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기분 나빠..."
입안 가득 빵을 욱여넣고 우물거리던 에르핀이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도 그렇습니다."
죠안은 식사엔 손도 대지 않은 채 한참 동안 식탁 너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 # #
과묵한 죠안
먹는 것 외엔 관심이 없는 에르핀
그냥 별 생각이 없는 교주
과중한 업무 탓에 지친 네르
이것이 평소의 식사 시간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식사자리에선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고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 하세요 교주님~"
"으응......"
네르가 교주의 옆에 찰싹 붙어 반쯤 꿈에 잠긴 듯한 눈으로 손수 빵을 먹여주며 배시시 웃고 있던 것이다
"......교주님, 네르 사제장에게 올바른 식사 예절에 대해 알려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응...읍으브븝"
"어쩜 이리 가리는 것 없이 잘드세요? 착해라, 하나 더 드세요"
네르는 자신과 죠안의 사이에서 사색이 된 교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볼이 미어져라 빵을 집어넣은 교주의 입에 또다시 빵을 들이밀었다
"네르 눈빛이 이상해..."
"교주님께서도 곤란해하시는 듯 하군요."
홍옥을 깎아만든 듯 언제나 반짝이던 죠안의 눈엔 더 이상 자그마한 빛 한점 비치지 않았으나 저 너머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죠안의 눈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 # #
"그래서 날 찾아왔다고?"
밤을 샜는지 눈 밑에 짙게 그림자가 드리운 엘레나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 네가 엘리아스에서 가장 아는 것이 많은 자라더군"
"틀린 말은 아니지 근데 그런 쪽으론 나보다 잘 아는 녀석들이 있을텐데"
"너는 교주님의 고향에서 왔으니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맞는 말이네. 인간의 사랑을 알고 싶다했지?"
엘레나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번 홀짝이곤 입을 열었다
"인간의 사랑은 성욕이지."
"성욕...?"
"후... 이래서 사제란 녀석들은... 그러니까 섹.....읍읍!!"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아멜리아가 순식간에 엘레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뭐하는 거야 아멜리아!"
"시장님의 입에 파렴치한 단어가 담기는 건 저만 들... 아니, 시장님의 체면이 무너지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
"색...?"
"오늘은 이만하고 물러나시죠. 시장님께서 닷새 동안 주무시지 못해 조금 피곤하신가봅니다."
엘레나의 연구실에서 쫓겨난 죠안은 잠시 고민하다 어디론가 향했다
# # #
잠시뒤 교단으로 돌아온 죠안은 곧장 교주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주님? 당신의 종, 죠안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응 들어와 무슨 일이야?"
죠안은 문을 열고 들어와 교주의 옆에 섰다
"편하게 앉아있어 굳이 그렇게 예의차리지 않아도 돼. 고민이라도 있어?"
"교주님께서는 '주말농장'에 대해서 알고 계시지요?"
"응...? 그렇긴하지..."
"한 생명의 삶은 하나의 세계이며 주말농장은 한 세계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파국을 향해 달음질하는 생명이 기댈 곳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교주는 죠안의 말에 살짝 당황한 듯 싶었으나 곧 답을 내놓았다
"현재 아닐까, 내가 살던 세계에선 누구나 삶이라는 비극의 결말을 알고 있었지만 항상 그것에 대해 상기하고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었어.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에 감사하며 미래의 조각들을 모아갈 뿐이었지"
"......그렇다면 끌어모을 미래의 조각, 그 자그마한 편린의 티끌조차 더는 남아있지 않게된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합니까"
교주는 잠시 고민하다 멋쩍게 웃으머 말했다
"글쎄... 나도 아직 그만큼 살아보지는 못해서 뭐라 답을 해줄수가 없는걸? 좀 더 고민해보고 말해줄게"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전 이미 답을 찾았습니다."
"그래? 죠안이 생각하는 답은 뭔데?"
죠안은 교주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가만히 옷자락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죠안?"
마침내 반나신이 된 죠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내린 답은 '새 생명'입니다."
"뭐...? 죠안, 정신차려. 눈이 맛이 가있잖아."
교주는 죠안의 얼굴을 붙잡고 단호하게 경고했으나 빛을 잃은 죠안의 눈은 더욱 어둡고 붉게 물들어갈 뿐이었다
"세계수의 손을 거치지 않은 교주님의 첫 창조물...... 그것은 교단을 위해, 이 엘리아스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당신께서 품으신 지고한 뜻을 담는 그릇, 그것이 제 삶의 이유였던 겁니다......"
죠안의 손은 어느새 교주의 허리춤에 있었다
"죠안!!!! 아니 힘이 뭐 이리 세!!!"
"교주님, 지금은 절 원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허나 이 죠안... 교주님께서 진실을 깨달으시고 절 다시바라봐주실 그 날을 위해서라면 영겁의 고통까지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움직임을 멈추고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교주님?"
"......네르?"
반나신이 된 죠안, 허리띠를 끌른 교주, 네르의 눈에 들어온 정보는 이것이 다였다.
네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허나 그 눈은 죠안이 에르핀에게 손찌검을 했을 때보다 더욱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떨어진 후였다
"이거 놔! 죠안!! 네르, 오해야 아무 일도 아니라고......"
"죠안 자매님, 교단 참회실로 오시죠. 교주님께 그런 무례를 범한 것은 규율에 따라 처벌받을 사항입니다. 그리고 교주님께선...... 교단 업무 속행해주시길 바랍니다."
내용은 별 것이 없으나 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교주는 네르의 믿음이 자신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네르!!"
교주의 부름에도 네르는 아무런 답도 없이 방문을 닫고 떠났고 죠안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깨달은 듯 사색이 된 얼굴로 주저앉았다
# # #
새벽 어스름이 깃들고 천랑성마저 새로운 해의 기척에 모습을 감출 무렵, 교주는 여전히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중이었다.
부스럭.....
교주의 이불을 비집고 들어온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교주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교주님......"
"으응...? 네르??"
네르는 교주의 등에 얼굴을 폭 파묻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죠안 자매님께 다 들었어요... 제가 오해했나봐요... 무슨 상황인지는 몰랐지만 왠지 너무 슬프고 화가나서......"
"아냐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선 오해할 수 밖에 없었을거야"
네르는 아무 말없이 훌쩍이다 귀 끝까지 빨개진 얼굴을 감추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교주님...... 죠안 자매님이 말씀하신 그거... 저로는 안되나요......"
오늘도 재미없는 글 읽어줘서 고마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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