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기들이 하나같이 그렇지만 아쟁은 연주하기 까다로운데, 그럼에도 실력 있는 아쟁 연주자들은 찰현악기의 장점을 살려 특유의 맛깔나는 떨림음을 들려주곤 한다. 연주자만 받쳐준다면 아쟁이 얼마나 다채로운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무악이나 농악 같이 민간 전통음악을 다룬 앨범은 보통 믹싱이나 마스터링이 명확하지 않기 마련이다. 하지만 <송순단 무가 II>와 <호남여성농악>은 모든 악기와 목소리가 동시대 음악들처럼 선명하게 들린다. 예상치 못한 신선함이었다.

요즘 쏟아지는 슈게이징 + 네오 사이키델리아 조합인데도 독특한 코드 진행과 악기 편성 덕에 인상에 강하게 남는 앨범이었다. 데모 앨범으로 느껴질 정도로 맥 빠지는 부분이 다수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주관적으로 올해 국내 최고의 슈게이징.

살풀이마저 모던 클래식의 화성과 리듬에 녹이려 하는 정재일의 진짜 광기.

다른 건 여타 아방가르드 재즈 앨범과 큰 차이가 없는데, 모듈러 신디사이저로 난장판을 벌이는 후반부 두 곡이 인상깊었다.

올해 여러 개의 앨범을 쏟아낸 폭풍취한돌고래의 뉴 에이지 앨범. 제일 잘 알려진 앨범은 <홍합탕 펀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의 재능은 앰비언트 사운드다. <Ocean Wave>부터 이 앨범까지 앰비언트는 언제나 일정한 품질을 보장한다.

어떤 부분에서 유치하다는 건지 알겠고, 중반부 완급 조절을 무난한 브레이크비트 + 얼터너티브 R&B로 때워버린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Arkestra>, <선전기술 X>와 함께 괜찮았던 국힙 앨범 중 하나. 몇몇 트랙은 나름 K-Dälek이라 불러줄 수 있을지도.

마이너한 힙합을 좋아하는 Sun Gin이 또 무명 래퍼와의 작업물을 내놨다. 이번에는 희한한 샘플로 만든 칩멍크 소울인데, 뽕삘 가득한 샘플 보컬과 헛웃음 나오는 가사가 합쳐져서 마치 고속도로 테이프에서 힙합이 나오는 느낌이다.

감성적인 신스팝, 일렉트로팝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겹치는 윤상과 이준오의 합작 앨범. 전반적인 분위기는 캐스커식 앰비언트를 호화롭게 부풀린 느낌인데, 리듬이나 멜로디에는 또 윤상의 작법이 묻어있어서 흥미롭다.

70년대 국내 사이키델릭 음악 특유의 뽕끼 있는 신스를 현대적으로 녹여내려는 시도는 많이 있어왔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70년대 걸작들의 단순 하위 호환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앨범 역시 그런 식으로 과거를 재현하려 하지만, 과거의 앨범을 베끼려 하진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Lo-Fi 인디 포크를 기반으로 트위 팝과 실내악 사운드를 살짝 섞고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샘플들을 적절히 끼얹어 어린이 애니메이션 같은 앨범을 만들어냈다. 완성도의 차이는 크겠지만, <If You're Feeling Sinister>의 홈 레코딩 버전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