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하나코입니다.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아 미리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벌써 날이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충수업부 아이들과 함께 수영장을
청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더 이상 수영복으로 거리를 활보하기엔 쉽지 않은 날씨가 되었네요.
선생님께선 언젠가 저에게 제 총의 이름과, 그 뜻을 물어보시곤 하셨죠. 오네스트 위시, 물어보실 때마다 저는 저만의 비밀로 간직하기 위해서
말씀드리지 않았죠.
물론 다른 사람들의 내면을 꿰뚫고 파악하는 능력을 갖춘 선생님이라면 대략 짐작은 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편지인 만큼 선생님에게 그동안 비밀로 해왔던 이름의 뜻을 밝히고 싶네요. 그전에 잠깐 시시하고 재미없는 저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처음엔 트리니티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트리니티에 들어가기 위하여서
많은 노력을 하였고, 트리니티에 입학하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저는
트리니티 학원에 들어가고 나서, 평범하고 행복한… 그저 누구나
꿈꾸는 그런 학창 생활을 보내게 될 줄 알았습니다. 누구나 상상하는 푸른 청춘, 우정, 믿음 같은 밝은 면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입학하자마자 제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았고, 그때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 색이 밝고 화려한 버섯들은 대부분 독버섯인 걸 아시나요? 트리니티란 독버섯 같은 존재였습니다. 화려한 겉모습과 거짓된 미소로
더럽고 추악한, 독과 같은 본성을 숨기고 다른 존재를 밟아버리는, 그런
곳이었죠. 다양한 미사여구와 화려한 언변으로 감춰봤자, 하수구
같은 본심은 감출 수가 없는 법이죠.
저는 점점 마음이 부서져 가고 있었습니다. 본성을 숨긴 채, 가식과 허례허식으로 점철된 암투. 이것은 제가 생각한 빛나는 청춘과는
굉장히 멀었습니다.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학원에서 지나가는
모든 학생의 행동이 가식으로 보였습니다. 역겨웠습니다.
모든 것에 질리고 환멸이 날 즈음 저는 학원을 그만둘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기만, 껍데기뿐인 이 가짜 세상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세이아 짱이
해준 말이 아니었다면…. 전 진작에 트리니티 소속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 ‘치녀 놀이’를 시작하였습니다. 야외에서 수영복을 입고, 속옷만 입으며 돌아다니고… 후후….
본성에 충실한 ‘연기’를 하는 저들에게 저는
기행을 벌이는 문제아가 되었고, 많은 사람이 저를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껍데기와 가면으로 씌워진 자들에게 자극이 너무 강했을까요? 후후
말이 길어졌네요. 제 오네스트 위시,
그 바람은 ‘빛나는 학창 생활’이었습니다. 트리니티에 입학하기 전, 오네스트 위시라는 이름을 그 바람을 담아서
지었습니다.
웃기는 일이죠, 가짜와 기만술에 지쳐버린 사람이 ‘치녀’라는 가면을 쓰고 스스로 문제아가 되다니. ‘치녀 놀이’를 하면 할수록 저는 제 바람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건 제가 꿈꿔왔던 학창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남들처럼 평범한…. 그저 즐겁고 행복한 학창 생활을 꿈꿔왔던 저는 이 ‘치녀 놀이’도 질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보충수업 부에 들어오기 전까진 말이죠.
맞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저 가식과 친절이라는 가면을 가진 사람으로 그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부러 낙제점을 만들어 자퇴할 생각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에 환멸이 나 버렸거든요.
코하루 짱, 히후미 짱, 아즈사
짱… 보충수업부는 그저 낙제생들을 모아 놓은 문제아 동아리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제가 꿈꿔왔던 바람, 제 오네스트 위시. 빛나고
평범한 학창 생활을 즐겼습니다. 밤길을 같이 산책한 것, 수영장을
다 같이 청소한 것…. 그저 남들이 모두 하는 평범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선생님 또한 뭔가 달랐습니다. 때론 능글맞고 장난스러우면서도,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보는 듯한
그 통찰력이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마치 발가벗겨진 기분이더군요. 저의
가면을 넘어선. 저 우라와 하나코 그 자체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에 굉장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대로 제 바람을 이룰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비록 문제아
동아리일지라도, 비정상의 소굴에서 문제아라면 정상이 아닐까요? 저는
다시 열정과 청춘에 대한 열망으로 생기가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이 크게 다치기 전까지는 말이죠.
선생님이 다치고 나서 의식불명에 빠진 이후로, 전 키보토스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수많은 학원의 의료진들이 나서서 선생님을 치료했고, 많은
학생이 선생님이 쾌차하시길 바랐습니다.
선생님이 의식불명에 빠진 지 두 달이 넘어가자, 학생들은 희망의 끈을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믿어버리고 스스로 비관해 목숨을 끊은 학생들에 대한 뉴스가
끊임없이 보도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나쁜 일은 이어서 일어나는지. 저는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뒷맛이 쓰고, 미간을 찌푸리게 되는 그런 이야기는 왜 끊임없이 일어나는지. 저로써는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에덴 조약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세이아 짱은 누군가의 피습으로 의식 불명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파테르 분파의 수장 미카 씨는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필리우스 분파의 수장 나기사 씨는 두명의 부재 이후 트리니티의 모든 권력을 쥐고 독재를 시작하였습니다.
보충수업부의 아이들은 전부 흩어졌습니다. 코하루 짱은 정의실현부로, 히후미 짱은 다시 귀가부로, 아즈사 짱은 자퇴 후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괴로운데, 선생님, 하늘은
푸르기만 하네요.
선생님, 빛나는 기억은 흩어지기가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요? 점점 갈수록 제 총의 뜻을 잊어먹고 있습니다. 이 편지 또한 제
총의 의미에 대한 흔적을 남겨 놓으려는 제 마지막 발악입니다.
선생님, 저는 트리니티를 자퇴했습니다. 더 이상의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굉장히 마음이 놓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계속 가슴에 아린 느낌이 듭니다.
선생님, 만약에 깨어나신다면 저 외에 다른 보충수업부 아이들을 찾아주세요.
항상 감사했습니다.
우라와 하나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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