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미안하다

지난번에 적고 아득히 잊고 있었다

그대로 이어서 적어본다

결론만 말하자면 내 기준에서의 실전은 생존이다

살아남은 놈이 강한거다

어릴때나 지금이나 이 큰 틀은 전혀 바뀌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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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남자들끼리 모이기만 하면 다들 태권도는 좆밥이었다 킥복싱이 짱이더라 좆까라 극진모르냐 안면타격없는 좆밥 무술 꺼져라

정말 말도 많았다

나는 그때쯤 시골에서 지방의 도시로 상경해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것들을 보기 시작하니깐 나도 뭔가를 배우고 싶었다

고딩때 쳐맞은 발차기 생각도 계속나고 그때까지는 나도 나름 잘 싸운다는 망상이 있어서 뭔가를 배우면 더 강해질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지방의 특성상 도시라고 해도 찾을 수 있는 곳은 태권도, 복싱체육관, 검도, 유도 밖에 없었다

그때 배우고 싶은건 극진가라데였는데 좀 멀었다

태권도는 그때도 좆밥이미지였고 유도는 뭔가 덩치가 좋아야 할 수 있는 인자강들의 운동 같았다

검도는 ㅅㅂ 호구 살 돈이 없었다

결국 찾아간 곳은 복싱체육관

그리고는 열심히 스텝밟고 줄넘기 넘고 로드웍도 하고 콤비네이션 배운대로 쉐도우도 하고 존나 열심히 했다

난 그때 내가 열심히 하면 정말 강해질줄 알았다

2개월정도 지났을때 어느날 관장이 스파링 함 해보라고 마우스피스 있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하나 구입하고 링위에 올라갔다

나는 스파링이든 뭐든 존나 잘 할 줄 알았다

왜냐면 나는 항상 잘 버텨왔으니깐

상대는 나보다는 좀 큰 사람이었는데

나는 태어나서 그때 처음으로 체격차이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내 주먹은 어떻게 휘둘러도 맞지 않았고 어쩌다 스쳐도 위력이 들어가는 전혀 느낌이 없었다

상대는 어떻게하든 꿋꿋하게 서있었고

나보다 고작 10kg정도 더 무겁고 키는 5cm정도 밖에 안커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커보일수가 없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본적 없었던 문제였다

아무리 해도 내 주먹이 닿지 않는다는걸 알았고 상대에게 나는 움직이는 샌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순간에도 상대는 나의 첫스파링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가볍게 앞손으로만 툭툭 내 얼굴을 치고 빠지고 있었다

똑같은 룰, 똑같은 장비, 완전 평등한 사각의 링 위에서 나는 그저 뭐라도 던지고 붙어서 그놈 귀라도 물어 뜯고 싶다는 생각밖에 못하는

기술도 없고 덩치도 작은 한 인자강일뿐이었다

그때 이후에 군대를 가기 전까지 몇 년을 더 수련했고 체육관에서도 나름 잘하는 편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을 상대하는건 선천적으로 무리였다

나는 여전히 기술이 조금 좋은 덩치 작은 인자약이었다

군대에 있으니 프라이드가 흥하고 주짓수와 그라운딩이 주목받으며 내가 수련해온 입식타격이 좆밥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쯤 내 머리속에 든 생각은

'ㅅㅂ룰이 오픈되니깐 입식타격보고 약해졌다고 하는데 더 오픈시켜서 막대기 들고 나오게 하면 유술 배운 검도가가 짱먹겠네'였다

아무튼 그런 시간들을 통해 나의 생각들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싸울때 누군가를 물어뜯거나 머리로 받아버리면 항상 들었던 소리는 치사한 새끼였다

어릴때의 나는 이길수만 있으면 이빨이든 몽둥이든 총이든 칼이든 무슨 상관이냐라고 생각했던 놈이었다

나에게 실전은 생존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던 한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생존이었다

이빨이든 총이든 아무것도 안하고 존버를 하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 전쟁인것처럼 그냥 발버둥 치며 버틴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4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 사회라는 링위에 갇혀 법이라는 룰을 지키며 살아가는 나에게 생존의 의미는 많이 달라졌다

실전이라는게 결국 생존이고 그 생존이 결국 룰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면

우리 사회에서의 최고의 실전은 공부잘해서 돈 많이 벌고 높은 권력 얻어서 아무도 못덤비게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룰 없이 싸우면 뭐가 최고인데라고 물어본다

그렇지만 룰이 없다면 그건 그냥 전쟁터이다

그럼 또 그 사람들이 그냥 몸만가지고 싸우는 전제하게 뭐가 최고냐고 말하겠지

그럼 나 같은 인자약이 그런 놈들 상대할때는 막대기 들고 싸워야 하는데 어떻게 할래라고 답하겠지

그럼 또 그 사람들이 똑같이 막대기 들면 어떻할래라고 묻겠지

그럼 나는 또 칼이나 총들고 오겠지라고 하겠지

왜냐면 그런 놈 상대로 생존하려면 치사해도 뭐든할테니깐

한마디로 진짜 의미없는 이야기인거다

시간이 지나고 여유가 생기니깐 하고 싶었던 검도도 했고 종합격투기 붐으로 종합격투기 체육관도 다니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인자약이다

꾸준한 운동으로 기술, 체력, 체격등이 어릴때보다 좋아졌지만 혹시라도 길에서 시비 붙을 일이 생긴다면 싸울 생각은 없다

복싱체육관 링 위에서 쳐맞으면서도 이빨로 물어뜯지 않았고 발로 차지 않았던 것처럼

그게 룰이니깐 지킬거다

사회라는 링위에서 법이라는 룰을 지키는 나는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히는건 복싱을 할 때 킥을 날리는 것과 똑같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회의 룰을 지키며 살아갈 생각이다

지금의 수련은 야구를 하는 사람들이 투구연습을 하며 기술이 완성 될 때 스스로 만족하는듯한 수준의 단순한 자기 만족이다

내가 강해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인자약이 운동하더니 자기 약한거 인정하기 싫어서 갑자기 생각바꿨네라고 말해도 좋다

그냥 이게 내가 운동 시작하면서 바뀐 실전에 대한 생각이다

(물론 어느 날 갑자기 무정부상태가 되어서 법 없는 세상이 되어버리면 다시 박치기로 받아버리고 물어뜯고 야구빠따든 칼이든 어떻게든 발버둥치겠지만)

한줄요약 : 싸움 할 생각하지 말고 법이나 잘 지키면서 잘 먹고 살아라 그게 체고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