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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니시무라 교타로 - 행선지 없는 차표앱에서 작성

ㅇㅇ(118.235) 2023.06.24 00:47:09
조회 311 추천 6 댓글 5
														

니시무라 교타로의 단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데 혼자보기 아까워서 추갤에도 올려봅니다.







행선지 없는 차표 - 니시무라 교타로

[ 1 ]
비가 그치자 어둠이 깔렸다. 폭 1미터 가량의 배수구가 섬뜩한 느낌을 주며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9월 중순의 둥근 달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근처 공단주택으로 돌아가는 샐러리맨 한 사람이 몹시취한 걸음걸이로 배수구를 따라 길을 걸어왔다. 중년 샐러리맨으로 1주일에 두세 번은 반드시 취해서 돌아온다. 때로는 비틀거리며 걷다가 배수구의 뚜껑 언저리를 지나치기도 하지만, 용케도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가로등이 있는 곳에 오면 꼭 서서 오줌을 누는 버릇이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 곳으로 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늘의 둥근 달을 바라보면서 배수구를 향해 유유히 배설하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상쾌하다. 여느 때도 사람의 통행이 뜸한 부근인데, 새벽 2시가 지나자 더없이 적막해져서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기분이 되어 버린다. 그는 이 날 밤도 여전히 이 곳에 오자 서서 구름 사이의 달을 올려다 보면서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자연스럽게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서주 서주로 인마는 나아갔다.
서주는 좋은 곳인가 살기 좋은 곳인가

그는 갑자기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중년이라고는 하나 전쟁 경험이 있을정도의 나이는 아니다. 다만 군가라면 음치인 그도 부를 수 있으니까 취하기만 하면 그저입에서 흥얼대는 것 뿐이었다. 다음 가사를 몰라서 '살기 좋은 곳인가'라고 같은 말만을 되풀이하면서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 보는 순간, "이크!" 하고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 다. 새까맣게 더러운 수면에 사람의 얼굴이 둥둥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불알이 오그라 들며 배설되던 오줌이 그쳤다.
"더러운 물 속에 둥둥 떠 있던 얼굴이 나를 보고 빙긋 웃어보이는 듯했습니다."
몇 분 후에 달려온 경찰관에게 입술을 떨며 말했지만, 물론 이것은 착각이었다.
배수구 속에 떠 있던 시체의 얼굴은 웃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통의 흔적조차 없이 이상하게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만일 가슴에 깊은 자상이 없었다면 자살한 것으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자상이 있고, 또 그것이 치명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그것은 분명히 살인이였다. 관할 소관인 이다바시 경찰서에서 형사들과 감식과 직원들이 함께 나와 투광기를 켜놓아서 평소에는 어두운 배수구 언저리가 별안간 대낮처럼 밝아졌다.
"복장으로 봐서는 샐러리맨 같은데." 우에다라는 민완형사가 폐수로 검게 더러워진 시체를 내려다 보면서 중얼거렸다.
샐러리맨 모양이었으나 별로 엘리트 사원같은 느낌은 없었고, 곤색 양복의 깃도 구식이며 좁았다. 나이는 40세 정도로 보였다, 윗옷 안쪽에 후지하라라는이름이 박혀져 있었지만, 그 금색 자수도 터져 있었다.
"이런 것이 호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데요."
감식과 직원 한 사람이 젖은 종이 조각을 우에다 형사에게 건네주었다.그 손을 젊은 이노우에 형사가 들여다 보았다. "이상한 것인데요? 국철 기차표 같은데 보통 것에 비해서 크기가 배 정도나 되고..."
확실히 보통 표의 2배 정도였는데 도쿄 시내의 환상선의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게 바로 자유 차표라구." 우에다 형사는 후배인 이노우에에게 설명했다.
"요금은 3백엔. 이 표는 도쿄 시내라면 몇번이고 도중 하차를 할 수 있어."
"잘 아시는군요." "전에 이와 똑같은 차표를 가진 시체를 본적이 있어서."
"어떤 사람들이 이런 차표를 씁니까?"
"그 때 도쿄역에 물어보았더니 하루에 6-15매는 팔린다더군.그 대부분이 세일즈맨 같지만."
"그렇군요. 세일즈맨에게는 편리한 차표인지도 모르겠는데요." 젊은 이노우에 형사는 감탄한 듯 수긍했다가 곧 다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런데 이 시체는 아무리 보아도 세일즈맨으로는 보이지 않는데요?"
우에다 형사도 동감이었다. 세일즈맨은 기업의 초병이란 말을 듣는다. 말하자면 그 기업의 얼굴이다. 새 양복을 깨끗하게 입고 유행하는 넥타이를 매는 것이 통례다.그런 데 이 시체는 유행에 뒤진 양복을 입고 있고 넥타이 또한 싸구려인데다 우선 양복깃에서 회사의 배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 2 ]
후지하라 히로타로가 <행선지 없는 차표>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자유 차표를 사용하게 된 것은 그의 기묘한 성격 때문이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그 흔한 표현대로 말하자면 후지하라의 생활은 평범했지만 행복했었다. 비록 아이는 없었지만 얌전하고 요리 솜씨가 좋은 아내 가스코가 있었다. 후지하라 자신은 고교밖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열심히 일한 덕으로 회사에서 계장으로 승진했다. 정년까지 근무한다 해도 겨우 과장대리 정도밖에는 더 승진하지 못하겠지만,출세욕도 없었다.아내인 가스코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의 취미라면 모형 모델을 만드는 정도였다. 소년 시절부터 손재주가 좋아서 모형 모델 만들기는 그의 성미에 맞았던 것 같다. 돈도 별로 들지않는 샐러리맨에게는 아주 제격이라 할 수 있었다.
2월말 어느날 40세까지 드러나지않았던 자신의 기묘한버릇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후지하라는 그대로 평온한 가정생활을 계속했을 것이고 죽음을 당하지도 않았을것이었다.
그날 오후 5시에 회사 일이 끝나자 후지하라는 언제나처럼 이케부쿠로역에서 야마노데선을 탔다. 신주쿠로 나와 다시 전철을 갈아타고 20분 정도 가면 그의 집이 있다.
곧바로 가면 6시까지는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리고 아내가 준비해 놓은 저녁식사를 들고 목욕을 하고는 잠자기 전까지 모형 모델을 만들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언제나처럼의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케부쿠로역 개찰구를 통과하는 순간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다고는 하나 소심한 그로서는 엄청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야마노데선은 환상선이기 때문에 반대로 가는 것을 타도 2,30분 가량 늦기는 하지만 신주쿠에 가게 된다. 따라서 일상생활에 대한 반역과 음모가 아니라 다만 약간의 외도를 하는 기분이었다. 러시아워여서 전차는 만원이었고 차가 역에 정차할 때마다 조수의 간만처럼 승객이 우르르 내리기도 하고 몰려들기도했다. 다행히 후지하라는 도중에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다. 앉게 되면 눈의 위치는 자연히 서 있는 사람의 허리로 가게 된다.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면 손이나 허리의 모습이 때로는 퍽 재미 있기도 했다. 손을 바지 앞 부근을 가리듯 서있는 중년 사나이는 아마 바지 지퍼가 느슨해져 앞이 벌어지는 것에 몹시 신경을 쓰는 듯했다.
5,6분마다 손이 바지 뒤 호주머니로 돌아가는 젊은이는 지갑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그런가하면 핸드백이 반쯤 열려져 있는 것조차 모른 채 태연히서 있는여자도 있고, 또 그 옆에 여드름 투성이의 고교생인 듯한 소년이 그 핸드백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다. 전차가 신바시에 가까와졌을 때다 미끈하고 부드러운 가는 손가락 끝이 맵시 있게 그의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안호주머니에서 검은 가죽지갑을 끄집어 내는 것을 보았다. "엇!" 무심코 소리를 내지를 뻔하다 후지하라는 참았다. 두터운 가죽지갑이 솜씨 좋게 소매치기의 손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는 순간 그의 등줄기에 말할 수 없는 전율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후지하라는 소매치기의 얼굴을 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을 한 그와 비슷한 나이의 사나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매치기를 잡을까 역원에게 알릴까 어쩔까 하는 마음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후지하라는 다만 멍 하니 그의 작은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손가락을 바라다 보기만 했다. 소매치기 당한 남자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는 소매치기의 그 능란한 솜씨에 박수를 보내 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가죽지갑이 채이는 순간 후지하라를 엄습한 쾌감, 신주쿠에 와서도 그 감미로운 쾌감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해 그는 다음 역까지 부지중에 더 가고 말았다.

[ 3 ]
그날부터 후지하라의 생활태도는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그처럼 좋아했던 모형 모델 만들기조차 전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훌륭한 배나 비행기를 완성해도 전차속에서 본 그 한순간의 등줄기를 가로질러간 흥분에 비한다면 아무런 감격도 느낄수 없 었다. 다음 날부터 의식적으로 반대로 가는 전차를 타기로 했다. 다시 한 번 그뛰어난 마술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여간해서 그 소매치기와 만날 수 없었다.
신문에서 중앙선 전차 안에서 소매치기 피해가 있었다는 기사를 읽자 그는 다음 날은 일부러 도쿄역에서 중앙선을 탔다. 이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뒤바꾸고 있는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아홉살 때 그는 학교에서 좋아하는 여자 아이의 지우개를 훔친 일이 있었다. 그 순간 흥분해서 부지중에 바지를 적신 일이 있었지만, 31년간 잠자고 있었던 그 버릇이 우연하게 눈을 뜬 때문일까.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나쁘다는 것과 소매치기의 현장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것 역시 옳지 않은 줄 뻔히 알면서도 그는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자연히 전차 속에 그런 인간을 눈으로 찾고 있었다. 도쿄 시내에서는 언제나 2-300명의 소매치기가 전차 안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후지하라는 그 후 한 번도 그런 현장을 볼 수 없었다. 그 대신이라고 하면 우습지만, 그 때부터 그의 눈은 차 안의 승객들 호주머니와 핸드백을 줄곧 눈여겨 보게 되었느데, 얼마 안가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의외로 조심성이 없는 인간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뒷 호주머니에 지갑을 반쯤 내놓고도 태연한 젊은이, 핸드백이 열려져 있는데도 알지 못하고 친구와 재잘거리고 있는 젊은 아가씨. 중년 남자들 중에도 가방을 선반에 내던져 놓고는 신문을 읽거나 멍청하게 생각에 빠져 있는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문득 이렇다면 자기 자신도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홉살 때 좋아하는 여자 아이의 지우개를 훔친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자 지난 번과 똑같은 격렬한 전율이 그를 엄습했다.
"요즘 좀 이상해요. 당신."
집으로 돌아온 그에게 아내인 가스코가 이렇게 말한 것이 바로 그 때부터였다.
"뭐라고?" 내심 당황한빛을 감추면서 묻자 가스코는 "눈매가 이상해요.핏줄이 드러나고,잠이 좀 부족한 게 아니예요?"
"그런가봐.요즘 일이 바빠서 고단한지 잠도잘안와."
"그럼 오늘 밤부터 뒷방에서 주무세요." 아무것도 모르는 가스코는 그렇게 말했다.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당분간 방을 따로 쓰기로 했다.그때 이후이상스럽게 아내를 안을 마음이 없어지고 말았다. 안아도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으니까 무드가 무르익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사태가 재미 없게 벌어지고 있었다. 후지하라는 자기 자신을 유능한 엘리트 사원이라고 생각한 일은 없었지만, 그러나 13년간 이렇다 할 잘못 없이 일을 해왔다.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성실한 사람으로 통하고 있었다. 인사과 후생계는 남의 뒷치닥거리를 하는 일이지만, 그는 자기 자신에게는 비교적 알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부하는 3명. 그 중 하나는 여사원으로 초급대학을 갓 졸업한 에바다 유리코라는 스물 한 살 가량의 여자였는데 어느날 별안간 그녀는 후지하라의 상사인 인사과장에게 그에 대한 것을 직접 하소연했다.
"이제 더 참을 수 없어요." 유리코는 금방 울 듯한 얼굴로 말했다.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게 말을 해봐요." 일류대학을 나온 아직 30대의 젊은 나이인 인사과장은 선물로 받은 홍콩제 파이프를 만지작거리면서 유리코에게 말했다.
"계장이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아요."
"후지하라군이? 그는 성실한 사람인데 그런 못된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저만이 아니라 다른사람들도 여간 거북해하지 않아요."유리코는 같은과의 몇몇 여사원의 이름을 대고 "거짓말이 아닙니다.물어봐주세요."
"구체적으로 어떤 눈으로 보지?"
"제 몸을 핡아 올리는 듯이 보아요."
"핥아 올리는 것처럼이라!"
인사과장은 별로 매력을 느낄수 없는 유리코의 몸을 고개를 갸우뚱하고 쳐다보았다.
"근무시간 중에도 그렇게 보나?"
"근무시간 중에는 그렇지 않지만, 아침에 만나거나 퇴근할 때 그렇게 보아요. 무서워서 저는..." 유리코는 큰소리로 말했다.
만일을 염려해서 곧 다른 여사원에게 물어보니 모두 한결 같이 후생계장의 눈매가 이상하다고 말을 했다. 인사과장은 내버려 둘 수도 없어 후지하라를 과장실로 불렀다.
"후지하라군." 과장은 자기보다 나이가 위인 후지하라에게 군(君)자를 붙여서 불렀다.
"나는 본래 고루한 소리는 하지 않는 주의야. 일에 지장이 생기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자네 밑에 있는 에바다양이 내게 호소를 해왔어. 자네가 이상한 눈으로 자기를 본다고 말야. 다른 여자 사원들도 같은 소리를 하더군. 어쩐 일이지? 부인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해서 젊은 여사원에게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후지하라는 변명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녀들의 육체가 아니라 그녀들이 가지고 다니는 핸드백인 것이다. 그런 말을 한다 해도 믿어 줄 것 같지 않았다.
"모르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후론 주의 하겠습니다."
어떻든 고개를 숙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나겠다고 후지하라는 새파래졌다. 13년간을 일해온 회사다. 목이 달아나면 곤란하다. 어떻게든 묘한 버릇을 고치려고 생각했다. 전차를 타도 눈을 감고 승객을 쳐다보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물론 회사 여사원에게 대해서도 같았다. 회사에세는 눈을 감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얼굴만 보도록 노력했다. 그런 억지스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던 중에 짖궂게도 이번엔 그 자신이 안호주머니에 넣어 둔 지갑을 감쪽같이 차 속에서 소매치기 당하고 말았다. 그것도 월급날 다음 날이어서 한 달분 용돈 20000엔을 아내에게서 받아 그대로 전부 그 안에 넣어 둔 채였다. 생각해 보면 혼잡한 차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후지하라는 소매치기의 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봉이었을 것이다. 보통 때라면 숨기지 않고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아내에게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자신의 마음 속에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한 푼도 없게 된 용돈은 카메라와 테이프 레코더등을 전당포에 잡혀 적당히 보충했지만, 다음 날부터는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있을 수 없게되었다. 이렇게 되면 도로아미타불이 다. 전처럼 싫어도 시선은 자연히 승객들의 핸드백이나 호주머니나 가방으로 가게된다. 그리고 3월 상순 어느 날 후지하라는 야마노데선 전차 안에서 소매치기 담당인 형사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 4 ]
언제나처럼 차 안은 러시아워로 붐비고 있었다. 그의 바로 앞에 30세 가량의 여자가 서 있었다. 뚱뚱하고 키가 작은 전혀 매력이 없는 여자였다. 그러나 후지하라의 눈은 그녀가 매고 있는 핸드백에 고정되어 있었다. 완전히 고리가 풀어져 있어 지갑이 엿보였다. 그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예능 주간지를 열심히 보고 있엇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이 상태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후지하라는 생각했다.
만일 손을 뻗어 소매치기를 하면 아마 기막힌 기분이 될 것이다.아홉살 때의 그 쾌감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소매치기 현장을 목격했을 때처럼 달콤한 전율에 잠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안 돼.'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급히 핸드백에서 눈을 돌렸다.
그러나 그의 자제력은 2,3분밖에는 지속되지 않았다. 부지중에 시선이 그리로 돌아가 버렸다. 저대로라면 진짜 소매치기에게 당할 것이다. 여자는 여전히 주간지에 열중 하고 있었다.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지갑이 곧 핸드백에서 떨어지려고 했다.
'빨리 핸드백에 고리를 채우라구' 이렇게 생각하며, 그렇게 되면 이처럼 마음을 괴롭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전혀 모른체였다. 작게 기침을 해보았지만 그것도 헛수고였다. '제발 다음역에서 내려 줘.'
이렇게 빌어보았으나 그것마저 허사였다. 여자는 여간해서 내릴 것 같지도 않았다.
핸드백은 열려진 채였다. 지갑이 통째로 보였다. 마치 훔쳐가 달라는 듯이.
후지하라에게는 이것은 고문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부지중에 손이 나갈지도 모른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음 역에서 내가 내리는 수밖에 없겠군.'
그는 자기 자신을 타일렀다. 아직 신주쿠는 아니었지만 후지하라는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그의 오른 손이 핸드백에 가 닿았다. 손가락 끝이 지갑을 만졌다. 그 순간이었다. 별안간 굵고 억센 팔이 뻗어오더니 그의 손목에 채워졌다.
"뭣하는 거야!"
후지하라가 부지중에 소리를 지르자 키가 크고 얼굴이 햇볕에 그을은 사나이가
"얌전히 굴어!" 하고 굵은 소리로 꾸짖었다.
"소매치기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무슨 소리야. 난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
"헛소리 말어. 핸드백에 손을 넣어 지갑을 잡은 것을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 형사가 소리질렀다.
주위에 있던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그리고 "소매치기야" 하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후지하라는 무심결에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는 역전에 있는 파출소로 끌려갔다. 키 큰 소매치기 담당계 형사는 의자를 뒤로 돌려앉더니 턱을 내밀고 후지하라를 노려보았다.
"나는 계속 당신을 감시하고 있었어. 당신은 계속 그 핸드백을 노리고 있었어.하겠나 하고 감시하고 있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전차를 내리는 척하면서 행동을 하더군."
"아닙니다. 나는 소매치기가 아닙니다." 후지하라는 주머니를 뒤져 신분증과 정기권을 꺼내 형사에게 보이면서 "나는 확실한 회사의 사원입니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회사에 일아봐 주십시오. 벌써 13년이나 이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
형사는 약간 의외라는 듯이 콧소리를 내더니
"샐러리맨이 돈이 궁해서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단 말이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핸드백이 열려있어서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던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주의해 주지 않았지? 이 정기권을 보면 당신이 내리는 역은 신주쿠야. 그런데 세 정거장 전에 내리려 하다니 이상하지 않아, 그렇지?"
"그것은..."
말하려다가 후지하라는 입을 다물었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알 수 가 없었다. 손이 핸드백에 닿은 것은 우연이다. 그러나 손가락이 지갑으로 간 것은 과연 우연인지 어떤지 그 자신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 때 형사가 없었다면 그의 손가락은 틀림없이 지갑을 낚아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자신이 전혀 없었다.
"역시 소매치기할 생각이었군." 형사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 5 ]
후지하라는 전과가 없었으므로 훈방되어 그날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같은 회사 사람이 그 사건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의 상사인 인사과장에게 알려지고 말았다. 만일 인사과장이 대범한 사람이었다면 그 사실을 그대로 접어 두었겠지만 그러나 그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결국 부장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를 감싸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회사는 13년간이나 성실하게 봉사해온 그에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즉시 그를 해고 했다. 징계 면직이었기 때문에 퇴직금도 나오지 않았다. 아내인 가스코에게는 불황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직장을 잃은 후지하라는 새 직장을 얻기 위해 매일 도쿄 시내를 쏘다녔다. 그때 자유 차표라는 편리한 것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실업자 생활은 정말 괴로웠다. 그러한 그에게 있어 오직 유일한 의지가 된것은 아내인 가스코였다. "걱정 말아요." 가스코는 웃는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당신 대신 내가 일을 하겠어요." 가스코는 씩씩하게 말했다. 그 뿐 만아니라 그녀는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 일하기 시작했다. 후지하라는 아내를 다시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10년이나 같이 살아온 아내였지만 너무 평범한 여자로밖에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런 아내에게 그런 면이 있었다니 그로서는 신기하기조차 했다.
가스코의 직장이 바로 역에 있는 스낵이라는 것을 알았어도 굳이 반대할 수도없었다.
"곧 새 직장을 얻어 당신을 안심시킬 거야." 그는 가스코에게 말했다. 후지하라는 자유 차표를 사서 시내로 매일 일터을 찾아다녔다.신문을 보거나 전주에 붙어 있는 구인광고를 보면서 마음에 내키는 회사를 찾아가 보았지만 직장을 얻기는 그리 쉽지는 않았다. 지금은 불경기이다. 게다가 40세의 중년 남자로서 특수 기능조차 없는 그로서는 여간해서 직장을 구하기란 어려운 노릇이었다. 예의 그 나쁜 버릇 또한 방해 요인이었다. 자유 차표로 전차를 타게 되면 어쩔 수가 없었다. 눈이 자연히 승객들의 핸드백이나 호주머니를 쫓았다. 마치 마약 같았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만으로도 지쳤다.
이럴바엔 차라리 남의 지갑이나 시계를 낚아채 버리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돈이 꼭 필요해서만이 아니다. 자신의 손으로 지갑을 낚아채는 순간에 얻는 희열과 스릴를 맛보고 싶었다.
그 충동을 억누르고 피로에 지쳐 집으로 돌아오면 후지하라는 "미안해." 하고 가스코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도 허탕을 쳤지만 내일은 꼭 일을 찾아낼 테니까." "천천히 찾아 봐요.생활은 어떻게든 꾸려갈 테니까요." 가스코는 웃는얼굴로 대답하곤 했다."
"일은 고단하지 않아?"
"고단하긴 하지만 손님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어서 오히려 즐거워요."
가스코는 요즘 갑자기 화장이 짙어진 얼굴로 상냥하게 대답했다.

[ 6 ]
스낵에서 일을 끝낸 후 가스코는 <좋은 손님> 한 사람과 어느 여관 방에서 서로 부둥켜 안은 채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상대는 스스키 고조라는 28세의 남자였다.
바텐더 일을 하고 있지만, 2년 전까지는 조직 폭력단에 몸을 담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는 그 시절 싸우다 다친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스스키는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에서 샤워를 하면서 "정말 남편을 죽이고 싶단 말야?" 하고 물었다.
"그래요."
가스코는 침대 위에서 조금씩 군살이 붙기 시작한 허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대답했다.
"죽이고 싶도록 싫다면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어때?"
"그러면 돈이 생기지 않으니까 그렇지. 재산도 없고 집도 없고..."
가스코는 잔뜩 얼굴을 찡그려 말하면서 침대 위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스스키는 젖은 몸을 타올로 벅벅 문지르면서 욕실에서 나왔다. "죽이면 돈이 생기나 그럼?"
"생명보험에 들었어."
"얼마짜리?"
"3천만의 배액 보험. 예기치 못했던 사고로 죽으면 배인 6천만엔이 들어와."
"살해당해도?"
"그럼,만일 죽여준다면 당신에게 1천만엔을 주겠어." "나쁘지않은데."
스스키는 타올을 허리에 두르고 소파에 앉았다.
"해주는 거지?"
가스코가 묻자 스스키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손을 뻗어 탁자 위의 담배를 집어들면서
"여자는 무서워."
"뭐가?"
"10년간 같이 살아온 남자 아냐? 그런데 죽여달라니, 어떻게 된 게 아냐?"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은 결혼 초기 뿐이었어." "그뒤로는 마지못해서였단 말야?" 스스키는 묘하게 웃으며 가스코를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가스코는 눈살을 찌푸리고 손으로 저으면서 말했다. "뭐라고할까, 좋은사람이긴 하지만 출세할 가능성도없고 우선 그런 노력조차 해보려는 의욕마저없어. 나는 10년간 그를 늘 경멸해 왔어."
"경멸이라..."
"물론, 한편으로는 이 정도의 남자로 참고 살아야지 하나 하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냐. 어떻든 성실하고 얌전했으니까. 그런데 어쩐 일인지 갑자기 거짓말을 하면서 날 속였어."
"회사가 망해서 실직했다는 말 말야?"
"정말 회사가 망했으면 화내지도 않겠어. 혹시나 해서 전화를 해보았더니 회산 아무렇지도 않았어.무언지 모르지만 잘못해서 면직당한 거야.10년간을 같이 살아왔는데 사실을 말하지 않고 나를 속였다는 점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남편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모르겠어. 13년간이나 근무한 회사에서 쫓겨나면서 퇴직금도 받지 못했으니까."
"이젠 넌더리가 난단 말이지?"
"그래요. 하지만 이대로 헤어지면 그런 남자와 10년간이나 꾹 참고 살아온 댓가를 한 푼도 못받게 돼. 위자료를 받고 싶어도 저금한 것도 없지 집도 없지..."
"그래서 보험금을 타내기로 한 것이구만."
"10년간을 봉사해 준 댓가에 대한 당연한 보수야." 가스코는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지금 그녀는 남편 후지하라를 증오하고 있었다. 후지하라가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감추고 자기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가스코는 그를 미워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스낵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그녀 자신의 성격도 변하고 말았다. 손님인 남자들의 이런 저런 농담에 즐거움 조차 느끼게 되었다. 지금까지 후지하라와의 10년간의 생활이 전혀 헛된 시간이었던것처럼 생각되기도했다.소중하고 화려해야 할 청춘시절을 쓸쓸하게 헛되이 보냈다는것에대한 후회감이 강한분노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후지하라는 그것을 지불할 의무가 있다.
억지춘향격인 생각이었으나 가스코는 그렇게 하는 것만이 정당한 것으로 여겼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6천만엔이란 큰 돈이 들어왔을 때의 일을 이것저것 상상해 보았다. 상점을 가지고, 세계여행을 하고.... "남편은 자기가 생명보험에 든 사실을 알고 있어?"
"몰라요.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 나도 들었지만." 가스꼬는 알몸인 채 스스키의 앞을 지나 욕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보고 얼굴을 고치면서 "이봐요. 정말 죽여 줄거야?" 하고 스스키에게 물었다.
"1천만엔은 틀림 없겠지?"
"보험이 나오면 곧 줄께."
"남편은 매일 일자리를 찾아다닌단 말이지?"
"그래요. 자유 차표를 사서 도쿄시내를 쏘다니고 다녀요."
"자유 차표라니?"
"3백엔으로 살 수 있는데 시내라면 몇 번이라도 갈아탈 수 있는 전철 차표에요. 행선지가 쓰여 있지 않은 차표."
"그것 괜찮은데." 스스키가 웃었다.
가스코는 짙게 립스틱를 바르면서 "무엇이 우습지?"
"나와 당신이 저승이라는 행선지를 준다는 말이지.그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우스워서."
"웃고 있지만 말고 확실하게 죽여 줘야 해." 거울 속에서 가스코는 얼굴을 찡그렸다.
"걱정 말어."
"당신도 후지하라처럼 자유차표를 사서 하루 그의 뒤를 밟아보지 그래.
그리고 어디 적당한 장소에서 일을 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것도 괜찮겠지."
"증거는 남기지 말아요."
"다 알고 있어 내게 맡겨 두라구."
"부탁해요."
가스코는 욕실에서 나오자 "마음을 정했으면 다시 한 번 더 안아 줘."
남자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35 살이지만 아이가 없기 때문에 탄력있는 육체였다.
"당신도 어지간하구먼." 스스키는 굵은 팔로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는
"남편과는 상당한 기간 동안 남남으로 지낸 모양이지?"
"회사에서 목이 달아나기 전부터 잠을 잘 잘 수가 없다고해서 각각 방을 따로 쓰고 있어. 벌써 반년 가까이 관계한 적이 없어."
"그렇다면 이 몸이 참질 못하겠군."
스스키는 가스코의 둥근 엉덩이를 철썩 하고 소리가 나게 때렸다. 가스코는 콧소리를 내면서 스스키의 목에 매달려 그의 귓밥을 잘근잘근 씹으며 속삭였다.
"꼭 후지하라를 죽여 줘야 해."

[ 7 ]
이틀 후.
스스키는 손에 익은 단도를 안 호주머니 속에 깊숙히 감추고 후지하라의 뒤를밟았다.
아침 10시 후지하라는 언제나처럼 일거리를 찾아 집을 나섰다.
전철로 신주쿠로 나와 언제나처럼 3백엔짜리 자유 차표를 샀다. 스스키가 뒤따라같은 표를 사자 창구의 역원이 이상한 얼굴을 했다. 이렇게 계속해서 두 장이 팔리는 일이란 좀처럼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후지하라는 야마노데선을 안으로 도는 홈으로 나오자 벤치에 앉더니 매점에서 산 신문을 펴들고 우선 구인광고를 훑어 보기 시작했다.
스스키는 5,6미터 떨어진 곳에서 차가운 눈으로 그 모양을 지켜보았다.후지하라가 내키는 일거리를 찾아 내지 못했는지 초조해하는 모습을 역력하게 드러내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165센티 정도겠군.' 스스키는 자기가 죽일 상대의 키를 냉정하게 측정해 보았다. 몸무게는 60킬로가 겨우 될 것 같았다. 완력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겁이 많아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그렇다면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스스키는 후지하라를 해치우는데 대해서 양심의 가책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상대가 죽이기 쉬운 인간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고, 죽인 후 자기에게 혐의가 없도록 하는 것이 문제였다. 가스코는 오늘 하루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기로 했으니까 경찰에 조사를 받아도 안전할 것이다. 문제?스스키자신이다.가스코와의 관계가 드러나게 되면 경찰의 취조를 받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전과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다행스럽게도 스낵에는 손님 한 사람만이 있었다. 그러나 가스코가 유부녀이기 때문에 밀회할 때 마다 몹시 조심을 했다.그것이 좋았다. 현장에 증거만 남기지 않는다면 경찰이 자기를 의심할 리가 없었다. 후지하라는 일어나서 홈으로 들어온 전차에 탔다. 스스키도 곧 같은 차에 탔다. 후지하라는 손잡이에 매달려 창 밖을 멍 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못난 놈이다.'
스스키는 생각했다. 저 나이로 행선지가 없는 차표를 사가지고 매일 일거리를 찾아다닌다니 배알도 없는 인간이라고 경멸했다. 게다가 아내에게조차 배반당하고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니 정말 어리석은 인간이다. '이런 못난 인간에게는 내가 행선지를 정해 주는 편이 오히려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군.'
스스키는 아전인수격으로 생각을 했다. 후지하라는 시나가와역에서 내려 역 근처 자동차 수리공장을 방문했다. 그러나 일을 못얻었는지 실망한표정으로 힘없이 걸어 나왔다.같은 일이 하루 종일 되풀이되었다. 야마노데선 내의 역을 몇번이나 도중 하차해서 작은 공장과 운송회사를 찾아다녔다. 주로 중소기업만 찾아다니는 이유는 대기업에서는 임시직도 중년은 채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에서도 필요한 것은 젊은 노동력이었으므로 후지하라의 구직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어디를 찾아가도 일자리가 나서지 않자 후지하라의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져가는 것을 스스키의 눈으로도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노획물의 체력이 점차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 늑대와 같은 마음으로 스스키는 후지하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후 8시가 지날 무렵 후지하라는 이다바시 역전 앞에 있는 국화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스스키는 잠깐 망설이다가 곧 뒤따라 들어가 후지하라 옆에 가서 않았다. 후지하라는 힐끗 뒤따라 들어온 스스키를 보았지만 아무 표정도 없이 곧 눈을 아래로 깔았다. 스스키는 후지하라와 같은 라면을 주문하고 잠자코 먹으면서 주의깊게 후지하라를 관찰했다. 1천만엔짜리 물건이다. 후지하라는 배가 고파서 이 곳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것 같았다. 그는 라면을 먹다 말고 수저를 놓고는 카운터 뒤에 있는 음식점 주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이 집에서 점원을 모집하고 있는 것 같군요."
아무리 해도 일거리를 찾을 수 없자 중국음식점 점원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나를 채용하지 않겠어요?"
"손님을요?"
얼굴이 붉고 뚱뚱한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후지하라를 보았다.
"안 됩니까?"
후지하라는 이미 실망한 표정이다.
"우리집에서 필요한 사람은 젊은 사람이에요.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게다가 몸도 많이 움직여야 하고..."
"배달이고 뭐고 다 하겠습니다."
"간단히 하겠다고 하지만 그게 그리 쉬운 노릇입니까? 그런데 손님은 가족이 있으시죠?"
"네, 아내가 있어요."
"그럼 더욱 안됩니다. 우리는 먹고 잘 점원을 구하고 있습니까요."
"그렇습니까?" 후지하라는 마치 자신이 거절한 것처럼 미안한듯 고개를 숙이고 100엔짜리 동전 세 개를 카운터에 놓고는 허전한 걸음으로 음식점을 나왔다. "중년은 곤란해." 주인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귓전으로 흘리며 스스키도 밖으로 나왔다. 후지하라는 바로 역으로 가지 않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불이 없는 쪽으로 힘없이 걸어갔다. 오늘도 결국 일거리를 얻지 못했으니 이대로는 집으로 돌아가기 괴로운 듯한 몸짓이었다. 스스키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후지하라는 어두운 쪽으로만 걸어갔다. 마치 밝은 장소가 두려워서 빛으로부터 도망치는 듯한 걸음걸이었다. 사람들의 통행이 점점 뜸해졌다. 이다바시역에서는 이미 어지간히 떨어져 있었다.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집이 없는 도로 좌측으로 배수구가 보였다.희미하게 물흐르는 소리가 들렸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위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스스키는 안호주머니 속에서 단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다음 후지하라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툭 쳤다. 순간 후지하라가 돌아다 보았다. 그 어깨 언저리가 벌써 비에 흠씬 젖어 있었다.
"날 알고 있겠지?" 스스키가 얼굴을 후지하라 앞으로 내밀었다.
"아까 중국음식점에 있던 분이 아닙니까?" 후지하라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 뿐이야?" 스스키는 짓굿게 물었다. 원래 잔인한 성격의 남자였다. 보기만 해도 약하고 피로에 지친 상대를 보자 그냥 죽이기만은 아깝다는 아쉬운 생각이 들어 좀 더 괴롭힌 후에 죽이고 싶어졌다.
"전에도 어디서 본 일이 있습니까?"
"태평한 작자로군." 스스키는 잔인하게 웃었다. 후지하라는 당황한 얼굴로 잠자코 있었다. 스스키는 힐끗 비가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고는 "난 당신 부인을 잘 알고 있지."
"그렇습니까?"
"놀라지 않는군."
"그런 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손님과 친해진다 해도 어쩌는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나는 친한 정도의 손님이 아냐. 여관에서 같이 잔 일도 있어."
"...."
"갑자기 안색이 변하는군.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가르쳐주지. 부인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 어리석고 거짓말쟁이고 기력이 없는 당신에게 벌써부터 진저리를 내고 있어."
"나와 헤어지자는 겁니까? 그렇다면 그것도 좋다고..."
"상당히 이해심이 많은데. 그렇지만 부인은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다는거야.재미라고는 조금도 없는 당신과 참고 살아온 10년간을 돈으로 돌려 주었으면 하고 있단 말야."
"내게 그런 돈은..."
"걱정할 것 없어. 당신이 죽어만 주면 돈은 들어오게 돼 있어. 게다가 당신은 행선지 없는 차표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느라고 상당히 지쳤을 거구. 이 정도에서 행선지를 정해 주지. 이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구." 스스키 주머니에서 단도를 꺼내들었다.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가든지 하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후지하라에게는 그런 기력마저 없는지 파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오금이 붙어버린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니 스스키에게는 짚으로 만든 인형을 찌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원통하거든 부인을 원망하라구."
몸을 바짝 들이대고는 가슴에 깊숙히 단도를 꽂았다. 직각으로 찌르지 않았기 때문에 피는 거의 튀지 않았다. 그 순간 후지하라는 왠지 빙긋 웃는 것처럼 보였다.

[ 8 ]
"그 때는 나도 역시 섬뜩하더군. 죽어가는 순간에 웃는 놈은 처음 보았으니까."
스스키는 그날 밤 늦게 가스코를 만났을 때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말했다.
가스코는 창백한 얼굴로 "죽는 것을 확인했죠?"
"내가 실수할 것 같아? 죽은 것을 확인하고 배수구에 처넣었어."
"증거는 남기지 않았겠지요?"
"걱정 말어. 남편의 죽음과 내가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으니까."
"아무도 못보았겠지요?"
"내가 그런 서툰 짓을 하겠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찔렀으니까. 단도도 깨끗하게 처리하고 왔고."
스스키는 몹시 갈증이 난듯 가스코가 따라 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남편 호주머니는 뒤지지 않았어. 보통 살인의 경우는 신원을 감추게 마련이지만 이번 경우는 그렇게 하면 보험금 지급이 더디니까."
"경찰이 내게 이것저것 묻겠지요?" 가스코도 맥주를 마셨다.
"남편이 죽었는데 당신이 조사를 안받을 수 있겠어? 하지만 알리바이가 있으니까 염려 없어."
"당신 말대로 저녁 때까지 친구집에 있었고 저녁부터는 스넥에서 일을 했어."
"그렇다면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구만. 한 가지 주의하고 있으면 돼.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이름을 말하지 말아. 그리고 내게는 알리바이가 없으니까 보험금이 나올 때까지 만나지 않는 쪽이 좋겠어."
"알았어요. 하지만 오늘 밤은 같이 있어 주겠죠?"
다시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음산한 비였다. 빗방울이 배수구의 어두운 수면에 작은 방울을 무수히 만들면서 폐수로 더러워진 후지하라 히로타로의 시체를 씻어 주고 있었다.
"안호주머니에 같은 이력서가 두 통 들어 있습니다." 젊은 이노우에 형사가 우에다 형사에게 말했다.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후지하라 히로타로라는 것이 이 남자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 주소는 스기나미구요." "이력서를 두 통씩이나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 피해자는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는지 모르겠군. 자유 차표는 일거리를 찾는 데에도 편리하니까. 범인의 유류품은 없었나?"
"묘한 것이 양복 주머니에 들어 있습니다."
"묘한 것이라니 지갑 아냐? 피해자의 것이 아니란 말야?"
"피해자의 것은 안호주머니에 있습니다."
"그렇군. 그래 그거 이상한데?"
우에다 형사는 그 가죽지갑을 조사해 보았다.
돈은 3천엔밖에 들어 있지 않았지만, 같은 명함이 다섯 장이나 지갑 속에서 나왔다.
명함 뒤는 멋을 내려고 로마자로 이름을 인쇄했다.
"스스키 고조. 주소는 신주쿠이군. 곧 이 작자를 조사해 봐."
우에다 형사는 이노우에 형사에게 말했다.
이노우에가 응낙을 하고 사라진 뒤 우에다 형사는 다시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이 피해자는 웃는 얼굴로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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