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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번역] 장 티리아르의 투쟁

ㅇㅇ(218.147) 2020.06.17 01:20:42
조회 557 추천 1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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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www.eurasia-rivista.com/the-struggle-of-jean-thiriart/



장 티리아르에 관한 마지막 기억은 그가 죽기 몇 달 전 나에게 쓴 편지였다. 그는 아펜니노 산맥에서 2주간 트레킹을 즐길 수 있던 장소를 물색하고 있었다. 거의 70살이 되었을 때, 그는 내면의 강인함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낙하산을 타지 않았지만, 자신의 알리스케이프(?)로 북해 여행을 다녔다.


70년대, 장 티리아르가 이끄는 조직 “젊은 유럽”에서의 청년 활동가였던 나는 그와 몇차례 만난 적이 있다. 나는 1964년 파르마(Parma)에서 그를 알게 되었는데, 그의 “유럽-아프리카적인” 감수성을 즉각적으로 매혹시키는 기념비가 근처에 있었다. 그것은 주바(Juba)지역의 유명한 여행가였던 비토리오 보테고(Vittorio Bottego)의 기념비였다. 이후 나는 “젊은 유럽”의 몇차례 모임과 알프스에서의 캠핑에서 그를 만났었다. 1967년, 이집트와 시리아를 향한 시오니스트의 침략이 있기 바로 전, 나는 볼로냐에서 그가 주최한 컨퍼런스에 있었다. 1968년, 나는 “젊은 유럽”이 페라라(Ferrara)에서 조직한 모임에 참석했었는데, 그곳에서 티리아트는 철저한 반-제국주의적 노선을 전개했었다. “여기 유럽에서, 유일한 반-아메리카의 중심축은 유럽 좌파 민족주의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유럽은 대중지향적 민족주의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 유럽의 민족-공산주의는 열정적으로 거대한 연쇄반응을 야기할 것이다 […] 체 게바라는 보다 더 많은 베트남인들이 필요하다고 말했었고, 그가 옳았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새로운 베트남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이 내가 들었던 마지막 연설이었다.


장 프랑수아 티리아르는 1922년 3월 22일 브뤼셀의 자유주의 성향을 지닌 리에주(Liege) 출신 가문에서 태어났다. 청년기의 그는 사회주의 연합 청년 근위대(Jeune Garde Socialiste Unifiée)의 멤버이자 반-파시스트 사회주의 연합(Socialiste Anti-Fasciste Union)의 소속이었다. 짧지 않은 기간동안 그는 내셔널 볼셰비키 운동의 기원인 철학 모임 피히테 분트(Fichte Bund)의 대표자인 케사미어(Kessamier) 교수와 협력했었고, 이후 그는 벨기에와 민족사회주의 제국간의 연대를 지지하는 몇몇 극좌분자들과 함께 대 독일 제국의 친구들(Amis du Grand Reich Allemand)의 멤버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1943년 앵글로-아메리카 세력의 벨기에인 활동가에게 사형을 선고받았었다. 영국은 레지스탕스의 전적인 지도 하에 무전으로 건네받은 처벌 리스트에 그의 이름을 넣었었다. “해방” 이후 그는 벨기에의 범대서양주의 활동가에 의해 수정된 벨기에 형사법 체계의 조항에 따라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몇 년간 감옥에서 지냈으며, 석방되었을 때 법정은 그에게 글을 쓰는 것을 금지했다.


콩고가 식민지의 지배에서 벗어난 1960년, 티리아르는 아프리카-벨기에 행동 및 방어위원회(Comité d’Action et de Défense des Belges d’Afrique)의 설립에 참여했고, 이후 이 조직은 시민 행동 운동(Mouvement d’Action Civique)으로 성장하게 된다. 1962년 3월 4일, 이 운동을 이끄는 구성원의 자격으로 티리아르는 베니스에서 기타 유럽 정치 그룹의 많은 멤버들을 접했다. 이러한 모임에서는 언제나 하나의 공통된 선언으로 귀결되었는데, 이들은 유럽의 단결이라는 이상에 기초하여 미국에 의한 서유럽의 종속화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폴란드에서부터 헝가리를 관통하여 불가리아에 이르는 동쪽 국가들의 재결합을 지지할 수 있는 “유럽의 민족 정당”을 만들어내는 데 공들이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 정당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는데, 특히 베니스 선언에서 이탈리아와 독일 구성원들이 표출한 소-민족주의(micro-nationalism)의 경향 때문이었다.


이 실패로부터 티리아르가 얻은 교훈이란, 유럽 정당은 소-민족주의적 운동의 연합에 의해 만들어질 수 없으며, 처음부터 유럽 공동 조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963년에 “젊은 유럽”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것은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에서 조직되었고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진 운동이었는데, 다음과 같이 운을 떼었다. “소비에트의 블록과 US의 블록 사이에 놓인 우리의 역할은 브레스트에서부터 부쿠레슈티에 이르는 하나의 단결된, 강력한, 그리고 공동체주의적 유럽이라는 하나의 위대한 모국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이 선택은 하나의 강력하게 단결된 유럽을 위한 것이었다. “’연방의 유럽’(Federal Europe) 혹은 ‘민족들의 유럽’(Europe of the Nations)은 정직함의 결핍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무능함을 숨기는 관념에 불과하다 […] 우리는 유럽을 유럽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는 소-민족주의를 비난한다.”


유럽은 철저히 무장한 중립을 선택해야 했었고 티리아르는 유럽이 소유한 원자력을 정복해야 했었다. 이는 곧 “UN의 서커스를 끝장”내고 “단결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라틴 아메리카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행되어져야 했다. 이 선언은 한쪽에서는 “자본가에 대한 노동자의 우월함”을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군중 무리에 대한 인간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두 유럽의 지배적인 사회 시스템과는 동등하게 거리를 둔 대안적 선택을 찾고자 한 시도였다. “우리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만인의 노동에 참여하는 역동적인 공동체를 원한다”. 유기적 표현에 대한 이 하나의 새로운 개념은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했다. “상원의원, 유럽 지방에 근거지를 두고 과학적 관점, 노동, 예술, 문학에서 최고의 개성을 지니고 있는 유럽 국가의 의회, 유럽의 모든 생산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합 의회는, 최종적으로 경제적 폭정과 기이한 정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다음의 말을 끝으로 선언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이론상으로의 유럽’을 거부한다. 우리는 합법적인 유럽을 거부한다. 우리는 반역의 죄를 품은 스트라스부르(Strasbouorg)의 유럽을 비난한다. […] 하나의 민족을 가지게 되거나,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와 같은 합법적인 유럽에 대항하여, 우리는 진정한 유럽, 인민의 유럽, 우리의 유럽을 대변한다. 우리는 유럽 민족이다.”


“젊은 유럽”은 조직원들에게 정치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을 설립한 뒤 (이 기관은 1966년에서 1968년까지 유럽공동체(L’Europe Communautaire)라 불리는 매거진을 매달 발행했었다), 유럽 공동체 신디케이트(European Communitarian Syndicate)를 설립하고자 했고, 1967년에는 대학 결사단체 (Università Europea, 유럽 대학)을 설립했는데, 이 조직은 특히 이탈리아에서 강세를 나타냈었다. 1963년에서 1966년까지 새로운 프랑스 매거진을 매주 발행하였다 (Jeune Europe). 타 국가에서 발행한 저널 중에는 이탈리아에서 매달 발행한 유럽 전사(Europa Combattente)가 있었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유럽 민족(La Nation Européenne) 매거진이 발행된 한편, 이탈리아판 유럽 민족(La Nazione Europea) 매거진은 1969년에도 여전히 발행되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자가 편집을 담당했었다 (마지막으로 발매된 잡지는 1970년 나폴리에서 피노 발자노(Pino Balzano)가 발행했다). 몇몇 호에서는 거의 50페이지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을 담은 월간 잡지였던 La Nation Européenne에겐, 이를 찾아보던 중요한 수요자들이 존재했었는데, 이들 중 정치학자 크리스티앙 페로(Christian Perroux), 알제리 칼럼니스트 말렉 베나비(Malek Bennabi), 하원의원 프랑수아 팔메로(Francis Palmero), 시리아 대사 셀림 엘-야피, 이라크 대사 나더 엘-오마리(Nather el-Omari), 알제리 민족 해방 전선(Algerian National Liberation Front)의 지도자인 Chérif Belkachem, Si Larbi, Djamil Mendimred,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대표자 Ahmed Choukeiri, 알제(Algiers)로 온 베트콩 사절단의 리더 트란 호아이 남(Trần Hoài Nam), 흑표당의 지도자 스토클리 카마이클(Stokely Carmichael), 농업행동센터(Centri d’Azione Agraria)의 창립 리더인 스포르차 루스폴리(Sforza Ruspoli), 작가 피에르 그리파리(Pierre Gripari), 앙느-마리 카브리니(Anne-Marie Cabrini)가 있었다. 종신 기자로는 Souad el-Charkawi(카이로)와 Gilles Munier(알제)가 있었다.


1969년 2월호에서, 장 티리아르는 La Nation Européenne을 꾸준히 구독하면서 그것의 이상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한 후안 D 페론과 장시간의 인터뷰를 가졌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은신처에서, 이 아르헨티나 전임 대통령은 카스트로와 게바라가 수년전의 정의로운 운동에서 촉발된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페론이 말하길, 카스트로는 해방의 촉진자라고 하였다. 그는 [원래대로라면] 제국주의자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야 했는데, 다른 이들이 그를 파멸시키고자 위협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쿠바인들의 목표는 아메리카-라틴 인민의 해방이다. 그들의 의도는 오로지 대륙 국가들의 형성이다. 체 게바라는 이 싸움의 상징이다. 그는 하나의 위대한 신념을 위해, 그것이 단지 실현되기까지 전력을 다했기에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는 이상을 품은 남자였다.”


유럽의 해방과 관련하여, 티리아르는 미국의 침입자에 대항하는 무장투쟁을 시작하고자 유럽 혁명 여단조직들(European Revolutionary Brigades)을 구축하는 계획을 세웠다. 1966년, 그는 부쿠레슈티에서 중국 외무장관인 저우언라이와 접촉한 다음, 공동의 적과 싸우기 위해 유럽에서의 정치 군사 조직의 설립을 지지할 것을 요청했었다. 1967년 티리아르는 알제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충분히 가능하다. 병행적 행동을 고려하고 알제리에서 유럽 혁명 국가방위군(Reichswehr)의 일환이 될 군사 편대를 희망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독일, 이탈리아의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워싱턴의 위성조직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 민족적 유럽인들, 유럽의 혁명가들인 우리는 아프리카로 떠나 지중해와 근동에 걸쳐 워싱턴의 부역자들을 패퇴시키고자 유럽에서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미래의 정치-군사 구조의 중핵을 형성해야 한다. 이 카르타고를 반드시 파멸시키기 위해(Delenda est Carthago)”.


1967년 가을, La Nation Européenne의 수장 제라르 보르드(Gérard Bordes)는 민족 해방 전선과 혁명 협의회의 행정 사무국 소속 몇몇 인원들을 만나러 알제리로 향했다. 1968년 4월, 보르드는 알제리로 돌아와 티리아르와 함께 서명한 알제리 공화국 정부의 각서(a Mémorandum à l’intention du gouvernement de la République Algérienne)를 가지고 왔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었다. “유럽의 혁명적인 애국자들은 이스라엘을 향한 미래의 투쟁을 벌이기 위해 특별 투사 편대를 형성하는 것, 유럽내에서의 대미 투쟁을 목표로 하는 미래의 행동을 위한 기술적인 훈련, 아랍 국가와 유럽 국가가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반미와 반시오니즘에 관한 정보의 제공망을 구축하는 것을 지원한다.”


그러나 알제리와의 대화에서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기에, 티리아르는 중동의 아랍 국가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1968년 6월 3일, “젊은 유럽”의 투사였던 로제 쿠드로이(Roger Coudroy)는 알-파타의 한 조직과 함께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진입하길 시도하다 시오니스트 부대와 교전을 벌이고 전사했다.


1968년 가을, 티리아르는 이라크와 이집트 정부 그리고 바트당의 초대를 받았다. 이집트에서 그는 이집트의 정부 정당인 아랍 사회주의 연합의 모임에 참석했는데, 여러 장관들에게 환영을 받으며 나세르 대통령을 만났다. 이라크에서는 PLO의 몇몇 지도자들 중 일부 정치 유명인사들을 만났고 여러 신문과 대중매체와 인터뷰를 가졌다.


어찌됐든, 그의 여정에서의 최우선 목표는 팔레스타인의 민족 해방 투쟁에 가담하여 유럽에서의 민족 해방 부대의 핵심 조직이 될 유럽 여단의 창설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이라크 정부는 소련의 압박에 도움을 거절하는 바람에, 티리아르의 목표는 실패를 거두었다. 이러한 실패에 실망한 티리아르는 더 높은 수준의 정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이 더 이상 없음을 절감하고, 자신의 정치 활동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1969년부터 1981년까지, 티리아르는 시력검사 분야에서의 자신의 전문 직업 조합 활동에 전념했는데, 여기서 그는 유럽 검안 협회, 벨기에 검안-안경사 연합 단체, 안경광학과 연구 센터의 대표를 겸했으며, 여러 개의 유럽 경제 공동체 위원회에서 고문을 맡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5년 그는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의 대학 정책 자료 센터 연구지(Les Cahiers du Centre de Documentation Politique Universitaire)라는 매거진에서 미셸 슈나이더(Michel Schneider)와 인터뷰를 가졌으며 야닉 소베(Yannick Sauveur)가 “장 티리아르와 유럽 민족-공동체주의”(Jean Thiriart and the European national-communitarianis, Paris University, 1978)에 관한 자신의 대학 최종 연구내용을 작성하는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 장 벨렌(Jean Beelen)은 6년전 브뤼셀의 자유 대학에서 시민 행동 운동에 관한 연구지를 출판한 바 있다.


1981년 브뤼셀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상대로한 시오니스트의 테러 공격은 티리아르가 다시 정치 활동을 재개하는 동인이 되었다. 그는 La Nation Européenne의 구 행동가이자, 장시간의 인터뷰 (108개 질문)동안 그에게 자신의 정치 사상을 새로이 더 나은 방식으로 설명할 기회를 준 스페인의 역사가 Bernardo Gil Mugarza와 다시 연락을 취했다. 그리하여 새 책이 나올 수 있었는데, 티리아르는 이 책을 스페인어와 독일어로 출간하길 바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미출판상태다.


80년대 초 티리아르는 미완의 상태였던 책을 마무리 지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더블린까지 걸친 유럽-소비에트 제국(The Euro-Soviet Empire from Vladivostok to Dublin). 이 저작은 총 15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각 장은 수많은 도표들로 분할되어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소련에 대한 티리아르의 의견은 이전과는 달리 완전히 바뀌었다. 티리아르는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니다”라는 오래전 모토를 떠나보내고,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할 새로운 개념을 다음의 공식으로 상정했다. “모스크바와 함께, 워싱턴에 대항하라”. 사실 13년전, 티리아르는 프라하, 소련 그리고 유럽(Prague, l’URSS et l’Europe, “La Nation Européenne”, n. 29, November 1968)이라는 기사에서 소비에트의 프라하 군사 개입에 대해 만족을 표하며, 소위 “프라하의 봄”에 있는 시오니스트의 음모를 맹렬히 비난하였고, 소련에 대한 “주의 전략”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서유럽은 소련이 사실상 USA의 적대자 역할을 맡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소련과 연합한 서유럽, 소련으로 결집한 서유럽은 곧 미국 제국주의의 종말이 될 것이다. […] 만일 러시아인이 미국으로부터 유럽인을 분리하길 원한다면 – 그리고 이들은 이 목표를 장기간에 걸쳐 반드시 수행해야 할 것이다 – 미국의 황금 노예에 대항하여 유럽의 정치 기구를 만들어낼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만일 저들이 그러한 정치 기구를 두려워한다면, 그 두려움을 해결할 더 나은 방법은 [러시아와 함께] 하나로 통합하는 데 있다.”


1992년 8월, 티리아르는 민족주의와 공화국(Nationalisme et République) 매거진의 대표인 미셸 슈나이더와 함께 모스크바로 떠났다. 이들은 알렉산드르 두긴의 환영을 받았는데, 그는 이미 알랭 드 브누아와 Robert Steuckers를 만났으며 (3월), 모스크바 TV에서 본 기사의 저자와 인터뷰를 가졌으며 (6월), “적갈색” 반대파와 회동을 가진 이후였다.


모스크바에서의 티리아르의 활동은 – 또한 그곳에는 유럽 해방 전선의 구성원의 자격으로 카를로 테라시아노(Carlo Terracciano)와 마르코 바타라(Marco Battarra)가 있었다 – 매우 열정적이었다. 그는 학회를 열고, 인터뷰를 했으며, 평론지 덴[Den – 프로하노프가 설립한 신문사]의 본사에서 프로하노프, 리가체프, 두긴, 그리고 술타노프의 회동에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유럽에서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Europe to Vladivostok)라는 제목을 달은 기사를 출간했다. 티리아르는 겐나디 쥬가노프와도 만남을 가졌고, 니콜라이 파블로프나 세르게이 바부린과 같은 “적갈색” 반대파 여러명하고도 만났다. 그는 철학자이자 이슬람 르네상스 당의 당수인 가이다르 제말(Geydar Dzhemal)과 토론을 나눴으며, 모스크바 길거리에서 일어난 아랍계 학생들의 시위에 참여했다.


벨기에로 돌아가기 3달 전인 12월 23일, 티리아르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1964년 프랑스어로 출간된 티리아르의 저서 4억 인민의 제국: 유럽(An Empire of 400 millions of people: Europe)은 6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탈리아어 번역은 마시모 코스탄조(Massimo Costanzo)가 담당했는데 (동시에, Europa Combattente의 행동가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저작을 소개한다. “티리아르의 저서는 그것이 보여주는 정밀함과 정확함 덕분에 틀림없이 막대한 관심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정확성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매우 단순한 부분에서 기인한다: 저자는 이데올로기의 연막과 추상적인 구성과는 전혀 동떨어진, 본질적으로 하나의 정치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신중하게 읽은 이후, 당신은 이 책의 내면에 있는 이데올로기적 원소들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정치적 명제로부터 드러나는 것이지, 그 반대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오늘날에까지 이르는 민족-유럽 부문에서의 문제와도 같다”.


이 책의 이탈리아어 2판의 독자라면 아마 40년전 마시모 콘스탄조가 썼던 모든 내용들에 동의할 것이다. 독자들은 아마 티리아르가 쓴 모든 저서 중 가장 유명할 수도 있는 이 책은 현실에 관한 책이며, 설령 당연히 이 책이 쓰였던 시기의 역사적 상황을 포함할지라도, 수많은 요인들을 미리 다뤄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이 책으로 앞으로의 일을 개략적으로 미리 예상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책에서 “유로코뮤니즘”이 도래하기 약 10년전에 소비에트 정치 시스템의 붕괴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간에 따른 과정인 것인데, 유럽에서의 미국 헤게모니에 관한 설명은 오늘날에 있어 하나의 진상(real fact)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초판본 한 권을 서재에 보관해 두었다 (“édité à Bruxelles, par Jean Thiriart, en Mai 1964”). 저자가 이 책의 내면에 써 내린 헌신은 본인이 오늘날의 젊은 독자들까지 전하고 싶은 고언을 담고 있다: “당신의 젊음은 아름답다. 그녀[젊음]는 자기 앞에 자신의 제국을 쌓아 나간다.”(Votre jeunesse est belle. Elle a devant elle un Empire à bâtir) 루트왁과 토니 네그리와 다르게, 티리아르는 제국(Empire)이란 제국주의(imperialism)의 정반대이며, 미국은 로마가 아닌 카르타고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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