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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2차 연성)

문예창희(110.15) 2017.09.15 18:25:06
조회 1896 추천 29 댓글 14
														


교도소. 지금 그 단어를 마주할 때, 병갑의 머릿속에는 고아원의 이미지가 떠올라 온다. 그 4인실 같던 8인실. 사다리가 부실한 이층침대. 군데군데 까진 벽지와 장판들. 겨울이면 얼어붙게 춥고, 여름이면 습기가 심했던.


인천 변두리 동네의 ‘이삭과 야곱’ 고아원. 어디 가톨릭 단체가 운영하려고 지었으나 시작도 전에 손을 떼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푼돈씩을 받아다 굴러가는 것으로 되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원장도 바뀌고, 이제 그곳에 가톨릭 신자라고는 봉고차 운전과 경비와 청소 일을 겸하는 기사 아저씨 하나뿐이었는데, 그래도 그곳은 여전히 성인(聖人)의 이름을 썼다. 그 편이 후원을 받기 수월하다나. 고아원의 아이들이 입양을 가면, 기사 아저씨는 가슴에 성호를 긋고는, 하나님의 축복이 아이들을 비춘다고 했다. 그렇다면 병갑은 그 뒤에 남겨진 그림자였다.


병갑이 고아원에 입소한 것은 열 살 가을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병갑은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는 걸 보니 교통사고 따위는 아닐테고, 살해당한 것이겠구나 짐작할 뿐이었다. 보호자가 될 만한 혈육으로 삼촌이 하나 있었는데, 스물을 갓 넘긴 나이의 삼촌은 병갑을 맡아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 지나지 않아 고아원의 봉고차가 병갑을 데리러 왔다.


순탄하지 않았다. 1980년대, 그때는 아동학대에 대한 법도 인식도 지금 같지 않아 엉망이었다. 아이란 그저 통제의 대상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길러지는 게 아니라 자라났다. 야생에서 풀들은 온실보다 빡빡하게 자랐다. 모두가 햇볕을 좀 더 받으려고 치열했고, 유약한 병갑의 자리는 그늘 한구석이었다. 한창 푸릇할 나이에 병갑은 시들시들 어깨가 굽었다.


꼭 2년이 지난 열두 살 가을이었다. 어느 떠벌리기 좋아하는 녀석이 식당에다 대고 외쳤다.


"야, 싸움 났대! 뒤뜰, 뒤뜰!"


아이들은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뒤뜰로 뛰어나갔다. 병갑은 허둥지둥 한 숟가락을 더 떠서 입에 쑤셔넣고 뒤늦게 나와보았다.


고아원 안에서 주먹다짐이 있다면 언제나 이 뒤뜰이었다. 몰린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병갑은 까치발을 들어서 겨우 싸움을 구경했다. 서로 멱살을 쥐고 짧은 팔로 주먹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번에 중학교에 올라간 두 남자애들이었다.


싸움은 기대만큼 화려하지도, 시원스럽지도 못했다. 애들 싸움이라는 게 늘 그렇다. 씨름 하듯이 찰싹 달라붙어서는 서로 붙잡고 씩씩거리는 게 고작이다. 몇 대를 주거니 받거니 때리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 그냥 진흙탕 싸움이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러다 둘 중 키가 작은 쪽이 상대의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윽! 맞은 쪽이 신음하는 사이, 키 작은 아이가 다시 주먹을 들고 사정 없이 얼굴을 갈겼다.


관객은 숨죽이고 있었으나 공기가 뜨끈했다. 승패가 갈렸다. 키 작은 아이가 일어서서 숨을 몰아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싸움을 지켜보던 우두머리 앞으로 다가가 당당히 섰다. 우두머리의 이름은 양두철, 이삭고아원의 아이들이 두려워 마지않는 인물이었다. 열여섯인가, 열일곱인가 하는 나이에 학교를 다니지 않고 동네 건달들과 어울리는 형이었다. 고아원 애들은 두철이 형이라면 쫄아서 목부터 움츠리고 봤다. 양두철은 씩 웃으면서 승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 둘은 함께 담배를 꼬나물고 조용한 곳으로 사라졌다.


"그 형 맨날 싸움 잘하는 척하더니 맞기만 하더라. 그치?"


아이들이 싸움 이야기로 난리를 피우며 식당으로 돌아갔다. 싸움의 패배자인 김수원이라는 아이는 대화 속에서 은근히 업신여겨졌다. 싸움은 졌어도 성깔 드센 건 어디 가서 지지 않을 형인데. 병갑은 제 방으로 올라왔다.


골목으로 봉고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병갑은 창문 앞에 매달려 고아원 울타리 밖을 내다보았다. 탈탈거리는 모터 소리를 내며 정차된 봉고차의 옆문에 ‘이삭과 야곱’이라고 써 붙여져 있었다.


차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병갑 또래의 남자애가 하나 내렸다. 고아원의 선생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선생은 가방 하나로 꾸린 단출한 짐을 받아들고,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병갑은 곧바로 1층으로 뛰어 내려갔지만, 사감실로 들어가는 아이의 뒤통수밖엔 볼 수 없었다.


아이가 사감실 안에서 수속을 밟는 동안, 고아원에는 벌써 입소문이 다 났다. 오늘 새로 한 명 들어온대. 남자? 여자? 남자, 국민학생이래. 아이들은 관심을 갖고 쑥덕댔으나,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다. 고아원에 누군가가 새로 들어온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축하할 일은 아니었다.


원장이 아이들을 식당으로 소집했다. 원장 옆에 새로 온 아이가 멀뚱히 서 있었다.


"오늘 우리 집에 새식구가 왔습니다. 친구 이름은 한재호, 열두 살이에요. 재호야, 인사할까?"

"......"


재호라고 소개된 아이는 말없이 형형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죽 둘러보기만 했다. 별날 건 없다. 고아원에 들어온 첫날이면 누구나 저렇다. 시킨다고 넙죽 인사를 하는 게 오히려 희한한 일이다. 원장도 대충 박수를 치게 하고 자리를 마무리했다.


재호에게는 병갑과 같은 방이 배정됐다. 좁은 방이 더욱 비좁아지게 됐지만 병갑은 조금 신나 있었다. 재호가 첫눈에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병갑과 같은 열두 살이라는데, 보통의 열두 살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컸다. 그리고 머리카락. 주변 애들은 다들 하나 같이 까까머리인데, 재호는 달랐다. 그것보단 좀 길었다. 그게 멋있었다.


재호가 짐 풀기를 마치자마자 같은 방 아이들이 재호의 침대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방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그래봤자 열세 살이었지만) 조숙하게 구는 여자애가 재호에게 악수를 청했다.


"난 진희야, 이진희."


재호는 내밀어진 손과 진희의 얼굴을 한 번씩 빤히 쳐다보고는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희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악수할 줄 모르는구나? 그래서, 넌 어떻게 여기 오게 됐니?"

"......"

"괜찮아, 다 털어놔도 돼. 우린 모두 그 얘기를 하면서 친해지거든. 마음 속 깊은 비밀 얘기."


진희는 짐짓 자애로운 말투를 썼다.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재호를 다 보듬어줄 듯이. 마음의 문을 열도록 도와주겠다는 듯이. 그러나 진희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자기가 내킬 때뿐이었다. 진희는 남을 달래주는 데서 자신의 어른스러움을 발견하고 뿌듯해하곤 했다.


"여기 오기 전엔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니?"

"응."

"돌아가셨어?"

"그렇지."

"어쩐 일로?"


아이들이 목을 앞으로 빼고 눈을 빛냈다. 새로 온 아이의 얘기를 들을 때, 가장 기대하는 대목이 있다면 여기였다. 피차 고아원에 있는 처지이니 다들 부모가 없는 건 매한가지인데, 생이별했느냐 아니면 돌아가셨느냐, 돌아가셨으면 왜 돌아가셨느냐 하는 것이었다. 제일 시시한 건 병사, 으뜸으로 치는 건 살인이나 자살이었다. 오락이라고는 그처럼 자극적인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뒤뜰에서 난 싸움구경 정도가 전부였을 때였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식중독. 밥 잘못 먹고 죽었어."

"저런! 그랬구나. 근데 너는 괜찮았어? 밥을 같이 먹는데."

"응. 나는 괜찮았지."


재호의 대답은 줄곧 짧고 단순했다. 진희만 바쁘게 조잘대는 분위기였다. 딱 물어보는 만큼만 대답하고 말을 줄였다. 거듭하여 말을 붙이기가 무안해질 정도였다. 게다가 식중독이라니, 그런 죽음에 더 캐낼 만한 얘깃거리가 숨어 있을 리 만무했다. 흥미가 빠진 진희는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겠다.”하는 건성 맞장구를 끝으로 물러섰다.


재호의 이야기가 벌써 끝나버려 아이들은 실망했다. 그러나 새 친구 앞이니 낙담한 기색은 숨기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떠들기 시작했다.


"나도 형이랑 비슷해. 나랑 엄마 아빠가 다 같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배가 뒤집어졌거든. 나만 살았지. 그때 엄마 아빠가 날 살리려고......"


병갑은 다섯 번도 넘게 들은 얘기였다. 반쯤 흘려들으며 흘끗 재호를 본다. 재호는 가만가만한 시선으로, 제 앞에 앉은 아이들을 관찰하고 있다. 누가 나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인가, 누가 이득이 되는가, 혹은 무해무익한가. 재호의 머릿속에서 병갑은 어떤 쪽으로 분류되었을까. 병갑은 못내 궁금해졌다.


일순, 눈이 마주쳤다. 병갑은 깜짝 놀라 홱 눈을 피했다. 그래놓고 금방 속으로 자책한다. 아 병신, 병신, 눈은 왜 피해, 찐따 같이! 그러고서 다시 조심스럽게 재호 쪽을 쳐다보면 재호는 이제 이쪽을 보고 있지 않다.


"그만하고 자라! 열 시가 넘었다."


선생이 방문을 벌컥 열고 호통쳤다. 아이들이 호다닥 자기 침대로 들어갔다. 병갑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선생이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방 안이 금세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잠시 뒤에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병갑은 이불을 걷어냈다. 재호가 윗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달빛이 그 모습을 희미하게 비췄다. 벗은 등이 불그죽죽했다. 생채기가 한가득이었다. 어떤 것은 오래전에 아물어 거무튀튀한 자국만 남았고, 어떤 것은 피딱지가 싱싱했다. 꾸준하게 맞은 흔적이다. 누구한테 맞았을까. 부모일까. 모르겠다. 아이마다 사연은 천차만별이다.


재호가 옷을 다 갈아입고 이쪽을 향해 돌아섰다. 병갑은 얼른 자는 척 눈을 꾹 감았다.




얼마간 병갑은 재호의 낯짝 한번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이삭고아원의 아이들은 모두 가까운 미림국민학교에 다녔는데, 재호는 그렇지 않았다. 어디 학교를 다닐까, 먼 곳이라면 이제 전학을 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으나 전학생은 없었다. 재호는 병갑이 일어나기도 전에 일찌감치 등교를 하고, 밤 늦게야 들어왔다.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더니 웬일로 재호가 있었다. 내내 그렇게 재호를 마주치고 싶어했으면서, 막상 병갑은 말도 못 붙이고 제 침대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런데 재호가 불쑥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여기 저녁밥 언제 주냐?"


저녁 배식까지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알려주었더니, 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 한편의 책꽂이에서 아무 책이나 뽑아들어 침대로 가져왔다. 책 읽는 게 꽤 안 어울리는 얼굴이라고 생각됐다. 아니나 다를까 십 분을 못 가 책을 내던지고 잠들어버렸다. 눈썹과 속눈썹과 코와 인중. 저렇게 생겼구나. 되게 빨리도 잠이 드네.


곤히 잠든 재호는 좀처럼 깨질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방에 들어와 재잘재잘대도 깰 기미가 없었다. 언제 깨려나 지켜보다가 저녁밥 배식 시간이 거의 끝나 갔다.


"야."


병갑이 건드리자, 재호는 튀어나갈 듯이 몸을 일으켰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병갑을 쳐다본다.


"한재호. 맞지?"


괜히 헷갈리는 척해 보았다.


"저녁 먹어. 지금 안 가면 밥 못 받아."


재호는 순순히 병갑을 따라나섰다. 식당에는 저학년생들이 배식 줄을 서 있었다. 재호가 아무렇지 않게 줄을 앞질러 식판을 집어들었다. 병갑은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따라붙었다. 줄에 선 아이들이 두 사람을 나쁘게 보는 것이 느껴졌다. 식판에 순서대로 밥, 생선, 김치, 건더기가 든 건지 만 건지 모를 국을 받는 동안, 뒤통수가 따끔거리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재호는 밥을 엄청나게 많이 펐다.


"너 잘 먹는다."

"맛있는데?"


그럴 리가. 고아원 밥은 학교 급식보다 부실했다. 식재료의 좋지 못한 상태를 가리기 위해 소금 간을 잔뜩 친 반찬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은 매일 맛없다고 욕하면서도 어쩐지 배가 더부룩하도록 먹어대고 식판을 싹 비웠다. 재호는 그냥 맛있다고 했다. 미각이 어떻게 돼먹은 건가. 병갑이 제 몫의 생선조림을 재호의 식판에 덜어줬을 때였다. 별안간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야, 니 거 먹어~ 친구 걸 뺏어 먹냐?"


지나가다 말고 시비를 튼 그는 김수원이었다. 어제 뒤뜰에서 난 싸움의 패배자. 얻어터진 한쪽 눈이 기묘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수원이 재호의 어깨에 툭 손을 짚었고, 재호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새끼, 눈깔 뜨는 거 봐라? 깔아, 새끼야."


수원이 젓가락 한 짝을 손에 들고 재호의 눈을 찌를 듯이 위협했다. 옆에 있던 병갑만 겁을 집어먹고, 재호는 눈을 부릅뜨고 수원을 쳐다보았다. 당연히 진짜 찌를 리 없겠지만, 그래도 깡이 대단했다.


"무서운 형들이 너 지켜보고 있거든? 잘해라."


수원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던졌다. 젓가락은 재호의 국그릇에 떨어졌고 국이 재호의 옷에 튀었다. "아, 좀 피하지." 수원이 낄낄거리고는 몸을 틀었다. 그대로 자리를 뜨려는 순간, 재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수원의 등에다 자기 식판을 통째로 집어던졌다. 퍽! 수원의 등에 맞고 바닥에 나동그라진 식판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촤아악, 국이 뿌려지는 소리도 났다. 수원의 옷이 김칫국물과 뭇국과 밥풀떼기로 엉망진창 더럽혀졌다.


"아, 좀 피하지."


재호가 말했다. 병갑은 웃음이 풋 터지려던 것을 큼큼 헛기침으로 무마했다. 수원은 제 옷에 묻은 밥풀을 좀 털어내다가, 재호를 때리려 확 달려들었다. 옆에서 수원의 친구가 끼어들어 말렸다. "여기서 말고 뒤뜰에서." 친구가 그렇게 달래자 겨우 진정한 수원이 재호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일렀다.


"뒤뜰로 나와."


한재호는 입안에 든 밥을 씹어 삼켰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김수원을 따라 나갔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들이 나가자 식당은 싹 조용해졌다가, 전보다 더 시끄럽게 웅성거렸다. 몇몇이 와글와글 싸움 구경을 하러 뒤따르기 시작했다.


중학생하고 싸움이라니! 병갑은 겁에 질렸다. 누군가 말려야 했다. 그러나 이런 좋은 구경거리를 누가 말리려고 할 것이며, 또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식당에는 병갑을 도와줄 이가 없었다. 병갑은 어쩔 줄 몰라서 사감실로 달려갔다.


"선생님! 재호가 불려갔어요. 형들한테요! 맞을 거예요! 뒤뜰이요, 빨리요!"

"뒤뜰이라니, 또?"


선생들은 시큰둥했다. 흥분해 방방 뛰는 병갑을 붙잡고, 괜찮다고 토닥여주었다. 도대체 뭐가 괜찮은 건지 몰랐다.


"병갑아, 재호가 새로 왔으니 형들이 군기 좀 잡으려나보다. 네가 가서 보다가, 혹시 재호가 못 일어설 정도로 아프면 그때 와서 알려줘."


워낙 싸움이 잦은 고아원이었다. 선생들은 웬만큼 심각한 부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신경도 안 썼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고, 그러면서 사회성도 배우는 거라고 했다. 싸우는 걸로 사회성을 배울 수 있었으면 두철이 형은 사회학 교수라도 되어야 했다. 병갑은 거의 문전박대로 쫓겨났다. 선생 방의 문이 쾅 닫혔다.


원장과 두 명의 선생은 애들 돌보는 것에 취미가 없었다. 고아원은 아이들에게나 집이었고 선생들에겐 일자리였다. 그들은 고아원에 들어오는 돈을 지원금과 후원금과 기부금으로 구분하여 장부에 기록했는데, 그 세세한 분류 기준이 무엇인지를 하도 떠들어대는 바람에 병갑은 다 자라서도 그것을 기억했다.


어른들이 돌봐주지 않는 아이들의 세상은, 얼핏 무질서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주 강력한 서열체계가 발생하여 질서를 수호한다. 서열의 꼭대기는 원장, 다음은 선생들, 그 다음은 양두철과 그 패거리였다. 양두철을 필두로 얼굴이 험악하고 담배를 피우는 중학생들이 몰려 다녔는데, 김수원도 그중 한 명이었다.


뒤뜰까지 냅다 뛰어 왔다. 구경꾼이 몰려 붐볐다. 한구석에 두철이 형이 앉아 있었다. 병갑은 초조하게 까치발을 들어 싸움판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뜻밖에 재호가 이기는 중이었다. 벌써 바닥에 나가 떨어져 있을까봐 걱정이었는데. 키가 훌쩍 큰 수원을 바닥에 나자빠뜨리고, 그 위에 올라앉아서 얼굴을 패고 있었다.


"이 새끼 때리는 방법을 모르잖아. 맞아보기는 했냐?"


재호가 주먹이 매운지, 아픈 곳을 잘 찾아 때리는지, 수원은 맥을 못췄다. 맞아보기는 했느냐니. 병갑은 재호의 너덜너덜한 등짝을 떠올렸다.


수원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패거리들이 우르르 판에 끼어들었다. 재호가 금세 무너져 땅바닥에 깔렸다. 이리저리 까이며 나뒹군다. “악!” 비명이 샌다. 병갑은 두 손을 꼭 주먹으로 쥐었다. 다구리라니, 비겁하다.


잠시 뒤 발길질이 거두어지고 재호는 흙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그리고 볼품없게 다 터진 입으로 소리를 질렀다.


"씨빨, 마사지 잘 받았다!"


미친 놈이 분명했다. 구석에서 양두철이 일어났다. 양두철은 재밌어하는 얼굴로 재호를 가리키며 제 친구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패거리들이 자리를 떴고, 구경꾼들도 흩어졌다. 병갑은 재호가 혼자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으나 재호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병갑은 어물어물 다른 구경꾼들 틈에 섞여 집안으로 들어왔다.


밖으로 나돌 줄 알았던 재호가 금방 방으로 돌아왔다. 흐르는 물에 흙먼지를 씻어내고, 사감실에서 연고까지 받아가지고 왔다. 상처는 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덧이 나서 일이 커진다는 것을 재호는 알고 있었다.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찢어진 상처에다 연고를 발랐다. 병갑이 재호의 손이 닿지 않는 등판에 연고 바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재호는 고맙다고 하는 대신 짜증을 부렸다.


"아야! 야이씨, 아퍼!"

"아, 아프지 그럼! 그렇게 처맞았는데!"


병갑이 '처맞았다'고 표현하자 재호가 째려보았다. 병갑은 입을 다물었다. 연고를 다 바르고 뚜껑을 닫았다. 그때서야 재호가 물었다.


"근데 너 이름이 뭐냐?"


빨리도 물어본다고 생각한다. "고병갑." 대답해주자 재호가 잠깐 뭘 떠올리는 것 같더니 이렇게 지껄였다.


"병갑? 갑을병정 뭐 그거냐?"


이름을 갖고 하는 놀림은 국민학생 수준에도 유치했다. 그리고 병갑은 유치한 놀림에 잘 발끈하는 편이었다. 내가 갑을병정이면, 자기는 뭐!


"그럼 너는 뭐! 뭐..."


반격을 하려는데, 딱히 놀릴 말이 생각이 안 나서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나는 뭐? 뭐?" 재호가 앞에서 까불거린다. 짜증이 난다. 한재호, 예쁜 이름이다.




동네의 뒷산 기슭쯤에는 움막을 짓고 사는 노인네가 있었는데, 마당에 닭을 쳤다. 재호는 며칠 전부터 그 달걀을 훔쳐다 먹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내 계획을 실행하기로 작정한 날, 됐다는데도 병갑이 놈이 기어코 따라왔다. 산자락을 약간 기어올라, 나무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나아갔다. 닭 울음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곧 움막이 나타났다. 자투리 철판과 흙과 나무와 하우스용 검은 비닐까지 되는 대로 주워다 기워서 만든 집이었다. 집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지체할 것 없이 닭장을 덮쳤다. 낯선 인간들의 침략에 닭들이 뛰어다니며 꽥꽥댔다. 산닭이라 그런지 몹시 사나웠다. 병갑은 거의 주저앉아 떨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재호가 혼자서 둥지를 살피니 태반이 상하거나 깨지고, 성한 달걀이 몇 없었다. 겨우 한 개를 골라 집어든 순간, 닭 소리에 나와본 집주인이 호령을 했다.


달걀 한 알을 쥐고 산을 뛰어내려왔다. 방에 돌아왔을 땐 땀이 뻘뻘 나고 뱃속이 헛헛해졌다. 달걀을 꺼내놓고 이걸 어떻게 먹을까 상의를 했다. 삶아 먹나, 부쳐 먹나, 라면에 띄워 먹나.


"나라면 삶아 먹을 거야. 그게 영양에 제일 좋거든."


진희가 끼어들었다. 진희는 지식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너희들, 맞혀봐. 닭이 먼저게, 달걀이 먼저게?"


이상한 문제였다. 병갑이 대답했다.


"닭이 먼저 아니야?"

"왜?"

"닭이 더 어른이잖아. 엄마 닭이 애기 알을 낳잖아."

"아니지."


옆에서 듣던 재호가 반박했다.


"달걀이 먼저지. 달걀이 없으면 닭이 태어났겠어?"

"닭이 없으면 달걀도 없는 건 마찬가지야."

"세상의 맨 처음 닭을 생각해봐. 걔는 뭐 원래 비둘기였다가 갑자기 닭이 됐겠어? 걔는 태어날 때부터 닭이야. 태어난 곳은 달걀이고. 그러니 달걀이 먼저야."


재호가 설명했다. 병갑은 이해가 갈락 말락 한 채로 "그런가?"하고 갸우뚱거렸다. 두 명의 대답을 끝까지 들은 진희는 이렇게 발표했다.


"정답은 '모른다'야!"


그러고는 새침하게 뒤돌아 가버렸다.


재호와 병갑은 달걀의 취식법이라는 본제로 돌아와, 부엌 불을 몰래 쓰기가 쉽지 않으니 그냥 날계란으로 먹자고 합의를 보았다. 침대 기둥에 부딪쳐 껍데기를 깼다. 깨진 부분을 까보니, 안에서 되다 만 병아리의 살덩이가 나왔다. 병갑은 뒷걸음질 치고, 비명을 지르며 온 고아원을 달렸다.


저녁때가 되었다. 식당이 떠나가라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재호였다. 맞은편에는 병갑이 끅끅 울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반찬으로 하필이면 닭고기가 나와서였다. 비위가 약한 병갑에게는 고통이었으리라. 울음이 터질 정도로.


"먹질 말든가."

"배고픈데 어떡해."


고기반찬이 나오면 다른 반찬이나 국은 눈에 띄게 허술해졌다. 식판에 먹을 만한 건 닭고기뿐이었고, 이걸 안 먹으면 내일 아침까지 쫄쫄 굶어야 하니 어쩔 수 없긴 했다.


"울질 말든가."

"......"


병갑이 손에 든 젓가락을 쥐어짰다. 얼굴이 눈물로 꼬질꼬질했다. 그 꼴을 보고 재호는 다시 깔깔대기 시작했다. 고병갑은 웃긴 놈이다. 언제나 시키지도 않은 일을 도살장 끌려가듯이 억지로 한다. 토할 것 같단 얼굴로 닭고기를 먹거나, 미안해 죽겠단 얼굴로 새치기를 하거나.


아까 밥을 먹으러 내려왔을 때 일이었다. 재호가 먼저 온 아이들을 마구 앞지르는데, 병갑은 안절부절못했다. 맨 뒤에서 망설이다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한달음에 달려와 재호 뒤에 섰다. 그리고 밥을 받는 내내 뒷사람의 눈치를 심하게 봤다. 재호는 새치기하라고 시킨 적 없다. 뭐 별일이라고 저 혼자 유난이었다.


착해서 그런가? 아니, 나쁜 아이가 되기 무서운 겁보여서다. 그게 그건가? 어쨌건 간에 병갑은 겁이 많았다. 방에 벌레만 기어가도 펄쩍 뛰었고, 어둑해지면 혼자 화장실을 못 가서 참다가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에 뛰쳐나가고는 했다. 언제부턴가는 재호에게 화장실 문 밖을 지키고 서 있어달라고 졸랐다. 싫다고 내치면 귀 따갑게 징징거렸다. 귀찮아서 일단 따라가 주었다가 틈을 타서 먼저 돌아와 버리면 잔뜩 삐친 티를 냈다. 그러나 내버려두어도 곧 알아서 풀리기 때문에 무시해도 됐다.


"안 먹어? 이 맛난 걸."


재호가 병갑의 고기를 쏙 뺏어먹었다. 병갑이 반격으로 재호의 고기를 노렸으나 재호는 식판을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그 탓에 병갑은 한층 심통이 났다.


저녁 식사 후에 재호가 홀연히 사라졌다. 종종 그랬다. 다들 거리로 놀러 나가고 방이 썰렁해서 병갑도 밖으로 나왔다. 골목길에 딱지치기 판이 크게 벌어져 있었다. 같은 학교 친구들이었다.


"병갑이 너도 끼어."


병갑은 공들여 접은 딱지를 엊그제 빼앗긴 참이라 가진 게 없었다. 구경만 해도 재미는 좋았다.


어디서 무거운 담배 냄새가 실려 왔다. 바람 부는 쪽을 돌아보니, 그늘진 뒷골목에 재호가 있었다. 두철이 형네와 함께였다.


저번 김수원과의 싸움 이후로 재호는 두철이 형 패거리들에게 불려 나가는 일이 잦았다. 맞으러 가는 것은 아니고,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자기들 놀이에 끼워주는 모양이었다. 어린애 하나가 같이 있으면 주변의 경계심이 풀어져서, 밥값이나 당구 값을 떼어먹고 튈 때 용이하다나. 무전취식을 하는 요령 말고도 재호는 형들에게 주먹질도 배우고, 주먹질로 돈 버는 여러 가지 방법도 배웠다. 그쯤이면 두철이 형도 정말 교수님으로 손색이 없었다.


재호와 눈이 마주쳤다. 본디, 연기 자욱한 뒷골목의 사람과 마주치면 재빨리 눈을 까는 게 맞았다. 그래서 병갑은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재호가 형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고병갑, 왜 모르는 척해. 삐졌어?"


재호가 병갑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병갑은 아니라고 손을 밀어냈다. 두 사람이 스스럼없이 대화하니, 병갑의 학교 친구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들어가자."


재호가 먼저 고아원을 향했다. 뒤에서 친구가 병갑을 붙잡고 물었다.


"너, 한재호랑 친해?"


이놈은 고아원 사람도 아닌데 재호를 어찌 알까. 물어보니 재호는 옆동네 세안국민학교에서 주먹으로 알아준다고 했다. 맨날 놀림이나 받고 다니던 코찔찔이 병갑이가 한재호와 친하다고 하니, 친구들이 놀라 자빠졌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기분이 은근히 좋아졌다.




진희는 갓난아기 때부터 이삭고아원에 살았다. 진희라는 이름도 원장이 지어준 것이었다. 부모가 누군지, 부모가 붙여준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부모가 이름을 붙여주긴 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종종 그 미지의 존재들에 대해 상상에 빠지곤 했다. 정확히는 망상이었다.


"내 아버지도 사실은 엄청난 부자일지도 몰라."


진희는 <소공녀>를 읽고 있었다.


"어떤 피치 못할 사연이 있어서 나를 키울 수가 없었고, 그래서 고아원에 날 맡겼고...... 하지만 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찾고 싶어 할지도 몰라."


재호는 방바닥에 드러누워 진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만화책을 들여다보았다. 진희는 청중이 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 그가 진실로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는지는 별로 상관없어했다.


"아버지는 분명히 자상한 사람일 거야. 어머니도. 그리고 머리가 아주 좋은 미남미녀일 것만 같아."

"부모가 미남미녀면 자식 얼굴이 왜 그 모양이겠어."


재호가 한소리 했다. 진희가 가자미눈으로 째려봤다. 그래도 재호는 진희가 싫지 않았다. 불쌍한가? 친부모의 얼굴조차 몰라서? 아니면 부러운가? 제 상상 속에서나마 행복해서? 불쌍한 동시에 부러울 수가 있을까. 그런데 진희나 병갑을 보면 그랬다.


진희가 와서 재호의 만화책을 낚아챘다. 그런 것만 보지 말고 이런 걸 좀 읽으라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내민다. 재호는 군말 않고 받은 책을 펼쳤다. 초장부터 졸 뻔했다. 어딘가에서 필독서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필독서란 건 대개 꼭 읽으라고 지정해놓지 않으면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을 말했다. 재호가 방금까지 읽던 만화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누가 꼭 읽으라고 하지 않아도 온 동네 국민학생들이 빌려보려고 줄을 섰다. 진희도 만화를 뺏어들어 무심코 첫 장을 넘기더니 어느새 푹 빠져 있었다. 재호는 <라임 오렌지>의 책장을 아무렇게나 휙휙 넘겼다.


누군가 소년을 두고 말했다. 그 애 피 속에 악마가 있는 게 분명해. 다음 장면에서는 소년이 아버지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 알 만한 이야기였다. 뱃속이 꼬이는 것 같았다. 책을 덮어 진희에게 돌려주고 밖으로 나왔다.


골목에서 학교 친구들과 만났다. 재미있는 일이라곤 있을 리가 만무한 동네에서 그래도 뭔가를 찾아 어슬렁거렸다. 어디서 고병갑이 재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병갑이 물었다.


"재호야, 너 내일 우리 학교 와?"


하루종일 소문이 자자했다. 세안국민학교 한재호가 병갑네 미림국민학교의 누구와 붙으러 온다고. 한 학년 상급생에다, 김수원의 친한 동생이라고 했다. 먼저 와서 재호에게 시비를 붙였다는 모양이었다.


"어쩌게? 재호야, 선생님한테 이르자."


그 상급생은 살집도 있고 힘이 세다던데, 게다가 지난 싸움 때는 콤파스를 갖고 와 연장처럼 휘둘렀다던데. 병갑은 걱정이 되었는데, 차마 싸우러 나오지 말라고는 할 수 없었다. 들어먹을 재호가 아니었다.


"응? 선생님한테 이르자. 우리학교 교련 선생님한테 말하면 혼내러 와주실 거야."


병갑은 왠지 간곡해졌다. 매달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가, 옆에 있던 재호의 친구들에게 욕을 한바가지나 얻어먹었다. 재호 친구들은 하나 같이 입이 사나웠다. 짧은 순간에 병갑의 얼굴을 온갖 동물의 생식기에 비유했다. 병갑이 애타게 재호를 보았으나, 재호도 징징대지 말라며 짜증을 내고는 가버렸다.


다음날 싸움에서 재호는 병갑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일방적이었다. 재호가 상급생의 턱주가리를 마음껏 갈기는 동안, 재호 친구 중의 하나가 병갑에게 몰래 다가왔다. 운동장 한구석, 구경꾼들이 "와!"하고 환호성을 보내는 와중, 그가 병갑의 귀에다 낮게 으름장을 놓았다.


"주제넘지 마라. 재호가 네 친구인 것 같냐. 너는 꼬붕이야. 시다바리, 병신아."


스스로 시다바리니, 꼬붕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맹세코 없었다. 그러나 기다, 아니다 대꾸할 말도 없었다. 도대체 친구 사이라는 게 뭔지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재호는 관중의 원 가운데서 신나게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재호를 바라보고 선 병갑은 원주를 그리는 점들 가운데 하나였다.


돌연 관중이 비명을 질렀다. 상급생이 콤파스를 꺼내 위협적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재호는 즉시 바닥에 있던 짱돌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곧장 상급생의 얼굴을 내리 찍었다. 돌에 피가 묻어났다. 상급생이 뒤로 나자빠졌다. 재호가 피 묻은 돌을 들고, 누구라도 끼어들면 또 찍어버리겠다는 듯이 씩 웃었다. 아무도 발을 떼지 못했다. 누군가가 "선생님!"을 외치며 멀리 달려갔다. 재호는 혀를 찼다.


"자, 다 보세요."


재호가 상급생의 머리채를 잡고 뭉개진 얼굴이 잘 보이도록 들이밀었다. 그 얼굴이 하도 난장판이어서 병갑은 차마 똑바로 쳐다보질 못했다. 관중이 뒤로 슬슬 물러났다.


"김수원이 그 새끼, 두철이 형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거 알지? 두철이 형이 김수원 저번 싸움에 진 일로 크게 실망을 했어요. 근데 이 새낀 줄을 서도 하필 김수원한테. 너네 완전 다 썩어빠진 동아줄 잡은 거야~"


재호는 흐트러진 숨을 쉬면서도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급생의 패거리가 당황한 얼굴들을 했다.


"그니까 가만히 있는 나랑 내 주변 굳이 건들지 마요? 이 꼴 나고 싶지 않으면?"


관중이 달아나듯 슬금슬금 흩어지고 있었다. 미림국민학교 아이들이 우르르 병갑에게로 와서는 저마다 충고를 했다.


"병갑이, 너 요새 저 애랑 어울린다며? 그만둬라. 너랑은 안 맞아."

"저 애 친구들은 다들 불량배들이지? 욕을 입에 달고 살던걸."


언제부터 병갑을 그리 잘 알았다고, 쟤랑 넌 맞네 안 맞네 판단들을 했다. 평소에 한 마디도 먼저 말을 걸지 않던 놈들이. 심지어 재호의 말투까지 걸고넘어졌다. 병갑이 빽 소리 질렀다.


"닥쳐, 개새끼야!"


모처럼 욕설을 했으나, 목소리가 삐끗해서 우습게 들리고 말았다. 병갑은 재호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재호는 자기 친구들과 뭉쳐 학교를 나서려는 중이었다. 그쪽으로 달려갔다. 가다가 넘어졌다. 급해서 발이 돌부리에 걸리는 줄도 몰랐다. 철퍼덕 엎어지자 재호가 와서 살폈다.


"괜찮냐?"

"아! 삔 거 같아."


병갑이 울상으로 어정쩡 일어났다. 왼쪽 다리를 접질렸는지,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었다. 병갑이 재호에게 손을 뻗었다.


"나 업어주면 안돼?"


재호가 병갑을 위아래로 훑었다.


"내가 널 어떻게 업어, 돼지야."

"그럼 가방만이라도 들어주라. 고아원까지. 응? 응?"


병갑이 떼를 썼다. 재호의 친구들이 이쪽을 지켜보며, 재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호는 유심히 병갑을 보다가, 깽깽이로 짚은 병갑의 오른쪽 다리에 발을 걸었다. 기우뚱, 균형을 잃은 병갑은 무심코 왼쪽 다리로 땅을 짚었다. 엄살이 들통났다. 삔 척을 한 것이었다. 재호가 그걸 가리키며 말했다.


"멀쩡하네."


그러고는 병갑을 두고 가버렸다.


병갑은 집에 가는 내내 울었다. 아까 재호가 발을 거는 바람에, 이번엔 오른쪽 다리가 진짜로 삔 것 같았다. 병갑의 몇 척 앞에는 재호가 가고 있었다. 지도 어차피 고아원으로 갈 거, 하루만 가방 좀 들어주지. 꼬붕이 아니라 친구로 보일 수 있게. 그게 그렇게 어렵나.


고아원 동기 사이는 집에 와도 같은 방을 쓰니, 숨을 곳이 없다는 점이 괴로웠다.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는 게 고작이었다. 둥글게 부푼 이불 속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가서 등이라도 토닥여줬으면 나았을 것을, 재호는 멀뚱멀뚱 내려다보기만 했다. 사실 재호는 위로를 아예 할 줄 몰랐다. 위로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방문이 벌컥 열리고 애들 두 명이 들어왔다. "병갑이 형, 뭐해?" 애들이 같이 놀자고 병갑의 이불을 들춰내려 했다. 재호가 막았다.


"애 자잖아. 둬."


애들은 자기들끼리 마당으로 놀러 나갔다. 병갑은 이불 속에서 콧물을 들이켰다.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재호가 신경써준 것 같았다.


그날부터 병갑은 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개새끼, 씨발, 지랄 염병할. 또박또박 발음을 하려고 했다. 입에 잘 붙지 않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 사람은 중학교에 들어갔다. 가까운 미림중학교였다. 재호는 제가 나온 국민학교와 가까운 세안중학교에 가고 싶어했는데, 거긴 고아원에서도 멀고, 양아치 학생이 많기로 소문나 있었다. 병갑이 미림중으로 가자고 졸랐다. 미림중 쪽이 이삭고아원 아이들도 더 많았고, 두철이 형의 세력이 뻗어 있어 재호의 신세도 나은 편이었다. 재호는 제 국민학교 친구인 남종우, 이운범 등 몇 명을 꾀어서 미림중으로 데려와, 입학과 동시에 전쟁의 신처럼 학교를 휩쓸고 다녔다.


재호는 자랄수록 양아치짓이 늘었다. 중학생이 담배도 피우고 술도 했다. 패싸움에 호출돼 나가는 일도 있었다. 병갑이 자기도 따라가겠다 나섰지만, 재호가 대동하지 않았다. 병갑은 그런 일에 적성이 없었다. 급식에 나온 생선 눈깔 하나도 무섭다고 못 쳐다보는 게, 패싸움에 따라오긴 어딜 따라온다는 것인가.


병갑은 욕설이 늘었다. 재호와 재호 주변의 친구들은 모두 욕을 썼다. 다들 아주 자연스럽고 시원스러운 발음으로 뱉을 줄 알았다. 병갑도 연습을 했다. 처음엔 어떻게 발음해도 어색한 것 같았는데, 점차 입에 달라붙어서 욕 없이는 한마디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에이 씨발, 태양 이 개놈의 새끼, 지구랑 좀 떨어져서 공전하면 덧난다냐 썅놈의 새끼."


덥다는 소리였다.


"야, 넌 말버릇이 그게 뭐냐. 험하다, 험해."


오죽하면 한재호한테 말버릇이 험하다는 소리를 들을 지경이었다. 씨발새끼 개새끼, 새끼를 많이도 찾았는데, 반대로 어미도 꽤 찾아댔다.


"느기미?"


병갑이 고아원에 사는 걸 아는 애들은 "애미도 없는 게."하고 받아쳤다. 그럴 때면 더욱 심한 욕을 퍼부어줬다. 가끔은 제 말투가 스스로 낯설어 깜짝 놀랐다. 그래도 연습한 거니까 좀 뿌듯했다.


"나 오늘 늦게 들어간다. 원장님한테 말 잘해줘."

"재호야, 나도 데려가라아아. 응? 눈치껏 있을게."


재호는 오늘 술자리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병갑은 며칠 전부터 이날의 술자리에 저도 데려가 달라고 조르는 중이었다. 재호가 딱 잘라 안 된다고 하면, 병갑은 금세 삐져서는 중고등학생들끼리 술자리는 지랄, 염병을 떤다고 그랬다. 그러다가 다음날이면 또 같이 가고 싶다고 성화였다.


"됐어, 와서 뭐 하게. 아는 사람도 없음서."

"너 있잖아. 응? 아, 부탁할게에에."

"아, 귀찮아. 가도 별 거 없어, 재미도 없고."

"재미 없어도 돼. 술 좀 마셔보려고 그러지. 너나 종우나 애들도 다 마시고 다니는데 난 이때까지 술 한 모금도 못 먹어본 게, 시발 찌질이 같잖아. 나만 혼자!"


병갑은 말하면서 조금 울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병갑이 얼마나 애절하게 말하든, 재호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결국 재호는 병갑을 떼어두고 종우와 둘이 술자리에 나갔다.


병갑 혼자 고아원으로 돌아가는 하교길이었다. 자주 보이는 동네 들개와 마주쳤다. 들개는 주둥이가 까맣고 몸이 얼룩덜룩한 잿빛이었다. 깨끗이 씻기면 하얀 털이려나, 혹시 몰랐다. 들개는 몸집은 컸지만 늘 배곯아 말라 있었다. 병갑은 간식으로 먹으려던 빵을 꺼냈다. 조금 떼어내어 개에게 주려고 했다. 쭈그려 앉아 개와 눈높이를 맞추고, 빵을 내밀어 개가 냄새를 맡아보도록 한다.


어디서 주먹만한 돌이 날아왔다. 퍽! 땅을 때려 흙먼지가 일었다. 개가 놀라 도망간다. 병갑이 뒤돌아보니, 돌을 던진 것은 재호의 친구인 이운범 일당이었다.


"에비! 개새끼, 가버려라, 훠이!"


개가 바쁘게 꽁무니를 빼는 걸 운범이네는 낄낄거리며 보고 있었다. 그들은 먼젓번에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이 들개가 요란하게 짖어대는 바람에 동네 어르신에게 들켜 혼꾸멍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개를 눈엣가시로 여겨, 마주칠 때마다 못살게 구는 듯했다. 병갑이 째려보자, 운범이 으르렁거렸다.


"야, 째려보냐?"

"개가 뭔 잘못을 했냐?"

"왜. 같은 똥개새끼들끼리 마음 가냐?"


얼마 없는 운범의 눈썹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운범은 당장이라도 저 버릇 없는 고병갑을 손봐주고 싶었지만, 녀석은 한재호의 고아원 친구였다. 운범은 땅바닥에 침만 탁 뱉고 돌아서 가버렸다.


병갑은 고아원 집으로 돌아왔다. 텅빈 재호의 침대를 보며, 지금쯤 종우와, 또 병갑이 알지 못하는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있을 모습을 생각했다. 입을 댓발 내밀고 뚱하니 누워 있다가 잠들었다.


깊은 밤이었다.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재호가 들어왔다. 발소리도 없이 걸어 들어온 재호가 병갑의 침대 앞에 서서, 어깨를 흔들어 깨운다. "야. 야, 일어나봐." 속닥거리기도 한다. 술 냄새가 훅 풍기는 가운데 병갑이 힘겹게 눈을 뜨자, 재호가 그 눈앞에 캔맥주 하나를 흔들어 보였다.


둘은 방바닥에 앉아 캔을 땄다. 거품이 좀 올라왔고 병갑은 얼른 몇 모금을 들이켰다. 병갑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쓰다. 기대한 것과는 다르다. 맛없어.


"크흐으. 맛있네!"


허세를 부린다. 쓰다고 하면 못나게 볼 것 같아서다. 그렇게나 마셔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 놓고 이제 와서 맛없다고 하기도 뻘쭘하고. 그런데 재호가 별나다는 듯이 쳐다본다.


"맛있냐? 난 쓰기만 하던데."


약간 김이 빠진 병갑이 좀 억울해져서 되묻는다.


"그럼 왜 마셔?"

"마시려는 게 아니라 얼굴 도장 찍으러 나가는 거지. 나가서 안 마시면 선배들이 지랄지랄을 해요."


그렇구나, 진심으로 술자리가 재미없는 거구나. 언제나 재호가 술자리 따위는 재미도 없다고 했는데, 병갑을 떼어놓기 위해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병갑은 아주 조금 재호의 고충이 느껴졌다. 그래서 재호에게 떼를 썼던 것이 아주 조금 미안해졌다.


병갑이 맥주를 맛있는 척 꿀꺽꿀꺽 마셨고, 재호가 옆에서 안주거리 삼아 오늘 술자리 해프닝들을 들려주었다. 평소 재호는 자기 이야기는 먼저 꺼내지 않기 때문에, 두런두런 얘기를 들려주는 건 병갑에겐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덕에 맥주 한 캔을 금방 비워버렸다. 재호는 좀 놀랐다. 솔직히 한두 모금 마시고 쓰다고 버릴 줄 알았는데.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거 한 캔 마시고 병갑이 취해버렸다.


"재호야, 나 술자리 안 데려가도 돼! 나 안 삐졌어! 나 술 안 마셔봐도 돼!"

"너 지금 마신 거야."


재호가 낄낄 웃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마시고 취해 놓고, 안 마셔봐도 된다고 헛소리였다. 그런데 병갑은 자기 혼자 뭐가 진지했다.


"내 말은! 나도 좀 같이 있자는 거야. 친구잖아. 같이 다니기가 그렇게 힘이 드냐?"

"..."

"재호야, 한재호."

"누우려면 침대에 누워."


병갑이 뜨뜻한 뺨을 방바닥에 갖다 댔다. 재호는 귀찮아하면서도 병갑을 끌어다 침대 위에 올려놨다. 눕기도 전부터 병갑은 눈을 못 뜨고 있다. 대충 눕히려고 했다가 마음을 고쳐, 자세도 편히 바꿔주고 이불도 덮어준다.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다 푹 덮어줘놓고, 한 발짝 물러서서 내려다본다. 이불 무늬가 유치하다. 어린애 같다.


아,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자면 딱 기분 좋을 것 같은데. 술은 아직 맛없어도 담배는 배우자마자 즐기게 됐다. 재호는 잠든 병갑을 두고 나와서 뒤뜰에서 담뱃불을 붙였다.


후우. 첫 연기를 내뿜은 순간, 옆으로 병갑이 다가왔다. 깜짝 놀라서 숨을 헛들이키는 바람에 기침이 났다. 코가 매웠다.


"콜록콜록. 뭐야, 안 잤어?"

"으흐흐."


병갑은 담배가 뚫리는 슈퍼가 어딨는지도 모르는 놈이었고 당연히 흡연도 안 했다. 그런데 재호가 한 대 피우러 나갈 때면 종종 귀신같이 알아채고 따라 나왔다. 그리고 옆에서 떠들다가 같이 들어가곤 했다. 그렇다고 술 취해서도 따라나오냐. 담배도 피워보겠다고 달라고 하려나. 그러나 병갑은 그런 말은 않고 그냥 서 있었다. 담배 냄새가 싫지도 않은지.


"너 그러다 간접흡연으로 뒤지는 수가 있어."


재호가 타박했다. 직접흡연하는 사람이 남한테 할 소리는 아니었다. 병갑은 그냥 웃어넘겼다. 사인이 간접흡연? 꽤 평화로운 죽음이다. 그것도 괜찮겠다. 폐병에 걸리려면 간접흡연을 얼마나 해야 할까. 담배 연기 뻑뻑 피우는 재호 옆에서 삼십 년, 사십 년.


그런 생각을 한 어린 여름밤이 있었다.




"재호야, 거기서 뭐 해?"


재호가 들추고 있던 매트리스를 쿵 내려놓았다. 그리고 병갑을 돌아봤는데, 아차, 병갑은 이미 봐버린 눈치였다. 재호의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숨겨둔 현금 더미를.


재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어차피 들켰다 싶어 그냥 다시 매트리스를 들춰 보였다. 병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가섰다. 생전 처음 보는 양만큼의 돈이 그 밑에 흩어져 있었다. 만 원권과 오천 원권이 골고루였다. 재호는 그 안에서 십만 원정도를 꺼내 챙겼다. 매트리스를 덮고 일어나 돌아서자, 병갑이 입을 떡 벌리고 서 있었다.


"야, 너 그거 웬 돈이냐?"

"이거 너밖에 모르는 거야. 없어지면 니가 가져간 거다."

"걱정 마. 안 가져가. 근데 웬 거냐구. 그렇게 큰 돈이 어디서..."


재호는 챙긴 돈을 제 겉옷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재호의 손이 병갑의 어깨에 툭툭 무게를 싣고 떨어져나갔다. 방을 나가는 재호의 뒷모습을 병갑은 멍하게 지켜보았다.


어쩐지 요즘 씀씀이가 커졌다 했다. 얼마 전엔 새 옷과 새 신발을 걸치고 나타났고. 병갑은 재호의 새하얀 운동화를 보고서, 으레 그러듯이 누구 것을 뺏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침대 밑의 저 돈더미라니, 또래에게서 삥을 뜯었다기엔 액수가 너무 컸다. 중학생이 그만한 돈이 어딨겠는가. 어딘가에서 나이를 속이고 일이라도 시작했나? 그러고 보니 요새 부쩍 병갑을 먼저 하교하라고 보내는 일이 잦았다. 재호는 술을 마실 때, 패싸움을 할 때, 나쁜 일을 하고 무서운 형들을 만날 때면 병갑을 떼어놓고 갔다. 그럴수록 병갑이 모르는 재호의 시간이 늘어갔다. 어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는 중인지, 그런 걸 떠벌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새 어디 호프집 청소 일을 시작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저게 어디서 난 돈인지 왜 답해주지 않는 걸까.


병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재호의 침대를 낯설게 바라보았다.


다음날도 재호는 학교를 마치고 할 일이 있다며 병갑을 먼저 보냈다. 병갑 손에 제 가방까지 들려 보냈다.


"자, 딴 길로 새지 말고 집에 가."


가방을 건네주면서 재호가 잔소리했다. 지는 매일 딴 길로 새면서. 같잖은 소리였지만 다정하게 들려 좋았다. 순순히 재호의 가방을 들고 고아원으로 돌아왔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하교였다. 저녁 식사까지도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병갑은 제 침대를 놔두고 괜히 재호 침대에 가서 누워보았다. 풀썩이는 이불과 베개에서 재호가 자주 피우는 종류의 담배 냄새가 났다. 딴 길로 새지 말고 집에 가. 아까 재호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아무리 주변에 종우니 운범이니 하는 친구가 많아도, 한재호가 그런 말을 할 상대는 병갑밖에 없을 것 같았다.


속은 싱숭생숭하고 할 일은 없어서 못 견디고 밖으로 나왔다. 갈 데가 없었다. 혹시 어디서 재호의 담배 냄새가 나지 않는지, 바람을 따라 한들한들 다녔다. 어느 골목에 접어들자 저 앞에 예의 들개가 보였다. 개와 함께 이운범네가 있었고, 조금 떨어진 옆에 재호도 보였다. 웬일로 운범네가 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무슨 통조림 같은 거였는데, 개는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놈들을 경계하면서도, 배고팠는지 냄새를 맡아보고 있었다.


"뭘 주는 거야?"


병갑이 멀찍이 소리쳐 물었다. 그 소리에 운범이 고개를 들어 병갑을 보더니, 기분 나쁘게 웃었다. 통조림을 달그락, 개에게 밀어주자 드디어 개가 쩝쩝대며 먹기 시작했다.


"햄 간 거에 쥐약을 섞었지. 어쩔까. 쥐 잡는 약이 개도 잡을까?"


병갑이 달려가 통조림 캔을 뒤엎었다. 개가 뒤로 펄쩍 뛰었다. 땅바닥에 퍼질러진 햄에 다시 입을 대지 못하도록, 쿵쿵 발을 구르고 팔을 휘저어서 개를 멀리 쫓아냈다. 병갑은 화가 머리꼭지까지 돌아서 운범을 보았다. 그러나 운범도 만만치 않게 화가 나 있었다. 운범이 주먹을 꽉 쥐고 빠른 걸음으로 덮쳐 왔다.


"개새끼가......!"

"야."


뒤편에 서 있던 재호가 짧은 목소리로 제지했다. 운범은 치고 싶어서 바들바들 떨리는 주먹을 병갑에게 겨누고 있다가, 이내 풀어버렸다.


"씨팔!"


운범이 병갑의 멱살을 확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귀에다 속닥였다.


"눈깔 파버리기 전에 깔아. 한재호 때문에 봐주는 것도 오늘로 끝이다."

"......"

"하여튼 고아 새끼들이란."


중얼거린 운범이 병갑을 퍽 밀쳐냈다. 병갑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재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 시선에 다시 들개 생각이 났다. 그 녀석 쥐약을 삼켜버렸는데.


병갑은 운범네를 등지고 달렸다. 사라진 들개를 찾아 온동네를 뒤지고 다녔다. 개를 붙잡아서 아까 먹은 걸 토해내게 하고 싶은데, 그 천방지축으로 다니는 녀석이 통 뵈질 않았다. 해가 지고 바람이 차가워졌다. 이젠 골목골목 샅샅이 살펴도 너무 어두워서 저 달그림자가 개의 것인지 버려진 고물의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밤이 늦어 집에 돌아왔다. 어린 아이들은 잠들고, 형 누나들은 야간 공부를 하고, 고아원은 담뿍 조용했다. 휘영청한 달빛이 계단과 복도에 들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뜻밖에 불이 켜진 채였다. 재호가 침대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병갑을 기다리고 있던 듯이 이쪽을 돌아본다.


재호의 눈빛을 받은 병갑은 멈춰섰다. 잠잠하게 침잠해 있지만 속에 날카로운 것을 품은, 병갑이 처음 마주하는 종류의 눈빛이었다. 병갑은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재호가 천천히 물었다.


"어디 갔다 와?"

"......어?"


다시 한 번 느끼건대 고아원은 조용했다. 재호와 병갑 사이에 위태로운 정적이 실처럼 이어졌다.


"뭐 하고 들어오는 길이냐고."

"어, 개가... 어디 갔는지 못 찾겠어서. 이운범 그 새끼 때문에... 그 녀석 토를 시켜야 하는데, 그 개 말이야..."


병갑은 영문을 모르고 그저 당황해서 떠듬거렸다. 재호가 이상하다. 눈빛이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진다. 미움 받는 것 같고 무섭다. 왜 그러지? 딴 길로 새지 말라고 했는데, 병갑이 집 밖엘 돌아다녀서 화를 내는 걸까. 병갑이 변명하듯 횡설수설하니까, 재호가 자기 침대 매트리스를 들춰냈다.


"이거랑은 상관이 없냐?"


안에 들어 있던 돈이 도둑맞아 온데간데없었다. 재호가 병갑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재호야, 무슨... 아니야."

"..."

"나 아니야. 너 알잖아."


재호는 대답이 없었다. 너 알잖아, 하는 말에 뭘 아느냐는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병갑은 확 서운해졌다. 그러나 재호가 어제 분명히 말했다. 없어지면 네가 가져간 거라고.


"여기에 돈 둔 거 아는 사람이 너밖에 없어."

"아니야, 분명 누가 안 거야..."

"니가 다른 사람한테 말했어?"

"아냐!"

"그럼 너밖에 없는 거 맞네."


병갑은 말문이 막혔다. 억울한데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답답함에 하염없이 고개만 절레절레해댔다. 저만치서 재호가 턱짓으로만 병갑을 가리켰다.


"주머니 봐봐."


병갑이 내키지 않는 손길로 자신의 겉옷 주머니를 까뒤집었다. 이어서 바지 주머니를 깠다. 재호는 하얀 속감이 뒤집어진 네 개의 주머니를 유심히 살폈다. 다음으로는 병갑을 시켜 1인용 캐비닛을 살펴보게 하고, 다음으로는 병갑 침대의 매트리스를 병갑의 손으로 들춰보게 했다. 어디에서도 돈다발은 나오지 않았다. 한군데씩 뒤집어볼수록 병갑은 점점 더 결백에 가까워졌지만, 점점 더 비참해졌다. 주책없이 눈물이 고였다.


병갑이 훌쩍이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매트리스를 내려놓았다. 재호는 여전히 의심을 풀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병갑이 '지금 여기에' 돈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별 증거도 되지 않았다. 돈을 훔친 다음 이 방이 아닌 다른 데 숨겨뒀거나, 벌써 써버렸거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진짜 아는 거 없어?"

"없어."

"그래."


두 사람은 가만히 마주서 있었지만 서로 눈을 보지 않았다. 밖에서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리고, 곧 선생 하나가 오가는 발소리도 들렸다. 정적이 깨지자 재호는 흐트러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드러누웠다. 뒤따라 병갑도 떨떠름하게 잘 준비를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고, 욕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가을로 접어든 날씨에 얼음장처럼 찬물이 나왔으나 오래도록 얼굴에 끼얹었다. 거울을 봤는데 차가워선지 뜨거워선지 홍조가 울긋불긋 올라와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자마자 옆자리에서 재호 목소리가 불쑥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화 안 낼 거야. 너한테는."

"..."

"돈을 달라면 줬을 거야. 나한테 말만 했으면..."


아직도 재호는 병갑을 믿지 않고 있었다. 둘은 각자 침대에서 벽을 보고 누웠다. 아이들은 누구도 상처 입힐 셈이 없었는데 서로 상처를 받았다. 병갑은 재호가 저를 의심해서, 재호는 병갑이 제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서, 더는 말을 붙일 기분이 들지 않았다. 둘 중 누가 더 늦게 잠에 들었는지 아리송했다.


냉전이 며칠째 이어지자, 학교 애들이 재호와 병갑 사이를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둘이 싸운 건지, 한재호가 드디어 고병갑을 버리면 고병갑의 처지는 어찌 되는지, 고병갑을 지지려고 벼르고 있던 애들은 누구누구가 있는지. 이운범은 병갑을 마주치면 누런 이를 드러내며 힉 비웃고 지나갔다.


뒷산에서 들개 사체가 발견되었다. 굶어 죽은 것도, 다른 개와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어서 기이하고 불길하다며 동네사람들이 씹어댔다. 소문을 듣고 병갑이 가 보았을 때는 죽은 몸은 이미 치우고 없었다. 눌린 낙엽 자리만 한참을 서성이다가 내려왔다.




재호가 사물함 문짝을 뻥 걷어찼다. 너덜너덜해진 문짝이 경첩에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렸다. 사물함 안쪽에 지폐 더미가 보였다. 재호는 사물함 주인을 돌아보았다. 사물함의 주인은 재호를 막으려고 팔을 뻗은 채로 굳어 서 있는 이운범이었다. 재호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꿰뚫어버릴 것처럼 운범을 보았다. 사냥감을 보는 삵의 눈 같았다. 운범이 제 사물함에 대고 삿대질했다.


"저게 뭐야? 돈? 내 사물함에 왜 저런 게 들어 있지?"

"그러게. 설명해봐."

"몰라, 난 모르는 일이야. 저거 재호 니 돈이냐? 내가 넣어둔 게 아닌데, 누가 가져다놨나봐."

"누가?"

"나야 모르지. 누구, 나한테 누명을 씌우고 싶은 새끼, 날 싫어하는 어떤 새끼..."


운범의 시선이 뒷문에 선 병갑에게 머물렀다. 재호는 매우 불쾌해져서 눈썹을 꿈틀거렸다. 발걸음을 옮겨 운범과 병갑 사이에 섰다. 그러자 운범의 시선이 다시 재호에게로 돌아왔다.


"재호 너 날 믿어야 돼. 나 진짜 거짓말 못하는 사람이야."


운범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재호가 소리내 비웃었다. 세상에 거짓말 못하는 사람은 없다. 착해서 그렇다는 말은 특히 더 믿을 수 없다. 다만 거짓말을 하면 존나게 티가 나는 사람은 있다. 재호가 알기로 그건 바로 고병갑이다.


그 고병갑이 이번만큼은 제가 아니라고 이상하리만큼 잘도 잡아떼기에, 재호는 정황을 다시 한번 곱씹어봤다. 재호가 침대 밑에서 돈을 꺼내는 것을 본 사람은 병갑이 유일하다. 하지만 애초에 그날 십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여 재호로 하여금 돈을 꺼내게 만든 사람은 운범이었다. 또 그 시각 병갑은 들개를 찾아다녔다는 둥 알리바이가 없었지만, 병갑이 개를 쫓아 돌아다니게 만든 사람이 운범이었다.


그리고 이제 운범의 사물함에 돈이 들어 있다. 운범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일련의 상황들이 우연의 연속일 가능성은 낮다. 낮은 가능성에 배팅할 이유가 없다.


재호는 사물함에서 돈을 되찾아, 자기와 운범을 둘러싼 친구들에게 얼마씩 쥐여주었다. 일찍이 무슨 거래라도 오갔는지, 돈을 받은 아이들은 점점 운범에게로 다가섰다. 아이들은 운범을 붙들었고, 몇몇은 문가에서 망을 봤다. 재호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손가락 관절을 풀었다. 어깨를 붙들거나 망을 보는 일은 남들을 시켜도, 가장 재미있는 일은 꼭 직접 했다.


아침나절이 지나갔다. 운범은 조퇴를 했다. 일찍 점심을 먹고 교실로 들어온 재호와 병갑은 한가로웠다. 교실 창문으로 오후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런 날 재호 옆 책상에서 볕을 받으며 뒹굴거리는 게 병갑은 좋았다. 운범을 잡는 것으로 긴 냉전을 끝낸 직후라, 이러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너, 아직 그 돈 어디서 난 건지 나한테 말 안 해줬다."

 "알아서 뭐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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