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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 <단편> 육손이 이주원 (멘탈 주의)

IPLEX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3.17 23: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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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공백기 시절에 쓴 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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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판도를 순찰하라는 상의 명을 받들어 길을 떠났다. 돌판도는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고 근본없는 상술에 창고는 바닥나 민심이 흉흉하기 이를데 없었다. 각종 퀴들의 아수라도를 지나며 상에게 어떤 상소를 올려야 하나 고심이 깊던 차, 어느 강가 언덕에서 괴이한 자를 만났다.



돌판도는 남북을 가르는 강이 있는데 이편은 여돌, 저 강 건너편은 남돌이라 부른다. 서로 교통이 불편해 몇없는 작은 부둣가에서 하염없이 배를 기다렸다 타야하는 형편이다. 20년 전만해도 여돌, 남돌지역만이 아니라 전국 팔도에 교통이 통했다는데 돌판도의 근본없는 상술로 도로망은 오간데 없이 사라지고 한탕주의만 노리는 반은 도적떼요, 반은 상단인 자들만 통행하고 있다.



언덕에 우두커니 서 부둣가를 바라보는 그의 행각은 괴이하면서도 슬픈 빛을 띠고 있었다. 한낮이라지만 점점 북풍이 매서워지는데 팔짱을 낀 그의 옷은 여름옷이요, 허리춤엔 13가지 색으로 변하는 방망이가 꽂혀 있다. 방망이를 자세히 보니 유려한 곡선이 아름답고 머리 끝엔 12가지 색상의 구슬이 영롱하더라.



"이보시오. 어디가는 길손이요?"



다시 바라보니 눈길은 계속 부둣가를 바라보고 입은 한일자로 다물어져 방금 말을 꺼낸 자인지 알 수가 없다. "남돌지역으로 넘어가외다. 언덕 아래 부둣가에 배가 언제 오오?"하고 물으니



"배는 저녁 무렵에 올 것이오. 요기는 하셨소?"하며 다시 묻더라. 돌아보는 얼굴을 보니 오래 굶어 핏기가 돌지 않는 얼굴색인데 눈빛만은 죽지 않았는지라 기인을 만난 듯 하였다. "나도 요기를 할 참이니 같이 듭시다"하며 김밥 한줄을 꺼내자 그자가 껄껄 웃으며 통성명을 한다.



그 자의 이름은 이주원이요, 자신은 육손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그 김밥을 보니 내 넷째 손가락이 생각나오."하며 자신의 손을 보여주는데



손가락이 하나도 없더라. 뭉특한 손에 김밥을 쥐어줄 수 없어 난감해하자 덥석 내 손에 쥐어진 김밥을 입에 물더니 한참을 꾸역꾸역 삼킨다.



"이 흉흉한 돌판도를 용케도 지나왔소?" "한참 퀴들에 쫓기다 주식개장 시간이 돼서 간신히 벗어났소이다." "그래 남돌지역으로 가는 길이오?" "돌판도를 온김에 다 둘러볼 작정이오."



육손이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언덕 아래는 퀴들이 지나다니니 여기서 기다렸다가 배가 오면 가시오"하고 권한다. "그대도 배를 탈 요량이오?" "아니외다. 난 기다리는 배가 따로 있소이다." "그 배는 어디로 가오? 여기선 남돌지역으로 가는 배밖에 없을텐데."



"세계로 가는 배도 있소이다. 작년부터 다녔지. 내 손가락들이 만든 배요." "손가락이요??" 육손이가 손가락 하나없는 손을 굽어보더니 금새 눈물을 떨군다.



"이보시오. 지나가는 길손이여. 요기나 하며 내 얘기나 들어보오. 막내인 내 오른손 새끼손가락은 만나는 사람마다 밥은 먹었냐고 꼭 물어본다오. 여보가 꺼낸 김밥은 왼손 중지인 넷째 손가락이 즐기는 방식으로 자르지 않고 통째로 먹는 게 제맛이라오. 그대의 행각을 보니 거칠고 황량한 돌판도에 용무도 없이 온 사람은 아닐 듯 하여 내 손가락들의 얘기를 들려줄까 싶소이다."



저녁에나 오는 배도 기다릴 겸 승낙하고 널널한 바위에 앉아 때 지난 끼니를 때우며 그의 얘기를 청했다.



"내 왼손의 엄지는 일찍이 예악과 무용을 깨쳐 그 재능이 두루두루 통하지 않는 데가 없었소이다. 그러나 시절이 불운한지라 급제를 하고도 번번히 뜻을 펼치지 못했지. 내 오른손의 엄지는 이웃나라에서 어릴적 급제하고 인기가 상승했지만 인기에 비해 재능이 미치지 못할까 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소. 마침 돌판도에서 씨제이가 프듀 별시를 열어 내 손가락들이 다 거기서 급제하고 엄지들도 다시 등용됐다오."



"거듭 급제를 하다니 참으로 용하오이다." 감탄하니 "내 손가락들은 참 기구하다오. 오른손의 검지는 깃털처럼 날랬지만 공개과거장에서 두번이나 미끄러 졌었지." "무엇이 모자랐소?" "틀렸소. 넘치는 것도 탈이더이다."



"프듀 별시는 돌판도에선 입신양명의 지름길로 아오. 급제 뒤 1년이 지났으니 그 이름이 돌판도 전체를 울릴텐데 내 새로운 이름을 듣지 못했으니 참 의아하오?"



한참을 말이 없던 그는 굽이굽이 흐르는 강 상류를 가리키더니 "내 손가락들이 만든 배가 옵더레 선착장으로 들어갔는데 나오질 않고 있다오. 그래서 언제 나오나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오. 그 배가 떴다면 필시 돌판도 전역을 넘어 사해를 누비며 온세상 씹덕들을 요동치게 했을텐데"하며 장탄식을 쏟아낸다.



"내 손가락들은 참 기구하다오. 양손의 중지들은 중지치고 작지만 다른 누구보다 끼가 일품이고 양손의 새끼손가락들은 둘다 길죽하니 모두들 돌판도를 주름잡을 상이라고 했다오. 혹자는 내 손가락들의 조합이 중지가 짧고 새끼손가락이 길어서 맞지 않다고 수근댔고 내 오른손의 손가락 세개는 왜에서 건너왔다고 배척하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나온지라."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하지만 첫 배가 나오고는 탄복만이 있었을 뿐이었다오."



"그럼 손가락들은 어쩌다 잃어버렸소?"



그러자 육손이가 끄윽거리며 목놓아 통곡하더라. "보름 전에 씨제이가 잘라갔다오."



흉험한 그 이름을 듣자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몸이 절로 부들부들 떨리는데 그 이유인즉슨 씨제이의 근본없는 상술이 돌판도를 흉흉하게 만든 탓이다. "대체 씨제이가 왜 손가락을 모조리 잘라갔단 말이오?" "프듀 별시는 씨제이 주최라 그 손가락의 소유는 자기 것이라 합디다. 별시 공정성에 문제가 있으니 손가락을 잘라가 진위를 따지겠다며 비명에 손가락을 다 잃게됐소."



"별시에 문제가 있다면 별시를 연 씨제이의 문제지 어찌 손가락이 문제란 말이오? 그 말이 이치에 닿는 게 1푼어치도 없소이다. 손가락을 모두 잃은 여보는 어떻게 이 돌판도에서 산단 말이오."해도 끄윽거리며 울기만 하더라.



"그 손가락은 어디있소." "어딨는지 모른다오. 씨제이가 알려주질 않더이다." 순리가 역으로 흐는 상황에 둘다 말을 잃고 만지라 지나가는 북풍만이 매섭게 왱왱거린다.



"처음 손가락을 잃었을 땐 이게 내 손의 아픔인지 아니면 내 손가락들의 아픔인지 구분이 안가더이다. 보름이 지나 잘린 상처에서 피는 멈췄는데 어이해 계속 아픈건지 까닭을 모르겠소. 이 사무치는 아픔이 내 손가락들의 고통이라면 하늘을 이고 내 어찌 살란 말이오. 내 손가락들은 참 기구하다오. 선착장에서 열두 손가락들의 땀으로 구슬을 채우고 손가락들의 눈물로 뭉쳐 만든 진주를 새 정규편에 넣었다는데 알 길이 없소. 구슬이나 진주는 아깝지 않으나 내 손가락들의 안위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북풍이 몰아치는 언덕에서 추위도 잊은 채 육손이 이주원의 얘기를 들었다. 열두 손가락이 아니었다면 이 돌판도를 떠났을텐데 손가락들의 구만리 앞날이 눈에 걸려 차마 떠나지 못한다고 했다. 씨제이의 행각이 하도 괘씸해 그 자리에서 상에게 올리는 상소를 써 파발을 띄웠다.



"돌판도는 옛 영화를 찾아볼 수 없고 민심은 도탄에 빠져 퀴들만 날뛰고 있으니 그 첫째 책임은 모두 근본없는 씨제이의 상술에 있는 바, 육손이 이주원의 열두 손가락을 빼앗은 건 씨제이의 악행 중에서도 죄질이 나쁘오니 상께서 이를 측은하게 여겨 순리가 바로 흐르게 헤아려 살펴주소서."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는지라 부둣가로 내려갈 때가 돼 육손이와 작별을 나눴다. 비록 상께 상소를 올렸으나 씨제이는 세도가 중의 세도가인지라 앞날을 기약할 수 없어 두 손을 붙잡고 서로 눈물만 지을 뿐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한참을 내려가 뒤돌아보니 육손이가 손가락도 없는 두손으로 열두색 구슬이 든 방망이를 허리춤에서 꺼내 흔들며 배웅한다. 하도 기막한 정경이 돌판도의 현실을 절절히 전해 오는구나. 다시 길을 내려가다 돌아보니 육손이 이주원은 간데 없없다.



육손이가 서있던 자리엔 아름다운 열두색을 무지개처럼 휘감은 목각장승 하나만 오롯히 서서 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본관은 전한다. 이주원과 열두 손가락의 얘기는 화려하지만 방탕하지 않고 슬프지만 비참하지 않으니 중용의 삶을 보여준다 하겠다. 열두 손가락의 이름은 아이즈원이라 하며 하나가 되는 순간 모두가 주목하는 열두색이 특색이라니 행방을 아는 자는 저 언덕위 목각장승에게 전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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