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 썰] (역스퍼거) 가산 왕국(1) 아틸라 시대의 기독교도 아랍인 왕조

ㅇㅇ(110.70) 2020.07.06 00:32:45
조회 2000 추천 31 댓글 28
														

도겸의 군사경력(feat. 단양병)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twar&no=519015


손책의 강동 평정 1편(feat. 단양병)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twar&no=581719


손책의 강동 평정 2편, 유요와 엄백호를 격파하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twar&no=583007


손책의 강동 평정 3편, 원술의 몰락과 손책의 성공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twar&no=583981


손책의 강동 평정 4편, 손책과 청건병의 최후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twar&no=585252


딴데 썼던 글 옮겨서 적음! 자료 출처는 2편에!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f5a42d7ec0cfe5f752e39f5bcd7ddac8b463a32f6e28927efc6c296390e1c7de709a3b2


가산 가문의 문장

사각형에는 각각 SPQR의 독수리, 레바논의 상징 삼나무와 두 개의 시미터, 왕관을 쓴 비잔티움 독수리, 이슬람의 초승달이 그려져 있음.


간단하게 가산 왕국을 설명하자면, 중세 초 기독교도를 믿는 아랍인들이 시리아, 그중 현 요르단 지역에 세웠던 왕국임.




1. 가산 왕국의 시작.


가산 왕국 혹은 가산 왕조, 가산 연맹, 가산족(영어로는 Ghassanids, Kingdom of Ghassan 혹은 Banu Ghassan)의 역사는 남아라비아의 예멘에서 시작됨.

고대 말, 동지중해에서 기독교 유행이 일어나면서 각 국가들이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하거나, 그 국가에서 기독교도들이 크게 늘어났음.

동아프리카의 악숨이 기독교도로 개종했을 때, 바다 너머인 예멘 지역에도 기독교도로 개종하는 이들이 있었음.


정작 당시 예멘을 지배하던 힘야르 왕국의 왕은 동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사이에서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했지만, 힘야르의 백성들 대다수는 전통적인 셈 다신교를 믿는 상태였고, 기독교도로 개종한 이들도 상당수 존재했음.

이들은 주로 예멘 경제력을 떠받치던 마리브 댐 근교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보임.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f5a42d7ec0cfe5f752e39f5bcd7ddac8b463a32f6e28927e9c7c4c43e5c4e73e713bd6c

가산인들의 원래 거주지, 예멘(힘야르)


가산인들이 왜 예멘에서 머나먼 시리아까지 이주했느냐에 대한 이유는 두 가지 추측이 있음.


첫째로, 3세기 마리브 댐이 무너지면서 기근이 발생하자 살기 위해 이주를 떠났다는 설. (마리브 댐은 보수되어 최종적으로 6세기 말에 완전히 무너짐.)


두번째는, 5세기 말~ 6세기 초 힘야르의 유대교도 왕이었던 유수프 이븐 샤르하빌, 일명 두 나와스(Dhu nawas 혹은 Dhu nuwas)가 기독교도들을 탄압하자 기독교도 예멘인들이 살기 위해 탈출했다는 것인데, 둘 중의 하나일 수도 있고 두 이유가 합쳐진 것일 수도 있음.

문제는 이들의 1차 이주가 3세기에 이뤄진 것이 확실하여 시기가 안맞는다는 것인데,나중에 온 이주민들의 이야기가 섞인 게 아닌가 싶음.


3세기 아즈드족(Azd)을 중심으로 이주를 시작한 기독교도 예멘 부족들은 살곳을 찾아 떠났음.


처음엔 사바 왕국의 왕족을 자처한 아므르 이븐 무자키야가 무리를 이끌었지만, 아므르가 죽은 3세기엔 아므르의 네 아들이 각자 무리를 나눴음.

다른 세 분파가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이나 서부 해안 지대를 찾아다니는 동안 나머지 한 분파를 이끌던 자프나흐 1세 이븐 아므르는 아라비아 반도의 북쪽 끝을 향했음.

사바 왕국의 왕자로 알려진 자프나흐 이븐 아므르(Jafnah Ibn 'Amr)를 우두머리로 모신 부족들은 가산족(바누 가산)을 형성한 뒤 다마스쿠스 남쪽의 하우란에 정착했음. 자프나흐 1세는 가산족의 첫번째 왕이 되었음.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f5a42d7ec0cfe5f752e39f5bcd7ddac8b463a32f6e28927e8c1c4ce3f514e21e713bd67


-하우란(Hauran 혹은 Hawran)의 위치. 현재 지명은 Huwwarin-


단성론 기독교도였던 가산인들은 처음엔 세력이 미약했지만 400년 전후로 예멘에서 온 2차 이주민이 합류하여 크게 성장함.

가산인들이 정착했을 때, 이미 시리아엔 다른 여러 부족들이 존재하고 있었음.


예멘에서 이주해온 또다른 부족인 바누 주드함, 메소포타미아에서 팔미라 근처로 이주한 바누 아멜라, 아라비아 반도 북서부에 원래 거주하고 있었던 바누 칼브 등이 거주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이들은 이미 동로마 제국의 봉신국이었음.


이러한 아랍 부족들 중에서도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부족은 타누흐족와 살리흐족이었음.


2세기 후반, 다른 아랍 부족인 나트족과 합쳐 세력을 키운 타누흐는 이라크와 시리아의 모든 아랍 부족들을 굴복시키는 전성기를 가졌음.

그러나 군주 자드히마 이븐 말리크가 자식 없이 죽자 이라크와 시리아의 타누흐족은 갈라지게 되었음.


자드히마의 누이의 자식이던 아므르 이븐 아디 라흠은 이라크의 타누흐족과 아랍 부족들을 물려받고 라흠 왕국을 세웠고, 수십년 후 라흠은 사산조 페르시아의 봉신이 되었음.


한편 시리아의 타누흐족은 필요에 따라 로마와 적대하거나 협조했음.

로마제국이 세조각 났던 때,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제노비아의 팔미라 제국(로마 동부)을 공격할 때는 아우렐리아누스에게 협조해 포에데라티(전쟁시 로마 제국에게 군대를 제공하는 동맹국)로 복무했지만 4세기 발렌스와 테오도시우스 대제 통치기에는 반란을 일으켰음.

반란이 실패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열성적인 기독교도가 된 타누흐족은 살리흐족에게 시리아 아랍 부족들의 패권을 넘겨주게 되었음.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f5a42d7ec0cfe5f752e39f5bcd7ddac8b463a32f6e28927ea97c5946b5b4c72e709a356


당시 아랍인들이 거주하던 로마 제국 동방 속주들 (400년대)


383년 타누흐족의 반란이 진압된 이후로 살리흐족이 동로마 제국의 수석 아랍 동맹국으로 떠올랐음.


동로마 제국은 아랍 동맹 부족장들을 필라르크((Phylarch. 그리스어 φύλαρχος 필라르코스, 라틴어 Phylarchus 필라르쿠스. 로마의 동방 속주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게 된 아랍 부족장들에게 하사된 직위, 당시엔 셰이크와 비슷한 의미로 쓰임.)로 임명했고 살리흐족을 비롯한 아랍 부족들도 기독교도로 개종하게 되었음.


아랍 필라르크들의 임무는, 동로마 영토를 노리는 다른 아랍 부족의 도적떼를 막는 완충지 역할을 하는 것. 때때로 포에데라티로도 복무하면서 4 ~ 5세기에 전성기를 누린 살리흐족은 동로마 정부로부터 다른 아랍 부족들에게 보호세를 걷을 권리를 취득함.


가산족이 동로마 영토로 이주해오자 살리흐족은 가산족에게도 보호세를 걷으려고 시도했음.

그런데 살리흐족의 세금 징수관이 청각 장애가 있던 가산족의 한 애꾸눈 족장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함.


이로 인해 살리흐족과 가산족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 가산족은 힘야르의 봉신이자 유대교도였던, 아라비아의 중부의 강력한 아랍 부족 킨다족과 동맹을 맺어 기어코 승리하였음. 가산족은 이제 살리흐족을 대신하여 다른 아랍 부족들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음.


473년 동지중해의 지배자, 동로마 제국과 가산 왕 아므르 3세(아모르케소스)는 조약을 맺어 아므르 3세는 필라르크가 되었고, 가산족은 공식적인 봉토를 하사받는 대신 동로마 제국의 국경을 지키는 임무를 가지게 되었음.

그러나 초기 가산족은 다른 아랍 부족과 마찬가지로 때때로 동로마 영토를 약탈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해 분쟁을 벌였음.


불과 498년, 아나스타시우스 1세 통치기(유스티니아누스 전전 황제)에 아랍 부족들이 연합하여 동로마 영토를 침략했음.


이 침략자들 중 나중에 가산 왕이 되는 자발라흐 4세 이븐 알 하리스도 휘하 가산족을 이끌고 같이 동로마를 공격했음. 결국 비잔티움의 도독(둑스) 로마누스가 아랍인들을 무찌르고 홍해의 티란 섬을 장악한 가산족을 쫓아내면서 침략을 막아냈음.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f5a42d7ec0cfe5f752e39f5bcd7ddac8b463a32f6e28927bf96c0946b511c26e709a39b


티란 섬의 위치


하지만 502년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격렬해지자, 아랍인들을 전쟁에 동원하기위해 동로마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킨다 왕국, 가산 왕국과 새로운 조약을 맺어 그들은 포에데라티로 삼았음.

가산 왕국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시리아 아랍 부족들도 동로마 제국의 포에데라티로 들어오게 되었음.




2. 자발라흐 4세와 알 하리스 5세의 통치기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6060111a24bf58414d1fefac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라흠 왕국의 수도 '히라'. 이슬람 제국 이전 아랍인들이 세운 도시 중 가장 부유한 도시로 명성높았다.


513년, 아나스타시우스 전쟁이라 불린 로마-페르시아 전쟁이 진행될 때 로마군과 페르시아군이 시리아 전선에서 지지부진하게 싸우는 동안 가산 군대는 사산 제국의 봉신국인 아랍 연합 왕국 라흠의 수도 히라를 기습적으로 공격해 피해를 입히는 공을 세웠음.


히라의 위치는 보다시피 사산 제국의 중심지인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해 있었고, 이 공격은 라흠과 사산 제국에게 부담이 되었음.


이러한 공으로 가산족은 동로마 제국의 아시아 영토 깊숙한 곳에 정착할 수 있었음.

가산족은 다마스쿠스 남쪽, 하우란 근처인 골란 고원에 새 수도 자비야(jabiyah)를 건설했음.


자비야라는 이름엔 여러 설이 있는데, '호기심'을 뜻한다고도 하고, 아랍어 '선택받은 자' 혹은 '저수지'에서 따왔다는 주장도 있으며, 예멘에 있는 동명의 도시(Al Jabiyah)에서 따온 것일 수도 있음.


아부 샤미르, 그리고 로마인들에겐 가발라스라고 불렸던 가산족의 왕 자발라흐 4세는 동로마 제국의 동부 국경을 지키는 필라르크였으며 동시에 자신의 가산족 백성들을 다스렸음.

동로마 영토를 약탈하거나 무역상을 습격하는 베두인들을 퇴치하고, 동로마 제국이 사산 제국과 싸울 때 동맹군을 파견하는 등 가산족은 착실하게 발전했음.


또 아라비아 중,북부 아랍 부족들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가산, 라흠, 킨다가 각각 동로마, 페르시아, 힘야르의 대리인으로 싸우게 됐음.


하지만 가산족과 킨다족이 이전부터 친교를 맺은 상태에 자발라흐 4세의 아내가 킨다 왕국의 공주였으며, 힘야르의 봉신국 신분에도 동로마의 포에데라티로 들어간 킨다족이 주로 라흠을 공격했음을 보면 사실상 라흠이 가산과 킨다에게 협공당한 것으로 보임.


이 상황은 힘야르가 기독교를 박해한다는 소식에 화가 났고, 겸사겸사 홍해 제해권도 장악하려던 유스티니아누스의 사주를 받은 악숨이 힘야르를 멸망시키면서 변했음. 졸지에 후원자를 잃은 킨다 왕국도 라흠의 맹공을 받고 몰락하면서 가산과 라흠의 일대일 승부로 바뀌게 됨.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3361121a78bb0b424d1fef7c


가산, 라흠, 킨다의 싸움


6세기 힘야르 왕 두 나와스의 기독교도 박해로 도망쳐온 아랍 기독교도들이 가산족에 합류하면서 세력을 더욱 확대하지만, 새롭게 황제로 즉위한 유스티누스 1세(유스티니아누스의 친척)와 사이가 불편해지는 사건이 발생함.


유스티누스 1세와 콘스탄티노플 정계의 실세였던 황제의 조카, 신실한 유스티니아누스 눈에 이단종파 단성론자 아랍인들이 아니꼽게 보였기 때문임.


520년 황제는 가산족에게 정통파인 칼케돈파로 개종하라고 명령했음. 자발라흐 4세를 비롯해 단성론을 믿던 가산족은 황제의 명에 불복해 아라비아 반도의 헤자즈 북부로 이동해버림.


유스티누스 1세와 가산족의 냉랭한 관계가 계속 되었음. 527년, 유스티누스 통치의 마지막 해에 이르러서야 황제와 가산족은 화해했음.


동로마 제국은 일단 가산족의 단성론 신앙을 용납했고, 가산족은 자비야로 돌아왔음. 동로마 제국으로선 페르시아와의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군사적 부담이 갈수록 강해져 이를 보충하기 위해 아랍 부족민들의 군사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음.


이듬해 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벨리사리우스를 파견해 페르시아군과 싸웠음. 이 때 가산 왕국의 자발라흐 4세 역시 벨리사리우스에게 합류했음.


로마군이 탄누리스에 요새를 지으려고 시도하자 페르시아군이 공격해왔음. 528년 탄누리스 전투에서 벨리사리우스는 최선을 다했지만 페르시아 군대가 로마군의 방어선을 뚫었고, 로마군은 장군 2명이 전사, 3명이 포로가 되는 대패를 당함.

가산 군대를 이끌던 자발라흐 4세 또한 전투 중 낙마했을 때 공격을 받아 전사해버렸음.


자발라흐 4세의 세 아들 중 첫째인 알 하리스 5세 이븐 자발라흐(하리스 5세, 하리트 5세)가 왕위를 이었는데, 자발라흐 4세가 전사한 것에 대한 보답인지 아니면 가산 왕국을 아랍 동맹의 우두머리로 만들려고 한 것인지 유스티니아누스는 알 하리스 5세를 두 속주의 필라르크로 임명하고 그의 동생 아부 카리브도 다른 속주의 필라르크로 임명했음.


거기다 알 하리스 5세를 모든 아랍 필라르크들을 총괄하는 최고 필라르크(Supreme Phylarch,수석 필라르크. 아키필라르쿠스 Archyphylarchus)로 임명하는 등 가산 왕국을 화끈하게 밀어줬음.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336f111a29bf0b134d1fefe8


유스티니아누스 : 야 형만 믿고 따라와. 내가 너 밀어준다.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363c16162eeb57424d1fefd5


알 하리스 5세 : 네 형님 ㅎㅎ


알 하리스 5세는 530년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다시 벌어지자 5000명의 아랍인 군대를 이끌고 다시 동로마를 지원했음.


벨리사리우스는 전열을 가다듬은 뒤 다라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박살내 탄누리스 전투를 설욕했지만, 그 다음해 칼리니쿰 전투에서 주라크(아자레테스)와 라흠 왕 문디르가 이끄는 페르시아-라흠 연합군에게 패했고, 그 전투에서 양쪽 다 엄청난 피해를 입는 바람에 휴전해야만 했음.


동롬 역사학자 프로코피우스는 칼리니쿰 전투에서 아랍인들이 전장에서 모두 도망쳤다고 기록했음. 하지먄 훨씬 믿을만한 요한네스 말라라스의 기록에 따르면 몇몇 아랍인들이 도망간 건 사실이지만 알 하리스 5세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페르시아군과 싸웠다고 함.


알 하리스 5세가 지휘권을 유지하고 그해 말 마르티로폴리스에서 추가적인 군사 작전을 펼친 것을 보면 프로코피우스의 기록은 과장된 것으로 보임.


계속된 프로코피우스의 적대적인 기록에도 불구하고 알 하리스 5세가 이후로도 로마군과 협력하고 페르시아와 맞서 싸우면서 동로마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준 것은 확실했음.


537년에서 539년 사이 팔미라에서 라흠 왕 문디르를 격퇴한 알 하리스 5세는 라흠 영토를 약탈했음. 가산과 라흠의 싸움은 둘의 뒤를 봐주는 두 제국의 대리전 성격을 띠었음.


사산조의 호스로 1세는 가산군이 메소포타미아 근처까지 왔다가자 이 분쟁을 핑계삼아 휴전 조약을 파기, 다시 로마와의 전쟁을 재개했음. 이러한 전쟁 도발 행위에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과 알 하리스 5세가 유스티니아누스의 충복인 걸 감안하면 가산이 유스티니아누스의 명령을 받고 일부러 한 행위라고 확실시됨.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3560131e2fef5c494d1fefde


유스티니아누스 : 내가 시켰다고? 증거 있어?


전쟁이 다시 시작되자 알 하리스 5세는 벨리사리우스가 붙여준 비잔티움 부대와 함께 아시리아 지방을 원정했음.


원정은 성공적이었지만 도중 갑자기 알 하리스 5세는 비잔티움 병력만 돌려보냈고, 그 뒤로 알 하리스 5세와 벨리사리우스와 만나지 못하거나 연락이 끊기는 일이 발생했음.


프로코피우스는 가산인들이 전리품을 나누기 싫어서 그랬다는 글은 남겼지만 프로코피우스의 진실된 속마음이 드러난, 유스티니아누스 몰래 쓴 역사서 '비사'에선 가산 대신 이 시기 벨리사리우스의 나태한 행적을 비난하고 있음.


프로코피우스는 대놓고 비판할 수 없었던 황제 부부나 벨리사리우스를 비사에서 실제 사실 이상으로 험담했지만, 가산족도 매우 싫어했기에 정확히 어느쪽에 책임이 있는지는 불명확함. 애초에 프로코피우스가 사건을 과장한 것일 수도 있음.


545년 로마와 페르시아가 다시 휴전 조약을 맺었지만 가산과 라흠은 계속 다퉜음. 알 하리스 5세는 경쟁자였던 라흠 왕 문디르에게 두 아들을 잃으면서도 544년 칼키스의 야움 할리마 전투(Battle Of Yawm Halima)에서 끝내 그를 죽이는 데 성공했음.


이후 563년 살아남은 아들 알 문디르 3세와 함께 콘스탄티노플로 가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함께 차기 라흠 왕 아므르에 대한 대책을 논하고 알 문디르 3세를 가산 왕국의 후계자로 확정지었음. 논의 결과 유스티니아누스는 아므르를 매수하는데 성공했음.


그리스어로는 '아레타스'라고 불렸던 알 하리스 5세는 콘스탄티노플의 로마인들에게 인상적인 기억을 남겼던 것으로 보이는데, 유스티누스 2세와 해프닝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됨.


정확히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스티니아누스의 뒤를 이어 황제 유스티누스 2세가 정신병에 걸려 날뛸 때 '아레타스가 오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주면 유스티누스 2세가 겁먹고 조용해졌다고 하더라.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3369111e2eef09484d1feffa


유스티누스 2세 : 하와와... 사막 야만인 넘모 무서운거시야요...


유스티니아누스의 통치기(527~565)와 알 하리스 5세의 통치기(528~569)는 거의 겹쳤고, 알 하리스 5세 본인도 41년 동안 왕위를 유지했음.


유스티니아누스의 신뢰를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받은 알 하리스 5세는 로마 제국의 귀족들이 받던 '파트리키오스(Patrikios)'의 직위를 얻었고 '비르 글로리오시시무스(Vir Gloriosissimus, '가장 고귀한 자')'의 호칭을 받을 정도였음.


하지만 알 하리스는 한 부분에서만큼은 유스티니아누스와 뜻을 달리했음.


알 하리스 5세는 자신의 단성론 신앙에 충실했고, 죽을 때까지 칼케돈파를 받아들이지 않았음. 오히려 단성론 교회를 적극 지원했음.


가산 왕국의 지원으로 6세기 시리아의 단성론 교회는 부흥할 수 있었음. 유스티니아누스의 단성론 탄압에 단성론 성직자의 씨가 마르자 알 하리스 5세가 황후 테오도라에게 새 단성론 주교를 보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음.


유스티니아누스가 사랑하는 아내 테오도라에게 약하단 것을 잘 알고 한 행위였고, 테오도라는 기꺼이 그에게 두 명의 단성론 주교 야곱 바라다이우스와 테오도로스를 보내주었음.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6569191d2fb80e144d1fef29


테오도라 : 단성론? 보내주지 뭐.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3060461f25b358124d1fefed


알 하리스 5세 : 감사합니다 형수님 ㅎㅎ


평생의 후원자였던 유스티니아누스와 전우 벨리사리우스가 같은 해에 죽고 4년 뒤, 569년 시리아에 발생한 지진으로 알 하리스 5세도 죽고 말았고, 아들 알 문디르 3세가 왕위를 물려받았음.

알 문디르 역시 아버지의 방침을 그대로 이어받아 군사적으론 동로마 군대에게 협력하고 라흠 군대를 패배시켰지만, 종교적으론 단성론을 계속 유지했음.





3. 알 문디르 3세의 통치기, 가산의 몰락.


알 문디르 3세 혹은 문디르 3세가 왕이 되자 라흠 왕 카부스가 가산 왕국을 공격했다가 격퇴당함. 알 문디르 3세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라흠 영토를 공격해 약탈했음.


알 문디르 3세가 시리아로 귀환하던 중 라흠군이 다시 가산 군대를 공격해왔지만 알 문디르 3세는 라흠 군대를 또 물리쳤음. 알 문디르 3세는 이번 원정의 성공 댓가로 부하들에게 줄 봉급 혹은 상여금을 보내달라고 유스티누스 2세에게 요청했음.


하지만 유스티누스 2세는 가산 왕의 요구에 화를 내며 현지 지휘관에게 함정을 파 가산 왕을 사로 잡아 죽이라고 명했음.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 명령이 담긴 편지가 알 문디르 3세에게 넘어가버림.;;;


알 문디르 3세도 분노하여 동로마와의 관계를 단절해버렸음. 572년 로마-페르시아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고, 573년 다라 요새가 페르시아에게 함락된 후 유스티누스 2세가 미쳐버리자 황후 소피아와 군사령관 티베리우스 2세가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음. 그들은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가산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음.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3a6a144a29eb56154d1fef30


티베리우스 2세 : 현실적으로 가산인들의 군대 지원이 필요해.

이봐 유스티니아누스! 가산얘들이랑 친하지?


575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겐 사촌이자 제위 계승자 후보였던 게르마누스가 있었는데, 게르마누스는 이탈리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급사해버렸음. 그 게르마누스의 아들인 유스티니아누스 장군(황제와 동명이인)의 중재로 세르기오폴리스에서 로마와 가산 왕국은 화해했음.


화해한 알 문디르 3세는 바로 군대를 조직해 라흠을 공격했음.


이번엔 아예 라흠의 수도 히라를 함락하여 교회(라흠의 아랍인들 상당수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였음.) 빼곤 모조리 약탈하고 파괴했음. 승리하고 돌아온 알 문디르 3세는 약탈물들을 가난한 이들과 수도원에 기부하여 민심을 신경썼음.


같은해 알 문디르 3세는 콘스탄티노플로 가 황제 유스티누스 2세를 접견했고 동로마의 아랍 봉신왕임을 나타내는 왕관을 하사받았음.


유스티누스 2세가 578년 죽자 단독황제가 된 티베리우스 2세는 알 문디르 3세와 두 아들을 콘스탄티노플로 초대했음.


오랜 전쟁으로 발생한 심각한 재정 문제 때문에 돈을 아끼던 상황에서도 티베리우스 2세는 가산 왕과 왕자들에게 선물을 두둑하게 하사했고 이전 것보다 훨씬 호화로운 왕관도 선물했음. 거기다 단성론 교회 공의회를 열어도 된다는 허락도 했음.


알 문디르 3세의 주재 하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짧게나마 단성론 교회 공의회가 열렸고, 각 단성론 성직자들의 교류가 이루어졌음. 티베리우스는 알 문디르 3세에게 곧 단성론 탄압이 중지될 것이라고 약속까지 해주었음. 티베리우스 2세는 가산 왕국을 중요시여겨 알 문디르 3세에게 온갖 혜택을 제공했음.


사실 군단 확대, 유지하는 것보다 가산 얘들한테 전쟁 하청 맡기는 게 훨씬 싸게 먹혔기 때문.


알 문디르 3세가 가산 왕국으로 돌아왔을 때, 왕의 부재를 틈타 라흠과 페르시아가 가산 왕국을 습격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알 문디르 3세는 다시 한번 라흠을 박살냈음.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663a164b2bba59474d05f1f9


알 문디르 3세 : 싸울 때마다 털리면서 라흠 놈들은 왜 이렇게 개기지?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6061161c79bc0d174d05f16d


라흠 : ㅂㄷㅂㄷ


578년 페르시아군이 로마 영토를 또다시 공격하자 로마 제국의 동방군 총사령관(마기스테르 밀리툼) 마우리키우스는 역으로 페르시아 원정을 시도했음. 알 문디르 3세의 가산군 역시 마우리키우스의 군대에 합류하여 로마군을 보조하였고.


마우리키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사산 제국 영토 깊숙히 들어가 크테시폰이 위치한 베스 아라마예 지역까지 진군했음. 그러나 도착하고보니 페르시아군이 운하를 잇는 다리를 파괴했음을 확인하게 됨. 거기다 로마군의 주력이 메소포타미아 깊숙히 이동한 사이에 페르시아 장군 아다르마한이 북메소포타미아에서 로마군의 보급로를 끊고 에데사를 포위했다는 소식까지 들어옴.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626c161c2dbd56454d1fefed


베스 아라마예의 위치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323c151e79e95b474d1fefdb


사산 제국 시절의 운하. 평시엔 농사와 교통에, 전시엔 자연방어물로 사용했다.


원정의 실패가 확실해지자 로마-가산 연합군은 회군하기 시작했음.

그런데 마우리키우스와 알 문디르 3세는 원정 실패에 대해 서로를 비난하며 사이가 갈라졌음.


일단 에데사에 도착하자 페르시아군을 격퇴하기위해 마우리키우스와 알 문디르 3세는 협력했고, 아다르마한의 페르시아군은 후퇴했음. 그 뒤 둘은 갈라져버림.


알 문디르 3세는 가산쪽으로 이동하는 페르시아-라흠 연합군이 진영을 세우기 직전에 기습 공격하여 승리를 거뒀고, 마우리키우스는 콘스탄티나 전투에서 아다르마한과 북메소포타미아 변경백(마르즈반) 탐호스로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에게 대승을 거뒀음.


탐호스로는 전사했고 아다르마한은 꽁지빠지게 도망쳤음. 전투는 로마와 가산의 완벽한 승리였지만, 크테시폰 공격이라는 조기의 목적이 실패하면서 전쟁은 패배한 꼴이 되버림.


마우리키우스와 알 문디르 3세는 둘 다 뛰어난 군인이었지만 원정의 실패로 사이가 매우 악화되었음. 마우리키우스는 알 문디르 3세가 페르시아에게 작전 계획을 누설하는 반역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음.


동시기에 살았던 연대기 작가 에페수스의 요한네스와 현대 역사가들 대다수가 이러한 반역 혐의를 부정했는데, 첫째로, 로마군이 크테시폰을 노리고 있음이 너무 명확했고, 둘째로 로마군이 메소포타미아로 진군해오면 도하를 막기위해 다리를 파괴하는 것은 페르시아인들이 이미 흔하게 사용하는 전략이었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마우리키우스는 알 문디르 3세의 반역죄를 적극 주장했는데, 이는 원정 실패의 책임을 덮어씌우거나, 군사적 업적을 이룬 아랍 야만인인 가산족 왕을 혐오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됨.


로마인들이 이러한 '야만인'을 우습게 보는 것은 습관적인 일이었고, 이러한 심지어 로마의 동맹국에게도 해당되어 아랍 부족장들은 새로 즉위하여 콘스탄티노플로 임명받으러 갈 때마다 로마 귀족들의 조롱을 사야했음. 거기다 가산족은 로마인들이 싫어하는 이단 단성론자였음.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606e43192eeb56404d1fef02


마우리키우스 : 가산 놈들 때문임. 내 탓 아님. 저 이단 놈들 저럴 줄 알았음.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333a17167bb20a444d05f149


알 문디르 3세 : 뭐지? 자기가 총사령관인데 왜 동맹군 탓을 하는 거지? 책임회피?


마우리키우스와 알 문디르 3세는 황제 티베리우스 2세에게 지지를 받기 위해 각자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서신을 보냈는데, 마우리키우스는 콘스탄티노플로 직접 가 티베리우스 2세를 설득하는데 성공했음.


티베리우스 2세는 알 문디르 3세를 체포하기 위해 함정을 팠음. 알 문디르 3세에게 콘스탄티노플로 와 반역 혐의에 대해 설명하라고 명령하자, 알 문디르 3세는 자신의 친구이자 하우란 출신의 로마인 쿠라토르 마그누스를 변호인으로 보내기로 했음.


그런데 쿠라토르 마그누스는 사실 황제쪽 인물이었음. 쿠라토르 마그누스가 새로 지어진 교회의 헌납식을 위해 알 문디르 3세를 초대하자 왕은 소수의 경호원만 데리고 참가했음. 매복해있던 로마 병사들이 알 문디르 3세를 납치했고, 알 문디르 3세는 아내, 세 자식들과 함께 콘스탄티노플로 압송되었음.


정작 콘스탄티노플에 문디르 가족이 도착하자, 티베리우스 2세는 그들을 매우 잘 보살펴줌.


비록 외부의 사람들과 접촉하는건 금지되었지만 알 문디르 3세는 편안한 숙소와 생활 보조금을 받았음. 또 반역 혐의에 대한 재판도 받지 않았음.


사실 티베리우스 2세는 알 문디르의 반역을 믿지 않았지만, 마우리키우스를 포함한 단성론 반대 세력의 눈치를 봐야했기에 일단 알 문디르 3세를 체포한 것으로 보임.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3a68184b2aba5a474d05f1a8


알 문디르 3세 : 아니 형님 제가 뭔 잘못을 했다고!


viewimage.php?id=39a9c727f7&no=24b0d769e1d32ca73ded8ffa11d028313550f9fb3f9dac8b24082c81cb5c5a428c929608e93e48752620a066f64db28d283beaa585363c454f25e909134d1fef34

티베리우스 2세 : 아 거 나도 사정이 있으니까 좀 조용히 있어 봐.


2편은 내일 저녁에 쓰겠음!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31

고정닉 13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4 설문 비난 여론에도 뻔뻔하게 잘 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03 - -
1732409 📚 썰 (엠토, 나토) 불쾌함의 끝판왕. 박격포함, 로켓함은 왜 넣은걸까? [37] Bon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5 3403 26
1732357 📚 썰 올드 월드 변경점 정리(2) : 공용 마법 [11] 리디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5 2248 17
1732284 📚 썰 로오랜) 출생의 비밀 [8]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4 1103 19
1732167 📚 썰 기병 무용론 [51] Bon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4 4841 23
1732163 📚 썰 ㄴㄷㅆ) 15세기 중세 군대는 어떻게 운영되었을까? [16] 동대굴라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4 4704 38
1732151 📚 썰 18~19세기 기병은 어떤 식으로 모았는가? [20] 브라우닝자동소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4 3658 38
1732016 📚 썰 올드 월드 변경점 정리(1) : 공통 내용(세력, 패주) [15] 리디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4 2544 26
1731965 📚 썰 올드 월드 레거시 팩션 규칙도 떴네 [7] 리디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3 342 2
1731868 📚 썰 올드 월드 변경점 글 쓰기 전에 조사 [6] 리디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3 164 5
1731785 📚 썰 올드 월드 룰북에 햄탈워 그림도 들어가있네 [5] 리디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3 304 4
1731782 📚 썰 로오랜) 이 지옥같은 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5]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3 782 13
1731625 📚 썰 로오랜) 나 너무 오래 살았나벼... [3] Kanaph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2 624 8
1731360 📚 썰 워해머 : 올드 월드에서 나가리된 종족들 [28] 리디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2 2831 16
1731211 📚 썰 로오랜) 현재 중반까지 내용 요약 [15]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1 2688 17
1731094 📚 썰 ㄱㅇㅌ 그린스킨 신모델 미니어처 나왔노 [3] ㅇㅇ(180.71) 01.21 389 0
1731072 📚 썰 이번 브레통 소설 예상/실제 비교 [21]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1 2841 33
1731052 📚 썰 로오랜) 여기사단 하렘각 떴냐? [6]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0 2869 21
1731000 📚 썰 햄타지) 성배 기사랑 툼킹이 싸우면 누가 이김? [3] Jul.D.E.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0 550 7
1730984 📚 썰 로오랜) 이름을 말해선 안되는 '그 새끼' [17]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0 2288 24
1730949 📚 썰 로오랜) 브레토니아 기사들의 돌격 [16]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0 2025 16
1730916 📚 썰 로드 오브 랜스) 이런 시발ㅋㅋㅋㅋ [12]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0 2215 20
1730907 📚 썰 로드 오브 랜스) 귀머거리 귀족 [19]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0 2010 19
1730887 📚 썰 로드 오브 랜스 초반 줄거리 대충 요약 [14]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0 2095 22
1730846 📚 썰 새 브레통 소설 '로드 오브 랜스' 등장인물 소개 [11]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20 2056 17
1730664 📚 썰 햄타지) 키슬레프는 엄청 떡락한거네 [14] Wōtanz(122.44) 01.19 3929 18
1730598 📚 썰 사실 고증 지키려고 노력한 작품은 몇 개 없음.... [3] Bon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9 392 0
1730054 📚 썰 왜 나폴레옹은 유럽에서 세계대전 전까지 히틀러 취급 받았나 [21] Bon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8 601 3
1729914 📚 썰 올드월드) 팩션 신규 로스터와 바뀐 점 - 브레통 [10] Wōtanz(122.44) 01.17 2586 15
1729903 📚 썰 올드월드) 팩션 신규 로스터와 바뀐 점 - 제국 [24] Wōtanz(122.44) 01.17 3493 21
1729897 📚 썰 햄타지) 남부 왕국 독스 오브 워 짧썰 [1] Jul.D.E.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7 325 8
1729737 📚 썰 햄타지) 올드월드 룰북에 나온 키슬레프 설정 요약 [6] Wōtanz(122.44) 01.17 2268 14
1729315 📚 썰 햄타지) 올드월드 룰북에 나온 캐세이 설정 요약 [13] Wōtanz(122.44) 01.15 2800 19
1728962 📚 썰 토탈워에서 초반좋은 팩션이 성능좋다고 평가되는 이유 [16] 대전차오함마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14 729 2
1727556 📚 썰 이슬람으로부터 동방기독교를 지킨 수단의 갑옷을 알아보자 [12] 나쿠로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9 4746 24
1727407 📚 썰 캐세이 미구현 병종 썰 - 캐세이 기수병 [3] ㅇㅇ(61.72) 01.09 497 4
1727295 📚 썰 아카온) 각각의 유물들을 발견했을 때 아카온의 반응 [9]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8 3928 20
1727203 📚 썰 기병이 라인돌파 할 때 최고속력 유지 안함. [5] Bona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8 595 2
1726473 📚 썰 햄타지 썰)인드의 호랑이 신 [5] 캄바수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6 1743 11
1726271 📚 썰 재업) 타이거맨 유출 기념 햄3 인드의 호랑이 설정 정리 [8] ㅇㅇ(122.44) 01.05 5617 29
1725820 📚 썰 황금 기사 유출 기념 그 전에 나온 설정 정리 [7] ㅇㅇ(122.44) 01.04 3994 16
1725547 📚 썰 삼탈워에서 동탁이 항우의 검을 가지고 있는 이유 [8]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4 5411 32
1725428 📚 썰 ㄱㅇㅌ)어짜피 나와도 4만은 토탈워로는 못나옴 [2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4 570 6
1725210 📚 썰 다음 차기작 토탈워 루머 내용 정리 [119] ㅇㅇ(122.44) 01.03 9612 33
1725166 📚 썰 나가쉬) 학살의 현장을 목격한 왕의 반응 [7]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1.03 669 10
1724604 📚 썰 추측)쉐오체는 기획 단계에서 유독 짤린거 많은 것 같음 [5] ㅇㅇ(218.146) 01.02 525 7
1724014 📚 썰 쉐오체 아트에서 누락된 것들 정리 [15] ㅇㅇ(122.44) 23.12.31 3045 17
1723906 📚 썰 제국 주력 보병이 할버디어인게 고증임? [5] 쩔더라ㅋ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12.31 600 0
1723398 📚 썰 햄타지) 올드월드의 제국 소개 문구 정리 [3] ㅇㅇ(122.44) 23.12.29 457 5
1723345 📚 썰 햄타지) 올드월드의 브레토니아 소개 문구 정리 [1] ㅇㅇ(122.44) 23.12.29 381 4
1723205 📚 썰 과거 레만 제국 추정 강역 [5] ㅇㅇ(112.146) 23.12.29 385 4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