히브리어와 신약의 헬라어가 아래와 같이 분포되어 있다.
출처:재림마을 자료실 SDA가 이단이 아닌 이유에 관한 자료집 김종근 목사님의 글
http://www.adventist.or.kr/app/view.php?id=Download&category=4&no=13015&keyword=%C1%F8%BF%EB%BD%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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