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렌조 미키히코의 소설을 읽는 법)







단편 미스터리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읽는 사람이 여백을 채워 넣어야 하는 단편보다는, 쉴틈 없이 쏟아내서 그 속에 허우적거리는 장편이 더 취향에 맞는다. 하지만 렌조 미키히코의 <회귀천 정사>만큼은 다르다. 풍경화 같은 이미지에 그 한꺼풀을 벗기면 보이는 애뜻한 슬픔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 그의 장편 <백광>이 복간 되었다고 해서 읽게 되었다. 페이퍼백 스타일로 나온 복간본은 묘하게 렌조 미키히코와 어울렸다. 특유의 서정적인 정서가 있어서인지, 따지고 보면 첫 출간된지 20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렌조 미키히코 소설은 왠지 색이 바랜 옛날 사진 분위기가 난다.

(페이퍼백이라고 가격도 페이퍼백은 아니다. e북이 나온 요즘, <백광>의 페이퍼백 스타일 편집은 마케팅이란 느낌이다.)

렌조 미키히코는 흔히 가장 아름다운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매력적인 탐정, 신박한 트릭, 충격적인 설정 등으로 기억에 남는 책은 많지만, 추리소설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워서 그랬던 적은 없는 거 같다. 마치 시처럼 함축적이고 유려한 문장으로 인간의 깊은 감정이나 슬픔을 수채화처럼 그려낸다. 그래서 <백광>도 그리 많지 않는 분량이지만, 단편집 <회귀천 정사>처럼 충분히 풍부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광>은 꽤 여러번의 반전이 나오는 책이다. 모두 범인이라 고백을 하지만 한가지씩 감추는 것이 있고, 숨겨진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새로운 오해가 생긴다. 많은 부분 1인칭 시점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그 오해의 순간을 읽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따라가게 된다. 하지만 반전을 예측하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아니다. 1인칭 서술에서 나오는 심리적인 혼란, 환상, 망상을 걷어내고 변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만 정리하면 그 다음 나올 반전은 예상할 수도 있다. 또 추리소설의 몇가지 클리셰를 기억한다면, 혼란스런 묘사 속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물론 모든 반전을 다 알아차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건조한 사실만을 추려낸 채 짐작한 몇 가지 반전을 맞혔을 때 '맞혔다'라는 카타르시스보단 스포 당했을 때처럼의 허탈함이 더 컸다. 애초에 렌조 미키히코의 책은 복잡한 트릭을 쓰지 않는다. 작은 오해나 심리적 맹점을 이용할 뿐이다. 고작 그거 맞히겠다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파헤쳐 단순화하고 서술의 틈에서 미세한 흔적을 찾는 건 이 책의 대부분을 잃게 되는 거 같다. 그건 소설 속 형사들이나 하는 일이고 독자는 그냥 그 흐름에 맡기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러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쌓인 위에 느껴지는 작가의 세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렌조 미키히코의 소설을 읽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