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선라이즈>를 보고 <군중>을 봤을 때 <군중>이 <선라이즈>를 거의 따라했는데도 엔딩이 완전 상반돼 충격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체념과 순응의 정서가 그의 영화에 짙게 배여 있었네요

<군중>의 시작과 끝의 수미상관은 개인이 사회의 일원일 뿐이라고, 여기서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쇼 피플>에서도 결국 데이비스는 자신이 원하던 정극 연기에서 벗어나 (자신이 벗어나려고 하던) 코미디 연기를 하죠.

코미디 영화에서 특징적이던 파이 던지기 장면이 이 영화에선 이상하게 슬픔의 정서가 느껴졌던게 이 때문인 것같습니다.

<스텔라 댈러스>에서도 결국 딸과 만나지 못하게 되고, <라 보엠>에서도 결국 기쉬는 죽죠.

<쇼 피플>과 <군중>에선 분명히 슬프게 다가올 이 체념에 한없이 웃는 인물들에게서 일종의 광기까지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비극으로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그 비극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러니깐 <스텔라 댈러스>의 엔딩에서 스탠윅의 눈물 섞인 웃음 같은 이미지 때문인 것같아요

<라 보엠>의 엔딩에서 다시 떠오르는 그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숲의 이미지도, 이젠 제가 완전히 이미지로만 기억하는

<쇼 피플>에서의 데이비스의 울음도요.

아래 짧게 인용할, 제가 예전에 <스텔라 댈러스>를 보고 쓴 글도 이 주제와 엇비슷하네요. 당시엔 이 주제를 작가론으로 발전시킬 생각을 못했는데

그(킹 비더)는 오히려 영화적 이미지에 대한 일편의 슬픔 속성에 대해 알려주려 했다.그것은 바로 현실의 이미지든 욕망의 이미지든, 영화적 이미지란 수용자가 결국은 접촉할 수 없다는 것임을 말이다. 스탠윅이 마지막에 마주한 이미지도 결국은 현실의 이미지지만, 그녀가 그 이미지와 접촉하게 되면 - 그러니 딸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 그 이미지는 더 이상 성립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스탠윅은 이미지에 매혹됐을지라도, 그 이미지에 더 이상 다가가지 않고 돌아선다. 그녀가 반 쯤 웃고 반 쯤 울며 딸의 결혼식을 등지고 걸어가는 엔딩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도 같다 - 슬퍼도 어쩌겠는가! 그것이 영화인데. 본 것만으로도 행복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