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난바다님께서 제품을 빌려주셨습니다.

여러 사정이 겹쳐 측정이 많이 늦어졌는데 별 말 없이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1. 웨이블릿디자인 OPUS 1S

국내 이어폰 제조사(였던) 웨이블릿 디자인의 OPUS 1S.

우여곡절이 많았던 제품인 만큼, 이전 작인 OPUS 1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한 때, 대한민국의 어느 한 연구자가 고안한 독특한 설계의 BA드라이버가 화제였던 적이 있었음.

전반적인 구동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은데, 위아래 자석을 양옆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이었던 Dynamic BA (DBA)가 바로 그 주인공.

자석을 양옆으로 옮긴 덕분에 더 강력한 자력의 자석을 사용할 수 있었고, 여기에 구동 범위까지 넓어질 수 있었다보니 저음과 고음 표현력를 개선시킬 수 있었음.

웨이블릿 디자인은 이 DBA를 활용한 이어폰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첫 이어폰인 OPUS 1이 탄생할 수 있었음.

2015년에 출시되었던 OPUS 1의 시장 반응은 꽤 좋았던 것 같은데, 여러 불미스런 사정들로 인해 갑작스럽게 단종 수순을 밟게 됨.

DBA 드라이버의 내구성 문제가 불거졌고, 급기야 DBA 드라이버를 생산하던 업체에서 초도물량까지만 생산하고 양산은 포기하기에 이름.

제품의 핵심과도 같은 드라이버를 더 이상 공급받을 수 없게 되자, 웨이블릿 디자인은 이를 대체할 드라이버를 찾아 나서게 되었고, 그렇게 선정된 놀즈 사이렌 BA로 재설계된 제품이 바로 OPUS 1S임.

2016년에 출시되었던, 무려 8년 전 제품인 만큼 하만타겟과는 다소 거리가 먼 토널 밸런스를 가지고 있음.

일직선으로 그은듯한 저음 곡선 덕분에 저역의 에너지가 많지 않은 편이고, 측정치 상으로는 고역에서 롤오프가 이르게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부족한 저음을 보상하기 위해 볼륨을 올리다보면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서부터 자극적인 고음이 느껴짐.

아무래도 사이렌 BA를 가지고 DBA를 사용한 원본 - OPUS 1을 최대한 묘사하려 했다보니, 당시에도 '결과물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는 평을 받았던 듯함. 

DBA가 들어간 제품을 한 번 들어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앞서 설명했듯이 제품이 워낙 빨리 단종된 탓에, 물건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

'사장님 추천 EQ'라고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간단한 Peaking EQ (1kHz, Q 0.2, -4dB)를 적용하면 FR이 위 사진처럼 변함.

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서 듣기 편해지지만, 아무래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않음.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었던 웨이블릿 디자인은 밸런스드 아마추어 드라이버를 놓아주기로 하고, 상대적으로 개발이 용이한 다이나믹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음.

이 과정에서, 앞서 DBA를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는 '연구자'의 지원을 받으며, 함께 새로운 다이나믹 드라이버 개발에 착수하게 되는데...

그렇게 탄생한 드라이버가 바로, 소니캐스트 '이신렬' 박사의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는 SF드라이버되시겠다.

2. 소니캐스트 디락

OPUS 1 시리즈의 실패 이후, 소니캐스트와 웨이블릿 디자인은 밸런스드 아마추어를 포기하고, 고성능 다이나믹 드라이버 개발에 착수했음.

고음 재생 성능을 개선시키기 위해 더욱 단단한 멀티레이어 진동판을 사용했고, 이에 맞춰 구동력을 높이기 위해 외자형 자석이 적용한 것이 특징.

이렇게 두 회사는, 이후 'SF드라이버'로 불리우게 되는 8mm 다이나믹 드라이버를 탄생시켰고, 웨이블릿 디자인은 모종의 이유로 해당 드라이버 설계를 활용한 사업권과 개발 인력을 소니캐스트에 넘겨주게 됨.

그렇게 탄생한 첫 작품이 소니캐스트 디락.

2024년 기준으로 바라보더라도 디락의 사운드는 완성도가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함.

'풀레인지 단일 드라이버'를 강조한 제품답게, 극저음부터 초고음까지 넓은 대역폭을 무리없이 재생함.

외부로 통하는 통기 구멍 - 덕트를 완전히 배제한 구조는 후술할 여러 문제를 낳았지만, 덕분에 극저음까지 선형적으로 뻗어나가는 저음 곡선을 완성할 수 있었음. 

곡에 따라 소리가 약간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음.

특히, 다이나믹 드라이버는 고음에 약하다는 당시의 편견을 깨부시듯, 초고음을 넉넉하게 확보해둔 것도 특징.

이토록 사운드의 완성도가 여러모로 괜찮았다보니, 2017년 5월에 처음 출시된 디락은 그야말로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러나 선재 풀림, 케이블 탈락을 비롯한 각종 하자가 발견되기 시작했고, 특히 인상적인 저음 특성을 완성하기 위해 선택했던 '완전 밀폐형' 설계는 '이압이 너무 심해서 못 쓰겠다'는 소비자의 불만이 우스워보일 정도로 심각한 좌우 불균형 문제를 낳았음.

소캐는 문제를 해결한 신제품을 출시하며 문제를 수정해나갔지만, 새로운 제품에서도 이슈가 계속해서 발견되었고, 결국 제품 출시 후 몇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신제품이 쏟아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음.

그렇게 개량에 개량을 거듭한 끝에도 결국 이슈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고, 4번이 넘는 신제품 출시가 반복되고 나서야 쓸만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불거진 각종 이슈를 다루는 소니캐스트의 모습이 논란이 되면서 예전만큼의 열기는 많이 식어버린 모양새.

소니캐스트에게 'SF드라이버'를 활용한 사업권을 넘겼던 웨이블릿 디자인은, 1세대 디락의 성공을 목격한 이후 동일한 8mm 구경의 드라이버를 사용한 OPUS 시리즈 후속작, OP.2를 출시했음.

안타깝게도, 이 제품 또한 디락과 마찬가지로 '완전 폐쇄식' 구조를 도입하면서 발생한 각종 문제들로부터 골머리를 앓았고, 끝내 다른 회사의 다른 드라이버로 교체된 '새로운 제품으로 전량 교체'라는 씁쓸한 결말을 맞았음.

이렇게 2번의 연속된 쓴 맛을 삼켜야했던 웨이블릿 디자인은, 이후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폰 후속작을 내놓지 않으며 지금은 클리펠 장비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차이파이의 공세, DSP 튜닝을 거치는 무선 이어폰 대중화 등으로 인해 좋은 특성의 드라이버를 만들어도 이제는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웨이블릿 디자인의 이어폰은 다시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