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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번역] 해방후 민족진영의 미국식 교육제도 비판모바일에서 작성

김갑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1.20 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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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상은 단군을 숭상하는 민족종교 ‘대종교(大倧敎)’의 열렬한 신도였다. 단군의 피를 이어받은 ‘하나의 백성’이란 의미의 ‘일민주의’를 이론화하여 제시함으로써 이승만이 외치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정치 구호를 학술적으로 공고히했으며, 교육을 정치적 도구로 삼기 시작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안호상은 민주주의 출발점이 서양이 아니라 우리나라라는 파격적 주장을 함으로써 새교육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정부 수립 직후 행한 한 연설에서 “민주주의는 신라식 민주주의요, 신라에서 발달한 것이 구라파로 넘어가 이것이 또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신라의 화랑도 이야기에 나오는 화백회의를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해석한 것이 분명하다. 안호상을 따라 많은 교육자가 새교육에 대한 비판에 참여하였다. 예컨대 서울청계공립국민학교장 최윤수는 새교육의 정신적 지주인 듀이가 한국인이 아니고 미국인이기에 개인주의에 기초한 교육이론을 발전시켰고, 우리나라는 미군정 3년 동안 이를 학습하였는데 이는 흡사 ‘유아에게 철학을 강의하는 꼴’이라고 비유하였다. 결국 새교육은 엄청난 피해를 이 강산, 이 민족에게 입혔다는 점에서 이것은 ‘민주주의 교육’이 아니고 ‘미친주의 교육’이었다고 평가절하 했다.(<새교육> 2권 2·3호)

민족주의 진영의 새교육 비판은 미국 유학파 출신 백낙준 2대 문교부 장관의 등장으로 중단되었다. 그리고 전쟁으로 잠시 주춤했던 새교육 운동은 이른바 커리큘럼 개조운동의 형태로 전쟁 중이던 1951년에 부활한다. 이후 1955년 8월 1일 제1차 국가교육과정의 공포에 이르기까지 현장 교사 중심의 커리큘럼 개조운동은 아동중심, 생활중심, 그리고 경험중심 철학을 배경으로 우리나라 교육이 봉건적 색채에서 벗어나기 위한 힘든 노력을 기울인다(이 시기 커리큘럼 개조운동의 교육사적 의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요청된다).

https://www.hangyo.com/mobile/article.html?no=78380

 

&lt;새교육&gt;이 새교육을 비판하다

‘구교육’, 혹은 ‘헌교육’에 대한 ‘새교육의 반란’은 미군정과 함께 시작되었다. 3년간 지속되었던 ‘새교육의 반란’을 진압하고 ‘구교육의 복원’을 꾀하려 했던 최초의 인물은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문교부 장관에 임명된 안호상이었다. 그는 백과사전에서 민족사학자, 철학자, 대종교인, 정치가, 그리고 파시스트라는 다양한 명칭을 부여할 만큼 경력이 화려했다. 그는 1920년대 초에 일본에서 영어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을 거쳐 독일에서 유학하였다. 독일 예나대학교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이 1929년이었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일본 교토제국대학교, 독일 훔볼트대학교, 경성제국대학교에서 연구생으로 경력을 쌓은 후 1933년에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이듬해에 이광수의 소개로 시인 모윤숙과 결혼하였으나 후일 헤어졌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해방과 함께 민족주의 계열의 다양한 학술단체, 문화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이승만 정부가 들어서자 초대 문교부 장관이 되었다.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의 일민주의 안호상은 단군을 숭상하는 민족종교 ‘대종교(大倧敎)’의 열렬한 신도였다. 단군의 피를 이어받은 ‘하나의 백성’이란 의미의 ‘일민주의’를 이론화하여 제시함으로써 이승만이 외치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정치 구호를 학술적으로 공고히했으며, 교육을 정치적 도구로 삼기 시작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안호상은 민주주의 출발점이 서양이 아니라 우리나라라는 파격적 주장을 함으로써 새교육에 대한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정부 수립 직후 행한 한 연설에서 “민주주의는 신라식 민주주의요, 신라에서 발달한 것이 구라파로 넘어가 이것이 또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신라의 화랑도 이야기에 나오는 화백회의를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해석한 것이 분명하다. 안호상을 따라 많은 교육자가 새교육에 대한 비판에 참여하였다. 예컨대 서울청계공립국민학교장 최윤수는 새교육의 정신적 지주인 듀이가 한국인이 아니고 미국인이기에 개인주의에 기초한 교육이론을 발전시켰고, 우리나라는 미군정 3년 동안 이를 학습하였는데 이는 흡사 ‘유아에게 철학을 강의하는 꼴’이라고 비유하였다. 결국 새교육은 엄청난 피해를 이 강산, 이 민족에게 입혔다는 점에서 이것은 ‘민주주의 교육’이 아니고 ‘미친주의 교육’이었다고 평가절하 했다.(새교육 2권 2·3호) 민족주의 진영의 새교육 비판은 미국 유학파 출신 백낙준 2대 문교부 장관의 등장으로 중단되었다. 그리고 전쟁으로 잠시 주춤했던 새교육 운동은 이른바 커리큘럼 개조운동의 형태로 전쟁 중이던 1951년에 부활한다. 이후 1955년 8월 1일 제1차 국가교육과정의 공포에 이르기까지 현장 교사 중심의 커리큘럼 개조운동은 아동중심, 생활중심, 그리고 경험중심 철학을 배경으로 우리나라 교육이 봉건적 색채에서 벗어나기 위한 힘든 노력을 기울인다(이 시기 커리큘럼 개조운동의 교육사적 의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요청된다). 국가교육과정 공포가 주는 의미 1955년 8월 1일의 국가교육과정 공포는 한국 교육의 발전 과정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국가권력에 의한 교육독점의 제도화 선언이었다는 의미가 있다. 이후 국가권력에 밀착된 지식인들이 교육을 지배하고 현장교사들은 국가의 교육 아젠다(agenda)를 맥없이 실천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기 시작하였다. 교육자치제, 학원의 자유 등 1950년대에 추진되고 있던 교육의 민주화를 위한 현장의 다양한 시도들이 하나둘씩 소멸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새교육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새교육에 대한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비판, 그리고 새교육 이후의 미래 교육에 대한 탐색을 주도한 것은 다름 아닌 잡지 새교육이었다. 그 시작은 미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진보주의 교육의 퇴조에 대한 관심과 소개였다. 새교육은 1957년 6월호에서 ‘3R로 돌아갈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에 게재되었던 기사 ‘Back to the 3Rs : Change in the Schools’를 번역 소개하였다. 이는 진보주의 교육의 퇴조를 가져온 스푸트니크 쇼크(Sputnik Shock) 4개월 전이었다. 이 기사는 미국의 공립학교들이 진보적 관념에서 벗어나 기초적인 교과 과정으로 돌아가려는 경향, 그리고 훈육을 강조하는 경향을 조사한 일종의 보고서였다. 학력에 대한 관심의 부활, 숙련된 과학자와 기술자 부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우려, 그리고 학생들의 풍기문란에 대한 학부모들의 걱정이 점차 확대되면서 읽기·쓰기·셈하기 등의 중요성이 다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약간의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PART VIEW]195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새교육은 다시 위기를 맞았다. 새교육 실천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부산사범부속국민학교장 김두성의 말처럼 1950년대 후반에 이르자 새교육의 상징이었던 생활커리큘럼·경험커리큘럼·코어커리큘럼 등의 용어들이 사라져 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다. 미군정기 후반부터 시작된 비판은 1950년대 후반에 이르자 극에 달하였다. 대표적인 존 듀이(John Dewey) 비판가였던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이해남은 “미국에서는 이미 1938년경부터 듀이즘(Deweysm)은 철학도 아니요, 교육도 아니다”는 주장과 함께 듀이즘을 미국 사상의 왕좌 자리에서 몰아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듀이즘이 끝났다고 선언하였다. 이해남은 듀이즘이 과거 10년간 우리나라에서 새교육을 지도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명을 이미 다하였고 이제는 우리의 자연·지리적 배경과 사회적 유산을 고려하면서 세계 문화의 주류 위에 우리식 교육이론을 세울 때임을 주장하였다(새교육, 1958년 11월호). 듀이즘에 대한 비판과 새교육의 고민 이러한 의식은 새교육의 가치와 한계에 대한 종합적 검토,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교육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고민을 이끈 것 또한 새교육이었다. 새교육은 새로운 10년, 1960년대의 시작을 앞둔 1959년 9월호에서 ‘새교육 운동의 반성’을 특집으로 구성하였다. 이 특집은 다른 어떤 분야와도 달리 우리나라 교육계가 정부수립 이후 10년간의 교육경험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비판,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우리식 교육의 방향을 모색하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1950년대의 새교육 운동이 그랬듯이 1960년대의 교육운동 또한 서구식 교육이론의 무비판적·맹목적 모방에 그칠 수 없다는 우리 교육자들의 자의식이 매우 철저하고 진지하였음을 보여준다. ‘무엇이 소위 새교육이었나? 새교육의 본질과 이제까지의 새교육’이란 글에서 김두성은 “많은 비판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새교육 운동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이 민주주의 교육을 향해 비약적인 변화를 이루었고, 비록 열기는 사라졌지만 그 정신이나 생명은 살아 있으며, 새교육의 매력은 잊혀진 것이 아니다”고 보았다(새교육, 1959년 9월호). 새교육 운동은 첫째, 학력 또는 실력 저하에 대한 우려, 둘째, 입학시험이 요구하는 것과의 상충, 셋째, 도덕적 성장에 대한 관심의 미흡, 넷째, 정서 또는 기능 교과의 불철저 등으로 인해 암초를 만나게 된 것으로 김두성은 해석하였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새교육의 잘못으로는 첫째, 우리나라의 역사·사회적 현실의 무시, 둘째, 경험과 문화의 균형 유지 실패, 셋째, 교사들의 능력 부족과 시설 환경의 미흡, 넷째, 학습에서 차지하는 계통성과 연습의 중요성 간과, 다섯째, 전인교육의 어려움, 마지막으로 학교 교육에 대한 국가·사회적 지원의 결여 등을 언급하였다. 결론적으로 새교육 주장자들이 보여주었던 경험주의의 과잉의식이나 보수주의 교육자들이 드러낸 아동 경험에 대한 과소평가 모두 한국 교육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들은 1960년대 한국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면서 “교과 형식과 경험 형식은 빙탄불용(氷炭不容)하는 모순관계가 아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것을 주문하였다. 이화여자대학교의 안인희 교수는 중등교육 분야에서 새교육의 영향을 다루었다. 그는 1950년대 후반의 새교육을 “뿌리가 잘린 꽃처럼 아름다우나 불안스런 느낌”으로 표현하였다. 안 교수는 새교육이 비록 “새것인 동시에 남의 것”이었지만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았다. 특히 과학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가져온 것이 가장 큰 공적이라고 해석하였다. 반면 새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도의교육의 실패를 꼽았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서 도의 과목의 신설을 주장했지만 일제강점기 수신(修身) 교육을 회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장기적 안목에서 과학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교육을 실시하여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진보교육의 퇴조와 본질주의 교육 등장 이와 관련 창덕여자고등학교 교사 심재형은 ‘교육학자에게 드리는 글’에서 해방 10년 만에 권태기를 맞이한 우리 교육이 과거의 지식중심교육으로 환원하지 않고 다시 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교육계획을 주도하는 교육학자들이 책이나 이론에 그치지 말고 현장의 다양한 모습에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였다(새교육, 1959년 9월호). 서울 충무국민학교 교사 심경석은 ‘교장을 위한 학교냐, 아동을 위한 학교냐’라는 글을 통해 “새교육은 복잡한 그 무엇이 아니고 시대사조에 따라 교육의 계획, 조직, 내용, 방법, 시설 등을 개선해 나가는 움직임이며 이런 성과가 부진한 것은 교육학자, 교육행정가, 교사 등이 공동으로 져야 하지만 특히 학교행정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심 교사는 특히 교장의 민주적 학교경영을 촉구하였다. 이 특집에서 1950년대 새교육의 경험과 의미를 정리하고, 1960년대 한국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제시한 것은 수원 매산초등학교 교장 황기익이었다. 황기익은 진보주의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어 온 새교육의 장점과 한계, 그리고 193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본질주의(문화유산의 전승을 중시하는) 교육의 장점을 통합하는 방향에서 당시 우리나라 교육이 지향해야 할 지점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였다. “개인의 욕구를 중요시하되 이기적 방향에 떨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욕구로 방호해야 하며, 교육과정에는 반드시 인간의 문화적 전통 중에서 인간생활에 기여하는 근본적인 것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 요소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진보주의 교육의 결함을 보충하여 개인과 사회를 같이 중요시하며 자유와 통제, 흥미와 노력을 강조하고, 기본 지식과 이해를 동등한 자리에 놓도록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오늘날 교육계의 지배적인 생각입니다” (새교육, 1959년 9월호) 지금의 시점에서도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황기익은 새교육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새교육으로 인해 기초 학력의 저하됐다”는 지적에 이의를 제기하며 새교육에는 거기에 맞는 새로운 학력관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학력관은 “주지주의에서 벗어나 태도, 습관, 기능 등의 정의적 방면에도 중점을 둬 하나의 완전한 전인적 인격체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새교육에 의한 새교육 비판, 그리고 새로운 학력관이 제안된 지 어언 57년, 그 동안 우리 교육은 여전히 낡은 학력관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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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백락준은 한국 개신교계열 인물로 1958년 한국인으로서는 두번째로 프리메이슨 한양롯지에 가입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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