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혼산 정상 위로 태양이 떠오르고, 마침내 적들의 완전한 규모가 드러났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수천의 고블린들이었다. 늑대의 등 위에 올라탄 기수 놈들에 일부는 늑대가 끄는 전차를 몰아대는 족속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조잡한 창과 방패로 무장한 놈들은 도보로 전진해오고 있었다. 드래곤백 산맥의 동굴 속에서 살아가며 햇빛을 두려워하는 그런 놈들과는 달랐다. 놈들의 머리 위로는 뼈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조잡한 깃발과 토템들이 나부끼고 있었는데 이는 전진해오는 고블린 무리가 서로 다른 여러 지역에서 전쟁을 위해 결집한 무리들임을 나타냈다. 야지를 떠돌던 야생의 무리들. 저 먼 남쪽에서부터 약탈과 복수의 약속을 따라 행군해온 것이 틀림없었다. 고블린들은 온갖 자재들이 실린 멧돼지가 끄는 수레도 여럿 대동하고 있었다. 할도라는 그것이 조잡한 전쟁병기들의 부품은 아닌지 의심했다.

야생 고블린들 곁으로 더 큰 그린스킨 족속들이 함께 행군했다. 가죽 갑주 위로 어두운 색의 망토를 걸친 놈들은 고블린보다는 크고 오크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홉고블린. 오래된 이야기들 속에서나 등장하던 놈들이었다. 수 세기도 전에 난장이들에 밀려 야지 저 너머로 사라져버렸던 족속. 저 먼 어둠의 땅이나 북방으로 나아가야만 만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었다. 이제 놈들은 창백한 털색을 가진 무시무시한 크기의 늑대들을 대동하고서 전진해왔으니 수많은 지역의 군세가 결집한 것인 분명한 이번 침공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고블린 군세의 일부는 가도를 따라 행군해오지 않았다. 놈들은 협곡의 가파른 경사를 타고 넘어왔는데 갖가지 기괴한 장식물들로 머리를 치장한 놈들의 등에는 뼈와 깃털로 만들어진 깃대가 나부꼈다. 붉은색과 보라색 거죽을 가진 거대한 거미들 등에 올라탄 놈들은 바위와 바위 사이를 미끄러지듯 헤쳐나가며 뒤로는 추잡한 거미줄 자욱을 남기고 있었다. 몇몇 거미들의 크기는 어지간한 말보다도 컸는데 심지어는 그보다도 거대한 놈들조차 있었다.

거미 기수의 무리 한 가운데 가장 거대한 크기를 가진 거미가 있었다. 거의 작은 집채만 한 크기의 괴수. 무리의 수장이 올라탄 것이 분명한 놈의 등에는 옥좌처럼 꾸며진 단이 삐죽이 솟아있었고 그 외에도 갑각 빼곡이 온갖 종류의 널빤지들과 말뚝들이 단단히 고정되어 간이 갑주역할을 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고블린들이 단과 밧줄에 매달려 기성을 질러대고 있었는데, 놈들의 손에는 작은 단궁들과 살인적인 형상의 단창들이 들려있었다.

오크들 또한 파도처럼 밀려드는 고블린들과 거의 비슷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개중에 등을 잔뜩 구부린 호리호리한 몸집의 놈들은 저 먼 남쪽 정글지대에서 온 족속이었다. 천쪼가리 외에는 별다른 갑주를 차려입지 않은 놈들은 단순하게 생긴 돌도끼로 무장한 채 온통 문신으로 가득한 생살을 내보이고 있었다. 놈들의 무리 전체가 내내 난장이들과 내리쬐는 태양빛에 대한 증오로 통곡하듯 울부짖었다.

오크 본대는 거대한 군집을 이루어 뒤따라 왔다. 조잡하게 짜여진 깃발들과 온갖 부족들이 상징물들. 일부는 자신들의 깃발 아래 결집해있기도 했다. 잡다한 전쟁병기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덜커덕거리는 멧돼지 전차들이 군집의 대열을 흩트리며 앞서 나왔고, 숫제 멧돼지 등 위에 올라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기병무리도 있었다.

일단의 고블린 무리를 앞세운 채 전진해오는 또 다른 오크 족속이 보였다. 중갑으로 완전무장한 채 박자에 맞춰 행군해오는 무리. 할도라는 오직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던 놈들의 모습을 알아보고야 말았다. 어둠의 땅에서 온 블랙 오크들. 일반적인 오크들과는 달리 놈들은 그저 싸움에 미쳐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놈들은 조직적인 전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단단히 조직되어 군기 잡힌 블랙 오크의 무리는 무질서하게 들끓는 대군세 속에서도 홀로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자아냈다. 곧 놈들이 펼쳐내보인 진가는 실로 아연실색할 만 했으니, 블랙 오크 무리 사이로 제대로 만들어진 사다리들과 공성추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고블린 무리를 공성병기의 방패막이로 앞세우고 있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게 하는 날카로운 뿔나팔 소리와 함께 둔중한 북소리들이 계곡 위로 울려 퍼졌다. 울부짖고 포효하는 야수들 사이로 아직 상하지 않은 와이번 두 마리는 여전히 상공 위를 떠돌며 성탑의 노포들과 투석기 사정거리 밖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놈들의 거대한 그림자가 성탑과 보루 위를 맴돌았다.

블랙 오크가 그냥 좀 기강 잡히고 힘 좀 쓰는 오크들인 줄 알았는데, 이새끼들 전문적인 공성전 능력도 갖춘 진짜 그냥 정예부대 느낌이다.

에크룬드 개좆되기 일보직전.