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반시연作

한국 추리소설계의 수작. 라이트 노벨이어서 유치하고 시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추리적인 면이 상당히 탄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추리소설 서평 사이트나 평론가들도 호평일색인 작품.

흥신소의 행동대장이었던 호우가 뛰어난 관찰력으로 일상의 수수께끼를 해결해나간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일상의 수수께끼라고해서 "고전부 시리즈"나 "비블리아 고서당"시리즈를 생각하면 안된다. 이 작품은 정말 일상 미스터리라고 생각하기 힘들정도로 다크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일상 미스터리라고하면 '치유' '소소한 맛'을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부터가 흥신소 출신에 문신투성이 깡패고, 도박중독자를 주먹으로 패거나 아동성범죄자를 찾아가서 성기를 터트려버리거나, 사건이 알고봤더니 정신분열증 환자의 망상이라는 둥 상당히 묵직하고 '하드보일드'한 맛이 난다. 그게 바로 이 소설의 묘미다.

이 소설은 서술에 있어서 상당히 세련된 시도를 했다. 매우 간단한 장치이지만 이전까지의 추리소설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장치가 있기때문이다. 그건 바로, 주인공인 호우가 추리를 설명할 때, 근거가 되는 내용을 다시한번 '다른 글씨체'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이러이리해서 저러저러합니다."라고 추리했을 때, 정말 그랬나?라고 생각하며 앞 페이지를 뒤적여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럴필요가 없다. 호우가 어떤 추리를 말하면, 그 추리의 근거가 되는 앞 내용을 '다른 글씨체'로 문단 위에 다시한번 보여준다. 굳이 앞 페이지를 다시 펼치며 뒤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별 것 아닌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추리소설에선 상당히 세련된 장치이며 작가의 센스가 느껴졌다.

호우가 펼치는 추론들도 모두 납득이 가고, 근거와 결론 사이의 거리가 짧아서 설득력이 높다. 라이트 노벨에서 이정도 수준의 추리가 나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특히 1권 [헤브닝]챕터에서, 호우가 쏟아내는 수많은 추리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단편집에서 하나의 아이디어로 쓰일 수 있을만큼 쓸만한 추리 플롯들이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와 추리의 튼튼함에서 작가의 추리물에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물론, 단점이 없는것은 아니다. 단점도 있다.

우선 등장인물들이 너무 만화 캐릭터 같다.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며, 대사나 행동들이 너무 만화적이다. 그리고 맑은 날은 힘이 빠지고 비가 오면 힘이 회복된다는 설정도 좀 거슬리는 설정이다. 하지만 라이트 노벨으로 출간된 이상 이정도는 귀엽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이트 노벨이라고 꺼려진다고? 걱정마라. 나도 라이트 노벨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추천한다.

처음엔 나도 라이트 노벨 장르에 있던걸 보고 지뢰밟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왠걸? 지뢰인척하는 보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